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를 위한 기도/히13:17-19 2001-09-19 16:35:35 read : 220
많은 우상종교들이 인간을 중심하여 인간을 우상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 자리에 앉을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자들의 깨달음은 위대합니다.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만인제사장인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어떤 인간 제사장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휘장사이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에게 제단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치우치면 안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리스도안에 차별이 없음을 말씀한 성경은 동시에 모든 사람이 다 같다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여러 직임들과 은사들을 주시는데 교회 안에는 여러 직분자들이 있습니다. 또 여러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모든 성도가 형제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만인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다 사도요, 목회자요, 교사는 아닙니다. 이 교회의 제도와 조직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껍데기가 없으면 알맹이도 보호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다 조직이 있고, 제도가 있게 됩니다. 적어도 몇 사람되지 않는 가정도 조직이 있습니다. 그 가정에 위치와 질서가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조직과 제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 특별히 지도자인 목회자를 위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야하는데 부담도 되지만 17절 끝에 말씀한대로 여러분들의 유익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지도력은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권위의 위치에 있는 자들의 유익을 위해 지도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과는 다릅니다. 모든 성도들의 구원의 유익,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지도력도 필요하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란 지금 있는 목회자, 인도자를 말씀합니다. 이들은 목회자를 말합니다. 목회자들은 17절에 말씀한대로 교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것으로 알고 기도하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참으로 교회 사역의 목표, 목회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온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도 서야합니다. 교인들도 서야합니다. 오늘만 보고 목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보이는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하려고 오지만, 목회자가 봐야하는 것은 영원한 구원까지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혼들이 경성하지 않을 때에 그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그 때에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의 중요함을 알아서 목회자가 즐거움으로 이 일을 감당하도록 교인들은 도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결국 자신들에게 구원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13 말씀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 목회자 사람이 특별하기보다는 그 맡은 사역의 중요함 때문에 목회자를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며 그 수고를 알아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인들은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교인들이 되어야합니다. 그것이 목회자로 즐겁게 이 이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아무리 바로 되려고 해도 목회자 이상으로 더 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면 어쨌든 목회자와의 사이가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시험 가운데 가장 큰 시험이 목회자와 대적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무리 해도 신앙생활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용해서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영혼을 맡아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이 목회 하는데 즐거움으로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근심으로 목회사역을 감당하는 때도 많습니다. 목회자가 목회를 즐거움으로 하는 것은 어떤 경우입니까? 적어도 정신이 바른 목회자라면 교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소원하겠습니까? 무엇이 목회자를 대접하는 것이겠습니까? 딴 것 없습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때에 목회자는 하나님께 기뻐하고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소망과 기쁨은 교인들에게 있습니다. 어떤 물질적인 대우보다도 교인이 순종할 때에 오히려 크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회자가 무능해도 그 교회에 목회자로 세웠으면 그 교인들은 순종해야합니다. 은혜 기관으로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한 복을 그를 통해서 내리시기 때문에 귀중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서 목회자는 교인들에게서 받는 신임과 존경이 생명같이 중요합니다. 왜? 그 입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영원히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하나님의 말씀인데, 듣는 자들이 목회자를 신임하지 못하면, 더욱 목회자와 대적이 되어 있으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은혜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목회자 없이도 신앙생활 잘 하리라 교만하면 안됩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와서 묻고, 같이 기도하면서 어떤 일을 시작하려 하는 것이 목회자를 대접하는 것이요, 즐겁게 하는 것인데, 우리 교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 자기대로 할 일을 다 정해놓고 갈 길을 결정하고는 어려우면 뒤에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목회자를 귀찮게 않으려고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일에 함께 기도하고 의논하고 하는데서 하나님께서 지혜와 은혜를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목회자가 있으니 여러분들의 영적 지도자가 맞다면 물어보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물으면 그래도 여러분들의 영육간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하며 말씀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렇게 목회자가 그 사역 때문에 중요하지만, 결코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면 반드시 실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8절 말씀 같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사람에게는 실망되는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하심을 붙들라는 말씀입니다.
또 18-19절에는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했습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자기 교인들에게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사역자가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도들이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우선 이렇게 사역자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는 많은 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마귀는 그 교회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교회의 지도자를 제일 먼저 많이 공격합니다. 이 마귀의 미혹을 받은 교인들은 교역자 험담을 쉽게 하고 다니게 됩니다.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어떤 목회자의 실수가 보여도 바로 목회자를 험담하지 않습니다.
또한 목회자도 실수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바로 섭니다. 하나님께서 세웠기 때문이지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자기는 전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외식 신자 중에 외식자가 되기도 쉽습니다. 이러니 기도하여야합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은 목회자가 맡은 그 사역 때문에 기도해야합니다. 이 히브리서를 누가 기록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도바울은 그의 교인들에게 기도할 것을 많이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역자의 한 사람의 경건과 열심에만 맡기지 않으시고, 교인들의 기도와 합력을 통하여 모든 영적인 축복과 은혜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특별히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들에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목회자가 모든 교인들의 경건과 영적인 일을 다 맡아주기를 바라지만, 이는 무리한 요구입니다. 오히려 목회자라도 교인들의 기도의 도움을 받을 때만 갑절의 은혜로 감당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합심하여 드려야합니다. 한 마음을 가지고 드려야합니다. 카작 집회에 참석한 유권사님과 이지순 간사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들은 몸으로 움직이지만, 우리들의 기도의 도움이 없이는 모든 것들이 불가능합니다.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역자가 되려면 교인들은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사역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부탁할 수 있습니까? 18절에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내 안에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한다 했습니다. 나는 내가 맡은 이 복음 전하는 일을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선한 일을 하려는 것이다. 내가 유력한 설교자가 되어서 내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그로 인하여 유명해지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을 하려는 소원이 내게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사역자의 선한 양심은 순종하고 기도해 달라는 것에 대하여 가책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명하는 듯한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회자들이라도 저를 위하여 목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속이고 세상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목회해야합니다.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이럴 때에 교인들에게 순종하라고 하는 것도 양심에 가책됨이 없습니다. 교인들에게 기도부탁을 하면서 가책이 없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구원에 유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철처한 하나님 중심의 목회라야 합니다.
19절에 내용을 보면 이 사역자는 아마 교인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속히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성도들이 이 사역자가 있을 때는 믿음에 흔들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사역자가 멀리 떠나 있는 동안에 유대주의자들의 미혹이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목회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이것도 교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줄 압니다. 모든 성도들은 철저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로 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교회를 세우시면서 사람을 붙들고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운 제도와 조직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모든 권위에 순종해야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교인들은 순종해야합니다.
특별히 목회자에게 순종하라 했습니다. 그 맡은 사역을 즐겁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순종해야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지도력이 확보될 수 없고 그러고는 어떤 교회도 세워나가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의 구원의 유익을 위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목회자는 이럴 때에 더욱 맡은 영혼들이 경성하기를 위해서 노력하고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는 줄 압니다만 더욱 기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목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모든 일이 목회자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성도들에게 순종하라하며 기도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이 사역은 선한 양심을 가진 목회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려하기 때문이요, 교인들의 구원에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0절에 보면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라고 했습니다. 목자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영원한 목자장은 그리스도십니다. 양은 다 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양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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