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받아야 합니다/히12:12-13
어떤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동네길을 지나오는데 뒤에서 웬 남자가 \"같이 가 처녀~\"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못들은 척 그냥 집으로 왔지만, 내심 자신이 아직도 처녀같이 보인다는 기쁨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여지없이 같은 곳을 지나가는데 남자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습니다. \"같이 가 처녀~\" 할머니는 그날 밤 역시 설레임에 잠을 설쳤습니다. 다음날 \"이번엔 한번 받아줄까\"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니 그소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갈치가 천원~\"
이정도라면 심각한 상태입니다. 빨리 고침받아야할 중증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듣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착각하고 산다면 반드시 고침받아야합니다.
미국에는 나이가 5천년이나 되는 나무가 있는데, 수령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나무가 사막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와 토양이 악조건인 곳에서 어찌 그리 장수할 수 있는 가를 조사한 결과,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었고, 넓게 퍼져 있었으며, 12Km까지 뻗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인생이 어려울 때 내 삶의 뿌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라고 하시고, 그와 같은 인생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3)\"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은 이 땅의 많은 고난으로 인하여 소진되어 있는 상태에 있는 인생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는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고침받아야 할 부분은 고침받아야 합니다. 이 아침에도 무엇이 우리신앙의 문제점인지 밝히 알아내어서 주님께 고침받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피곤한 손을 주님께 내밀어 고침받아야 합니다.
손의 상태는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피곤하다\'란 헬라어 \'파레이메나스\'는 \'기력이 다하여 쇠잔하게 된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피곤한 손이란 힘이 빠져 아무일도 할 수 없는 상태, 무용지물이 되어 사용가치가 없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낙담으로 인하여 두 손이 아래로 완전히 처진 상태를 말합니다. 성서에 나타난 손가운데 우리는 모세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하여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해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들어 줌으로 이스라엘이 계속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내 삶이 피곤할 때 주님께 손을 내밀어 고침받아야 합니다. 무능하고 무력한 손이 능력의 손으로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젊은 시절 극한 시련속에서 무서운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편지를 보면 \"나는 지금 지극히 불행한 존재이다. 만일 내가 느끼는 것을 온 인류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면 , 이땅위에는 즐거운 얼굴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이대로 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죽든지 아니면 나아져야 한다\" 링컨은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복될 수 있었고, 오늘 날까지 모든 인류의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링컨과 같을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려운 가장들이 자기 가족들을 다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일들이 생깁니까? 피곤한 자신의 손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손을 들고 여호와께로 나오는 길을 몰랐기에 어리석은 길을 택하고 그 길로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인생의 영, 혼, 몸의 종합병원입니다.
어떤 사람이 열이나고 두통이 나며 목이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그를 진찰한 뒤 엉덩이에 주사를 놓았습니다. 엉덩이를 문지르며 그사람은 \"어리석은 의사같으니라고. 아픈 자리에 투약을 해야지 멀쩡한 엉덩이에 주사를 놓다니..\" 한다면 말이 됩니까?
머리가, 목이, 배가 아프지만 주사는 엉덩이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소화불량이 생겨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먹었는데도 낫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간에 이상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소화가 안된 것은 위가 아니라 간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생각에는 \'위\'였지만 전문의 진단은 \'간\'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물질에, 직장에, 사람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해도 전문가이신 하나님께서 진단하심은 전혀 다르십니다. 때문에 나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약은 \'영적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삶이 피곤해지면 믿음으로 손을 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래야만 모든 것이 회복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연약한 무릎을 믿음을 통해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연약한\'이란 헬라어 \'파랄레뤼메나\'는 \'마비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며, 세우고의 \'아노르도사테\'는 \'강하게하다\' \'담대해지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라는 말씀은 마비된 무릎은 삶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므로 일어나 담대해지라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항복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삶이 힘들다고 그 삶에 무릎을 꿇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어려워도 믿음으로 일어나야만 새로운 미래를 보게 됩니다.
최근 청소년들의 신체는 예전보다 훨씬더 커졌습니다. 그러나 지구력이나 인내력이 약해서 작은 어려움도 견디지 못한답니다. 초대교인들은 박해속에서도 강했습니다. 옥에 가두워도, 죽여도, 두려워하거나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도하고 찬양하므로 박해자들이 질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의 조건과 환경이 좋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온상의 꽃처럼 나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카타콤속은 거미줄 같은 미로입니다. 그럼에도 성지순례자들이 출구를 바로 찾아 나올 수 있는 것은 안내자들이 전등을 들고 미로의 곳곳에 서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지금도 우리에게 임마누엘하시는 까닭은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고 하시며 인생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생존수단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위한 삶의 움직임입니다.
기독교인은 억장이 무너지는 실패와 좌절속에 빠졌을 지라도 그상황에 머물지 아니하고 진리안에서다시 일어서는 자들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
오늘 이 아침도 주를 향한 믿음으로 연약한 무릎을 고침받아 일어서서기 바랍니다.
셋째로, 저는 다리는 주를 바라봄으로 고침받아야 합니다
인생은 어려움으로 인해 생활의 발걸음이 흔들리고 생의 리듬이 깨어져 절뚝거리는 삶이 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저는 다리로 하여금 고침을 받게 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32장에 보면 바벨론군대가 이스라엘을 포위하여 예레미야선지자가 갇혀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나돗에 있는 사촌 하나멜의 밭을 사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순종하여 밭을 삽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불가능하고 어려운 상황에 앞날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로 하여금 현재의 절망속에서도 앞을 내다보는 소망과 비젼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의 비젼은 자포자기의 환경속에서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자기가 진 십자가에 대해 불평을 했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십자가가 많은 곳으로 데리고 가 \"네 마음에 드는 것을 마음대로 골라 보아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보니 어떤 십자가는 아름다운데 너무나 무거웠고 어떤 십자가는 가볍기는 하나 거칠어 어깨에 상처가 날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것 저것을 한참동안 고르던 끝에 구석에서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것같은 십자가를 하나 골랐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세히 들여다 보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그가 처음에 졌다가 벗어 놓은 것이었더랍니다.
우리들이 지금 벗고 싶어하는 십자가는 결국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때문에 작은 고통을 고르려하지 말고 큰 믿음의 능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십시오. 그래야만 온전히 고쳐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연못위의 오리를 보십시오. 오리는 온갖 오물과 물로 덮어씌었어도 한번 털면 모두가 떨어져 나갑니다. 절망이 우리에게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내 몸에 스며들기전에 전력을 다해 믿음으로 털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의식하는 대로 삶이 구체적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내가 가진 시련의 손, 무릎, 다리를 속히 고침받아 성장의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피곤한 손이 더 이상 무능해지지 않도록 오늘 주님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무릎이 더 이상 마비되지 않도록 믿음을 통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리로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고침받아야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