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벧전1:3-7 2005-01-08 11:32:12 read : 188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비록 원치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죽음을 전제하고 살아가는 인간이 마음에 원하는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죽더라도 다시 살아나고 싶어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할까요?
예화
신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미국의 심리학자 베드퍼드가 그 시조로서, 1967년 73세의 나이로 미래에 암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영하 196℃의 질소탱크 속에 들어가기를 자청하였다. 미국에서는 애리조나주(州)의 냉동인간 회사인 알코어 등 네 곳에서 이 같은 목적으로 100여 구의 냉동인간을 보관하고 있으며, 비용이 약 12만 달러 이상으로 비싸지만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자청하고 있다. 냉동보존 기간에 뇌세포에 생긴 손상을 수리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저온생물학자들은 냉동인간의 소생에 회의적이지만, 일부에서는 나노기술로 뇌세포의 손상이 수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2045년경에 인체 냉동 보존술로 소생한 최초의 인간이 출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죽어도 다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이 미래의 과학발전에 거는 기대이긴 하지만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돈 많은 부자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지, 누구든지 가능한 일은 아닌 것입니다.
인간의 과학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무에서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만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그와 같은 소원을 아시고 인간이 과학적으로 시도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더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1. 구약 성경의 부활 예언
인간이 바라는 영생에 대한 소망은 오늘 우리들만의 소원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의 소원이기에 하나님은 구약성경 여러 곳에도 부활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우리와 동일한 환경에서 가장 극심한 고난을 경험한 사람을 손꼽는 다면 구약의 욥일 것입니다.
욥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칭찬하실 정도로 믿음이 좋았으며, 동방에서 제일가는 갑부로 십남매 자녀를 두고 건강을 누리며 다복하게 살아가던 사람이었으나 사단의 시기로 말미암아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모두 잃어 버렸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많이 부르짖어 도우심을 구했으나 고통이 쉽게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 보셨겠나이다 (욥 14:12-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낙심했다가도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속에 부활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욥 19:25-27).
비단 욥기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부활에 대한 예언이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문을 모은 시편 여러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16:9,10).
2)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셀라)(시 49:15).
이와 같은 부활에 대한 예언은 구약에서 욥기와 시편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와 다니엘과 호세아 선지를 통해서도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1)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사26:19).
2)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12:2,3).
3)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13:14).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면 부활에 대한 예언도 반드시 성취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가득찬 인생들은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진 부활의 약속의 말씀을 읽고서도 깨닫지 못하였고, 들으면서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독생자를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예수님의 부활 예언과 성취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십 삼년을 세상에 계시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지만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어질 수 있습니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물론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그러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소수이고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영적으로 무지몽매하고 육체적으로 병들고 귀신에 사로잡혀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그 일을 위해서만 세상에 오셨다면 세상에 백년 천년을 계셔도 끝이 나질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일들을 중단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삼년 동안 그 같은 일들을 마치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주 언급하신 말씀 중에 하나가 바로 부활에 대한 구약 성경의 약속을 환기 시키신 특별한 일들과 말씀을 하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미 죽은 야이로의 딸과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를 살리신 일입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러한 일을 한 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1)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눅 8:53-55)
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눅7:12-15).
3)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11:39,40,44).
예수께서 그 같은 일들을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1)당신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구세주이심과, 2)당신 자신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과, 3)당신을 믿는 자도 부활하게 될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예수께서 그와 같은 약속을 실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처절한 죽음을 당하심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거나 제자들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거짓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임을 여러 가지로 입증하셨습니다.
1) 장사되었던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빈 무덤을 보여 주심으로 부활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요 20:6-8)
2) 거짓말 할 수 없는 천사를 보내어 빈 무덤이 시체를 훔쳐가거나 남의 무덤을 착각한 것이 아니라 부활이 사실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요 20: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3)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셨습니다.
부활 후에 나타나신 회수는 10회로 간주되며 그 중에 5회는 부활 주일에 나타나신 것이다. 이른 아침에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심, 무덤에서 여인들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두 번 나타나심, 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심, 저녁에 다락방에서 열 제자들과 만나심, 그 다음 주일에 예수님은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과 만나시고, 야고보에게도 한 번 나타나셨으며(고전15:4), 또한 갈릴리 바닷가에서 몇몇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요21:1-23), 갈릴리의 어떤 산에서 제자들과 오백 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마28:16-20).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실 때 나타나셨다(눅24:50-52; 행1:3-8).
흔히 어떤 사건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을지라도 두세 명의 증인만 있으면 사실로 통하는 세상에서 이처럼 부활의 목격자들이 많다는 것은 부활이 황당무계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3. 불신앙에서 신앙으로의 변화
오늘 성경 말씀은 베드로 사도의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이 직접 택하신 열 두 제자가운데서 수제자이며, 예수님을 위해 죽는 데까지도 따라가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제자였습니다.
(마 26: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 세 번 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한 부끄러운 전력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만일 예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신 부활을 확신했었다면 고난이 두려워서 그처럼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 속에 얼마나 불신앙의 뿌리가 깊이 박혀든지 그의 눈으로 직접 부활하신 빈 무덤을 직접 확인하고, 여러 차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서도 반신반의 하는 모습은 그의 심령 속에 얼마나 부활에 대한 불신이 깊이 뿌리 박혀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눅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러한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직접 찾아오셔서 또 다시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함께 식사까지 하심으로 부활이 사실을 임을 확신케 하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셨던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서도 부활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베드로가 어뗳게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하기까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 중에 사도로 변화될 수 있었을까요?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오순절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쓰는 중에 주님이 증거하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는 진리의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부터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음을 베드로의 설교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29-32)
그와 같은 베드로가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해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기위해 오늘 성경 말씀처럼 부활이 사실이며 어떤 축복을 믿는 자들에게 가져다주는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단지 죽은 후에만 체험되어지는 복이 아니라 내세와 현세에 아울러 축복임을 베드로 사도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부활로 말미암은 영적축복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연 그 부활이 오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전시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오늘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베드로 사도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1) 거듭나게 하심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활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됨으로 이미 허물과 죄로 죽어버린 우리가 예수님처럼 다시 살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기업을 잇게 하심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세상의 기업은 모두 다 유한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예외 없이 다 썩어지고, 더럽혀지고, 쇠하여 지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신 하늘나라는 모든 것이 영원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그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잇게 하시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 때문인 것입니다.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 부활로 말미암은 현실적 축복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썩지 않는 영원한 기업은 죽음 이후에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날이 올 때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과거를 가진 베드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시험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은 환난을 뜻하는 것으로 육체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원치 않는 육체적인 핍박과 같은 여러 가지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할지라도 고난 받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그 믿음 때문에 견디기 힘든 여러 가지 시험을 받게 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금욕주의자나 고행주의자처럼 고난이 좋아서 아닙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크게 기뻐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 하나님이 그 고난 중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 1:5,6)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갖히고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불쌍하게 보일지 모르나 언젠가는 한번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인생이라면 죽은 이후에 삶은 더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비록 부활을 믿기 때문에 불과 같은 시련을 당할지라도 베드로처럼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은 사람은 마치 변치 않는 금과 같이 불 가운데서 더욱 순수해지는 영원한 하늘의 상급이 보장되어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 사도는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원히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하늘에 간직하고 계시니 어찌 하나님을 찬송하지 아니할 것인가?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없으면 죽는 줄 아는 의식주 가운데 과연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에게 보장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첫째로 썩지 않는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필품인 의식주는 썩기 쉬운 것은 먹는 음식이요, 더러워지기 쉬운 것은 입는 의복이요, 닳아 쇠하기 쉬운 것은 생활 도구들입니다.
하지만 하늘나라 기업은 썩지 아니합니다. 부패와 속성이 없으신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나라이므로 그 나라는 부패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유업은 영원할 것입니다.
둘째로 더러워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땅은 사람의 죄악으로 손상되고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깨끗합니다. 그곳은 사람의 범죄한 손으로 세운 나라가 아니므로 정결합니다. 그곳에 있는 것, 그 나라에 속한 자 모두 정결합니다.
셋째는 쇠하지 아니하는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은 세월이 지나면 쇠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가 영원히 쇠하지 않는 것은 세상 나라처럼 인간 유한성의 기초 위에 세운 나라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세운 나라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쇠약해 가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는 그 나라 백성입니다.
우리가 세상 나라에서 부활의 주님을 믿기 때문에 그로 인해 베드로처럼 여러 거지 환난을 받는 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도리어 크게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마틴 루터는 새봄을 맞이하여 신록이 움돋는 식물들을 바라보면 기독교는 결코 성경책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봄 가지의 잎 새마다 쓰여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설령 겨울과 같이 모든 것을 다 떨어뜨리는 겨울과 같은 죽음이 온다고 할지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더 좋은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반드시 약속되어졌으며, 예수님의 부활은 그 첫 열매로 부활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삶은
1) 현세에서의 아무 대가없는 선행도 기꺼이 하여야 하고(눅 14:14)
2) 신령하게 변화될 몸을 더럽히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고전 6:15;15:44)
3)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 더욱 열심을 내야하며(고전 15:14,15)
4)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하고(고전 15:50)
5) 믿음으로 말미암은 모든 고난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전 15:30-32)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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