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눅1:5-17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
눅1:5-17





우리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을 경험하는 외적인 방편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그 가운데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영원한 교제로 이끌고 신비한 체험들을 많이 하게 합니다. 리차드 포스트(Richard J. Foster)는 \\\"영적 훈련과 성장\\\"이라는 책에서 기도에 대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성경공부는 지성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인간심령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행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기도의 훈련이다. 진정한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키고 또 생활을 창조한다.\\\" 기도생활을 진지하게 해보신 분들이라면 포스터가 말한 이러한 변화들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세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론이 아니고 실제로 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1분 안에 정보를 전달하거나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계를 가리켜 \\\"정보의 바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에 들어있는 정보를 활용하며 각종 웹 홈페이지로 쉽게 찾아가게 해 주는 브라우즈(Browser)로 넷츠케이프(Netscape)가 있습니다. 이 넷츠케이프의 이미지를 배의 키와 함께 네비게이터(Navigator)라고 하였습니다. 정보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넷츠케이프 네베게이터라는 웹 브라우즈를 사용하면 정보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항해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안에 아무리 좋은 정보가 있어도 이러한 웹 브라우즈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면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정보의 세계보다 더 신기하고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웹 브라우즈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웹 브라우즈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들어가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의 특징을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라는 웹 브라우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첫 번째로는 이 본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두 번째로는 사갸랴와 엘리사벳의 기도, 세 번째로는 이 기도의 특징적인 부분인 구속사와 기도와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배경

사갸랴와 엘리사벳이 기도하던 역사적인 배경은 헤롯이 통치할 때입니다. 이 본문은 \\\"유대 왕 헤롯 때에\\\"(눅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구약성경의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부터 살펴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이 시대를 가리켜서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하기도 하고, 말씀이 없었다고 하여서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암흑기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알기 위하여 위하여서는 성경보다는 역사책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의 왕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대제사장들이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정부를 통치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알렉산더라는 강한 지도자 아래에서 그리이스가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역시 강한 나라가 되었고, 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유대라는 작은 나라는 그 중간에 끼여 있었습니다. 유대는 강한 이집트와 그리이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종종 \\\"이집트와 그리이스의 장난감\\\"이라고 불려 지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전쟁이 유대에서 있었고, 이 작은 나라는 종종 분할되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이스의 알렉산더가 전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속 역사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젊어서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적인 시리아도 그리이스에 정복당하였습니다. 시리아의 통치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B.C. 175)였는데, 그도 유대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이스로부터 이방의 오락물들을 들여왔으며, 극장을 지었고, 성전 안에 이방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또한 지성소에 들어왔으며, 성전을 더러운 것으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의 신들을 섬기기를 거절하면 그들을 고문하였고, 죽였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에 유대의 백성들은 이전에 경험한 신앙으로 인하여 가장 극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시기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 싸움과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 서로 죽였습니다. 많은 제사장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편에 있었고, 신실한 대제사장들을 죽였습니다. 그때 아론의 족속중 맛디아라는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한 안티오쿠스에 대항하는 전투에 참가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6,000명의 사람들과 더불어 그는 시리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맛디아는 곧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유다가 그 뒤를 이어서 다스렸습니다. 이 유다의 별명이 \\\"망치같은 사람\\\"(Hammerer, 마카비 전서 2:4)이었는데, 이 말의 아람어가 우리가 잘 아는 마카비(Maccabee, ࠀࠁࠗࠍ)입니다. 그때 이후 유다를 따르던 사람들을 마카비(Maccabees)라고 불렀습니다. 100년 이상 마카비들은 이방의 통치자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동시에 엄격한 여호와 예배를 이행하기 위하여 싸웠습니다. 이 마카비들은 유대의 평화를 얻는데 성공하였고, 여호와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마카비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하나의 국가로 유지시키시고, 제사장들을 그의 성전에서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카비들의 세력은 점점 약해졌고, 에서의 자손에게서 나온 한 사람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에서만큼 사악한 사람이었지만 여호와를 경배하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유대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헤롯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유대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매우 잔인하게 남은 마카비들을 모두 죽였고, 예루살렘을 이교도의 사악함으로 채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의 비호 아래에 유대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를 기술하면서 \\\"유대 왕 헤롯 때에\\\"라고 하면서 역사적 배경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없었던 이 400년 동안의 기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연구하는 집단들도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분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자세히 연구하였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순종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순종만 강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불리는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잘못 가르쳐서 결국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과 많이 논쟁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는 자리에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2.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

바로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누가는 이 두 사람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1:6) 정치적으로는 거룩한 것을 조롱하고 종교는 단지 정치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았던 헤롯 시대,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 당시의 시대에 신실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부모님들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잊으신 것처럼 보여질 때도 여호와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가랴와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이 그들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가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의 부인 엘리사벳은 \\\"나의 하나님께서 맹세이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이 두 사람 다 아론의 지파에서 태어났습니다. 사가랴는 아비야의 가문에서, 그리고 엘리사벳은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24 그룹으로 나뉘었고, 각 그룹은 매년 성전에서 봉사하기 위하여 8일 동안 두 번 성전에 들어갔습니다(대상24:10). 성전에서 팔일 동안 봉사하는 일이 사가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분향하는 동안 백성들도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눅1:8-10). 그런데 갑자기 한 사자가 찾아와 제단과 촛대 사이에 섰습니다. 사가랴는 놀라며 무서워하였습니다(눅1:12). 그 사자는 여호와 앞에서 서서 그의 백성에게 기쁨의 메세지를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이었습니다(눅1:19). 가브리엘이 전한 소식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은 요한이라 하라.\\\'\\\"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볼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들을 얻기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하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이 말씀에서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은 요한이라 하라.\\\"는 말씀은 정말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습니다. 7절에 보면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 사가랴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의 많으니이다.\\\"(눅1:18)라고 말하였습니다. 사가랴는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들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그가 평생 이 일을 위해 기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이 말을 할 때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의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내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아들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적을 요구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는 지났습니다. 인간적인 상태를 볼 때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잠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나 자연적인 상태나 관념에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는 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할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면 알수록 더 빨리 우리의 삶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오랫 동안 아들을 얻기를 위해 기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적절하시다고 판단되시는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부가 아이를 얻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기도한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때가 되어 그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3. 구속사와 기도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교훈은 하나님의 구속사와 우리 성도들의 기도와 관련성에 대한 것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아들을 줄 것인데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요한은 세례 요한입니다. 태어날 아기인 세례 요한에 대하여 14-17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술을 입에 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나실인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바쳐진 자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저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세례 요한의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례요한의 사역을 17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이 말씀은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가 맨 마지막에 예언한 내용입니다. 말라기 4:5-6을 보십시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들은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구약성경에 정통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낳을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태어날 아기인 세례 요한에 대하여서는 세례 요한이 출생하기 전인 약 400년 전에 말라기 선지자뿐만 아니라 약 8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사40:3-5).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기도할 때 약 8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였고, 400년 전에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을 달라고 기도하였을까요? 이 점이 바로 우리의 제일되는 관심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나 말라기 선지자에게 예언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 가운데 있는 일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이며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해당되는 일이고, 하나님의 작정에 속한 일입니다. 이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이 임의대로 바꿀 수 있는 성격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구속사와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행하며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여 인격에 흠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도 자식을 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있는 위대한 선지자요 여자가 낳은 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자인 세례 요한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도 채우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로움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하셨습니다. 이 본문에서도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무조건 기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행하며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여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암흑기라고 불려졌습니다. 이들은 이 시대에 살면서도 시대정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역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와 행실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부지런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있는 구원역사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가 보여주는 특징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시고 그 뜻대로 통치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을 하나님이 직접 하시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통하여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계획을 이루시는데는 악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만 특히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을 사용하십니다. 고비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주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는 교회나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주도하게 하시고 맡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역사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면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주체적으로 일하는 일에 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영적 꿈을 가진 자라면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주체적으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로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 비전을 가집시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할 때 우리의 필요도 채우시고, 또한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 가시는 꿈을 은혜를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를 들으시고 400년간의 암흑기를 걷어 내리시고 새 시대를 여는 세례 요한을 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를 바꾸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를 통하여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할 때 우리의 필요도 채워주시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우리 신자들의 삶의 변두리에 붙은 작은 습관이 아닙니다. 신자의 삶 자체가 기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훈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미국의 풀러톤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California State Univ. at Fullerton)에서 상담학을 가르치고 있는 제럴드 코리(Gerald Corey) 박사는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면서 아주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진다고 하여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달라진 가치관에 따라 오랜 기간 훈련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아무리 건전한 생각과 좋은 이론을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에게 변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 훈련이 얼마나 필요한 대목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훈련해야 합니다. 기도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일을 하고 싶은 감정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얼마 동안 그 일을 계속하면 우리는 그 일을 하고 싶은 감정이 다시 생겨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기를 시작하면 계속하고 싶은 감정이 생기게 되고 기도의 즐거움과 기도의 신비로운 세계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명한 설교자요 찬송가 작시자인 토마스 켈리(Thomas Kelly 1769-1855)는 \\\"기도는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시간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 보십시오. 기도를 훈련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선적으로 우리의 필요도 채워주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도 이루어 가시는 아름다움 결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며, 불의하고 어두운 이 시대를 밝혀나가는 놀라운 변화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