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망치 말고 기도하라 눅18:1-14
예나 지금이나,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 기도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다가 쉬이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재미있는 비유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싸움에 관한 것입니다. 힘없는 여인, 하소연할 곳도 없고, 뇌물을 쓸만한 힘도 없는 연약한 여인과, 부와 권력과 아울러 교만까지 갖춘 불의한 재판관의 대결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전혀 승소판결이 날수 없는 상황에서, 시일만 차일피일 미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얼마나 아침저녁으로 찾아다녔는지 귀찮아서 그 송사를 진행시켜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목적이 기도생활의 끈기를 촉구하는 것이어서 재미있습니다. 쉽게 구하고, 쉽게 얻으려는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 주려는 주님의 의도입니다. 이 가련한 과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1. 문제의 절박함
3절입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사실 이 본문을 보아서는 이 여인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제의 절박성입니다. 더욱이 혼자 사는 여인에게 있어서는 심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줄 자는 재판장밖에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인생은 어떤가? 혼자는 어느 하나도 마음놓고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과부처럼, 내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얼마나 눈물 흘릴 일이 많은가? 얼마나 하소연할 일이 많은가? 그가 처한 상황은 우리의 상황이요, 그는 지금 우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기도밖에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이가 누구입니까? 재판장이신 하나님밖에 또 있겠습니까? 이 여인은 비록 힘은 없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지혜롭게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의 교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이라고 했고, 엡6:18절에는 \"무시로 기도하라\", 살전5: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삼상12:23절에는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과부가 취한 행동을 살펴보겠습니다. 4,5절입니다. \"4)그가 얼마 동안은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이 과부는 돈이 없어 재판관에게 뇌물을 줄 형편도 아니고, 누구의 힘을 빌릴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산이라고는 건강한 육체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활용했습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재판관의 집을 방문하고, 법정을 드나들었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쫓아다녔는지 모릅니다. 처음에 이 재판관은 여인을 가볍게 보았고, 그의 억울함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도 이 과부의 집념이 식어지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너무나 귀찮아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의 억울한 문제는 모두 해결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이라고 교훈하고 계십니다. 이 과부는 한 두 번 해 보다 말지 않았습니다. 오직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재판장을 찾아가 두드렸습니다. 이것이 기도 응답의 비결이요,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원한이라는 말은 \"마음에 맺힌 한과 같은 간절한 소원\"을 말합니다. 마치 삼상1:15-16절에 나오는 한나 같은 심정을 말합니다. 기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3.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7,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 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여인의 끈기있는 행동입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수많은 핀잔과 욕과 수모와 멸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뜻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쫓아다녔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예수님의 핵심입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도 이렇게 끈질긴 여인에게는 항복을 하고 마는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녀들의 소원을 외면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 부분에서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을까요? 이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그것은 인내하는 믿음이요, 용기있는 믿음이요, 끈기있는 믿음입니다. 말세의 사람들은 조급해 하고, 무언가 금방 이루려하고, 참고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오랫동안 기도하는 끈기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은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필요한 때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마귀가 날뛰는 세상입니다. 너무나 광명한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유혹하기 때문에 잘 너머 갑니다. 차라리 우는 사자 같이 오면 죽기 살기로 싸워서 이기겠는데 달콤하게 유혹을 하니 거의 많은 사람들이 넘어집니다. 살기가 편해지고, 모든 것이 풍부해 졌기 때문에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섰다고 하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의 해결책은 기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4. 기도하다 언제 낙망합니까?
첫째는 열심히 기도한 기도제목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기도제목의 자신에게는 가장 절실합니다. 매일 주님께 나아가 아침저녁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낙망하기 쉽습니다. 더 나아가 사태가 더 악화될 때 우리는 절망하기 쉽습니다. 어거스틴의 모친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하고 어거스틴을 만났는데 탕아 어거스틴은 변하기는커녕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져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낙망치 않고 항상 간절히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거스틴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변화되기는커녕 이번에는 어떤 거리의 여인과 동거생활을 하다가 사생아까지 낳고 살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때도 낙망치 않고 간절히 7년을 기도했습니다. 7년만에 청년 어거스틴은 온전히 회개하여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다 낙심치 말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이 늦은 것은 있어도 응답이 없는 것은 없다.\"}
둘째는 믿음에 의심을 품게 될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영원한 기대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히11:1) 사죄의 은혜,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영생의 약속도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에 상처를 받거나 의심이 갈 때 신자들은 낙망하기 쉽습니다.
셋째는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낙망할 때가 많습니다. 신자들은 계속적으로 도전해 오는 세상의 불의하고 어두운 세력과 싸워서 의로움과 성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믿음은 이와 같이 영적인 투쟁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무섭고 끈질긴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인 싸움에서 넘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할 때에 수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항상 기도하되 낙망치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갖 수모를 다 당해도 이 과부처럼 낙심치 말고 끊기 있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드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거기에 생사가 달려있는 것 같이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절박성을 느끼지 못하고 드리는 기도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자기 과시적인 장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응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이 나도록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2:44)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합니까? 피는 그만두고 땀이라도 납니까? 다시 말하면 간절함이 있습니까? 셋째는 겸손함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9절 이하에 두 사람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이들의 기도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은 어떤 기도를 드렸습니까? 첫째는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11,12절을 읽겠습니다.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과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감사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기가 얼마나 의로운 자인가를 선전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를 칭찬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의 기도에는 종교적인 우월감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좋아하였고(눅16:14)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눅20:47)요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생활에 있어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교만한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세리는 겸손한 자세로 기도했습니다.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얼마나 바리새인과 대조가 됩니까? 바리새인은 성소 가까이에서 기도했으나 세리는 감히 성소에 가까이 하지 못하고 성소에서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겸손의 자리에 서서 겸손하게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스스로 자신을 죄인 됨을 인정하였고 자신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만 할 존재로 인식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자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보고 기도 할 때에 낙망치 말고 간절히 기도하라 하시면서 다시금 권고하시는 것은 겸손함으로 기도하라고 교훈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의 수칙 네 번째는 세리의 기도 중에서 볼 수 있는데 회개함으로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세리는 회개함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13절 하반 절에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의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에 비해서 너무도 짧고 엉성합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기미화도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솔직히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시기만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진지함과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5. 끝으로 불퇴전의 기도 응답의 실례입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갈멜 산에서 일곱번 기도 한 것일 것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삼년 육개월 동안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4백50인, 아세라 선지자 4백인과 결판을 벌려 보자는 것입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신임을 증명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알 선지자들이 그들의 신이라는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했으나 응답이 없었잖습니까? 그러나 엘리야가 제단을 다시 쌓고 제물을 놓고 물을 길어 부은 다음에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왕상18:37)라고 간구하자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까지 말라버렸습니다. 엘리야는 기손 시내에서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잡아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후 엘리야는 갈멜 산에 올라가서 삼년 육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은 땅에 비가 내리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한 후 사환에게 비 내릴 징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없었습니다. 또 기도하고 비 내릴 징조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였습니다. 또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곱 번을 반복했습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야 바다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는 얼굴을 무릎 사이에 집어넣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는가를 말 해 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하면서 주위 환경을 살펴 볼 때에 3년이나 오지 않은 비 때문에 푸른 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겠는가?\"하는 의심이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의심들을 극복하고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일곱번 기도한 후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그 징조는 보잘것없는 \"손바닥만한 구름\"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응답으로 믿고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큰비가 내렸습니다.
부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기 위해서는 낙망치 말고 끝까지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응답 받을 때까지입니다. 다시 한번 따라 합시다. {\"우리의 기도는 기도 응답이 늦은 것은 있어도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은 없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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