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과거, 치유받아야 합니다/벧전1:13-19
오늘 이 시대는 많은 사회 병리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요즘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사건의 배후에도 이런 마음의 병과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현대인들은 우울증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벼운 의기소침 증세로부터 임상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무거운 우울증 증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중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성인 6명당 1명에 이를 정도로 높다고 합니다. 남을 웃기는 희극배우도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20-40대에 주로 발생하는 마음의 병인데 요즈음은 청소년들과 노인들에게서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두 배 이상 우울증으로 고생한다고 합니다.
우울증은 괜히 우울하고 슬퍼지며,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해지며,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잘 웃지도 않게 됩니다. 잠을 자다가 자주 깨게 되고, 입맛이 떨어져 식사량도 줄어듭니다. 평소보다 말수도 적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금방 했던 일도 쉽게 잊어버리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 . .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고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며칠 사이 우리는 한 연쇄 살인사건의 뉴스로 몸서리를 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희대의 살인마라고 하는 유영철,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그는 어릴 때부터 가정이 불우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들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는 3남1녀 중 3남으로 태어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갈 뿐 아니라 학업을 중단하기까지 했습니다. 14차례의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 혐의로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결혼을 했지만 자기 부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 소송을 당하는 일로 \'여성혐오증\' 등 대인기피 증상 현상이 있었습니다. 전과자 이혼남 이라는 사실 때문에 청혼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점점 부자들, 여자들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둘째형도 94년 32세 때 같은 병으로 사망한 후 자주 간질증세를 일으키자 자기도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세상을 비관하며 막연한 복수심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유영철의 마음에는 과거의 일들로 인한 미움 증오, 그런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살인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1. 과거를 죄의 기억들을 청산하라.
사람들은 과거의 인생을 회상할 때 우리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보다는 차마 생각하기 조차 싫은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실패로 얼룩진 그런 흔적들로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가 그런 실패를 딛고 서서 위대한 생을 창조해갔던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일수록 그 실패의 상처가운데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증오, 수심, 원망 . .
성경은 우리의 마음에 가득찬 얼룩들을 빨리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용서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증오의 사건은 없습니까? 그것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들은 없습니까?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질병이 있는 분 없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과거의 잊지 못할 미움과 증오 때문일지 모릅니다.
마음의 분노는 마음의 병이 됩니다.
어떤 여성도의 이야기입니다. 이 성도님은 남편이 술만 마시면 아무 정신이 없어서 아무데서나 잠을 자고 집을 나가면 한달 있다가 들어오고 잠깐 들어왔다가는 또 나간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돈 벌어서 집에 한번도 준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술버릇 좀 고쳐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데려가시든지 아니면 이혼시켜 주시든지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성도님은 ‘자식들 결혼만 하면 이혼하리라’ 생각하고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하는 중에 떠오르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터져서 하늘로부터 폭탄이 쏟아지는데 아버지가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환상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어떻게 세상에 아버지가 되어가지고 자식을 놓아두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칠 수 있을까` 하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아버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하면서 한을 품던 그 환상이 보여지더랍니다. 자기는 그것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은연중에 그것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나타나서 “비록 너의 아버지는 너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내가 너를 지키지 않았느냐 그래서 네가 산 것 아니냐 그 아버지를 용서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내가 그때 폭탄 속에서 살아난 것은 주님이 나를 보호하셨기 때문이구나 내가 예수 믿기 전이었는데도. . .’ 이 성도님은 그때 이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면서 친정에 가서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너무 아버지에게 잘못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았습니다.”그러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시원한지 몰랐습니다.
이 성도님에게는 하나의 분노가 남아 있었는데 남편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이 자매가 시집을 올 때 혼수감을 많이 해오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자기를 구박하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옆에서 방어를 해야 할텐데 방어는 안하고 내버려두더랍니다. 그때 마음속에 ‘저것이 남편이야 내 편을 들어주어야지 그럴 수 있어’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면서 남편에게서 마음이 멀어졌습니다. 그 뒤로 아들 딸 낳고 살림하고 부부로 살기는 살았지만 마음은 남편에게서 돌아선지 오래였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살아도 정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남편이 술 먹고 외박하는 것입니다. 같이 살아도 정이 없으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기도중에 본 환상 때문에 `나의 과거를 치유해야 되겠구나!` 하고 울면서 회개하고는 남편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나도 이제까지 고생하고 살았지만 당신도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지.”
아내가 갑자기 한번도 안하던 말을 하니까 남편이 깜짝 놀랐습니다. 욕설이나 하고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남편의 섭섭했던 마음이 싹 녹으면서 “아니! 당신이 더 힘들었지” 하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남편이 술을 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때 부인이 “여보, 너무 한번에 끊으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끊으세요.” 이렇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 후로 술을 끊고 가정이 완전히 새로운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혼수감 때문에 마음으로는 등을 돌렸지만 몸은 한 집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용서가 되고 과거가 치유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면서 60에 신혼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잘못된 과거의 관행을 청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마음에는 과거의 응어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병이 됩니다. 영적인 병이 되기도 하지만 육적인 병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병을 안고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할 줄 아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있는 과거의 상처를 잊고 용서 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의 상처와 아픈 것 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 잊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상처를 잘 이겨낸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 갔을 때 얼마나 형님들이 미웠겠습니까?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요셉의 형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종살이를 할 때에도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형님들에 대한 분노는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안 요셉은 마음에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나와 함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뭐가 걱정이냐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 때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형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 땅에 옵니다.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있어서 형들은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다 용서 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수십년 만에 만난 형들을 보고 요셉이 그 정을 억제할 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형님들, 내가 아우 요셉입니다.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입니다.”이 말을 듣고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당신들은 악해서 나를 팔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요셉이 용서를 하게 된 것은 자기의 마음이 넓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날마다 깨닫고 감사하시고,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2. 항상 영적 긴장을 유지 하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을려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3절) 허리를 동이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긴장하라는 것은 두려워하거나 과민반응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긴장하라는 뜻입니다. 깨어서 담대하여 사단을 대적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긴장감을 상실하면 약해지고, 병들고, 죽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장감이 풀어지면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귀가 열려 있고, 눈이 떠져 있고, 손이 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절망적인 긴장이 있고 즐거운 긴장이 있다. 절망적인 긴장은 뼈를 마르게 하지만, 즐거운 긴장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긴장이 없는 인생만큼 재미없는 것이 없다. 모든 생물에 어느 정도의 긴장은 필수적이다. 긴장이 풀린 인생만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생이 없다. 군기가 들은 군인이 가장 멋있습니다. 또 무엇인가 목표를 향해 긴장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보다 멋있는 것입니다. 긴장해 있는 그리스도인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철저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긴장이 즐겁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사망의 음침한 길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적당히 섞는 적당주의는 안됩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간혹 이것도 아깝고 저것도 아쉬워서 이것도 저것도 다 가지려는 때가 있습니다. 믿음생활을 다 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전략입니다.
마13:35에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알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주인이 오는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안다면 자다가도 일어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기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인에게 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이미 피곤해 있었고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오셔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깨어있지 못해 결국 시험에 들었습니다. 잠결에 일어난 베드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를 들고 왔을 때에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쳤습니다. 분명히 베드로의 실수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깨어있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벌써 시험의 빌미를 준 것입니다. 오늘도 깨어 있지 못한 성도는 마귀에게 이런 빌미를 항상 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깨어있다고 하는 것은 항상 영적으로 긴장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영적 긴장감이 살아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지만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영적 긴장감이 살아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그냥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엄마를 잘 만났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영적 긴장감’, 다른 말로 늘 하나님 앞에서 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긴장감이 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계십니까?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로 오늘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리들 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잠시라도 영적긴장이 완화되고 게을러진다면 우리는 이리한테 물려 죽습니다. 세상을 순결하게 살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세상과 같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지 말고 세상과 다름에서 오는 영적갈등에 희열을 느끼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거룩을 추구하며 사십시오.
본문에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4-15절) 욕심에 매여 살던 그때를 본받지 말고 부르신 거룩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실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광야의 고난을 지나 가나안 땅에 보내서 살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전에 살던 죄의 과거를 잊으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구별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1:45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도 불러내어 세상 사람과는 다른,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남들의 주목꺼리가 되는 구별된 생활을 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신자와 구별되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까?
애굽에서 종살이에서 해방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거 그 때의 망령된 행실, 습관 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고 세상으로부터 구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바로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난의 상처를 잊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 주시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고 불과 구름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 할 때 그 모든 악몽과 같은 때를 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과거의 죄악된 생각과 행실을 빨리 청산하고 하나님의 거룩을 본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노예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그 백성들에게 요구되어졌던 삶이 무엇입니까? 이전에 몰라서 행하던 그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과거가 있습니다. 죄의 종노릇 하던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직 죄의 종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과감하게 냉정하게 끊어야 합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믿기 전의 망령된 행실, 생각도 하고 싶지 않는 저주스런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 가졌던 습성이나, 관행이나, 인간성을 다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컴퓨터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시스템 파괴시키고 고장을 일으킵니다. 파일 삭제되고, 정보 손상되고, 사용자 정보가 유출되기도 합니다. 우리 속에 죄의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바이러스와 죄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요즘 바이러스의 종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죄의 바이러스에 한번 감염되면 우리 마음이 다 파괴되어 버립니다.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죄의 바이러스도 그와 같습니다.
죄는 거머리 같습니다. 한번 붙으면 죄인을 떠나지 않습니다. 기생충과도 같습니다. 죄인에게 달라 붙어서 이용해 먹고 삽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영적인 귀가 둔해지게 합니다.
죄는 기쁨이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단절된 상태에서는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축복을 상실하게 합니다. 무감각해 지게 합니다. 그래서 내성이 생기게 합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게 합니다. 죄는 한번 빠지게 되면 그 보다 더 찐한 것만이 만족케 되는 마약 같은 성질이 있습니다.
죄가 주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현혹되어서는 않됩니다. 죄에는 미끼가 있습니다. 자그마한 쾌감을 주면서 여러분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돈, 힘, 건강, 시간, 미래, 영적 능력, 가정, 사랑 등 좋은 것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향기 산업이 인기라고 합니다. 아로마요법으로 출산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임상실험 결과까지 나와 앞으로 향기산업은 의료분야에까지 확산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런 산업을 하는 사람들은 후각을 발달시켜서 코를 이용해서 전문연구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코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 모릅니다. 아무 냄새나 맡지 않습니다. 후각이 무디어지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는 것을 구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아무것이나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롬12:2)
그러나 그것을 잊는 방법은 나의 생각이나 의지로 ‘잊어야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라고 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된 모든 부위들을 치료하는 유일하고도 온전한 치료제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의 영혼과 마음과 정서와 몸에 들어갈 때 과거의 모든 죄의 상처에서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깨끗하여져야 합니다. 웨슬레는 \"성실한 생활은 한번도 죄를 짓지 않거나 실수하지 않는 생활이 아니라 날마다 회개 하는 생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기 전에 회개부터 해야합니다. 회개 없는 기도는 일방적인 주문 일뿐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18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기도할 때 받으시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했습니다.
늘 기도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영과 혼과 육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건해지시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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