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었을 기도 해야 하는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눅11:1-4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눅11:1-4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원하여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우리는 계속해서 신앙 인이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계속적으로 살피는 누가복음 본문이 제자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신앙 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 그리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임을 살핀 바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해서 신앙 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앙 인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보다 기도에 관심을 더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자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역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공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요단 강에 서서 기도하셨고 제자를 선택하는 일을 위해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으며 십자가를 지기 전에도 기도하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의 사역 언제 어디서 이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모릅니다만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으로 오늘 본문도 시작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늘 아버지와 깊은 교제를 나누시는 주님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은 제자가 그와 같은 기도의 비결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주님이 기도를 끝내시자 요청합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기도\\\"라고 부르는 내용을 듣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공동체 기도들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카디쉬 기도문이나 18번의 축복 기도로 구성된 테필라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그들 나름의 찬송가와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 한 제자의 언급처럼 세례 요한도 자기 제자들에게 그들 나름의 기도문을 가르쳐 준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면 따를수록 그가 유대인들의 소망을 분명히 나타내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들의 독특성을 들어내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무엇을 기도하느냐 하는 것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도합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무엇을 믿는 지를 나타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이와 같이 배우신 적이 있습니까? 기도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은 기도를 배우기를 소원합니다. 본문에 등장한 제자는 자신과 동료 제자들이 주님처럼 기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주께서 그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를 사모합니다.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오늘 우리는 주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의 모범을 배워 봅시다.

우리 한국 사람은 복음을 전해 듣기 전에도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할렐루야 축구단 선수처럼 한 꼴 넣은 다음 확실히 꿇어앉아 기도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아들을 올림픽에 내보낸 어머니라고 하면 물은 떠놓고 기도하든지 돌부처 앞에 기도하든지 날마다 빌고 있는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처럼 입시 철에 고사장 문 앞에서 열심히 비는 우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기도에 있어서 예수님의 본을 따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도 기도했던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여러분이 믿는바가 달라졌기 때문에 기도하는 내용이 달라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기도의 첫 시작에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라\\\"고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만, 좀더 쉽게 하면 이렇게 말하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를 외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하라\\\"고 강조합니다. 주기도를 드릴 때 말하듯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외우는 것으로 대신 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한자도 틀리지 않게 암송할 수 있지만 내 고백이고 내 말이어야 합니다.

아니면 주기도를 뼈대로 삼아 자기의 말로 바꾸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의미 있게 주기도를 사용해야 합니다. 단순한 언어의 나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이름과 나라를 나타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먼저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무런 수식어 없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아주 분명히 드러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결코 사용한 적이 없는 용어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이 특권을 부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친밀성을 기도를 배우려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전에 우리는 기도할 때 막연한 신을 불렀습니다. \\\"천지 신명이시여\\\"라고 천지에 있는, 아니면 천지를 지은 신을 막연히 불렀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친밀한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고 부르고 있습니까? 친밀함은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아버지로서 가까이 다가 오신 적이 있습니까? 기도의 삶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의 관계를 나타내 보이는 삶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실린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은 주님이 보여주신 이 친밀감입니다. 유교 문화권에 살다 보니 우리의 기도에는 너무 격식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로 충분할 것을 \\\"감사드립니다\\\"라고 표현하기를 선호하고 또 더 나아가서는 \\\"감사함을 드립니다\\\"식으로 발전합니다. 차라리 보배 함을 드리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왜 감사함을 드려야 합니까? 감사하든지 감사드리든지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궁중 용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한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 \\\"아버지여\\\"하고 부른 친밀함은 다 살아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아주 단순합니다. 특히 누가복음에 나오는 기도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것보다 길이도 짧고 표현의 변화도 적습니다. 하여간 주님이 처음 사용하신 언어는 마태나 누가가 기록한 헬라어가 아닙니다. 주님은 헬라어를 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에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주님은 아람어를 썼을 것으로 추종을 합니다. 주님이 아람어로 말씀하신 그것을 마태와 누가가 기록할 때는 정확한 언어인 헬라어로 번역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아버지여\\\"라고 여기서 처음 시작한 헬라 말은 \\\"아빠\\\"라고 하는 아람어입니다. 기도의 예처럼 친밀감이 넘치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유대인들 사이에선 좀처럼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써 부를 때에 우리는 하나됨과 가족의 유대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도들을 하나님께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저는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친밀하다고 하는 것은 존경심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간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구별된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맨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독특하며 구별되신 분이십니다. 그 분과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그 분처럼 높으신 분도 없습니다. 이 높으신 분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것이야말로 주기도의 맥박과 같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소원하는 것은 자녀들의 중심에 소원입니다. 자녀들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기를 바라는 자들입니다. 아버지의 위대하심이 온천하에 알려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사람들의 눈에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주의 자녀들에게 나타내소서\\\"라고 모세가 드렸던 기도를 우리가 떠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 청원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충만히 실현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영생을 누리는 것 정도가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가 회복되기를 열망하는 기도입니다. 죄와 불의와 혼란이 물러가고 의가 보금자리를 트는 새 질서가 자리하기를 소망하는 기도입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로운 사회가 건설되기를 간구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오신 이후 우리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그 나라가 지금도 복음의 전파를 통해 확장되어지고 있습니다. 새생명 훈련을 통해서 확장되어지고 있습니다. 새생명 훈련을 통해서 전도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하므로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됨으로 그 가슴마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히 미래적이고 종말적입니다. 주님의 재림하심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우리가 끌어당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임하시기를 간구함으로써 그 나라를 바라볼 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실현되는 영광스런 나라가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날 그 나라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죄와 어두움의 사슬이 끊기고 아들의 사랑의 나라로 사람들이 구출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좀 더 온전히 교회다워지기를, 말씀으로 성숙해지기를 기도하는 소망이 담긴 기도입니다.

교회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만이라도 주님의 직접 다스리는 것이 드러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배의 자리가 왕되신 하나님을 그 나라의 백성이 만나는 자리가 되기를 열망하는 기도가 여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서 끼여 있습니다.

첫 번 청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해 주고 둘째 청원은 하나님이 이 세상 속에서 하고 계시는 일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 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필요한 것들을 다음 청원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들의 일상적인 필요마저도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함을 아주 실제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필요한 먹는 문제부터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입고 사는 것 전체가 아버지의 손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치 하루 품삯을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처럼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아침에 나가서 만나를 거두어서 그날 먹고살았듯이 양식은 본래 선하신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일용할 양식을 기도하도록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루 이상의 먹을 것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에게 실감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이 진정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인정하고 겸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이 없이는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 얼어 있는 눈 위에 넘어져 허리에 타박상을 입고 한 주간 누워지내면서 눕고 일어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새삼 배웠습니다. 반듯이 누워 있다가 몸을 조금 옆으로 돌리는 것조차 고통 없이는 안 되는 처지에서 움직이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새삼스럽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이 청원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매일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니 그것이 신자로서 우리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있습니다. 결코 \\\"풍요로운 잔치 음식\\\"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필요한 것을 우리는 구하고 아버지의 선하신 손에서부터 공급받습니다. 혹 꼭 필요한 것 이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면, 하필 나한테 주시면 하나님이 내게 그것을 맡기신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물질적인 필요에 있어서 스스로 절제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받은 것 가지고 이웃과 서로 나누는 것을 배워 가야만 합니다. 우리 이웃들 특히, 함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딱한 처지들을 들으면서도 귀막고 사는 것은 여러분 주기도를 드리는 성도다운 삶을 사는 것 아닙니다. 혹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이 일용할 것 말고도 더 주셨으면 그것은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필요를 여러분을 통해서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 할 때에 우리는 나와 나의 가족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형제들, 신앙 공동체를 기억하고 또 나아가서는 우리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이제 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용서는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 이웃을 용서할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청원은 만일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먹을 것만 가진다고 살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홀로 살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섬처럼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이에 살아야 인간입니다. 사람\\\'인\\\'자 사이\\\'간\\\'자를 쓰는 것을 꼭 유념을 하십시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살때에 사람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 사이에 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도 많고 서로 사랑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므로 사람 사이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용서가 꼭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불완전하고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자신들도 불완전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같은 죄인들로 구성된 세상에는 온갖 문제가 속출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놀랄 것도 없으며 그렇다고 죄를 무시하고 살수도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는 그리고 기꺼이 용서하려는 마음이 없는 곳에는 죄와 원한만이 사무칩니다. 하지만 건강한 제자들의 모임에는 용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남을 가리키기보다는 성숙한 성도들은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없습니다. 특별히 신앙 공동체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정말로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생활에서는 너무나도 찾아보기 희귀합니다. 새해에는 새천년을 맞이해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으로 나아갑시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도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 분하게 생각하고 저주하는 삶을 보내고 있습니까? 이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마음 깊이 그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때에 미움의 사슬에서부터 여러분 자신이 해방될 것입니다.

마지막 청원을 살핍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영적 보호에 관한 청원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사람들 배후에서 사람들 사이를 어렵게 만드는 악한 영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서 서로 섬기고 서로 친절을 베풀고 사랑해야 할 관계들이 언제나 뒤틀리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죠. 여러분 살면서 지금까지 고통당했던 것이 저 프랑스 사람들 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저 러시아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까? 아니면 저 이웃 동네 사람들 나는 복산동에 삽니다만 저는 옥교동 사람들 때문에 고통 당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어쩌다가 문제가 생기면 복산동에 사는 사람은 복산동 사람들끼리 문제가 있더라구요. 조금더 가까이 보면 한집 한지붕 아래서 사는 사람들끼리 부모자식 지간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문제가 생겨서 어려워 하지 않습니까? 왜? 배후에는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를 언제나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게 하고 우리의 관계를 깨트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행복할 수 없는 그 사람에게 심한 말 한마디 내뱉음으로써 그의 하루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라는 기도는 우리의 삶에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입어야만이 미움 대신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련과 유혹이 닥칠 때에 우리는 기도해야만이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서를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 드려야 합니다.

이제 말씀 맺습니다. 기도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친밀하신 그분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의 핵심입니다. 누가복음의 맥락에서 보면 하늘 아버지는 좋으신 분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모든 좋은 것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달라고 말하면 주려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꺼이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로 인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용서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산 그대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신 그대로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분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인식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기도할 때에 우리도 주님을 본받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하고 의존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먹는 일부터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