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쁨

구원의 기쁨/막10:17-27

구원의 기쁨
막10:17-27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랬습니다.
그때 이 청년은 대답하기를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고 말씀하시니 이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에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시며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심히 놀라며 서로 말하기를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고 말씀해 주신 내용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수없이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8만여 가지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종교의 종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그 많은 종교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종교(宗敎)\'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 문화의 한 체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이길래 신을 인정합니까?... 사람이 무엇이길래 신을 만듭니까?....
그러나 과학문명이 발달한 요즘에도 버젓이 사람들은 신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숭배합니다. 돼지 대가리를 앞에 놓고 거기다 절을 하면서 복을 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이게 어리석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세상 종교는 없는 신을 인간이 만들어서 숭배하고 받들거나... 아니면 어떤 성인을 신처럼 추앙하고 받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도 죽었고,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도 죽었고, 이슬람교의 창사자인 마호메트도 죽었습니다.
성인들의 사상이나 뜻은 살아있어서 그것을 기리고 받든다고 하지만 그것도 역시 부질없는 짓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요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파기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 값으로 인간에게 사망이 찾아 왔습니다(롬6:23).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친히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지은 죄 값으로 인하여 죽어야 되는 그 죽음의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므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이런 구원의 역사가 인간의 어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단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사해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영접하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롬10:10, 요1:12).

구원의 역사는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10:38)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행위나 공적으로 구원을 이룰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행위로써 이루어 놓은 것을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모든 천지 만물을 다 만드신 이후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엿새 동안 친히 준비하신 천지와 만물을 아담에게 선물로 주시면서 하나님은 한없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안식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지... 인간 스스로 준비하고 땀을 흘려 예비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 선한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롬3:10), 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롬3:23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대속의 제물로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에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법은 행위의 법이지만 하나님의 법은 믿음의 법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히10:38).
그런데 구원의 사실이 너무 파격적이고 믿기지 않아서... 어리석은 인간은 자꾸만 행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자꾸만 행위의 법을 만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믿음으로, 순종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기 원해서 하나님을 반역했는가 하면, 오늘날은 구원조차 자기의 율법적인 행위, 종교적인 행위, 의식적인 행위와 신학적인 행위, 자기 공로로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자 청년이 주님께 다가와서 질문할 때 그 질문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권세가 있고 돈도 많은 관원이었습니다. 그는 구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렸습니다.
이로 보아서 이 사람은 대단히 겸손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간절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주여,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행위를 내세웠습니다. 자기의 행위로 관원이 되고 자기의 행위로 부자도 되었으니까 천국도 자기의 행위로, 자기의 공로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주여, 내가 무엇을 행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행위를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네가 십계명을 행하라. 즉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그런 것 같으면 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다 지켰나이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청년은 다 지켰다고 자부하고 그렇게 대답했지만 주님께서는 더 어려운 행위를 요구하셨습니다.
\"율법을 다 지켰다고? 네가 행위로 구원받으려면 또 한 가지 더 해야될 일이 있다. 그런 율법만 지켜서는 모자란다. 네가 부자니까 집에 가서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다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너는 빈손으로 나를 따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끝까지 행위를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는 구원을 행위로 얻으려 했기 때문에 눈앞에 구원을 보고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믿음의 법이지 행위의 법이 아닙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지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합니다.

만일 부자 청년이 \"내가 무엇을 행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무엇을 행하여야 구원을 얻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자기의 행위로 무엇을 행하여 공로를 세우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은 오히려 불행한 삶이요 저주의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었는가 싶으면 또 하나의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행위의 산은 끝도 없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율법을 다 지키므로 구원받을 인생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권세가 있고 재력이 있는 사람만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은 구원의 문턱에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더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행위를 앞세우는 인간의 교만한 삶의 태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가증스럽고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8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오늘 본문 27절 말씀에서도.. 제자들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염려할 때... 주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 라고 외치신 이 절규가... 우리들 신앙의 핵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일을 가지고... 왜 무엇을 더하려고 합니까?...
우리는 추호라도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른 종교도 구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러나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영생을 얻는 것\' 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가 말하는 구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단사상 중에서 \'종교다원주의\'가 있습니다. 이 사상은 아무거나 믿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고 착한 일 많이 하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구원받고, 부처를 믿어도 구원받고, 마호메트나 공자를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그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믿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흔히 전도를 하다보면 그런 말들을 종종 듣습니다. \"착하게 살라는 것인데 아무거나 잘 믿으면 되죠 뭐....\"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사도행전 4:12절 말씀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4:6절에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 믿어야만 구원받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모로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서울 가는 길이 많습니다. 자기 맘이지요...
비행기를 타고 가고, 기차를 타고 가고..... 배를 타고 가고, 자가용으로 가도 됩니다. 걸어가도 되고 뛰어가도 되고, 자전거로 가도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요, 구원받는 방법도 하나입니다.

구원이란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죽게될 인생이... 심판이 면죄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 말씀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랬습니다. 그런데 심판이 면죄되었습니다.
심판을 받는다면 죽음의 심판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는 그 행한대로 상을 주신다는 약속에 따라... \"어떤 상을 받을 것이냐?\" 하는 상급의 심판을 받습니다.
또한 마귀, 사탄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어 졌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과 저주 속에 살아야할 사람이 영생 복락의 천국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너무 파격적이고 너무 쉽게 구원을 주셨기 때문에... 도저히 믿기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에 대한 비유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23절 이하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임금님께 일 만 달란트의 빚을 졌는데....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아도 갚을 수 없고.. 평생을 벌어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그 종을 불쌍히 여겨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탕감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임금님은 바로 하나님이요, 종은 모든 인간을 말합니다. 우리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죄의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도 없이... 구원받은.... 영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늘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요즘에 여름철 휴가를 내서... 저마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떠납니다.
이 놀러 가기 좋은 세상을 뒤로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기회만 있으면 전도하는데 힘을 씁니다.

이렇게 더운 날.... 시원한 바닷가에 가서 피서나 즐길 일이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정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고 너무가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1:25절에서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유치하고, 어리석고, 허무맹랑하고, 이상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습니다. 이해하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코웃음만 칩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능력과 사랑과 구원의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가슴 깊이 새기며 늘 입으로 삶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시편 116편의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는 구원의 감격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랬습니다(시116:12∼14).

이 말씀을 가만히 보세요.... 그 속에 구원의 감격이 흐르고 있습니다. 기쁨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무언가 너무 고맙고 좋아서 어찌 할 줄을 모르는 모습을 눈앞에 그릴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감격과 기쁨을 소유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살아 나온 자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무슨 원망이 있고 무슨 불평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감사가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찬송이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을 앉혀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기쁨을 주리라 이 기쁨은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이니라 내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너희를 떠나도 너희 가슴 속에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그 무엇이 와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요16:22절 이하)

이것이 무슨 기쁨입니까?.... 바로 구원의 기쁨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기쁨을 가지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이 기쁨을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매를 맞고 나오면서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집에 있던지 성전에 있던지 기쁨으로 예수님을 전하고 가르쳤다고 사도행전 5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구원에 대한 큰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려면 \'내가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감격과 기쁨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그것이 뜨거울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그것이 미지근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는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격이 항상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작은 감사에는 익숙하지만 큰 감사에는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커피 한 잔, 냉면 한 그릇, 작은 선물을 받고 난 다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만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선 잊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용서받기 어려운 죄, 기억도 다 못하는 태산 같은 죄, 그 누구에게도 말못할 무서운 죄, 쌓이고 쌓여서 태산보다 더 큰 죄를.... 값없이, 아무런 공로없이 용서받았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있어야 하겠습니까?...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감격하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떻게 감사를 해야 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고민해 보세요..
이런 고민은 즐거운 고민입니다. 거룩한 고민이예요...
이번 한 주간...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고민하시는 복된 한 주가 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