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하는 경건한 사람들

경건한 기도의 사람들 (2)/눅2:21-39

경건한 기도의 사람들 (2)
눅2:21-3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나라를 이루시며,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십니다. 하늘에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역사를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의 목표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목표를 위해서 직접적으로 일하시지만, 하나님의 보편적인 방법은 믿음으로 깨어 순종하는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앞에 깨어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누가복음의 첫 이야기인 세례요한의 탄생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탄생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때 경건한 사람들이 기도에 힘썼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누가복음에서 이 점을 강조하여 보여줍니다.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경건한 사람들이요 믿음의 사람들이요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마리아와 요셉,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가 바로 기도의 사람이요 경건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들은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마리아 시므온 안나의 믿음의 삶, 경건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며,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받았는지 또한 생각하면서 우리가 부름받은 이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선한 도구가 될지도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의 사람 마리아

성경은 마리아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리아가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전했을 때 매우 놀라워하면서도 천사의 말에 순종을 했음을 말합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8)\\\".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그 당시 정혼한 처녀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잉태하면 돌에 맞아 죽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죽음을 각오하고 천사의 말을 믿고 순종했다면 그녀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 이런 담대한 믿음은 하나님과 늘 교제하는 삶 곧 기도의 삶을 통해 생기는 것입니다.

또 엘리사벳을 만난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인사를 듣고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그녀가 얼마나 온전한 기도의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줍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눅1:46-55)\\\".

이것이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요 기도입니다. 마리아는 이런 찬미의 기도를 통해서 자신에게 잉태된 아이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찬양하며 높이고 있습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질 새 나라의 특징이 어떠합니까?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입히는 나라입니다. 부자를 빈 손으로 돌려보내고 가난하고 주린 자의 손에 풍성한 복으로 채우시는 나라입니다. 권세있는 자를 내리 치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구원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헐벗고 억압받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누가복음이 말하는 구원이요 나라입니다. 벌써부터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사람 마리아를 통해서 이런 놀라운 계시를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늘 깨어 있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평상시에 기도하는 경건한 자들은 상식을 벗어난 하나님의 뜻이 나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귀중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고 조절합니다. 마리아가 바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 여인입니다.



기도의 사람 시므온

성경은 시므온이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간접적이기는 하나 매우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2장 25-27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므온에 대해서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지시와 인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적인 일들과 유익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 때 시므온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야를 소망하며 기다리던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로하실 때를 간구하는 자였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아를 기다리던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기도의 사람이었으며, 그 결과 의로운 삶을 사는 자였으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자였습니다.

시므온이 하는 기도와 찬양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비천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과 위로를 소망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8-32절입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고 찬양합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신 한 아기를 안고 이 아이를 통해서 이루어질 나라를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한 아이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나라는 어떠합니까? 이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 만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만민 앞에 예비하신 자입니다. 이방을 비추는 세상의 빛입니다. 뿐만아니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예수님의 구원은 이방인 유대인 차별이 없이 천하만민을 위한 구원이요 모든 만민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기도의 사람, 경건한 사람, 성령의 사람이었던 시므온을 통해서 놀라운 이런 은혜를 보이신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안나

여선지자 안나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36-38절입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설명합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시므온과 안나를 여기서 언급하는데 이들은 그 당시 외식자들이었던 대부분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는 너무나 대조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기도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시므온과 안나는 하나님 앞에 참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당시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고 업무에 바빴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는 달리 기도하는 사람들이요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안나는 결혼하고 7년 동안 남편과 살다가 사별했습니다. 사별한 채 84년간 살았으니까 그녀의 나이는 100세를 넘었을 것입니다. 안나는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에 쓰는 여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끊임없이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 안나는 기도 속에서 큰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과 가지는 교제의 즐거움을 어느 누구보다도 안나는 알았던 것입니다.



누가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와 구원

성경은 각각의 주제와 저자의 신학적인 의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같은 예수님에 대해 보고하는 복음서들도 각각 강조점이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복음서입니다. 구약처럼 소외되고 천대받았던 가난한 자, 비천한 자, 여인들, 어린아이들, 신체 건장하지 못한 자 등에게 더 이상의 차별과 억압이 없는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복음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처럼 이런 연약한 자들을 싸매주며 위로하는 제사장적인 사역에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구약처럼 유대인 이방인의 차별이 있는 구원이 아니라 만민이 하난미의 구원에 참여하는 새 나라를 말합니다. 바로 이런 일을 이루시는 분이 마리아의 태에서 출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예수님의 첫 탄생 기사인 첫 번째 크리스마스의 일들을 수종들던 믿음의 백성들의 고백과 찬양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고백과 시므온과 사가랴의 고백에서 이런 존귀한 구원의 일이 증거되었습니다. 사가랴의 찬양의 고백을 통해서 구약에서 예언된 새 나라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짐이 증거되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서 천하만민의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의 사역, 소외된 자에게 참된 구원과 해방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경건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심

이처럼 예수께서 탄생하는 순간은 아주 중요한 구원역사적인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존귀한 구원의 나라와 계시를 수종드는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일 것으로 믿었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또한 그들 스스로 그처럼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으십니다. 하나님은 의외로 은밀하게 지내며 경건하게 살아가던 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경건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들어 쓰셨습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알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소망하던 의인 마리아와 요셉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깨어 있는 자, 세상의 조류에 휩싸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던 선지자 시므온과 여선지자 안나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변명하지 않고 아멘 하며 순종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 나라를 수종드는 믿음의 백성들의 경건과 기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들의 경건과 믿음이 크고 큰 사실을 누리는 당시의 종교적이며 영적인 상황을 알 때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계시를 다시 주시기까지는 영적으로 암흑기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거의 400년 동안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된 시기였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기다리던 하나님의 구원의 일은 전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세상적인 유혹은 극에 달하였을 것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에서 벗어나서 세상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그들에게 또 다른 유혹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첫 기사에 나타나는 믿음의 백성들은 굳건한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와 구원과 인간의 행복은 세상적인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베푸심에 있다는 강한 확신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세상과 타협할 때 오직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들이었으며 당세에 완전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일이 비록 더딜지라도 초조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던 경건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는 자들이며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신앙적인 지식과 삶이 따로 노는 자들이아니라 믿는대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며 실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믿음의 백성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들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모든 일과 환경을 예비하시며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며 경건한 삶과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성경의 역사에서 또 교회사에서 또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듣는 이야기이며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교회를 사용하시며, 기도하는 성도를 사용하십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장점과 은사들과 환경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앞에 사용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귀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재물을 벌어들일 수도 있고 학업 성적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대로 기도하지 않고도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성공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패배와 절망과 실패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아니 기도하지 않고 어떤 것을 오래 동안 또 계속해서 성공한다는 그것이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소박한 꿈입니다. 우리 모든 새 백성들이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 많은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지하는 기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는 성도들이 되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삶이 경건한 삶, 기도의 삶이 되어 성령에 붙들린 바 되어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