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기쁨

조연(助演)의 기쁨
빌2:17-18





바울은 앞 절(빌2:15-16)에서 빌립보 교우들이 잘 되야 자기 자신이 덕 좀 입을 것이라는 어감이 물씬 풍기는 듯한 말을 했는데 본문에 이르러서는 아예 그것 마저 털어 냅니다. 빌립보 교우들이 겸손히 행하면 그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 올 영광스러운 몫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설 때에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도록 빌립보 교우들이 겸손으로 잘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바울이 지금은 너무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Ⅰ. 관제(灌祭)로 드릴지라도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17절 상반절). \'관제\'는 기름 등을 붓는 제사(a drinking offering)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관제는 분명히 빌립보 교우들이 드리는 제물과 봉사 위에 부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즉 빌립보 교우들의 믿음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주연(主演)은 빌립보 교우들이고 그 주연에 보조 역할을 하는 조연(助演)은 바울입니다. 빌립보 교우들이 오직 겸손으로 주 하나님께 자신들의 믿음의 예물을 드릴 때 바울은 그들이 드리는 예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습니다. 주연의 얼굴을 빛나게 한 뒤 무대 뒤로 사라질 뿐입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연기를 자신의 기억의 틀 속에 붙들어 놓지 굳이 조연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우들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고 오히려 그들의 진정한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희생한 만큼 대가가 따르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는 쪽으로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음을 선언합니다.


Ⅱ. 조연을 기뻐함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17절 하반절).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의 역할에 대하여 바울은 진정 기뻐합니다. 자신이 흘린 땀과 눈물에 대한 보상이 없더라도 그저 자기 자신의 희생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자신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 자체로 만족할 수 있다는 바울입니다. 남 잘 되는 일에 자신이 실컷 부림을 받아도 조금도 마음에 섭섭해하지 않습니다. 남 잘 되는 일에 내가 희생을 했으면 그 만한 보상을 받아야 되지 않을까요? 또한 대가를 요구해도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당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이 자기로 인해 잘 되기를 진정 바랬습니다. 비록 바울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몫이 하나도 생기지 않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도리어 크게 소리를 내어 웃음을 날리겠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겸손입니다. 자기를 철저히 비우는 게 겸손입니다. 바울은 진정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였고 또한 주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겸손한 자가 남의 행복을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도모하는 일에 자기 자신이 희생적으로 쓰임 받아도 즐거워합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는 마음을 낮추지 않고는 대가 없는 자신의 희생을 바라보며 기뻐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자가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의 연기를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감당합니다. 바울은 별 볼일 없는 조연에도 만족합니다.

사람들은 주연의 들러리 격인 조연을 원치 않습니다. 대가 없는 희생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돌아 올 이익을 꼼꼼히 따집니다.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견디지 못합니다.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한 일에는 애초부터 끼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이 차원을 넘어갑니다. 조연의 기쁨을 누릴 줄 압니다. 남을 높이는 일에 자심을 희생하는 기쁨을 즐길 줄 압니다. 빌립보 교우들의 신앙적 유익만을 조건 없이 기뻐하는 바울의 모습이 퍽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