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은 왼손

구원받은 왼손잡이/눅6:6-12

구원받은 왼손잡이
눅6:6-12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시더니 거기에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더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려하시는가 지켜보거늘 그분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한가운데로 나와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와 서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묻겠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율법에 맞느냐, 악을 행하는 것이 율법에 맞느냐? 생명을 구하는 것이 맞느냐, 죽이는 것이 맞느냐? 하시며 그들 모두를 둘러보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앞으로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며 그 손이 다른 손같이 온전하여 회복되니라. 이에 그들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그 대에 그분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니라.』(눅6:6-12)


1.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맹목적으로 안식을 지켜야 한다는 고집으로 가득한 사람들, 곧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들추는 것이 오늘 누가복음 6장 1절에서 12절 사이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이 잘못하고 있음에 대해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고정관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정관념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리고 한 번 형성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데는 많은 시간과 반대를 극복해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명 그 고정관념을 깨뜨린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성(性)을 표면화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터부시하거나 꺼려했었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은 교양 없는 짓처럼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을 깬 어떤 여성이 매스컴과 방송을 통해 성교육 강사로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강좌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천박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고정관념을 깨버렸기 때문에 흘러가는 시대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청소년들과 교사들에게 어떻게 성을 가르치고 지도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었습니다.

유대인들 역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 속에서 안식일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법에 따르면 그 날은 하나님 앞에 구별된 날로서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할 날이었습니다.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나그네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

그래서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이며 누구든지 그 날에 일하는 혼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되어 있습니다(출31:14,15). 그래서 그 법이 적용된 예가 민수기 15장 32절에서 3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안식일에 나무를 거두어 들였고 이스라엘 회중은 그 자를 돌로 쳐서 주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른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흥분했던 이유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2.고정관념보다도 더 중요한 것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있어 안식일에 일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관념 속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안식일이라는 것을 통해 어떤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죽이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오른 손 마른 사람이 안식일에는 고쳐지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간주했으며 예수님을 대할 때도 이 안식일을 어기는가 보고서 그를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았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고정관념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알기 위해서였습니다(눅6:7).

교회 안에도 많은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예배당을 지으면 꼭 십자가 탑을 세워야 한다는 것, 사실 그것을 강요하는 성경구절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탑을 세우는데 돈을 투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탑을 만들어 파는 장사꾼들이나 도와주는 일이 아닌지.....

\"어? 왜 그 교회에는 십자가 탑이 없지?\"
\"왜 그 교회는 사도신경을 암송안하지?\"
\"어? 그 교회는 왜 크리스마스를 안지키지?\"

사람들이 그런 고정관념에 관계된 문제를 따지고 있는 동안 한 사람이 죽어갑니다. 오른 손 마른 사람과 같은 연약한 사람들이 고정관념의 짐에 의해 죽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믿고 있는 고정관념이 절대로 옳은 것이었다면 그 오른 손 마른 사람은 영원히 그렇게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고정관념을 깨버렸습니다.
어짜피 지킬 수도 없는 그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관심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가장 선한 행위이며, 사람을 살리는 일, 곧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그들의 관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에덴 동산 때부터 생명나무 열매 대신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십니다. 그것이 인간이 살 길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종교의 굴레, 율법의 굴레, 철학과 사상의 굴레, 모든 굴레의 관념에서부터 자유로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많은 고정관념이 사로잡는 교회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성경이 말하는 교리를 무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정관념과 교리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은 율법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사람들의 관념에서 나온 것이든 복음과는 상관없이 형성된 것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어긴다면 오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처단해야 한다고 간주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복음에 따른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바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내게 맡기신 복음 곧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에 따른 것이라』(딤전1:11)

그래서 바울은 저처럼 젊은 목양자였던 디모데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고 권했습니다.

『아무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2,13)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계속해서 이것들을 행하라. 이는 네가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자들을 구원할 것임이라』(딤전4:16)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따른 교리를 가르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교리대로 믿고 실행함으로써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합니다. 결코 어떤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율법에서 나온 고정관념이라면 주님은 그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들을 알려주십니다(막2:27). 율법은 그 자체에 매이게 하려는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매여 죽게 된 어떤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자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의 명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를 보십시오. 그것은 죄를 알게 하고 그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매여 죽게 된 자를 살리는 것이 그것의 목적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십시오. 그것은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훈육선생입니다. 복음으로 조명되지 않은 고정관념은 오히려 사람을 죽일 뿐입니다.

3.깨질 수 있는 고정관념

일반적으로 옛날 어른들은 자녀를 오른손잡이로 만들려 했었습니다. 그들의 관념 속에서 왼손을 쓴다는 것은 왠지 천박하고 상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그러한 관념들이 깨졌습니다. 그 학자들에 의하면 오른손은 왼쪽 뇌를 자극하는데 왼쪽 뇌는 논리적인 부분의 발달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왼손은 오른쪽 뇌를 자극하여 감성적인 부분의 발달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른손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그 고정관념을 깨고, 오늘날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양 손을 다 쓰는 것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자면 글씨는 오른 손으로 그림은 왼 손으로, 젓가락은 오른 손으로 수저는 왼 손으로. 서양 사람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레스토랑에서는 양 손을 다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칼과 포크를 한 손 씩 나누어 쥐고서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양반과 쌍놈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쌍놈으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훌륭하고 재주가 좋아도 천하게 살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 신분을 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련하고 악한 사람이라도 양반의 자녀로 태어나면 호강하면서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양반과 쌍놈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누가 아직까지도 양반을 따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제정신 아니라고 말하며 왕따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습니다(잠28:26).

설교를 준비하는 제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관념의 지배 아래 설교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느 본문을 읽고 이미 머리 속에 있는 고정관념으로 그 본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본문이 말하는 바를 말해야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야지 내 고정관념을 펼치기 위해 이 성경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정관념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깨어져야 합니다. 복음 앞에서 부서져야 합니다. 많은 종류의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미신이 그것이고, 꿈을 신봉하는 것이 그것이고, 말씀을 저버린 채 자기의 경험만을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고, 종교적으로, 관습적으로, 율법적으로, 철학적으로 많은 고정관념이 있습니다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모든 것이 깨질 수 있습니다.

4.오른 손 마른 사람의 의미

성경으로 돌아가봅시다. 오른 손이 말랐다고 하는 것은 그가 왼 손을 주로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왼손잡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오른 손과 왼 손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오른 손은 대게 능력을 상징합니다. 유능하고 유력한 것을 표현할 때 오른 손을 사용합니다.

『오직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6:3)
때때로 성경은 교회라는 모임을 설명할 때, 몸에다 비유를 하곤 합니다. 그리고 한 몸으로 구성된 각 신체들은 그 교회에 소속된 지체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때문에 여기서 오른 손, 왼손은 단지 우리 육체를 말하는 것 이상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유능하고 힘있는 자가 선한 일을 베풀 때에는 힘없는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왼손잡이를 이상하게 여겼듯이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느날 요셉이 자기 두 아들을 데리고 임종을 앞 둔 아버지 야곱에게로 나아갔습니다.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를 아버지가 오른 손을 얹을 수 있도록 왼편에, 차자를 아버지가 오른 손을 얹을 수 있도록 오른 편에 데리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 다르게 야곱의 오른 손이 요셉의 차자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이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갔을 때 요셉은 그리 마시라며 아버지의 행위를 막으려했습니다(창48:18). 왜 그랬겠습니까? 그의 관념 속에는 오른 손이 먼저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왼손을 사용한다는 것은 천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른손 마른 사람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좋은 것을 누구에게 경험시키실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좋은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오른 손 마른 사람처럼 자기 처지를 천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구에게 누리게 하실까? 바로 오른 손 마른 사람과 같이 자기 약함이 드러난 사람입니다. 오른 손 마른 사람은 모든 사람 앞에 일어서야 했습니다. 모두가 그의 약함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왕 에글론을 섬길 때, 그 민족을 모압왕에게서 구해내는데 하나님께서 쓰신 인물은 왼손잡이 에훗이었습니다(삿3:21). 하나님께서 왼손잡이를 들어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세상이 천하게 여기는 존재를 들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리셨던 것입니다.

5.왼 손 같으신 예수님

구약시대에 제사장의 교리로 돌아가봅시다. 속건제를 드리는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그 기름을 사용할 때, 왼손 바닥에 그 기름을 부었습니다(레14:26). 제사장의 손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그 왼손 바닥은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입니다. 약한 예수님에게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호와로운 왕실이 아닌 짐승들의 숙소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화려한 동네가 아닌 나사렛이라고 하는 촌동네에서 자라나셨습니다. 때문에 어떤 이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요1:46). 그 천한 곳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기록한대로 그야말로 볼품없는 인물이었습니다(사53:2).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 손이 그 기름을 찍어서 주 앞에 일곱번을 뿌렸습니다(레14:27). 주님은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롬1:4). 또한 그 속죄제를 위하여 그 피를 바른 사람의 오른 귓부리, 오른 엄지 손가락, 오른 엄지 발가락에 기름을 바른다고 했습니다(레14:28). 여기서도 오른 쪽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요셉이 그 아들 장자를 그 자손의 대표로 간주하려 했듯이, 오른 쪽은 대표, 유력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그 피가 발라진 곳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주님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사함받은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에베소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1:7)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들은 뒤에 신뢰하고 또한 믿은 뒤에 그분 안에서 저 거룩하신 약속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엡1:13)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해 천한 나를 부르신 주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까닭은 바로 그 오른 손 마른 자와 같은 우리의 입장을 깨달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천한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6.강한 자를 사용한다는 고정관념마저 깨시고....

예수님의 최고의 관심은 선한 일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많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들 스스로 강한 자로, 또는 유력한 자로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에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선한 것과 생명을 살리는 일을 경험한 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오른 손 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것을 베푸시고 생명을 주시는 것은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멸시받던 왼손잡이와 같이 세상이 무시하는 사람들, 스스로 잘난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시려고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이는 어떤 육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