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청의 기도

강청의 기도/눅18:1-8

강청의 기도
눅18: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본 비유는 누가복음 11장 5-11절에 나오는 한 밤중에 떡 세 덩이를 빌리러 온 찾아온 친구 비유와 유사합니다.

(눅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함을 교훈 하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지속성 있는 기도와 간절한 자세로 끈기 있는 강청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을 때라도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받게 됨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 재판관과 과부

(눅 18: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고, 또한 사람들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며 인간의 양심이나 긍휼, 정의 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으로 정의의 편에 서지 않고 법과 공의를 외면한 채 권력과 재물을 가진 자들과 타협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포악을 일삼는 자였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양심도 인정도 없는 파렴치한 사람이었습니다.

(눅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런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이 재판관에게 자비를 구하는 요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는 의타갈 자가 없고 약하고 힘이 없는 자의 표본입니다. 재판관에게는 과부가 정말 관심이 없는 존재에 불과하였습니다.

과부는 재판관에게 가서 자신에게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가다’는 동사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찾아갔다고 하는 반복적인 의미를 나타냅니다. 과부는 아무도 의탁할 데가 없었던 고로 아랑곳하지 않고 집요하게 찾아가 자기의 원한을 들어 달라고 간청하게 된 것입니다.

가난하고 무력한 존재의 상징인 과부는 돈도 배경도 없었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끈기 있게 재판관에게 매어 달려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호소는 일반적으로 볼 때 무의미하게 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재판관은 돈이 나올 데라고는 전혀 없는 이 과부의 요청을 이미 무시해 잊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과부의 강청

본문은 이 과부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같은 행동을 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이 과부의 신념과 끈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도 자신의 어려움을 신앙으로 승화시켜 강인한 믿음을 다져 나가야 할 것을 교훈 해 줍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과부의 끈기 있는 요청에 대해 재판관은 귀찮아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과부와 제판관의 그 다음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않지는 않지만 아마도 과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 과부가 빼앗기거나 유린당한 피해를 보상받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돈과 권력이 없이 오직 끈기 하나만으로 승리한 하나의 예입니다.

우리는 주위에도 비록 하나님은 섬기지 않으나, 인간의 노력과 투지로 승리한 인간 승리의 모델들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이 같은 성공을 이룩한 사람들은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표가 됩니다.

본문은 온 우주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나약함과 부정적인 사고에 젖어 자포 자기하면 안된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눅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번거롭게 한다’는 것은 헬라어에 ‘코포스’(κόπος)란 단어인데, 이는 단순히 성가시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막대한 지장을 주어서 정상적인 업무에 전념할 수 없게 타격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판관의 인격과 세속적인 삶의 태도로 보아서는 도저히 과부에게 인정을 베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강팍한 마음이 열리며 동정을 베풀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그 얼음장같은 마음을 녹였을까요? 그것은 과부의 집요한 도움의 요청의 결과였습니다. 이것은 과부의 필사적인 탄원이 불의한 재판관을 감동시킨 사례로 증거해 줍니다. 그가 성가시게 여겼든 혹은 자신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두려워했든 간에 결국 이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본문은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재판장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여기서 먼저 ‘두 사람’이란 예수님의 제자 된 자로서, 연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를 뜻입니다. 또한 ‘합심’이란 헬라어(συμφωνέω, 심포네오)는 ‘함께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연출해 내다’는 뜻으로서 마음의 일치, 조화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교향악’(Symphony)이란 말의 어원입니다. 이처럼 합심 기도는 큰 응답을 얻어 낼 수 있습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고 기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을 순종하면서 행해야 합니다.



3. 밤낮 부르짖는 원한의 기도

본문은 과부의 비유를 통하여 밤낮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의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밤낮 부르짖는’ 것은 고뇌의 부르짖음 혹은 구원을 청하는 외침으로 강한 애원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들의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그의 강한 요청 때문에 들어주었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보다는 더 빨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열심과 관심을 가지고 원한 맺힌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러 달라는 것’은 대적에 대하여 정의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당한 대우나 손실을 당한 과부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삶의 죄과 허물, 좌절과 가난과 실망과 질병 등의 문제도 하나님께 가지고 원한을 풀어달라는 심정으로 하나님게 나아와야 할 것입니다.

(마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오랫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자들의 압박 중에도 믿음을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간구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욱이 ‘속히’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과부의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치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사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로 와서 엎드리지 않고는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또 우리가 열심을 내어도 응답 받지 못했다면 ‘밤낮 부르짖는 원한 맺힌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연단하시고, 새롭게 하시며, 욕심을 제거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 참 믿음을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염려하셨습니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결단과 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참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눅 18:8)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교회 안에는 믿음의 생활을 오랫동안 한 성도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중에는 형식적이며, 세속적인 삶을 그대로 살면서 변화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윤리나 도덕도 점점 타락되어 가치관은 혼돈된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진리를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진정 바로 아는 일에는 실패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태하기 쉽고 미혹되기 쉬운 현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날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영국의 목회자 스펄전 목사님에게 어떤 후배가 질문하기를 “목사님의 설교는 항상 은혜가 넘치고 교회가 계속 부흥되고 있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목사님은 지하실로 내려가 예배 30전부터 땀과 눈물로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300여명의 성도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각종 기도회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가을에 기도하기에 너무도 좋습니다. 함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원한을 하나님께 기도며 응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어려운 때를 기도 없이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결 론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바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에 반드시 응답하시되 최상의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본문은 특히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중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낙망치 말고 매 순간을 주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