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기쁨

바울의 기쁨/빌1:18

바울의 기쁨
빌1:18





사람의 감정은 상대적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자에게는 역시 호의적 반응을 나타내고, 반면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자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대개 이러한 경향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입니다. 바울 역시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구금에 대한 반응이 사랑과 시기심의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리게 나타나는데 과연 바울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까요?


Ⅰ. 오직 예수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18절 상반절). 바울의 입장은 선한 동기를 품고 있는 자들이냐 아니면 불순한 동기를 품은 자들이냐를 따라 반응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무엇을 전하였는가를 따라 나타냅니다. 즉 그들의 인간성을 두고 반응하지 않고 그들이 실제적으로 무엇을 행하였는가 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그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은 그들이 어떠한 동기에서 행동하였는가를 따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느냐 아니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였는가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해를 따라 호불호(好不好)를 선택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염두에 둘 뿐이라는 자세입니다.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에서 외모는 헬라어로 \' \'(프로파시스)인데 \'겉치레\'(pretence), \'거짓\'(false)을 의미합니다. 짐짓 거짓된 자세로 나왔느냐 아니면 진실과 사랑의 순수한 자세로 나왔느냐에 대하여서는 자신은 조금도 개의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바울이 관심 가지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입니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이 그의 관심을 끌뿐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는가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큰 명분을 따라 처신하였습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라는 큰 테두리 안에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녹입니다. 혹 바울도 역시 인간인지라 자신을 시기하는 자들이 미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같은 미움의 감정도 복음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입니다. 바울의 성숙한 인격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는 원한 감정도 차별도 이해득실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우리들 자신들의 그 모든 것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신앙은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Ⅱ. 기뻐하는 바울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하반절). 오히려 바울은 크게 기뻐합니다. 어찌됐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예수요 복음이기 때문에 선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든 아니면 불순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였든지 간에 복음이 널리 확장되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로 인해 뛸 뜻이 기뻐합니다. 지금 복음 전한 사람들의 동기를 가지고 그들의 자세를 가지고 기분이 나쁘니 좋으니 할 마음은 추호도 없고 단지 그들이 열심히 뜀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다는 현상을 보고 감사하고 기뻐할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누군가 자기를 애매히 미워한다고 하여 속상해하고 울지 않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울고 웃습니다. 그는 자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들로 인해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복음을 힘써 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매우 기뻐합니다.

바울은 철저히 그리스도 복음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감옥에 갇혀 있어도 바울의 이러한 자세는 조금도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대신하여 수많은 교우들이 선한 뜻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였고 또한 일부 반대파들이 극한 시기심으로 복음을 전하였다는 소식에도 진정으로 기뻐합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자신의 지지파이건 반대파이건 간에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삶의 의미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