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기도 눅11:1-13
가끔 새로이 교회를 나오는 초신자들이 “목사님! 기도는 어떻게 하는거죠?”라고 묻든가 “저는 기도할 줄 몰라서 기도를 하고 싶어도 못해요.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물음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의 내용을 말할 것입니다. 어떤 내용, 어떤 말로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 幸?都求? 다른 하나는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을 보면 청산유수처럼 쉴 새 없이 기도문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일 것입니다.
오늘은 후자에 대한 물음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전자의 물음, 즉 기도의 내용이나 기도의 언어는 어떤 것으로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기도의 방법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기도의 방법은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즉 흔히 ‘주의 기도’(The Lord\\\'s prayer)라고 말하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안에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주의 기도문에서 5가지 모범답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The prayer begins with an acknowledgement of who God is). 우리의 기도를 받으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주의 기도’에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은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신(神)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초자연적 힘을 가지신 한분밖에 안 계신 분으로 ‘우리의 아버지’(Our Father, who art in heaven)이십니다. 세상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생명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온 우주를 이끌어 가시는 섭리자이십니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해서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시고 이끌어 가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은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바람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태풍 가운데서 하나님의 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람도 주장하시고, 태풍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의 자연 질서를 주장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3년 반이나 가나안 땅에 비를 오지 않게 하셔서 가뭄이 들게 하시기도 하시고, 다시 비가 오게 하셔서 가나안 땅을 풍성한 열매로 채워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갈릴리 바다의 광풍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폭풍우 앞에서 우왕좌왕할 때 오히려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두려워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마8:23-27). 예수님은 모든 귀신을 떨게도 하셨습니다. 마8:29에 보면 귀신들이 예수님을 보고 무서워 떨며 외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그들은 결국 돼지 떼에 들어가 몰사하고 맙니다. 하늘 위에 계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귀신들을 벌벌 떨며 도망가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세 가지 속성을 말합니다. ① 하나님의 전지성(Omniscience) ② 하나님의 전능성(Omnipotence) ③ 하나님의 무소부재성(Omnipresence) 등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시고 섭리하시는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실 때 창조주 하나님이 곧 우리의 아버지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처럼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부모들이 친자식들을 보살피는 것과 똑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보살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모든 믿는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유명한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로마의 전쟁 영웅인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로마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퍼레이드를 벌리며 행진해 오는 전쟁의 영웅, 황제를 위하여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아이 하나가 군중들의 저지선을 뚫고 황제가 행진해 오는 도로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호위병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를 끌어내려 합니다. “황제(Emperor)가 오시는 길을 가로 막아서는 안 된다. 거리 밖으로 나가거라.” 그때 어린아이가 호위병에게 소리칩니다. “당신에게는 그분이 황제일지 모르나(He may be the Emperor to you), 그분은 나의 아버지입니다(but he is my father).”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God is our Father).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세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식이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서 거룩히 여김을(hallowed)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힘으로 거룩성을 지닌 분입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여 주기 위해 하나님의 이미지를 그린다든지, 하나님에 관해서 어떤 설명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과는 다른 아주 높은데 계신 분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입으로 하나님을 묘사한다는 것 자체를 불경스럽게 여겼습니다. 우리의 입은 불결하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분의 이름을 글씨로 써야 할 필요가 있으면 글을 쓴 다음에 그 펜을 분질러서 다른 글자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자식들처럼 우리를 보살펴주시는 자상한 분이시기에 존경과 함께 그분의 거룩성을 지켜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오, 우리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는 곧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이 땅에 세워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도 예수님의 사역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와 모든 중심에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었고 목표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God\\\'s creation), 하나님의 사랑(God\\\'s love), 하나님의 자비(God\\\'s compassion),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중심에서 움직이시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서 하나님의 마음과 맞추는데 있습니다. 이것을 alignment with God\\\'s mind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 맞춘 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instruments)로 쓰임받기 위해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할 때 우리의 기도가 탐욕스런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기도가 됩니다.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 작은 도시에서 목회하시던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사택의 창문을 통해 어떤 중년 신사가 말쑥한 차림으로 교회 정문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신사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교회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역시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은 궁금해서 그의 행동을 추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어느 날 예배당 안 제단 옆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역시 그 중년 남자는 교회 예배당 안에 들어오더니 제단 앞에 나와 모자를 벗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예수님 저 ‘짐’입니다.”(Jesus, it\\\'s Jim) 그리고는 앞에 있는 성찬대에 꿇어 앉아 한참동안 십자가를 바라보더니 나갔습니다. 알아보니 교회 옆에 위치한 어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정오면 예배당 안에 들어와서 그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쏟아내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크고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행동으로 보이기 위해 제단 앞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 짐입니다.”, 즉 \\\'제가 여기 왔습니다. 안녕하시죠? 주님의 뜻을 따라 오늘도 살겠습니다. 제게 믿음의 힘을 주십시오.\\\'라는 다짐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장에 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짐도 다쳐 인근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입원한 병실은 매우 거친 산업재해 환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크고 요구조건이 많아 늘 간호사들이 울면서 퇴근을 하는 곳이었고, 환자들끼리도 언쟁을 벌이며 싸움을 자주 일으키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짐이 입원한 후에 병실 안이 달라졌습니다. 환자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이 넘쳐났습니다. 간호사들은 이상히 여겼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환자들에게 묻자 모두 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간호사가 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짐은 간호사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꺼요. 아마 당신도 믿지 못할꺼요!” 짐은 그에게 일어나는 일을 말했습니다. “매일같이 12시 정오가 약간 지나면 내 침대를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를 봅니다.
그는 내 침대 손잡이 레일에 손을 얹고 ‘짐, 나 예수이다’(Jim, It\\\'s Jesus)라고 내게 말씀하십니다.” 자신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신비한 일에 병실 전체가 달라진 것입니다. 짐은 그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맞추기 위해 날마다 예배당에 나가 “예수님, 짐입니다. 제가 왔습니다”라고 기도했더니 짐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친히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짐, 나 예수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다.’며 그에게 확증을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우리의 사욕이 앞서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앞서서도 안 됩니다. 차분히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분이 누구며, 그분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라고 기도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셋째로 이렇게 하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 난 다음에 자신의 간구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주의 기도문에는 우리의 간구(petitions)를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하나는 우리 육신에 관한 간구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간구입니다.
육신의 필요를 위한 간구를 주님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영적인 필요를 위한 간구는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먼저 육신적인 필요를 먼저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머물 곳,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등을 간구합니다. 생업장과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고,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사업이 잘 안 되는 데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며 염려하면 하나님은 섭섭해 하십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셨는데도 혼자 끌어안고 근심하며 불안에 떨고 있으면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쓸 것, 우리의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과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것은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인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룬 줄 압니다.
“그래도 너희는 내게 간구해야 되느니라”(겔36:37)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36:38)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읽어야 합니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배부르면 배가 불러 감사하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병들어 아프면 너무 아프니 병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건강하면 건강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회사가 잘 안되면 회사가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회사가 잘 되면 회사가 잘 되어 감사하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식들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으면 자식을 잘 키워달라고 기도하고, 자식이 공부도 잘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기도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예화는 우리에게 기도의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겠으며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악한 자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에이브라함 링컨의 어머니는 ① 가난하고 ② 무지하고 ③ 무능하고 ④ 병약하고 ⑤ 천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나는 너무 부족하여 주신 자식들을 잘 기를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길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링컨을 잘 기르셔서 온 인류가 존경하는 인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육적인 것만 간구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으로 필요한 것(spiritual needs)도 간구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으로 바로서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깨끗해져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를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자 Dr. John Muyskens 목사는 적군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교인들에게 요구했습니다. 그 적군들은 바로 그 목사님의 아들을 죽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적군을 위해 기도할 것을 당부하는 것은 ①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셨고 ② 그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③ 그 기도가 우리를 모든 미움과 증오 위로 올려놓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I pray for them because it is what Jesus did. I pray for them because prayer changes the one who pray. I pray for them because prayer lifts us above Hate).
네 번째로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부탁하는 기도야 말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귀들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어서 순간적으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한눈을 팔다가는 자신도 죽고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손상을 입히고 맙니다. 운전자는 졸지도 말고 한눈도 팔아서는 안 됩니다. 가야 할 앞만 바라보고 운전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킨 채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한눈을 팔다가는 순식간에 죄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가려해도 내 힘으로는 끝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새벽마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면서 저는 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날이 되게 하시고 축복받는 날이 되게 하시며, 악한 자 만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라는 세 가지의 기도를 빼놓지 않습니다. 악한 마귀가 내 안에 들어오면 넘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악한 마귀가 내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기도문은 후에 첨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렇게 끝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끝나야 완전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기도 중에 주의 기도만큼 완벽한 기도는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이 주의 기도를 모범으로 삼아 응답받는 기도생활이 이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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