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이 변하여 기쁨으로/벧전1:3-12 2005-07-26 09:36:59 read : 294
6절과 7절 말씀을 먼저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2차 대전 중, 영국과 독일이 한참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영국 비행기 한 대가 독일 비행기와 싸움을 하다가 왼쪽 날개 하나에 포탄을 맞아 떨어졌습니다. 비행기는 급하게 왼쪽으로 쏠리면서 연기를 품으며 산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비행사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운전대를 꽉 붙들고 몸부림을 쳤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막 비행기가 산 절벽에 부딪히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비행기 왼쪽 날개가 달려 있는 것처럼 안전하게 산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산 넘어 평원이 넓게 펼쳐진 곳에 안전하게 조용히 안착했습니다. 비행사는 자신의 손으로 조정할 수도 없었고,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비행기 날개를 맞는 순간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던 비행사는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휴가를 오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내가 한 열흘 전 어느 날 오후에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네 비행기가 검은 연기를 품으면서 산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 했다. ‘주님, 저 비행기를 잡아 주세요. 저 비행기에 저의 아들이 타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 나의 눈에는 눈물이, 나의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면서 내가 비행기를 손에 잡고 운전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용을 썼는지. 그런데 놀랍게 안전하게 평온에 앉은 것을 보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 그 시간에 제가 모는 비행기가 왼쪽 날개를 맞고 산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의 힘이 아닌 어떤 위대한 힘이 비행기를 손에 붙들고 살짝 내려다 놓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나의 잠시의 근심과 걱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영원하고도 참된 기쁨을 맛보기 원한다면 닥쳐온 시련에 너무 많은 근심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잠시의 근심이 왔을 때 나의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 마귀가 손을 내어 밀수도 있고, 주님이 손을 내어 밀수도 있습니다. 마귀의 손에 잡히면 잠시의 기쁨이 곧 영원한 근심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잡히면 잠시의 금심을 영원한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 뒤에 영원한 천국 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아골 골짜기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이곳에서 강도를 만나 많은 매를 맞고 모든 것이 빼앗긴 장소입니다. 이 골짜기의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받은 거룩한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붙여졌습니다. 이 골짜기는 죽음의 골짜기,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요충지인 여리고를 정복하면서 사기가 충천 했습니다.
그 다음 성은 작은 아이 성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 성에서 비참하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큰 성 여리고를 무너뜨린 이스라엘이 작은 아이 성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백성 중에 도둑질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단순한 국가간에 야욕에 의한 분쟁의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거룩한 전쟁입니다. 죄가 관영한 가나안 족속을 벌하는 전쟁입니다. 그들은 정복에 따른 전리품에 손대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지파 갈미의 아들 아간이 이 전쟁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여 전승물 일부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아이 성에서 패배하게 했던 것입니다. 체포되어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모자라서 불을 놓았습니다. 그 위에 돌을 쌓아 놓았습니다. 이 골짜기의 이름이 아골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이 골짜기는 범죄가 있는 골짜기며, 죽음이 있는 골짜기며, 실패가 있는 골자기입니다. 그런데 호세아 2:14-5절에 보면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로 죽음과 한숨과 눈물과 실패가 있는 골짜기를 소망의 문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호세아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마련하신 포도원은 바로 이 아골 골짜기를 지나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골 골짜기만 찾아오면 절망과 좌절에 빠지며 근심에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간의 잘못을 회개하면 빨리 문이 열리고, 통과되면 바로 소망의 빛이 비치고, 승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환란과 시험이 우리 앞에 찾아와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자리에서 십자가 밑에 엎드려 주님을 부르면 이내 소망의 문이 열리게 됨을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나의 모든 어두운 문제는 주님의 손에서 해결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어두움의 원흉인 마귀를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신앙인들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수 있으며, 이것으로 근심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노라면 우리의 신앙과 상관없이 근심과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근심과 고난은 우리의 잘잘못과도 관계없고 우리의 성공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당하지 않아도 될 문제들입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당하고, 한숨 짓는 것입니다. 근심과 고난과 눈물이 예수님을 모신 자들에게 찾아 왔다면, 여러분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의 어두운 무덤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 마귀는 온갖 근심을 주며 괴롭게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근심에 쌓였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세상도 근심에 쌓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근심함으로 계속 근심만이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잠간의 근심 후에 부활 하신 주님으로 인해 영원한 기쁨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농부는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릴 때는 눈물이 있고 땀이 고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거두는 날, 입에서는 웃음이 만면하고 온 몸에는 힘이 솟아오르게 됩니다. 저는 성도들이 잠깐의 시험은 뒤에 찾아올 기쁨의 보따리를 풀기위한 준비인데도 시험 앞에 주저앉고 마는 것을 보고 제 마음 속으로 분통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목회를 여기까지 해 오는 동안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면 벌써 실패한 목회자로 낙인찍혀 이름도 없는 무명의 목회자로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을 통하여 시험을 받았습니까? 물질을 통하여 배신을 당했습니까? 말 못할 억울한 문제를 가슴에 품어 화병이 났습니까? 상상할 수 없는 오해를 받았습니까? 이 시간 여러분에게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그 자리에서 머물려하십니까? 아니면, 문제의 보따리가 풀리고 준비하신 주님의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으시렵니까? 가슴 열고 기쁨으로 웃어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임을 무릎으로 확인 하십시오.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무덤 열고 부활하신 주님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모든 시련을 인내로써 이겨내십시오. 세상에서 어떤 교훈이나 종교로도 줄 수 없는 오직 성도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어떤 시험의 근심 앞에서도 믿음의 성장을 바라며 기쁨으로 하나님과 동행 하시기를 바랍니다. 근심에 대한 반응이 곧 성숙한 신앙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다른 주석을 보면, ‘너희들이 기쁨을 가지려느냐. 그러면 잠깐동안 시험으로 오는 근심은 인내로써 견디어야 하느니라.’고 합니다.
군대 이야기 한번 해 볼까요? 여기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님도 많이 계실텐데, 지금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자식을 군에 안 보내려고 하고 또 편하고 좋은 보직을 받게 하기 위하여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은 돈과 연줄을 썼는지 모릅니다. 제 군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저는 자격이 안 되면서도 키가 장대 같은 헌병이 너무 좋아서 지원해서 군에 들어가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남한산성 318고지를 하루에 한 번씩 완전 무장해서 다녀와야 했는데, 127명중 30등 안에 들면 들어가 잠을 잘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또 올라갔다 와야 했습니다. 30명씩 끊고 나머지는 또 올려 보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올라가는 군인은 아침 식사할 때야 내려옵니다. 물론 아침도 못 먹고 훈련장에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제 키에 170-80 넘는 덩치들하고 함께하는 훈련받았다고 하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무척 걱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긴장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 번도 30등 뒤에 들어와 본 일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악착같았던지, 그 마음으로 목회자가 되고 여기까지 오게 만든 체력과 정신의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의 눈물나는 훈련과 시련이 훗날 모든 일에 자신감을 심어주어 힘 있게 살 수 있는 기초가 되게 할 줄이야 누가 처음부터 알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집을 지을 때에도 반석위에 천천히 단단히 착실히 지으면 바람 불고 비바람 쳐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 다시 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시련에 부딪치고, 근심에 눌리고,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내어 보아야 훗날 기쁨이 찾아왔을 때 절대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에 감사와 감격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 앞에 놓인 고난의 길을 친히 걸으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광에 동참하라고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삶의 현장에서 이 길을 가는 성도를 보면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시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7절 말씀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도의 시련은 영광을 가져다 주기위한 준비 과정이란 말씀입니다.
여러분, 큰 근심이 될 시련이 있다면 분명히 아십시오. 이 시련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끝이 있습니다. 잠시만 지나면, 이 터널을 지나가기만 하면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메달을 받는 수여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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