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할 수 없는 기쁨 벧전1:8-9 1. 사랑 때문에(8상-) 베드로서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죽기 얼마 전에 흩어져 사는 나그네 곧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여러 곳에 흩어져 고난을 당하며 사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아직도 그런 곳이 많이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 살면서 로마 총독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최고의 극형인 십자가 형을 당한 죄수를 숭배하는 자들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또 성도들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고 하는 성만찬을 행했기 때문에 식인종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주일에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일이 없이 모든 일정을 잡아서 일을 하는 당시의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 그 자체가 육신적으로 볼 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이런 것들 외에 더 직접적인 박해가 있었습니다. 당시 성도들이 흩어져서 살던 지역들은 다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는 정복한 여러지역에 있는 다양한 문화와 전통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로 통일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방법을 찾다가 생각해 낸 것이 황제 숭배였습니다.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한 것입니다. (일본이 왕을 천황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신으로 숭배하게 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황제 숭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다신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신교란 신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여럿이 있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한 신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이 신 저 신 등 여러 신들을 섬겨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고 있던 신에다가 황제신 하나를 더 섬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은 섬길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도들은 로마 제국 내에 흩어져 살면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를 신으로 섬기지 않는 것은 불이익 정도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큰 박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그 고난 중에서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기뻐하는 것도 보통으로 기뻐하며 산 것이 아니라 \'말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시의 성도들이 그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도 그렇게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8상/\'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거의 다가 예수님을 직접은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거의 고난을 당해보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너무 많은 대접만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들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고 하는 당시 성도들의 심정을 제가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즈음 이것 하고는 다르기는 하지만 작은 고통 중에서도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기도원에 갔었습니다. 기도원에 간다고 하니 집사람이 금식을 할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른 것도 잘 못참지만 특별히 배가 고픈 것은 다른 사람들 보다 유별나게 못 참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싫어서 그냥 \'밥 잘 먹고 말 잘 들어야지\'하는 마음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시켜 주셨습니다. 월요일 저녁은 기도원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전 사53장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53:2에 보면 예수님께 대해서 \'그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도 풍채도 없는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5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셨다고 했습니다. 막말로 말하면 생명은 겨우 겨우 유지하지만 물을 먹지 못해 말라 비틀어진 줄기와 같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셨다는 말씀입니다. (요8:57 - 오십도 못되었든데 아브라함을 보았다 하느냐) 고운 모양도 없으셨고, 풍채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 그림 상상화다. 그렇게 건장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나 모양을 내고 삽니까? 거울을 들여다보니 제 얼굴은 제법 윤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고통의 희생을 묵상하니 저절로 금식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다음날 아침부터 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덕분에 이렇게 대접 받으며 살고, 이렇게 모양내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도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짧은 금식이었습니다만 전에 처럼 배고픈 것 때문에 고통스럽지도 않았고, 힘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4.5kg) 기도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일로 인해서 저는 고난 중에 살면서도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가 있었습니다.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는 은혜여 보배로운 죄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폴리캅(서머나 교회의 감독, 86세) 예수님의 사랑과 보혈의 공로를 생각하시면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고난 중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2. 믿음 때문에 (8하-) 당시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믿었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늘 기뻐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은 知覺도 아니요(알아 깨닫는 것), 시각도 아니요, 이성도 아니라 하나님을 말씀으로 붙잡는 것이다\'(Faith is not a sense, nor sight, nor reason, but taking God at his Word - A.B. Evans)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끔 링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링컨이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제가 링컨을 만나 보았습니까? 저는 그 분을 만나 본 일이 없지만 역사를 통해서 다시 말해 그에 대한 글들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책들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을 미화시키기 위해서 과장을 하기도하고 축소를 시키기도 합니다. 좀 좋지 못한 일에 대한 것은 빼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점 일획도 거짓말이 없는 책입니다. 어떤 것은 좀 빼버렸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실수와 허물을 그대로 다 기록했습니다. 롯 - 딸들과 동침을 했습니다. 유다 - 며느리와 동침을 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다윗 - 남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인 아주 충성스러운 자기 부하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군이라고 칭송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빼지 않고 그대로 다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믿을 수 있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기도원에 도착해서 방을 정하고 세수를 하고 들어가다가 바닥에 놓았던 안경을 밟아서 안경이 찌그러졌습니다. 그래서 안경을 고치기 위해 운전을 해서 산 밑으로 내려 와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기 위해 기도원에 왔는데 왜 이렇게 쓸데 없는 사건이 생겨서 이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하시나?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을 통해서도 곧 귀한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안경을 쓰던 사람이 안경을 안쓰면 물체가 선명하게 보이질 못합니다. 더군더나 해가 져서 어두워 가기 시작하던 때라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여 아주 힘이 들게 내려 왔었습니다. 그러나 안경을 고쳐 쓰고 올라갈 때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불편한 것이 없이 잘 올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저처럼 시력이 좀 약한 사람이 시골에 갔는데 안경을 벗은 채로 밤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하늘이 뿌옇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 안경을 가져와 쓰고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하늘의 별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감탄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무엇때문입니까? 그것은 시력이 약한 것처럼 믿음이 있기는 있으되 약하기 때문입니다. 뿌연 눈을 가지고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약한 믿음을 가지고는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기쁨을 누리며 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모든 고난도 이기고 염려도 이긴다고 말은 많이 들었고, 머리로는 믿지만 그것이 뜬 구름을 잡는 듯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그 능력이 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쁨을 누리하려면 믿음이 강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는 벧전 2:2에서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중요한 한 가지는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百禱千經이라고 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꼭 우선 순위를 둔다면 백도천경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빠진 말씀은 힘이 되지 못합니다. 자동차와 기름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말씀을 듣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많이 먹지만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소화를 시키지 못하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피가 되고 힘이 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무리 능력있는 위대한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씀을 꾸준한 기도로 소화하지를 않으면 말씀을 아무리 먹어도 그것이 나에게 능력이 되지를 못합니다. 아니 일시적으로는 마음의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그 감동이 나에게서 떠나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 미명에 기도 하셨고(막1:16),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도 따로 산으로 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막6:46). 그리고 그 피곤하고 바쁘신 중에도 늘 한적한 곳을 찾아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눅5:16). 그 예수님게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막9:29). 그러므 로 우리가 믿음의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사단의 세력들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는 성경공부하는 것까지도 눈을 감고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강건해지려면 말씀을 들어야 할 뿐 아니라 기도하셔야 합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당시의 성도들도 예수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 때문에 고난 중에도 기뻐했습니다. 믿음이 강해지면 어떤 고난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고난 중에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3. 구원 때문에 (9-) 찬송 289, 29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고난 중에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6:26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무엇을 주고 목숨을 바꿀 수 있습니까? 목숨과 바꿀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환경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전15:19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늘나라에 갈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히11:15-16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영원히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는데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