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여는 희망찬 미래 눅11:1-13
한국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특별히 새벽기도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부흥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벽기도회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어찌 새벽기도회뿐이겠습니까? 금요철야기도, 작정기도, 구국기도,.... 등등, 수없이 많은 기도회들이 끊이지 않았기에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 부흥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세상을 울리던 기도의 함성이 잦아들고,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발걸음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도회를 통해 부흥한 교회들은 성장 교회의 특별 케이스가 되어 특별하게 소개가 될 만큼, 기도 많이 하는 교회는 아주 특별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도생활일 것입니다.
아무리 마른땅이라도 물줄기를 따라 심어진 나무들은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있는 곳마다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라도 기어가 들어가야 움직이는 것처럼, 아무리 많은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반대로 몇 명 모이지 않는 교회일지라도 살아 있는 기도가 있으면 역사를 움직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오늘도 우리가 기도할 수 없도록, 바쁘게 만들고, 이유를 만들고, 어떤 때는 핍박, 조롱, 멸시,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난관을 뚫고 나아가서 기도하면 날마다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말씀에는 기도에 대한 세 가지 주제가 있음을 발견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도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주제를 공부함으로 기도를 통해 21세기, 새 천년의 첫 해, 2001년을 항상 승리하는 주의 거룩한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소서(1-4).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2-4절). 오늘은 주기도문 자체를 강해하지는 않겠습니다. 오늘 생각하려고 하는 말씀의 주제는 \\\"제자들의 요청\\\"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기도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는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를 어느 정도 다니다보면 공중기도를 하게 되는데, 성도들이 공중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기도는 배워서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많이 배웠다고 기도를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못 배웠다고 기도를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늘 하는 사람이 잘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공중기도를 드릴 때, 반드시 기도문을 써서 하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기도문을 작성하면서 준비하고, 스스로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중언부언하게 되고,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기도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하였는지를 배우고, 우리의 삶에서 기도를 연습하여 습관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성도들과 대화를 할 때, 좀 듣기가 싫은 말 중에 하나가 \\\"제가 부족해서 그렇죠 뭐\\\" \\\"제가 믿음이 없어서요\\\"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을 하시는 것은 겸손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좀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교만함과 당당함은 전혀 다릅니다. 교만함이란 자기를 과대포장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서도 그런 것처럼, 자신을 과시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당당함이란 자신감입니다. 믿음의 확신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기초부터 잘 배워서 바르게 해야 합니다. 기본기를 잘 익힌 사람이 제대로 된 재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축구가 일본에게 뒤쳐지고 선진국을 따라 잡지 못하는 이유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본기를 익히기도 전에 이기는 법만 가르칩니다. 그래서 반칙 기술을 가르치고, 코치와 감독들은 심판을 매수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기본기를 갖춘 인격적인 인간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가는 방법만 가르치는데 있습니다. 대학만 가면 기본기가 없어도, 인격이 잘 못되었어도 다 용서 받는 사회입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리 나빠도 다 용서 받는 사회, 이것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가운데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과정은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치켜세우고 박수를 쳐줍니다. 그래서 신앙의 근본 원리를 붙잡지 않고 현상만 좇아 다니는 미신적인 신앙 행태가 속출하면서 사회에서 여러모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도 기본기부터 충실하게 배우고 다져서 바르게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부족함을 느꼈으면 배우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고, 기도회를 만들고, 끊임없이 설교를 통해서 가르칠 때에는 참석하지 않고, 언제까지 \\\"잘 몰라서\\\" \\\"부족해서\\\" \\\"믿음이 없어서\\\" 라고 말하면서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나는 아무런 일도 못하는 나약함에서 벗어나 나도 간증의 주인공이 되고, 나도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믿음의 승리자가 되도록 기도를 배우고, 연습하고, 기도가 삶에 습관화가 되도록 힘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비상 낙하산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비상 낙하산을 착용하고 다닙니다.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버튼을 눌러 좌석에서 퉁겨 나가면서 밖으로 내던져집니다. 그러면 착용하고 있던 비상낙하산을 펴서 안정하게 탈출하는 것입니다. 비행기 한대보다 조종사 한 사람을 생산하는 것이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행기를 버려도 조종사는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용하는 것이 비상낙하산입니다. 다시 말해서 비상 낙하산을 사용하는 상황은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비상 낙하산이라도 된 듯 여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 다 해보고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도다. 그리고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편안한 인생이 되기를 원한다\\\" 이런 자세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는 비상 낙하산이 아닙니다. 급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방법이요, 지혜요, 힘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항상 하나님을 묵상하며 쉼 없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하루 중 기도를 위한 특별시간을 정하여 그 시간만이라도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일을 시작하기 전, 식사 전후,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당신이 압박을 받거나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알 때는, 그 즉시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습관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에 익숙하게 숙달 된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능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방법이 되고, 기도가 지혜가 되고, 기도가 힘이 되어 날마다 승리하는 주의 거룩한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5-8).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대한 두 번째 주제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늦은 밤 갑자기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집에는 손님을 대접할 만한 음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웃에 사는 친구에게 가서 손님을 대접할 음식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 친구가 거절하지 않고 나와서 음식을 줄 때,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강청함을 인하여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친구의 요청이니 들어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9절과 10절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찾는 이에게,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승리하고 다 형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철저하게 신뢰하고 의지하고 바라고 간절함으로 기대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젖먹이가 엄마를 떨어지면 곧 죽을 것같이 떼를 쓰는 것 같은 간절함이 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당신이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의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하는 자세, 예수님으로부터 개가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귀신들려 죽게 된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해 간절함으로 매달리던 이방 여인처럼, 하나님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간절함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참으로 좋아졌습니다. 편리해졌습니다. 넉넉해졌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래하여 위험한 일들이 얼마나 많으며, 또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저 쪽 남미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는 그만 두더라도, 금년 겨울을 보내면서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의 요소를 안고 사는지 절실히 깨닫지 않았습니까? 우물을 길어 먹을 때에는 수돗물 얼 걱정 안 해도 되었습니다. 나무 때고 살 때는 보일러 터질 걱정 안 해도 되었습니다. 전기 없을 때에는 냉방에서 잘 걱정 없었습니다. 기름 값 걱정 안 해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기하나만 문제를 일으켜도 모든 것이 마비가 되는 세상입니다. 이것은 바로 삶의 질이 높아지는 데에는 그만한 위험 요소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사람들의 신앙자세는 어떻습니까? 마치 하나님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살 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주셔도 얼마든지 편안합니다. 하나님이 안 하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마치 배짱을 부리 것 같은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주셔도 좋고 안 주시면 그만이고\\\"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셔도, 돕지 않으셔도, 역사 하지 않으셔도, 여러분 얼마든지 괜찮으십니까?
아무리 시대가 좋아져도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이 방법입니다. 하늘에서 풀리면 땅에서도 풀리고 하늘에서 닫히면 땅에서도 닫힙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입을 크게 열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13:14-19에 보면 죽음을 앞둔 엘리사가 이스라엘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이한 역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당시의 요아스 왕은 엘리사를 믿고 따랐는데,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화살로 땅을 내리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요아스는 세 번만 쳤습니다. 그 순간 죽어가던 엘리사는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여러 번 쳤으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인데, 왜 세 번만 쳤느냐고 한탄합니다. 하나님은 끝장을 보는 믿음을 기대하십니다. 화살이 부러지도록 쳐야 합니다. 완벽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끝을 볼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간절히 매달리는 열정적인 기도의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찾아서 어련히 주시겠지라고 두 손놓고 있는 자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건성기도에는 응답이 없습니다. 어미새는 입을 크게 열고 어미 입을 두드리는 새끼에게 우선 먹을 것을 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기대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오늘도 하나님은 복을 내려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1세기를 여는 새 천년의 첫해, 우리 모두 기도의 원년으로 삼고, 입을 크게 벌리고 간절히 간구함으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비전과 축복을 보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9-13)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세 번째 원리는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만나주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십니다. 자식이 생선을 달라는데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악한 아버지는 없습니다.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이라고 표현되었는데, 마태복음에 보면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을 누가는 성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임하시면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나를 내려놓은 시간입니다. 내 방법, 내 지혜, 내 생각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포기한 것을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요 비밀입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거스틴이 성경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집어던지고, 당시 이단 집단인 마니교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끊임없이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의 장면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저를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리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죽은 아이 때문에 우는 어미보다 더욱 애처롭게 눈물지으며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주님은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주님, 주님은 들으셨습니다. 9년이라는 세월동안 믿음의 어머니는 매 순간 눈물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어머니에게 두 가지 큰 확신을 주셨습니다. 꿈을 통해 주님은 어머니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사제를 통해 아들과 논쟁하지 말고 \\\'오직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시오.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달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눈물의 아들을 절대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방황을 끝내고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아들의 방황을 끝내게 만들었고, 나아가서는 그를 성자의 칭호를 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5장 14-15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얻기 위해 때를 따라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아시는 하나님, 우리가 필요를 따라 구하면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특권이라고 하는 것은 누릴 때, 사용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거룩한 승리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루의 첫 새벽을 필두로 하루 종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함으로 악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에 짓밟히지 않고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