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삼중섭리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삼중 섭리/눅15:3-24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삼중 섭리
눅15:3-24





하나님께서는 죄와 멸망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대하여 쉽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들이었지만 오늘은 우리들 인류 모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로, 성자 예수님의 구원섭리에 대하여 잃어버린 양의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잃어버린 양은 우리들이요, 그 양을 찾아나선 선한 목자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 목자에게 있어 한 마리는 별 것 아닙니다. 그 한 마리가 없다고 목자가 못살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목자는 선한 목자라 그 한 마리의 이용 가치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 마리를 중심하여 그 생명과 행복에 절대적인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목자는 자신의 음성을 불순종하여 떠나버린 양을 당신 자신의 선하심으로, 당신의 가슴 속에서 울어난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성한 양 99 마리를 들에 버려두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찾아 다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억지로 보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죽게 된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인류는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지옥의 존재와 이땅에 존재하는 지옥같은 현상을 보십시오. 온갖 형태의 파멸과 재앙, 흉악한 질병과 테러의 공포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우리는 죄의 대가로 우리 생명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인류는 죄의 종이요 죽음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품 속에 계신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대속자가 되기 위하여 인성을 입으셨습니다. 무죄하신 분으로써 인류의 대표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습니다. 소극적으로는 율법의 저주인 죽음을 대신하였고 적극적으로는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값인 사망에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으로 대신되고,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은 우리의 부활과 생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것입니다. 길 잃은 양으로써 흑암 가운데 행하던 우리가 예수 복음 안에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의 속죄함과 의로움이 된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다시 찾은 양을 자기의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주님의 구속사역은 완전하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짐을 지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짐도 지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능력의 어깨에 목말을 태우고 천국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시 68:19)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믿음이란 SӦren Kierkegard가 말한 대로 구원을 위해 믿음의 도약, 곧 예수님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의 어깨는 안전하고 힘이 있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죄과를 하나님 앞에서 도말하시고 죄책을 여러분에게서 당신의 십자가로 옮기십니다. 그리고 당신 안에서 당신과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참으로 깨닫게 하기 위하여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둘째로, 성령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대하여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로 말씀하여 주십니다. 어떤 주석가는 말하기를 이 은전에는 당시의 통치자 또는 여왕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요컨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 형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은전은 금속이라 스스로 자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도무지 잃어버린 자신의 실체,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엡 2:1의 말씀처럼 진실로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여자가 그 잃어버린 은전을 찾아 나섭니다.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습니다. 이것이 인간구원을 위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곧 인간을 구원하시고야 마는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성령님은 등불을 켜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십니다. 복음전도와 말씀교육으로 그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진리를 비취실 때 비로소 우리는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죄와 허물로 죽었구나!”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가는 회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자신을 맡기는 결단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은전을 찾은 다음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것이 원래 자기 소유인 까닭에 깨끗이 씻고 기름을 칠하여 자기의 보석함에 넣어 두거나 아니면 열 개의 은전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자기의 목을 치장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우리를 간수하시고 닦으십니다. 성령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날마다 거룩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드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표현할 때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성화라고 부릅니다. 성령님은 구원 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시험과 연단을 통하여 성화의 공작을 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행복에 겨운 고생을 하는가 하면 의미가 충만한 시련의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본래적인 의인은 하나도 없고, 오직 예수 믿어 의롭게 된 사람만 있는데 그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잠 4:18). 할렐루야!

이 성령님의 역사는 오늘날 바로 교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란 성령께서 입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옷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진리의 등불을 켜고 부지런히 잃어버린 은전을 찾도록 부지런히 찾아 나섭니다. 성령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이 구령 사업에 태만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도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니 우리 교회도 일해야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구속하고 얽어매는 짐(burden)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풍성한 생명을 위한 선물(gift)입니다. 신명기에서 사용되는 생명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풍성한 삶을 오래도록 사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생명은 잘 사는 것(well-being) 이지 역경이 아닙니다. 번영이지 화가 아닙니다(신 30:15~20).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대하여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성령님과 함께 예수 복음 진리의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고 있습니다. 대신동부터 다대포까지 송도, 감천, 온 부산 시내를 쓸고 또 쓸어 하나님의 잃어버린 은전을 찾도록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부산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땅끝까지 이 복음의 빗자루로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찾도록 부지런히 온 세상을 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중요한 물건이나 사랑하는 아이를 잃어버리고서 온 집을 찾고 온 동네를 찾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령님은 그렇게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찾도록 찾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금년 가을도 EF2004 행복찾기 전도축제를 통하여 당신의 귀한 자녀들을 찾도록 찾고 계신 것입니다.

셋째로, 성부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하여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곧 성부 하나님이시오,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는 잃어버린 양과 같고, 잃어버린 은전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주 나쁜 놈입니다.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유산을 달라고 했으니 이 자식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사상 유례가 없는 불효자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탕자를 바로 우리들에게 비유하십니다. 보세요. 예로부터 인생은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고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시 2:2~3에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고 했고, 시 14:1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했으며 애굽의 바로는 모세에게 이르되 “주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들으랴”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사상은 무신주의에서 사신주의로, 나아가 살신주의로 나아갑니다. 그런데도 이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유산을 쥐어 주었으며, 그 자식이 마침내 패망하여 죽게 된 것을 알고는 그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즉시로 다시 아들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 손가락에 반지, 살진 송아지, 이것은 분명히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지 종에게 주는 물건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사망 가운데, 죄 가운데 더러워졌어도 천사도, 마귀도 아닌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은 아들에로의 구원이지 부리는 영에로의 구원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말씀이 되어 온 집에 울려퍼집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사춘기 때 집을 나간 한 청년이 몇 년이 지난 후 아버지께로 돌아왔더니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꼭 껴안고 눈물만 흘리시더랍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정작 가만히 있지 못하는 편은 부모지 자식이 아닙니다. 자식은 쉽게 원망하지만 부모에게는 원한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안타까워 하는 것은 교회지 세상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탕자의 입에서 “아버지여!”라는 말이 나오자 그로서 모든 상황은 종결되고 원상복귀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오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 예수의 피묻은 복음을 가지고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시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 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로 예수님의 궁전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성령의 은혜 안에서 다윗은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삼하 22:29). 성부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우리들을 품꾼의 하나로가 아니라 아들로서 받아들이시고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누리시던 그 영광의 자리로 우리를 영접하여 주십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 또한 인생을 구원하십니다. 풍성한 삶은 오직 성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요, 영광이요, 영원히 거할 처소입니다. 성자 하나님의 구속을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쳐주십니다. 인생은 성령과 함께,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그분만이 이렇게 인생을 구원하십니다. 성자 예수님의 은혜, 성령 하나님의 교통, 성부 하나님의 사랑! 이 신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중섭리 가운데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