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막10:17-27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그렇다는 대답과 그렇지 않다는 대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특징적인 구절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안에서\" 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 안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의 구원관을 한 마디로 하면, 자기 수양을 충실히 하면 누구나 왕생극락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구원관을 잘 보여주는 성철스님의 글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자기를 바로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 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 입니다.
자기를 바로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읍니다. 유형, 무형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여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중략)
자기를 바로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 큰 진리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 합시다.
불교에 의하면, 우리는 두 자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진아(眞我)와 가아(假我), 즉 \"진짜 나\"와 \"가짜 나\"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짜 나\"가 \"진짜 나\"를 둘러싸고 있어서 진짜 나\"가 빛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진흙이 묻은 진주와 같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구원의 길인 도를 닦는다는 것은 진주에 묻어있는 흙을 닦아내는 것입니다. 진흙이 묻은 진 주에서 겉으로 보이는 진흙은 \"가짜 나\"이고, 진흙 속에 있는 진주가 \"진짜 나\"라는 것입니다. 도를 닦아서 \"가짜 나\"를 버리고 진\"진짜 나\"를 발견하면 내가 부처가 되는 것이고 구원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부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난 주에 말씀을 통하여 살펴본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자원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우리 안에 넣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한한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상수도 공사를 하느라고 수도관을 끊었습니다. 물이 나옵니까? 안나옵니까? 나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물이 나옵니까? 아니지요. 물탱크에 물이 있는만큼만 나오고는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한한 자원인 하나님으로부터 파이프가 끊어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불교의 구원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불교에서 큰스님으로 떠받들고 있는 성철스님이 죽을 때 마지막 남긴 열반송(涅槃訟)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차 수미산 보다 더하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갈래이니 한 덩이 붉은 해 푸른산에 걸려 있다
이 시를 두고 불교에서는 그 의미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왜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큰일나거든요.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온갖 말들을 덧붙여서 성철스님의 열반송을 철학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죽을 때는 정직하다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리 거짓말을 많이 하면서 산 사람도 죽을 때는 진실을 말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성철이 남긴 시는 어려운 시가 아닙니다. 어려운 말들을 덧붙이니 어려운 시가 되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죽어가면서 보니까,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부처님들\"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 안에는 누구에게나 부처님이 있다고 했는데, 사람 안에는 부처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죄만 있다는 사실을 그는 죽어가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업이 하늘에 가득차 불교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는 상상의 세계의 산인 수미산보다 더 자기의 죄가 높이 샇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미래를 본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부활합니다. 산채로 그는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가슴 아프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우리 안에서\" \"우리 안의 것으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은 거짓말입니다. \"우리 안의 것으로\" 자신의 구원을 추구했던 성철스님이 자신이 죽어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죽었습니다. 성철스님은 장자불와를 8여년을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한국이 낳은 현대의 최고의 고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 그렇게 천추의 한을 안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철스님만큼 자신을 철저하게 수행하지 않은 예수를 믿는 평범한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습니까?
얼마 전에「죽으면 죽으리라」는 책을 쓴 안이숙 사모님이 죽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죽어갔습니다. \"나는 아버지 집으로 이사 간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아라. 나를 위하여 장승곡을 부르지 말고 행진곡을 불러다오.\" 최고의 고승이라고 하는 성철스님의 죽음과 한 이름없는 한 여인의 죽음이 이처럼 대조를 이루는 것은 왜 입니까? 바로 구원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두 번째 말은, \"우리의 것으로\"입니다. \"우리의 것으\"란 \"우리가 소유한 것으로\"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구원관은 물질주의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생각 속에 깊이 뿌리 박힌 생각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살펴보면서 인간이 자신 안의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다 낫고 편안한 삶을 위하여 인간들이 시도하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자원을 힘으로 강제적으로 빼앗아서 자신의 자원을 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삶의 철학입니다. 현대인들의 삶의 철학을 한 마디로 나타내는 말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입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지요. 돈, 어떻습니까? 당연히 많을수록 좋지요. 권력, 어떻습니까? 권력도 많을수록 좋지요. 명예는 어떻습니까? 명예도 당연히 많을수록 좋지요. 지식은 어떻습니까? 지식도 당연히 많을수록 좋지요. 그러나 이것은 진리는 아닙니다. 옛말에 식자우환(識字憂患)라고 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문 열어 놓고 살 수 있는데 돈이 많으면 감옥 아닌 감옥을 만들어서 그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없으면 마음 편한데 오히려 있으면 좋은 부분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절대진리가 아닙니다. 부분적으로는 옳지만 또 다른 한 부분에서는 틀린 것입니다.
\"우리의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사실은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의 구원관을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것으로\"입니다. 이 땅에서 죽은 영혼들은 죽어서 연옥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헌금을 많이 하면 헌금궤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연옥에 있는 사람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95개조의 반박문에서 27번째로 이렇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헌금궤에 떨어진 돈이 쩌렁 소리를 내자마자 연옥에서 영혼들이 올라온다고 하는 사람은 교설(巧說)을 설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세 로마카톨릭 교회는 죄사함도 면죄부를 돈으로 사면 죄가 사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95개조의 반박문에서 21번째로 이렇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부를 사므로써 사람이 모든 징벌에서 해방받고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면죄부 판매 권유자는 그릇되다.\"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카톨릭교회가 \"우리의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아니라고 거부하고 \"Sola Fide\"(\"오직 믿음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우리의 것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방송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최고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대답이 어떠했을까요? 어떤 대답을 가장 많이 했을까요? 첫 번째로 많은 대답이 돈이었습니다. 약78%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이 기타로 약 9%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권력과 지식이라는 대답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하면, 성공한 인생이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문명에 대한 낙관론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스스로의 지혜를 계발하면 언젠가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명낙관주의는 계몽주의 이래 19세기의 자유주의에 있어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때는 인간의 이성을 계발해서 교육을 시키고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면 인간에게 악과 고난이 없고 서로 싸움이 없는 평화와 풍요의 상태를 이를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낙관론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하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최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최대로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인류역사에서 일찌기 보지 못한 죄악이 바로 인간의 계발된 지성으로 발달된 과학과 기술을 통하여 발생되었던 것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인간이 아무리 이성을 계발해 보았자 제한된 것으로써 인간의 근본 문제인 악과 고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문명에 대한 낙관론은 오늘날에 와서 과학의 영화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과학으로 인간의 유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복제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제인간을 만든다고 해서 인간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측면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서 자신을 복제하고자 하는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장애인들이었습니다. 자신을 복제해서 정상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정상인이라고 문제가 없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상인에게도 삶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과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정상일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나왔습니다. 그는 삶에 대하여 진지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젊고 부자인 사람이 삶에 대하여 이렇게 진지한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대답을 하십니다. 러자 그는 자신있게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에 대한 청년의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22절입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 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젊은 청년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부자 청년이 근심하면서 돌아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 10:23).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아주 중요 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24-25절을 보십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 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 인간이 소유한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소유한 것으로 천국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을 무엇과 비교하여 말씀하고 있습니까? 낙타를 바늘귀로 통과시키려고 시도하는 것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바늘귀를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문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문자 그대로 바늘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인간이 소유한 것으로는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인간이 소유한 것으로 천국문을 통과하고자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소유한 돈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 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소유한 그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선언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0:27절을 보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구원은 사람으로는 할 수 있다? 없다? 구원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복음송 가운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돈으로도 못 가요\"라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그러면 어떻게 가요?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인간들은 두 가지 대답을 내놓습니다. \"우리 안에서\" 가능하다, \"우리의 것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분명하게 못을 박으셨습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이 가능 합니까? 그것을 설명해 주는 말이 \"우리 밖에서\"(extra nos)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0:27절을 다시 보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우리 밖에\" 계시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안하셔서 그렇지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밖에서\"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하나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름 휴가 때 한 번은 강가로 휴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물가에서 헤엄치고 물장난에 재미 있어 했습니다. 어른들은 조개를 잡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는데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습니다. 쉴 수 있는 그늘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차를 가지고 들어오 면 승합차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그늘을 만들어줄 것 같았습니다. 강가를 보니까 작은 돌들로 제법 단단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차를 강가로 가져왔습니다. 저의 기대대로 승합차는 훌륭한 그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그늘에서 한숨 자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 해가 저물어 갔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분 좋게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30cm도 못가서 차의 바퀴가 작은 조약돌들을 파고 땅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빠진 차를 꺼내기 위하여 별짓을 다해 보았습니다. 땅을 파고 넓쩍한 돌을 바퀴에 바치기도 했습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 내려서 차를 밀기도 했습니다. 빠진 곳에서 빠져나오려고 시도를 하면 할수록 차 바퀴는 땅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렇게 30분 이상을 허비했습니다. 도저히 스스로는 빠진 곳에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하지요. 저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기억했습니다.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밧단 아람으로 갔을 때, 우물 곁에서 \"하나님, 순적히 만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엘리에셀의 기도를 기억하고 빠진 곳에서 나오려는 시도를 멈추고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움을 순적히 받게 하옵소서!\" 기도를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갤로퍼 한 대가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보고는 갤로퍼에 탄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서 다가왔습니다. 차에 교회 이름이 적혀 있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자기는 대구 어느 교회 집사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목사님 도우라고 여기를 들어오게 하셨나 봅니다. 지나가다가 괜히 고향 마을이 한 번 보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이분의 고향이 바로 강가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고향 마을을 지나가다가 마을이라도 한 번 둘러보고 싶어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남자 장정 세사람이 와서 차를 밀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만해도 제가 운전에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집사님이 운전석에 올라가서 운전을 했습니다. 그러자 빠져있던 차가 쑥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좋아하기는 아직 일렀습니다. 제 차는 얄밉게도 1m도 채 못가서 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남자 장정이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밀어도 차는 헛바퀴질만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바퀴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운전석에서 내린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마을에 가서 줄을 구해 오겠습니다.\" 그 집사님은 갤로퍼를 타고 마을로 가서 10분 뒤에 줄을 구해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동네에 사람이 없어서 어떤 집에 들어가서 지게 줄을 풀어왔다는 것입니다. 갤로퍼가 제 차 앞으로 왔습니다. 줄로 갤로퍼와 제 차를 연결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갤로퍼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제 차는 그냥 쑥 딸려서 빠진 곳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다시는 빠지지도 않고 안전한 곳까지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죄와 사망에 빠진 우리 인간의 구원은 오직 \"우리 밖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밖에서,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할렐루야!
마가복음 10:27절을 다시 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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