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하는 기도 눅18:1-8
25년간이나 인도의 선교사로 봉사했던 웨슬리 듀엘이 쓴 책 가운데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폭넓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기도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인적 자원이나 재정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 기도는 교회 최대의 재산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주의 길을 예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기도이다.\"(10)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웨슬리 듀엘의 지적은 지금 우리 교회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지적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을 이루어 가시되, 특히 기도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오랫동안 우리 믿음의 가족들에게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결코 단순하거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기도는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며 우리가 기대하는 이성적인 능력을 초월하여 기적을 행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 믿음의 조상들이나 현재 우리의 기도생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즉각적인 응답보다도 기다리게 하시고, 인내를 요구하시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기도하기를 배우되, 특히 인내하는 기도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해도 응답이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인내하면서 꾸준히 변함없이 기도하는 우리 한샘교회 믿음의 가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내하는 기도는 그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행동이며, 또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 비유의 배경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이 비유를 가리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라고 부르기도 하고, \"끈질긴 과부의 비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이 비유를 보는 관점과 어디에 강조점을 두고 보느냐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라고 할 수 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느냐는 일반 성도의 관점에서 보면 \"끈질긴 과부의 비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사용하신 시점은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다른 말로 하면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내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20-37에는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노아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을 때의 상황을 예를 들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무시하고 불경건하며 이기적인 목적으로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고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노아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로 심판을 받을 때에도 의인 열 명이 없어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두 딸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예를 들면서 예수님께서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18:3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일어나게 될 상황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두 가지 비유를 결론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는 누가복음 18:1-8에 있는 \"끈질긴 과부의 비유\"로, 또 하나는 누가복음 18:9-14에 기록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이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가복음 18:1을 보십시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이 말씀에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의 말씀을 주셨는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노아시대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이 비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상황과 관련해 볼 때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신자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하며, 즉시 응답이 없다고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낙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배경에서 이 비유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비유의 내용
그러면 예수님께서 노아 시대나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신자들에게 주신 비유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남편을 잃은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남편을 잃은 과부를 사회적 약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는 남편은 주 노동수단이었으며, 한 가정의 보호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에 과부가 어떻게 남편을 잃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과 억울한 일을 당한 한 과부라는 인물설정을 통하여 그 갈등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 갈 것인지를 어떤 기대감을 주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아무런 힘이 없었던 과부는 그가 당한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한번만 찾아간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찾아갔습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에 보면 \"자주 그에게 가서\"(눅18:3)라고 되어 있지마 헬라어 성경에는 \"갔다\"(ՇՑՅՔՏ)는 표현이 헬라어 문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인 미완료형, 중간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반복해서 계속 찾아갔다는 뜻입니다. 이 과부는 계속 그 도시의 재판관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말을 들을 때 받는 인상은 원수에 대하여 복수해 달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원문은 그러한 뜻은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대적\'(ՁՍՔՉ-ՄՉՊՏՕ)이나 \'원한을 풀어달라\'(ՅՊ-ՄՉՊՇՓՏՍ)는 말은 둘 다 법정적인 용어이고, 어원이 \'의롭다\'(ՄՉՊՁՉՏՙ)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의롭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정의롭게 재판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좀 현대적인 사건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수지 김 사건은 국정원이 지난 14년이나 은폐하고 조작한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수지 김 사건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지난 1987년 1월 3일에 지문인식을 하는 기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윤태식 씨가 홍콩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아내인 수지 김을 살해하고 아내가 북한 공작원이었다고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위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지난 14년 동안 국정원이라는 거대한 권력 아래에서 은폐되고 조작되었습니다. 수지 김 가족들은 이 사건이 미심쩍었지만 권력의 힘 아래에서 정의를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였을까요? 지금까지 당시 안기부가 어떻게 이 사건을 은폐하였고, 왜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 공소시효 2개월을 앞두고 재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수지 김과 그 가족들은 이 억울함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사건의 진실이 정확하게 파헤쳐져서 다시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누명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고통당하는 과부가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소서\"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정당하게 재판하여 정의가 실현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억울함을 당한 과부는 계속하여 이 도시의 재판관을 찾아가서 정당하게 재판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은 처음 여러 번이나 과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부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재판관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속하여 찾아갔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되었을까요? 재판관은 계속하여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 과부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이 당시 사회적 약자인 과부의 청을 왜 들어주었을까요? 오늘날처럼 매스컴이나 사회적으로 그를 압박하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 답은 너무 간단하게도 \"귀찮아서\"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8:4-5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ՅՊ-ՄՉՊՇՓՙՍ)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재판관이 말하는 내용의 핵심은 이 과부가 계속 찾아와서 나를 귀찮게 하기 때문에 과부의 요구대로 들어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뒤의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과부의 끈질긴 요구로 인하여 그의 억울한 일이 풀리게되고 정의가 실현되었을 것입니다.
3. 비유의 결론 :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어떤 교훈을 주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하시고 우리 신자의 삶에 몇 가지 적용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누가복음 18:6-8입니다.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이 첫 번째로 적용해 주신 내용은 불의한 재판관이 말하는 것을 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한 과부가 억울함을 계속 끈질기게 호소할 때 계속 찾아오는 것이 귀찮아서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의한 재판관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며, 끈질기게 찾아가는 과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이며, 과부는 주님의 초림시대부터 재림시대까지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하시고 불의한 재판관을 하나님과 비교하면서 너무나 당연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6-7) 이 대답은 \"아니오, 오래 참지 않고 기도를 들어주십니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뜻은 불의한 재판관이 끈질기게 요구하는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하물며 불의하지도 않고 완전하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듣고 억울함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첫 번째 교훈은 세상이 악하고, 때로는 그 악한 세상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항상 인내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주제는 항상 우리 성도들에게 용기와 힘을 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상황에 따라 즉시 응답해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기도가 곧바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님이 재림하셔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주시는 날까지 악한 자들로 인하여 고통을 받기도 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 갈등하기도 하지만 인내하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도는 분명 우리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희망이요 위로요 삶의 근거입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꽃을 피우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여러분! 즉시 응답이 없어도 인내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 보십시오.
이 비유의 두 번째 교훈은 참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내용을 신자의 생활에 적용해 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앞에서 끈질기게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 번역성경에는 빠져 있지만 \"인자에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에서 \'믿음\' 앞에 \'그\'(ՔՇՍ)라는 지시사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넣어서 읽으면 \"인자에 올 때에 세상에서 (그)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믿음\"은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기게 요구하는 간청을 들어주셨다면 하물며 불의하지도 않고 완전하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말합니다. 왜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하지 못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기도하는 자\"라고 하지 않으시고 \"택하신 자\"라고 하신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선택에서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아주 심오한 진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회당에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만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선택된 자는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불의를 행하다가 물로 심판을 받은 노아시대의 사람들이나 불로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던 사람들의 삶의 특성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의를 행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바라보고 기도하십시오. 참으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밤낮으로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실한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성도들이 경험한 바가 있고, 우리 현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과 우리 교회 가족들도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질병 문제를 구할 때 들어주신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할 때 역시 하나님이 들어주신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육관 문제를 위하여 기도할 때 적절한 방법으로 들으시고, 필요한 경비를 주신 것을 역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교회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가족들을 잘 되게 하시거나,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간 성도들을 통하여 역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많은 약속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는 약속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대로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상황에 맞게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인내하지 못하고 중단에 기도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불의하지도 않고 완전히 의로운 분이시며, 악한 일을 오래 참으시지 않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면 금방 응답이 없고 악하고 힘든 일로 인하여 갈등하면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인내하면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신자의 삶의 특성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초림시대부터 재림하시는 날까지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잘 되는 것처럼 보여 우리를 갈등하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인내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성도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여 기도의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불의한재판관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이 불의하지도 않고 의로우신 분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우리의 원통함을 풀어주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지만 옛날 역사 가운데 참으로 악했던 노아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이 의로운 사람이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때로 우리의 기도가 속히 응답이 되지 않아서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인내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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