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막5:1-20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막5:1-20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큰 빌딩에 불이 났습니다. 수많은 소방차와 구조대원들이 와서 불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조했습니다. 그 아수라장 같은 화재 현장에서 아주 극적으로 구조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한 구조대원이 자기를 구하러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었습니다. 구조대원이 숙련된 솜씨로 그 아이를 구조해서 밖으로 무사히 나왔습니다.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가던 중에 아이가 깨어났습니다. 정신을 차린 아이는 자기를 구조해 준 구조대원에게 이렇게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아저씨,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말을 들은 구조대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얘야, 너는 구조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앞으로 너의 삶 속에서 증명해 보이거라.\" 이 아이가 그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겠는가 하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구조대원이 오지 않았다면 그 불 속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활활 타는 불 속에서 이 아이에게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구조대원이 자기를 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귀신에게 꼼짝달싹 못하게 붙잡혀서 고통 중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귀신들린 한 사람 뿐만 아니라 마귀의 권세 자체에 대해 승리자가 되신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드기 같은 마귀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만 온전히 바라보면서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갈 힘과 능력을 얻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귀신 들린 한 사람이 나옵니다.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가 온 몸에 성한 데가 없습니다. 얼마나 힘이 센지 쇠사슬과 고랑으로 묶어 놓았는데도 그것을 깨뜨릴 정도로 힘이 셉니다. 이런 초인적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 힘은 귀신의 역사로 말미암는 힘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 사람을 제어할 힘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귀신에게 매여서 고통 속에서 절망 가운데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눌려서 영혼과 육체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영적인 만족함이 없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오직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처절한 절망과 세상에 기쁨 없음만을 절감하고 있을 뿐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 사이에 거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생명보다 죽음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기대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없는 인생은 비참할 뿐입니다. 그 육신이 어려움 가운데 있든지, 살기 좋고 풍족한 가운데 있든지 간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영적인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정상인처럼 보인다고 우리가 마귀의 유혹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마귀가 권세를 휘두르는 악한 세상 가운데 살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마귀의 지배 아래서 행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물론 귀신들린 것과는 다르죠. 예를 들면, 밤을 새워서 컴퓨터로 바둑을 두는 것입니다. 그것도 토요일 밤에. 바둑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바둑\"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이는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요일 밤새도록 바둑을 두고는 주일 낮 예배시간에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서 설교하시는 목사님 얼굴을 쳐다보는데, 목사님이 그 장로님 눈을 쳐다보니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더랍니다. 멍∼하니 앞만 쳐다보는 모습이 꼭 컴퓨터 바둑 현장을 쳐다보는 것 같더랍니다.

제가 볼 때는 이 장로님이 바둑을 두면서 하나님을 옆에 모시고 \'마귀는 방해할 수 없다\'고 자신하면서 두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우아∼* 상대방이 기막힌 수를 둔 것 같네요. 하나님 이제 제 차례인데 어디다 두면 상대방의 기를 콱∼ 꺾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겸손하게 질문하면서 두신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바둑 귀신에게 홀려서, 하나님은 잠깐 외출 중이신 상태에서 밤새도록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면서 바둑판 위의 망망대해를 원없이 헤엄쳤던 밤이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역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마귀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자신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순간순간을 노리는데, 우리는 \"에이, 뭐∼ 그럴까\"라고 생각하면서 안일함에 젖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자세를 준엄하게 책망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음의 그늘에서 헤매며 빠져나오지 못하던 이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6절에 보면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먼저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8절에서 이 장면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5절까지를 보면 귀신이 이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지금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이 이 사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자기 뜻대로 주무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불쌍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면서 그 사람과 만나기 전에 \'이미\' 더러운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장악하고 자기 뜻대로 조종하던 이 귀신은 지금 자기 상태가 위태하다는 것을 알고는 꾀를 냅니다. \'이왕 쫓겨날 판이니까 저기에 있는 돼지떼에 보내 달라고 하자.\' 그래서 예수님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곧바로 돼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돼지떼를 몰고 바다에 들어가 몰사시킵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놀라서 동네로 도망갑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통 속에 있는 불쌍한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그 한 사람만 구원하시기 위해서 거라사 지방에 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지역 전체에 편만해 있는 귀신의 권세를 멸하시기 위해서 그 곳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을 짓누르고 있는 마귀의 권세를 멸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꼬임에 쉴새 없이 시달릴 때 그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은 이제 정신이 온전하여졌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해졌습니다. 이 일은 순전히 예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고 새생명 얻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라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다른 길을 통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생명 얻는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유일한 구원의 다리, 생명의 다리, 징검다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받을 수 있고 참된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귀신 들렸던 사람이 고침 받고 정신을 온전하게 회복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죄악에 찌들고 마귀의 권세에 눌려서 신음하는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마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고침 받고 돼지떼가 몰사하는 이런 놀라운 기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들이 영혼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장면을 우리는 16절부터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돼지떼의 주인과 마을 사람들입니다. 2,000마리나 되는 돼지를 한꺼번에 잃었으니 분통이 터질 만도 합니다. \"아니 그게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아우∼ 아까워 죽겠어.\"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니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온전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과 그들 자신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실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돼지의 주인과 마을 사람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 보다 돼지 2,000마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 그 사람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 이 사람아, 돼지 2,000마리는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모은 재산이란 말이야.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돼지 2,000마리가 더 중요하지.\"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이 없어진 것을 아까워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들이 모셔들이고 영접했더라면 자신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께 제발 그 마을에서 떠나 주시기를 간절히 구함으로써 배척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감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 보다 물질을 더 사랑한 이 불쌍한 인생들에게 떠밀려 그 마을을 떠나야 했던 예수님께서 귀신들렸다가 고침 받은 사람에게 부탁하시는 말씀이 19절에 나옵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귀신들렸던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내가 어떤 처지에서 회복되었는데 예수님을 떠난단 말인가.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야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내가 네 영혼을 마귀의 권세에서 구해냈으니 너는 가서 내가 행한 이 큰 일을 전파하거라.\" 이 사람이 가서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전하면서 주께서 명하신 사명을 잘 감당했음은 두 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시라는 사실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스포츠에 빠져서 살 때가 있습니다. 미친 듯이 게임에 몰입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의 아들 한 명이 문방구 앞에 있는 작은 오락기 있잖아요? 거기에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논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달래고 하지 말라고 하고 심지어는 때려죽인다고 해도 말을 안 듣는 답니다. 그래서 기가막혀서 제 어머니께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오더라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책에 빠져서 독서삼매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서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병적으로 빠져드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마귀에게 꼬여서 허우적거리며 헤매고 있을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의 상태를 다 알고 계십니다.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풍성하게 넘치도록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승리는 강한 자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는 자의 것입니다. 한 주간도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우리의 삶에 늘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