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자녀를위해울라 [어린이주일]

  문 : 누가복음 23 : 26 - 31
제  목 : 너희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
찬  양 : 299, 300, 411, 453.

※ 본문 중에 인용된 성구는 개역개정판을 사용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이 시간 예배드리면서 말씀들을 때에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여러분의 심령에 역사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도 어린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올라가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끌려가시는 예수님의 처절한 모습을 보고 많은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면서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어찌 이 여인들뿐이었겠습歐? 벳새다 들녘에선 수천수만 명이 예수님의 기적으로 떡을 배불리 먹고는 이런 분이 우리나라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던 무리들도 한 사람도 없었고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외치던 사람도 한 사람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는 데까지라도 따라가리라’ 고 다짐하던 제자들도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시면서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예루살렘에 가면 VIA DOLOROSA 라고도 불리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예루살렘에서 골고다까지 가는 길인데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 판결을 받은 곳에서부터 골고다까지 14지점이 있는데 그중에 8지점이 바로 주님께서 여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던 예수님이 아무런 죄도 없고 아무런 허물이나 잘못이 없는데도 십자가를 지시고 사형장인 골고다로 끌려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울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는 십자가의 고초를 목도하고 통곡하는 여인들에게 이와 같이 당부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앞으로 되어질 미래의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은 부질없는 감상적인 눈물을 흘리지 말고 자신의 앞날과 또 사랑스런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 눈물 흘려 하나님께 간구하여 기도하며 그 때를 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장차 예루살렘성이 멸망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난을 당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눅19:41-44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부활 승천하신 후 약 40여년 후에 일어날 예루살렘의 대 환난에 대하여 이와 같이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올라가시면서 통곡하며 뒤따라오는 여인들에게 장차 있을 이 대 환난을 생각하시면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십자가를 지고 형장을 끌려가는 예수님의 죽음만을 위하여 슬퍼하며 통곡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예루살렘과 유대 민족 전체의 무서운 파멸을 내다보며 애통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후 예수님의 말씀대로 AD70년 7월에 로마의 티투스(Titus)장군이 지휘하는 군대가 예루살렘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 환난이 닥쳐왔습니다. 그들은 군사를 시켜 예루살렘 성전을 헐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허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뭉쳐 있기에 그 구심점을 없애려는 것이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성전에 금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금을 가져가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금값만 우리 돈으로 900조 원어치가 들어갔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성전을 삿삿이 헐고 벽돌을 빻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예언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고 완전히 무너져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로마의 군병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어린아이들을 바위에 메어쳐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하여 세계를 유랑하는 디아스포라가 되었고 세계에서는 유대인이라면 공연히 주는 것 없이 미워했고 결국 히틀러는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에서 학살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가 왜 이와 같이 멸망을 당해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명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가야바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넘겨져서 재판을 받는데 광란의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해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때 빌라도가 물을 떠다가 보는 앞에서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일에 무관하니 이 죄를 너희가 당하라’ 고 하자 유대인들이 소리 지르기를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당하리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결국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구세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 메시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는 유대인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어 그 죗값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고 형장을 끌려가시면서 앞으로 40여년 후에 있을 이 일을 불 보듯 보시기 때문에 여인들에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마저도 잊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를 올라가시면서 하신 이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뼛속 깊이 깨달았다면 4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이 멸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망각해 버리지 말고 정말 정신 차려 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지금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 가슴 치며 울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애통하는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애2:11-12)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그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기절하여 그의 어머니들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머니들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냐 하도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애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장차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살육을 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속출할 때에 어린 자식이 어미의 품에서 곡식과 포도주와 같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다가 숨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만은 먹이고 입히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의 자녀가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불로 달려간다면 어찌하시렵니까? 그 자녀들이 영생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그 영혼이 떠나간다면 어찌하시렵니까?
(겔3:17-18)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게 되었다고 기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지금 구원받지 못하여 지옥불로 달려가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죗값으로 멸망당하겠지만 그 피 값을 여러분에게서 찾으리라고 우리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같이 찬송 258장을 부르겠습니다.
1. 물 건너 생명 줄 던지어라 누가 저 형제를 구원하랴
  우리의 가까운 형제이니 이 생명 줄 누구가 던지려나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물 속에 빠져간다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2. 너 빨리 생명 줄 던지어라  형제여 너 어찌 지체하나
  보아라 저 형제 빠져간다 이 구조선 타고서 속히 가라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물 속에 빠져간다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녀들을 올바른 인격자로 키우라는 말씀입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격은 지식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학원에다가 모든 인생을 다 빼앗깁니다. 컴퓨터가 아이들의 정사를 모두 빼앗아 갑니다. 인격이 제대로 형성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올바른 인격자로 키울 수가 있습니까?
(신6:5-9)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 배우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의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듣고 배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장성한 후에 백성들을 위하여 의분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급기야는 하나님께 부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영도자가 되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라들과는 달라서 일찍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자식을 사랑하되 자기 문제는 자신이 책임 질줄 아는 자립적 인격자로 키웁니다.
자립정신은 전혀 없이 언제나 의지하는 마음만 잔뜩 길러놓은 우리나라의 교육 형태가 문제란 말입니다. 단적인 예로써 한국의 어린이들은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그 부모나 형들이 곧 뛰어가서 일으켜 줍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와 정 반대입니다. 그들은 아이가 넘어지면 저 혼자서 일어나도록 내버려둡니다. 제가 잘못해서 넘어졌으면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길러주는 것이 그들의 교육입니다.
이것이 유교나 불교의 오랜 영향 아래서 살아온 우리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의 기본 원리는「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적 인격」(Personal respansibility before God!)입니다.

지난 98년도에 우리나라에 휘몰아친 IMF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IMF로 인하여 그만 부도가 나고 회사도 집도 빼앗기고 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할 때 그의 형제들과 누나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형제들이나 누나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형제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형제들이 못사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모두들 잘 살고 있었습니다. 돈 잘 벌고 잘 살 때는 뻔질나게 드나들던 형제들도 친구들도 모두 외면해 버렸습니다. 심지어는 교인들까지도 등을 돌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인간 세상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자녀들한테 이와 같은 일이 닥친다면 어찌하시렵니까?
형을 원망하고, 누나를 원망하고, 동생을 원망하고, 의리 없다고 친구를 원망하고, 사랑이 없다고 교인들과 교회를 원망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에 한국 사람과 서양 사람들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한국 사람은 도와주지 않는 형제들과 모든 사람을 원망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기 일이니까요. 왜 자기가 잘못해 놓고 형제들을 원망합니까?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 질 수 있는 인격자로 키워야 합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식들이 귀하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이 귀엽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천만금을 준다해도 내 자식과 내 손자들과 바꾸자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스런 내 자식들과 내 손자들이 어찌 지옥 가는 것을 가만 두고 있습니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 한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7:9-10)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또 아직까지 구원받지 못한 부모님들이나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 흘려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제라도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자녀들을 위하여 주야로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부르짖어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