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기도 눅11: 5-13
어느 교회 청년회원들이 기도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청년회를 지도하시는 전도사님이 \\\"그 동안 우리의 기도가 너무 이기적 관심에 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도할 때는 자신들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자신을 넘어서 부모님 이나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하시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 다\\\"라고 말씀하신 후 기도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청년회원들이 차례대로 기도하는데 어떤 자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그 동안 저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저의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무엇보다도 인품이 훌 륭하고 능력이 있는 사위를 보기 원하십니다. 부디 좋은 사위를 맞이하여 그들의 딸이 행복 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 이것은 이기적인 기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대부분이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가 이것을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아시지요\\\" 하면서 우리가 기도할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내 뜻을 하나님에게 통보하는 형식의 기도를 할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이것을 해주시면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이러이러한 일을 할겁니다. 두고보세요. 그러니 이번만은 하나님은 도와주셔야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 하나님에게 조건을 단 적은 없었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번에 복권을 샀는데, 이 복권이 당첨돼서 복권의 당첨금을 제가 탈 수 있도 록 도와주세요. 그러면 이 당첨금의 절반을 하나님에게 바치겠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과 흥정한 적은 없었습니까? 이러한 기도의 유형을 인간 중심의 기도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기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어리면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점점 자라게 되면 예수님이 하시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즉, 마음을 비우고 기도함을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물질을 구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변화를 구하게 됩니다. 내 마음이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교제하는 사람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 교제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처럼 닮아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면 나 중심의 기도에서 점차적으로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리게 됩 니다. 역대상 4장 9∼10절의 야베스의 기도를 보십시오. 신앙이 자라면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게 향하신 뜻을 알기 원하는 마음의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내 뜻을 하나님에게 입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에게 입력하는 기도를 해여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내가 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 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후에, 주님은 이어서 기도에 대한 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비유라기보다는 당시 유대 나라의 가정들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실에 근거한 이 야기처럼 보입니다.
아주 밤이 깊은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에 아주 친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여행을 하던 친구였는데 보아하니 늦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무척 허기져 보였습니 다. 친구를 대접하려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자기 집에는 친구를 대접할 만한 빵이 남아 있지 않 았습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이웃집에 빵을 빌리러 갔습니다. 한 밤중인데도 말입니다.
당시 유대 나라 사람들에게 빵을 굽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땅을 판 곳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돌을 얹고, 돌이 달구어진 다음에 밀가루 반죽을 그 위 에 놓아서 빵을 구웠습니다.
밤이 깊어서 이미 불이 꺼졌는데, 이웃집 문을 두드린다는 것도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한참을 문 앞에 서서 망설였을 것입니다. 돌아갈까? 말까? 생각했지만 염치 불구하고 문을 두드리고 결심했습니다.
\\\"쾅! 쾅! 아무개 양반! 잠자는데 미안합니다만 혹시 빵 남은 것 있으면 세 개만 빌려주시겠소?. 친구가 밤늦게 찾 아와서 그렇습니다.\\\" 안에서부터 들려온 소리는 기대한 바 대로였습니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시오. 우리 집 대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웠으 니 일어나 당신에게 줄 수가 없어요. 미안합니다.\\\" 이 말 속에는 빵은 이미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만 시간적으로, 여건상 도저히 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이 사람은 도움을 다시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염치도 무릅쓰고 대문을 쾅! 쾅! 이전보다 더 크게 두드리며 도움을 청했습 니다. 드디어 이웃 사람은 불을 켜고 일어나 빵을 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웃에게서 빵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웃이라는 것 때문에 빵을 얻어낸 것일까요? 이웃이라는 이유는 벌써 거절 받았습니다. 친구라는 이유 때문인가요? 도움을 청했기 때문에 필요한 대로 다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해석입니다.
저녁 12시가 넘었는데 친구가 왔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의 집을 찾아가 먹을 것을 좀 달라 고 문을 두들겼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친구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목사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시간이 시간인 만큼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적겠죠. 아마도 \\\"김 목사 요즘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아\\\" 하고 서로 수군거리며 말하지 않을까 요?
오늘 본문의 나오는 사람은 한 밤중에 친구 때문에 빵을 얻으러 갔습니다. 그것도 1차 시도에 지체없이 거절 받으면서도 뻔뻔스럽게 친구가 빵을 줄 때까지 졸랐습니 다. 얼마나 뻔뻔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을 쓰면서 무례하게 기도하라는 말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음의 자세가 그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태도가 그처럼 무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 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청원기도의 올바른 모형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우리는 거의 하나님께 뭔가를 달라는 기도를 하기 쉽습니다. 기도의 대부분이 청원 기도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청원 기도는 신중히 선별해야하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청원 기도는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청원 기도의 모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우리는 정당한 것을 간구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친구의 집에 가서 처음에 막 두들겼을 때 잠자던 친구가 나왔습니까? 잠을 자야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니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빵 3개가 꼭 필요했습니다. 빵이 없으면 안되니까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계속 두들기게 되었습니다. 정당하고, 꼭 필요한 것을 구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간구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친구를 위해서 간구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을 간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 이상의 것, 욕구 충족을 위한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기도해서 간구 하는 것들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 는 것인가? 우리는 판단해야 합니다. 나에게 없어도 살아가는데 상관없지만 있으면 좋은 것을 내가 간구 하는 것이 아닌가? 판단 하길 바랍니다. 욕심에서 나오는 간구는 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간구 하기보다는 친구나 다른 사람을 위해 간구 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도의 대상과 나의 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청원할 때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문을 두드릴 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그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친구라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두드리는 것입니다. 아무 집에나 가서 이 집에 빵이 있느냐고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분명해야 하고, 그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고 믿음의 관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청원할 때 청원하는 물질에 집중하지 말고 청원 대상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뭔가를 받을 것에 집중하지 말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빵을 가지고 오려고 하는 것보다는 친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받을 것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해야 합니다.
네째로, 항구적으로, 계속 간구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 두들겨도 들으십니다. 그러나 기다리십니다. 얼마만큼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요구하는지, 매달리는지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계속 두들기고 간구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청원기도를 할 때에 첫째, 둘째, 셋째가 옳으면 네 번째처럼 계속 간구 하십시오. 간구한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는 항구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에 순서가 거꾸로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즉, 청원 기도를 할 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원칙은 무시하고 네 번째 순서만 중요하 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기도를 해라 그러면 응답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구적으로 간구하는 부분에만 집착하지 말고, 내가 구하는 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 한 것인가?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인가? 내가 가지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것이 나를 위한 목적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달라고 하는 그것이 내가 호강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정말 하나님을 위 하고 선한 일을 위해서 하는 일인지, 그래서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인지? 생 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자기 욕심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그러한 의도가 하나님이 원하고 기뻐하는 뜻이기에 반드시 하나님이 내게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간구할 때 응답이 오게 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정욕 때문입니다.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부모가 없으며, 뱀을 달라고 하는 자녀의 요구에 뱀을 줄 부모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뱀을 달라고 기도할 때 이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주어서 해가 되는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청원기도는 나의 필요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청원해야 합니 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 우리가 구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원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관찰하기 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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