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낙심 눅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 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 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 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 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 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기도를 해 본 사람이면 응답 받는 기도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닌 것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크게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짖었습니 다. 그때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얼마나 애를 쓰 고 힘을 쓰며 기도하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전쟁이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싱겁게 시작해서 싱겁 게 끝나는 전쟁은 없습니다. 생사를 건 투쟁이 바로 전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 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마귀와 악령들과 한판 싸움을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인 것입니다. 때문에 힘들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도가 너무 힘이 들어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1. 기도가 힘든 이유를 말씀하신 비유
누가복음 18장 1절로 3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무신론자 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요, 우주 의 위대한 재판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되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자연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하게 살고 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신중하게 대접합니다. 그러나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무시했기에 그 의 마음속에는 경건함이 없습니다. 그는 정의와 긍휼이 없이 무정하고 무자비한 사람이었 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직 권력과 돈과 힘있는 사람에게 만 잘해주지 그 이외에는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하고 인간차별이 심한 사람이었 습니다. 때문에 그 재판관 앞에서 평범한 사람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너무나 강한 대조를 했습니다. 이런 재판관 앞에 과부가 나타 났으니 도저히 비유가 되지 못합니다. 과부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이 세상을 외롭게 살게 되었으니 보호가 없는 불쌍한 사람이요,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회적 으로나 주위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세 당당하고 어마어마한 권세와 위협을 가진 이 재판관에 비해서 과부는 너무 나 초라하고 불쌍하고 도저히 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과부가 재판관 앞에 나가서 어 떤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과부는 재판관에게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 아 주소서’라는 간청을 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재판관은 과부의 호소에 대해 철저히 무시 해 버렸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주먹으로 바위를 친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마치 과부 가 재판관에게 나오는 그런 심정 말입니다. 그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나와서 무릎을 꿇긴 꿇었지만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자 할 때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고, 너무 짐이 무겁고, ‘하나님이 과연 나같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실까?’라며 기 가 막힐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정리해 주기 위해서 비유해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 리 무능력하고 좌절되고 절망이 될지라도 불의한 재판관 앞에 선 과부에 비교할 수 있겠습 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상황에서도 과부는 과감하게 재판관에게 자기의 간절한 마음 을 호소한 것처럼 극심한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와 도저히 우리 생각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2. 절대 무관심의 벽에 부딪힌 과부
불의한 재판관의 절대적인 무관심의 벽에 부딪힌 과부의 상황은 절망이었습니다. 조금이 라도 귀를 기울여 주면 모르겠는데 아예 꾸짖지도 아니하고, 응답도 아니하고, 무시해 버 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대 절망의 상황을 뚫으려는 과부의 심정을 보십시오. 과부에게 서 우리가 배울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과부는 이 재판관에게 거절을 당하고 나올 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더 이상 억울한 인생은 살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큰 변화의 동기가 된 것입니다. 응답해 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는 인생을 살면 결코 불 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많은 병든 자들이 제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옵니다. 그런데 지난 44년 목회를 살펴볼 때 응 답받는 성도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나는 더 이상 이 병으로 말미 암아 고통 당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냥 ‘주여! 낫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 도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한 각오로 ‘나는 더 이상 이 병에 짓밟히고 끌려가지 않겠다. 더 이 상 이런 인생을 살지 않겠다.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고 몸부림치고 부르짖다가 죽더라도 더 이상 이와 같은 비참한 인생은 살지 않겠다. 나는 새로움을 가져와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결단을 가진 사람은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의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과부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 는 것 같은 처지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재판관에게서 나올 때 어마어마한 결단을 내린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크든지 작든지 마음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희미하게 기도해서는 안됩 니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야 말겠다. 나는 더 이상 이 문제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겠 다. 이런 인생은 살지 않겠다’라는 마음의 결단을 할 때 거대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 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과부는 피맺힌 간절한 호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호소는 평 범한 호소가 아닙니다. 피맺힌 호소입니다. 뱃속에서 우러나온 부르짖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얼마나 피맺힌 간절한 호소를 했겠 습니까? 큰 통곡과 눈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애쓰고 힘을 썼는지 모세혈관이 터 져서 땀구멍으로 피가 솟았습니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은 너무 시끄럽게 통성으로 기도한다’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은 답답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 한 사람은 피맺힌 호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찾은 사람들은 한 서리고 피맺 힌 기도를 하기에 몸부림치며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했고 또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과부는 낙심치 않기로 각오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을 내리고 피맺힌 간절한 호 소를 하는데 낙심은 호사스러운 것입니다. 결사적인 사람이 무슨 낙심이 있습니까? 그는 계속 부르짖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재판관의 집앞에 엎드려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라며 외쳤습니다. 무서운 사람입니다. 보통은 겁이 안 나지만 이렇게 나오면 겁이 나는 겁니다. 결국 과부의 끈질긴 호소에 재판장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4절로 5 절에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 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판관은 과부의 호소에 얼마동안 무관심했습니다. 과부가 집앞에 엎드려 부르짖어도 개 같이 보고, 그가 재판소에서 나올 때 그를 따라 가며 고함을 쳐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도 과부의 호소가 계속되자 재판관은 귀찮아졌습니다. ‘저 여자 어떻게 해야 되겠나.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정말 곤란하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다음 분노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젠 마음이 번거로워졌 습니다. 이제는 밤에 잘 때 그 과부가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밥을 먹을 때도 그 여자 생각이 나고, 재판소에서 일할 때도 그 여자 생각이 났습니다. 아예 머리 속에 온 통 그 과부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이 번민으로 가 득 차게 되어 결국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게 된 것입니다. 재판관은 과부를 위해서 문제를 풀어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그 문제를 풀어주고 과부는 문제 해답을 얻게 된 것입니 다. 이와 같은 영적, 심리적 전쟁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전쟁을 하는 마음으로 끈질기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수많은 좌절과 낙망의 언덕을 넘어 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련과 고통을 참고 나가면 우리에게 승리는 다가오 게 되는 것입니다.
3.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듣고 거기에서 교훈을 배우라고 주님께 서 말씀하십니다. 왜 불의한 재판관이 손을 들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과부 가 얼마나 비장한 각오와 결심으로 나왔던지 예수님께서는 ‘너희들도 기도할 때 이와 같은 단호하고 비장한 각오와 결심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결단을 내리지 않은 기도를 합니다. 친미적인 기도를 합니다. 예술적인 기도를 합 니다. 응답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다는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비장한 각오와 결단으로 주님께 매달려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기도가 결 국에는 철야기도도 되고 금식기도도 되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 누가 철야하며 금식기도 합 니까?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면 철야하게 되고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 다. 한 서린 기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교통할 때 좋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것도 사람들 보기에는 아름답고 좋게 보입니다. 그러 나 심히 답답한 사람은 조용하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원한에 묻힌 사람은 주님께 부르짖 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장 3절)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한 서린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구분이 없습니다. 밤에도 자다가 일어나 지칠 줄 모르게 기도해야 합니다. 계절이 바뀌더라도 맹렬하게 기도해야 하 는 것입니다. 끝없는 결심을 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밤중에 한 친구가 이웃집에 와서 대문을 두드립 니다. 그 친구는 밤 중에 또 다른 친구가 왔기에 떡 세덩어리를 빌리고자 했습니다. 집주인 은 ‘아니 여보시오. 지금 문을 다 닫고 애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서 줄 수가 없 어요. 날 밝은 후에 오세요’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아닙니다. 지금 내게 손 님이 왔는데 대접할 떡 세덩어리가 필요하니 지금 떡을 주세요’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집 주인은 ‘난 지금 일어나서 나갈 수 없어요’라며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물러나지 않고 문을 두드리며 떡을 빌려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 주인은 기가 막혔습니다. 잠 자 던 아이들도 다 깨고 말았습니다. 온전히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자 결국 집 주인은 친구에게 떡 세덩어리를 빌려주고 말았습니다. 주인이 떡을 들고 나가 친구에게 주며 ‘당신이 친구이 기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 간청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이 주는 것이다. 받아서 가지고 가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록 부담으로 인하여 일어나 주지 않을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줄 것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할 때 우리가 간청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 다. 누가복음 11장 9절로 10절에서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 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 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맹렬한 기도가 필 요합니다. 또한 우리들은 낙망을 포기한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과부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 다. 철저히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무관심을 당하고, 협박을 당하고, 공갈을 당해도 이 과 부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응답을 받겠다는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전진했습니다. 예 수님께서는 이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이 늦게 오고 문제가 자꾸 악화되고 환경이 어려워지면 환경을 보 며 낙심합니다. 눈으로 볼 때 낙심되고, 귀로 들을 때 낙심되고, 마음으로 느낄 때 낙심되 고, 이웃들의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낙심되고 좌절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리를 듣지 말고 응답을 주실 분에게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환경이 응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 다. 응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해서 부르짖으라는 것입니 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 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망을 포기한 태도를 배워야 됩 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로 28절에 보면 두로와 시돈 지방에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이 뛰어나왔 습니다. 이방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다윗의 자손이여 내 딸이 흉악하게 병들었으 니 고쳐주옵소서’라며 간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의 부르짖음에 무관심했 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 따라오며 부르짖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 말씀해서 제발 우리 딸 좀 낫게 해주시옵소서’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주여! 이 여자가 너무 부르짖고 따라오니 좀 고쳐서 보내 주시지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 나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내 딸이 흉악하 게 병들었사오니 고쳐주옵소서’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줄 수 없다’ 보통 사람이 이러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면 분한 마음으로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런데 이 여인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옳소이다 주님! 나는 이방 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개들도 자녀의 밥상 밑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말했 습니다. 이 여인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오! 여자여 네 믿음 이 크도다. 네가 이 말을 했으므로 집으로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마 음이 이 여인의 말에 의해 감동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절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뒤로 물 러가지 아니하고, 자기를 지극히 낮추어서 개로 취급 받으면서도 끝까지 부르짖어 응답을 구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6절로 8절에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 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 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 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들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 불의한 재판관같이 몰인정하고 무정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는데 하나 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 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직접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들 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몰인정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좋아 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9절로 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 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기 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부모도 자녀가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지 않습니다. 세상 아버지도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습 니까? 부모는 자식을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자식의 요구를 다 들어줍니다. 자 식 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몸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우리를 값주고 사셨는 데 하나님이 우리를 물리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것 입니다.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 것까지도 우리에게 행복이 되기 위해서 응답을 안 주시는 것입니 다. 응답을 안 주시는 것도 응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함이 없는 기도를 하나님은 기 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조금 기도하다가 그만 두어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 니다. 이 과부처럼 봄이 오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도 변함이 없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밤낮 부르짖는 그 택하신 자’라고 말했습니다. ‘밤낮 부르짖으라. 밤에도 부르짖 고, 낮에도 부르짖으라. 하나님께 나와서 어리광을 부려라. 부르짖으라’ 하나님은 간절함 없이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9절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낙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 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 기는 자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신앙 상담과 안수 기도를 받으러 온 제3성전 임정숙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상당한 감 격을 느꼈습니다. 임 집사님은 9년간 끌어온 문제를 우주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억울함 을 호소하여 끈질기게 기도해서 응답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재판관으로, 자기를 원고 로, 마귀를 피고로, 예수님을 변호사로 삼아서 아예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94년도 남편의 퇴직금을 가지고 장막을 위해 기도한 후 3년 뒤에 입주한다는 조합 아파트 에 계약을 했습니다. 그 아파트 조합이 부도난 줄 모르고 중도금 6천3백만원도 치렀습니 다. 그런데 그만 조합이 부도가 나서 돈을 받지도 못하고 8년 동안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시댁과 친정에서 온갖 핍박을 당하고 남편은 장사에 나섰지만 생활이 극히 궁핍했습니다. 다른 교회 다니다가 96년 2월에 제3성전에 등록해서 우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열심히 듣고 기도하면서 소망과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은 우주의 재판장이시며 사단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 키는 도둑이요, 예수님은 생명과 재산도 회복해 주시는 좋은 하나님인 것을 알고 기도문을 작성해서 하늘의 하나님 재판관에게 신청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고 사단은 피고 고 주님은 변호사로 생각하고 ‘우리 부부는 아무 힘도 없고 의지가 없으니 예수님의 보혈 을 의지하여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재판관되신 하나님과 변호사이신 예수님께 간 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재판관에게 청구 기도를 하고 또 하고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 4월 주일날 교회 와서 설교 듣고 신유기도시간에 ‘하나님께서 아주 어려운 재판을 이기게 해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기도하며 돈 을 돌려 받으면 선교헌금을 심겠다고 하나님께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6일 6일 간 셀 식구와 아침금식기도를 드렸는데 작정예배 끝난 3일 후 아파트 조합에서 전화가 왔 습니다. 사무실에 와서 돈을 가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돈을 놓고 끈 질긴 기도로 낙심하지 않고 불퇴전의 기도를 한 결과 9년만에 4백만원을 제외한 5천9백만 원을 돌려받게 된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끈질긴 기도를 해서 하나님 재판관 앞에 승 소 판결을 받았다고 내게 간증하고 약속한 헌금을 가지고 기도 받으러 왔습니다. 이 자매님은 9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 돈은 도저히 받을 수가 없는 것인데 9년 동안 하늘 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응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한, 즉 마음에 한맺힌 소 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됩니다. 이 집사님은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하나님을 재판관으로 삼 고, 예수님을 변호사로 삼는 기도문을 만들어서 주야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두 아내 한나와 브닌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아들을 쑥쑥 낳아서 자랑을 하는데 한나는 자녀가 없어 무시와 멸시를 당하며 눈물의 세월 을 보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절기가 와서 하나님 성전에 예배 드리러 가서 예배 드리고 음 식을 먹을 때도 브닌나는 아이들하고 잘먹는데 한나는 눈물만 흘리고 안 먹습니다. 남편이 온갖 말로 위로를 해도 한나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으로 올라 가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왔습니다. 너무 목이 메어 입만 달싹달싹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본 대제사장 엘 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줄 알고 ‘이 여자여 술을 끊으라. 술이 취해서 하나님 성전에 나와 서 무례히 행하고 있느냐?’며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한나는 ‘대제사장님 나는 술에 취한 여 자가 아닙니다. 마음에 너무나 원한이 서리고 한이 맺혀 말이 안나와서 그렇습니다. 한 맺 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아들 하나만 주시면 내가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이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나의 말을 모두 들은 엘리 제사장은 ‘평 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이 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기뻐서 내려갔는데 1년 후에 낳은 아들이 사무엘인 것입 니다. 원통하고 간절한 이 호소가 마귀의 진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최 대한 빨리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81편 14절에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로마서 16장 20절에 “평 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첫날에 응답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천사가 응답을 가져오는데 마귀 가 그 군사와 함께 공중에서 21일 동안 천사의 응답을 막았습니다. 21일째 다니엘이 계속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니까 천사장 미가엘이 와서 도와주므로 응답을 가지고 왔습니 다. 물론 오늘날은 마귀의 정사와 권세가 깨어졌으므로 옛날 구약시대처럼 지독하게 저항 을 못하지만 그래도 사단은 무시무시한 결단을 가지고 대적하고 훼방하는 것이 사실입니 다.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단호한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응답 받을 것 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이 올지라도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단호히 응답 받 을 것을 믿어야 됩니다. 시편 145편 19절에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 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 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복음 14장 13절 로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 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서 환경을 바라보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보십시오. 오라비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이 그 무덤가에 와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누구도 감히 겁이 나서 돌을 옮겨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마르다가 울면서 예수님에게 ‘주여! 오라버니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 은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했습니까? 마르다를 바라 보고 ‘마르다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 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믿음 의 문제지 ‘무덤에 들어갔다 죽은 지 나흘이 됐다.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문제인 것입니 다. 우리의 문제는 믿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이외에 우리는 다른 것을 하지 못합니 다. 어떻게 죽어서 썩은 냄새 나는 사람을 살립니까? 그것은 하나님 문제입니다. 그러자 예 수님께서는 ‘내가 네게 말하노니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꾸짖 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환경이 칠흑같이 어둡고 옮겨 놓을 수 없는 큰 바위 덩어리가 앞을 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끝까지 믿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 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우리들은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다가 버려지고 죽더 라도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기도 외에는 응답 받을 길이 없습니다. 기도에는 회개기도도 있고 찬양과 예배와 감사의 기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 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응답을 목표로 하는 기도를 할 때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불의 한 재판관과 과부의 대결을 항상 마음속에 기억하십시오. 불의한 재판관을 정복한 과부의 기도를 기억하고 그 뒤에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낙심하 지 않고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되실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