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드라마
오늘 본문 이야기―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고침 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는―는 한 편의 구원의 드라마입니다. 이야기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 한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만난 그 사람은 그 지역의 유명인사(有名人士)가 아니었습니다. 부자(富者)도 아니었습니다. 또 학문을 했거나 기술을 익힌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또 잘 생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걸해서 겨우 연명(延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세상에서 천대(賤待)받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매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디매오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20:29-34에 보면, 예수님이 눈 먼 사람 둘을 고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를 소경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보십니까? 저는 눈 먼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고 봅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물론 불쌍합니다. 그러나 눈 먼 사람보다는 덜 하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두 다리를 월남전에서 잃어버린 미국 사람이 두 팔을 짚으며 가면서도 걷기 대회에 참여한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눈이 안 보이면 그런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왜 눈 먼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까? 먼저,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근원인 빛의 혜택을 입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교훈이나 즐거움을 얻기 위한 독서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삶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依存)해서 살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눈 먼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직업을 갖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절망을 넘어서서 성공한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그건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소경거지 바디매오는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가 눈이 멀어 볼 수 없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가 거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었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한 번 눈을 꼭 감아보세요. 안 보이면 너무나 답답하고, 또 한 발자국이라도 편안하게 띄어 놓기가 어렵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 그가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오늘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바디매오는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고 그분에게 부르짖었습니다.
47절에 보면,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두 눈을 뜨고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아 볼 수 없었던 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눈이 먼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았습니다.
더욱이 바디매오는 자신이 고침 받아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고침 받아야 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이 부족하고 고침 받아야 할 게 많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에겐 치유 받고 변화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바디매오는 비록「소경 거지」였지만, 예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심을 믿고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잠잠 하라고 했지만, 더욱 더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온전케 해주셨습니다.
왜 바디매오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요? 아마도 그는 예수님이 이제 여리고를 지나가시면 어쩌면 다시는 그분을 뵙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큰 소리를 지르며 간청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절박(切迫)했던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저분,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나를 고쳐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血漏症)을 앓던 여자도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주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4)라고 칭찬하시며, 고쳐 주셨습니다.
민수기 20:16에 보면,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라고 했고, 사무엘하 22:7에는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殿)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시편 30:2에 보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했고, 예레미야 33:3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믿음으로 간구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약한 것들을 고쳐주십니다. 여러분은 오늘 주일 저녁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우리 강릉중앙교회에서 개최되는 <심령부흥성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과 상처를 주님 앞에 내어놓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응답해 주시고, 고쳐주시고, 온전하게 여러분을 회복시켜주십니다.
2. 바디매오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버리고 주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은, 여리고를 지나가시다가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소리를 지르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할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49절에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에게 가서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바디매오가 어떻게 했는지 우리는 잘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소경이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 오거늘\"(50절)이라고 성경은 묘사합니다. 여기서 바디매오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께로 왔다고 했는데, 바디매오에게 있어서 겉옷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겉옷에 해당되는 희랍어는「히마티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70인 역에서는 \"겉옷과 의복\"이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나타내는「베게드」에 대한 번역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겉옷은 일교차(日較差)가 큰 팔레스틴에서는 밤에 이불 역할까지 하였습니다. 따라서 바디매오에게 이 겉옷은 생활필수품(生活必需品)이었으며, 특히 거지인 그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께로 빨리 나아가는데 있어 그 겉옷이 방해물이 되자, 그토록 자기에게 소중한 것이었지만 미련 없이 내어 버렸습니다. 한번만이라도 예수를 가까이 대면하고 싶었던 그의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과 예수를 만난다면 반드시 치유(治癒) 받을 수 있으리라는 소망과 믿음이 이런 행동을 가능케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마가복음 10:17-31을 보면, 어떤 재물(財物)이 많은 사람이 예수께 와서 영생(永生)을 얻는 길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영생을 얻으려면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띄고 근심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그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금 있다가 거지 소경 바디매오가 고침 받은 오늘 본문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 성(城)에 입성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이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포기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아마 사람마다 이러한 것들이 다 다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자 청년처럼 재물이 될 수 도 있고,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이데올로기)이 될 수도 있고, 출세나 성공에 대한 야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버릴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에게 그 겉옷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주님을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될 때 그것을 과감히 벗어 던졌습니다. 그에게는 이처럼 큰 믿음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 만나는 것이 그에겐 가장 중요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만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소중한 겉옷을 벗어 던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전부를 받길 원하십니다. 부분을 원치 않으십니다. 모든 것, 가장 귀중한 것을 주님께 모두 드리는 걸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던 겁니다. 이삭이야말로 아브라함에겐 가장 귀한 것, 생명과도 같은 것, 다시 말해 그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가장 귀중한 것―정말 포기하기가 어려운 것―을 버릴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우리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치유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102장)라는 찬송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1절)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2절)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후렴)
3. 구원받은 후에 바디매오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보기를 원한다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말씀이 떨어지자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저가 곧 보게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52절)고 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고침 받고 나서 \"내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이젠 됐다\" 하고 자기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훌륭한 점입니다. 자기 이득만 차리는 자들이 이 세상엔 참 많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까?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까? 이전 것은 지나가고 진정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잘 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더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입니까? 여러분이 고침 받고, 구원받고 나서 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디매오처럼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탁하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다 신학교 가서 목사가 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살면 됩니다. 나중에 심판 받을 때 상 받는 삶을 이제부터 살면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주님의 부르심과 주신 사명에 합당하게 힘껏 살면 됩니다.
리처드 볼레스라는 사람이 그의 책 『어떻게 인생의 사명을 찾을 것인가』에서 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당신의 사명(使命)은 매 순간마다 한 단계씩 이 세상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위해서는 당신 안에 계시며, 또한 당신과 함께 계신 하나님 영(靈)―성령―의 도움과 인도를 따르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 주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렇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사람으로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며,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