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소리 막10:17-22
제러미 리프킨 교수의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느끼지도 못하면서 변화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업은 소유보다는 접속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부동산을 팔아치우고 재고를 줄이고 시설을 빌리고 아웃 소싱을 맹렬히 추구하고 있습니다.
소유는 모든 것이 휙휙 바뀌는 풍토에 적응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7초안에 할 말을 모두 해야 하는 속도전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물건을 팔기 위해 서비스를 했으나 이제는 물건은 그냥 주고 서비스를 팔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60% 정도가 소유가 아닌 렌트라고 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도 소유가 아닌 접속의 문화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도 여러가지로 접속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 편하고 경제적이고 모든 면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을 몇 달 전에 읽으면서 오늘의 본문을 생각했고 설교의 제목을 \"구원의 소리\"로 정하면서 \"구원의 소리\"라는 성가곡을 성가대에 부탁해서 오늘 전 성가대가 찬양을 합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보다는 그의 많은 소유를 선택하므로 그 소유와 함께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소유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인 구원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소유로 인해서 눈이 멀고 귀가 막히고 마음이 닫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소유는 복이 아닌 화이고 지옥입니다.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잘 사용하고 공유하고 나누는 삶의 도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소유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과 사명을 모두 잃어버리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가을 10월에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구원의 소리를 듣는 구원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부족한 것을 알라
본문 21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께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하자 예수께서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율법 준수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사람입니다. 본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한 가지 부족한 것만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한 가지 때문에 영생의 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 부족은 율법의 외적이고 형식적인 계명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히 통감하는 전격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숨통이 막히면 죽듯이 이 한 가지는 숨통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미국인 선교사인 모르갠 박사는 인디언 마을만 찾아다니면서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언 마을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을 지나가다 우연히 길을 잃은 인디언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르갠 박사는 친절하게 \"젊은이! 길을 잃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인디언 청년은 자기들의 생활 터전인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더욱이 백인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더욱 자존심이 상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뇨, 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오두막집이 없어져서 찾고 있소.\"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못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을 모르고 교만하게 사는 것은 불행합니다. 또한 부족한 것을 고치려 하지 않고 고집과 아집 속에서 사는 것도 불행합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하고 겸손하게 살 때 부족이 채워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부족합니까? 건강, 가정, 경제, 영적인 면… 부족한 것까지 감사합시다. 겸손함으로 그대로 받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부족을 모르고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리치시지만 부족을 알고 겸손하게 회개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성도야! 네 부족을 알라\"라고 하시는 주님의 구원의 소리를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여 은혜와 사랑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가난한 자들을 주라
본문 21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 만만한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영생을 위하여 정작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소유의 포기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포기하고 나서 예수를 따르는 것이 영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의 포기는 이웃 사랑의 길과 일치됩니다. 즉 자기 중심을 향한 의식과 소유욕이 타인을 향하여 전환되어야 합니다. 요즘 \"이용호 사건\"을 통해서 볼 때 인간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심과 소유욕으로 가득 차 있는지 치가 떨립니다. 인간이 욕심으로부터 전격적으로 돌아서는 철저한 회개와 절대적인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경제 윤리는 청지기 윤리인데 모든 소유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소유를 하나님의 자녀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있어서는 그의 재물뿐 아니라 지위, 신분, 안락함, 무사태평이 그를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했던 것입니다. 마치 사슴이 자랑하던 그 뿔이 풀에 걸려 뿔 때문에 죽는 것처럼 부자가 믿고 자랑하던 바로 재물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영생의 길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욕심, 이기주의, 자기 자랑, 지나친 소유욕으로부터 벗어나 나눔과 사랑과 섬김의 낮은 자세를 가져야만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어느 한 젊은이가 큰 돈을 벌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거리를 찾아다니다가 하루는 어느 성문에 붙어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와 내기하여 이기는 사람에게는 많은 보물과 보화를 주겠다. 성주 사탄\" 그는 성주가 사탄이라는 말에 망설여졌지만 돈을 벌기 위해 사탄의 성으로 갔습니다. 그 내기는 13개의 술잔 중에 독이 들어 있는 않은 술잔을 골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3개의 잔 중에 하나를 택해서 마셨고,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내기에서 이긴 그는 큰 자루에 금화를 가득 담고는 근처의 가장 화려한 도시로 가서 흥청망청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빈털터리가 되자 그는 다시 사탄의 성으로 달려갔습니다. 또다시, 계속 그는 사탄의 성을 찾아갔고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점점 더 환락과 죄악 된 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술에 취해 사람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은 뇌물을 준다면 사형 대신 추방형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가 이 일로 사탄을 또 찾아갔을 때는 13개의 술잔 중에 단 두 개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둘 중에 하나를 골라 눈을 감고 단숨에 마셔 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떠보았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사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젊은이를 말없이 지켜보던 사탄은 이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친구여! 자넨 나에게 이미 졌어. 나를 만난 그 순간부터 자네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던 거야. 모든 술잔에 조금씩 독이 들어 있었거든.\"
누구나 세상의 것들을 열심히 좇아 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죄악에 조금씩 빠지게 되어 나중에는 빠져 나올 수가 없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물질적 가난, 정신적 가난, 인격적 가난, 영적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우리의 것은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나눌 때 더 커지고 많아집니다. 나눌 때 계속 나눌 수 있고 참으로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욕심은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과 영생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나눔은 최고의 행복과 영생을 선물합니다. 가난한 자들과 모든 것을 나누라는 예수님의 구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 땅의 행복과 하늘의 영생을 선물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주님을 좇으라
본문 21-22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를 믿고 어떠한 어려운 말씀을 하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필요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은혜와 특권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자 청년을 향하여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서 좇으라고 하였을 때 그는 예수보다는 재물에 더 많은 관심과 애착이 있었기에 근심하며 예수를 포기하고 자기 재물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재산에 대한 소유욕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최대의 가치를 재물에 두었습니다. 재물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를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는 재물을 선택하므로 예수와 영생을 포기하였습니다. 순간 때문에 영원을, 단순한 가치 때문에 영원한 가치를 상실한 초라한 사람으로 가치 없는 인생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이 어떻게 해서 그려졌을까요? 최후의 만찬은 그의 나이 43세 때에 밀라노의 어떤 백작의 요청에 따라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예수님이 중앙에 앉아 계시고 제자들이 양옆에 앉아서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처음 그림에는 예수님께서 오른손에 컵을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현재 그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작품이 완성될 무렵 다빈치는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그 친구가 대뜸 \"다빈치, 여기 예수님이 든 컵은 꼭 진짜 같은데\"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일 수 있겠지만 다빈치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장 진짜 같이 보이는 컵을 지워버리고 예수님의 팔이 가만히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모양으로 그림을 수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들 가운데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습니까? 신앙의 어려움은 삶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때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 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좇아가고 있습니까? 에서는 팥죽을, 롯은 재물을, 빌라도는 명예를, 가룟 유다는 돈을 좇느냐고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우리도 재물, 명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것, 순간적이고 현세적인 것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하고, 사명을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까?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사탄입니까? 우리의 현 주소와 인생의 방향을 점검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인생의 각도를 조절하고 U턴합시다. 어떤 어려움과 댓가를 지불한다고 하여도 기쁨으로 희생합시다. 주님이 원치 않으시면 어떠한 부귀영화라도 포기하고 \"나를 좇으라\"는 주님의 구원의 소리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성도가 됩시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전쟁과 유혹의 소리가 너무 시끄럽습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을 압시다. 주면서 삽시다.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리를 매일 듣고 순종하고 전파하는 자랑스러운 영원한 영적 부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