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11:1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눅11:1





1.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기도하신 것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잠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 가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신 곳을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지하게 오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오래 기도하셨다는 것을 잘 알 수 없습니다만 원어 성경에 보면 \\\\\\\'기도하시고 마치시매\\\\\\\'하는 말에서 \\\\\\\'마치시며\\\\\\\'하는 말을 보면 ???????? 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하는 말은 ????라는 말의 3인칭 단수 과거 직설법 중간태입니다.


* 우리말이나 영어에서는 능동태와 수동태 두 개의 태가 있는데 신약성경이 쓰여진 헬라어에는 중간태라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중간태는 능동태와 비슷한데 특별히 동작의 주인공을 강조할 때 씁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라고 예수님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말로는 말로 할 때는 어느 정도 구별을 할 수 있지만 글로 번역을 할 때는 그 구별이 불가능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마치셨다는 말 ????는 무엇을 하다가 \\\\\\\'끝을 냈다. 마쳤다\\\\\\\' 하는 뜻도 있지만 어떤 중요한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쓰여진 히브리말로는 이 ????에 해당하는 동치어(同値語)는 ???입니다. 그런데 이 ???는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다 마치신 다음 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고 하면서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했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원어 성경에 보면 이 ???하는 말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창2:3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들로부터 안식하셨다\\\\\\\'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는 단순하게 무슨 일을 하다가 마쳤을 때는 카라( ???) 라는 말을 쓰고, 헬라어에도 단순하게 어떤 일을 마쳤다는 의미로 쓸 때는 ?????라는 말을 썼습니다. 눅2:43 예수님께서 열 두 살이 되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 \\\\\\\'마치고\\\\\\\' 하는 말을 보면 ????가 아니고 ?????가 쓰였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어렵게 설명을 드리는지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잠깐 드리던 기도를 마치셨던 것이 아니라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기도를 하시고 마치셨던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피곤을 이기기 위해서 안식을 취하셔야 할 정도였습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만 피곤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만 해도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나면 피곤한 것처럼 기도는 이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 진지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하시며 기도하시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큰 소리로 기도하셨고 또 어떤 때는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히5:7).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평생을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2. 도전을 받고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갔다가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에 도전을 받고는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달리기를 해서 3등을 한번도 해보지를 못했습니다. 여섯명이 뛰면 늘 4등이나 5등이나 6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 운동부에 뽑혔습니다. 제가 다녔던 중학교에는 럭비부가 유명했는데 제 덩치가 500명 정도 되는 한 학년에서 그저 열 번째 정도는 되었었기 때문에 뽑혔던 것 같습니다. 내가 좋아서 했던 것이 아니라 선배들에게 찍혀서 반 강제적으로 했었습니다.


운동부에 들어가니까 먼저 달리기 훈련부터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훈련을 어떻게 시키는가 하면 운동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달려가게 하고서는 선배가 뒤에서 몽둥이를 잡고 뒤따라 오면서 때렸습니다. 안 맞으려면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야 했습니다. 운동장 끝까지 뛰면 숨이 넘어갈 것 같이 찼습니다. 그래도 땅에 못 주져 앉게 했습니다. 너무너무 힘이 들어 세워져 있는 꼴대를 두손으로 붙잡고 겨우 기대어 서서 잠시 숨을 돌리면 다시 뛰라고 합니다. 뛰라고 해 놓고는 이번에는 다른 선배가 뒤에서 몽둥이를 들고 따라 오면서 때립니다. 조금 전에 따라왔던 선배는 쉬고 다른 선배가 따라오면서 때렸습니다. 정말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모릅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공부하면 공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땃던 황영조 선수가 연습을 할 때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러면 공부는 쉽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하루에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씩 밖에 안자면서 온통 공부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어느 정도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너무너무 힘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이렇게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받는 것처럼 또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것처럼 믿음생활에 대해 배우려고 하고, 기도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도 차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힘들게 훈련을 받고,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없는 돈도 아끼지 않고 과외공부까지 시켜 가면서 애를 쓰면서도 믿음생활에 대해서는 그렇게 배워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드뭅니다.


성경은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늘 배우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세울 때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했습니다. 창 39장 한 장에 똑같은 말이 9번이나 반복될 정도로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했다고 했습니다.


레10에 보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제사를 집례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가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삼하6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좋은 일을 했었는데도 큰 화를 당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규례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28의 말씀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107에 보면 사람이 곤고와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하나님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렘6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재앙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호4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성경에 충분히 기록해 주셨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다\\\\\\\'고 했고, 사34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지 못해서 그랬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들어야 할 때 안듣는다든가, 말씀을 읽을 수 있는데도 안읽는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호8:12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정말 알려고 노력했는데도 알지 못해서 잘못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고 또 성령님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열심히 듣고 읽고 연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늘 성령님께 부족한 것을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돈 버는 것을 배우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3.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께 기도를 배우기를 원했던 제자들은 결국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일을 정말 놀랍게 잘 감당하였습니다.


고넬료는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바울도 기도 중에 여러번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고난받는 자는 기도하라고 했고,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는 기도도 많다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할 뿐 아니라 기도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 곳에 정착해서 가만히 지내신 생애가 아니셨습니다. 사람들이 붙잡았지만 전도를 하기 위해서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일이 없이 계속적으로 옮겨 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머리 둘 곳이 없는 삶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어디에 계시든지 계신 곳에서 늘 기도하셨습니다.


눅5:15에 보면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눅22:39에 보면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오셨을 경우에는 밤이 되면 감람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육체를 가지셨던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이 땅에 계실 때 이적도 많이 행하셨기 때문에 우리와는 뭔가 다른 육체를 갖고 계셨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절대로 그렇지가 않으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셨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성을 지나실 때는 너무 피곤하셔서 \\\\\\\'그대로 앉으시기도\\\\\\\' 하셨고, 또 베다니를 지나실 때는 너무 배가 고프셔서 무화과가 익을 때가 아님을 아셨으면서도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제주도에서 몇 달 요양을 할 때 무화과를 많이 먹어 보았는데 덜 익은 무화과는 먹으면 혀가 다 갈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나 무화과나무가 흔하게 있는 이스라엘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무화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셔서 혹시 덜 익은 무화과라도 있을까 하고 살피실 정도로 배가 고프시기도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목마르다고 하셨고, 너무너무 고통스러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절규하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환경은 절대로 기도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엄청난 시간과 힘을 들여 기도하시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저는 리빙스턴의 전기를 읽으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였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서는 슈바이처도 유명합니다만 슈바이처는 리빙스턴이 죽은 다음 태어났을 정도로 연대의 차이가 많습니다.


리빙스턴은 목사요 의사였을 뿐 아니라 탐험가로서 자신의 사명 중 하나는 전혀 밝혀지지 않은 아프리카대륙의 길들을 밝혀서 선교사들이 들어올 수 있는 지도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계속 이동하면서 병도 치료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리빙스턴은 성경을 매년 4회 정도 통독을 했다고 합니다. \\\\\\\'리빙스턴의 생애\\\\\\\'라는 책에 보면 \\\\\\\'그는 성경을 대략 1년에 네 번 정도 통독을 했으며 마뉴마 지방에 있을 때조차 그랬다\\\\\\\'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몇 달이고 마른 땅을 밟아 볼 수 없는 늪지대를 지나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가 그 일을 그렇게 능력 있게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동행하던 사람들이 리빙스턴이 워낙 진이 빠진 있는 것을 보면서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을 예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더 못하고 오두막을 짓고 리빙스턴을 그 오두막에 있게 하고는 밖에서 지켜보게 했습니다.


새벽 4시였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들어가 보니까 그는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베개 위에 손을 얹고는 그 손위에 얼굴을 파묻는 자세로 기도하면서 세상을 떠나 있었습니다.


육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같습니다.

누구나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한 곳에 눕고 싶고, 누구나 실컷 자고 싶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고단해도 자명종 소리가 울리면 기도에 대한 부담을 느끼셔야 합니다.


물론 이번 특별새벽기도에 동참하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 무슨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하루라도 거르면 큰 일이 나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E.M. Bounds는 \\\\\\\'이른 아침 하나님을 찾기 보다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하루종일 「하나님을 찾는 일」에 별 진전을 못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아침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의욕이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향하여 정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정말 극히 적은 수의 성도들만이 아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양정중앙교회에 속한 성도님들은 모두가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가치있는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