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음을 얻게 하신 그리스도

나음을 얻게 하신 그리스도/벧전2:24



범죄한 인생은 죄를 없애기 위해서 속죄의 희생을 드렸습니다. 희생 제물들
을 성전으로 가져갔습니다. 매년 계속해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자기들의 죄
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을 어찌나 두렵게 여겨 죄를 씻기 위해서
성전 의식에 온통 매여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
의 진노가 두려워서 희생제물을 성전에 바쳤습니다. 죄를 해결하려고 제물들
을 부지런히 드렸지만 그런 의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황소나
염소의 피가 죄를 영원히 없엘 수 없음을 성경은 말합니다(히10:4). 그래서 희
생 의식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인생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희
생은 단번에 바쳐진 속죄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
신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오는 효과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게\"하는 것입니
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복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새 생명은 \"의에 대하여\"살고 \"죄에 대하여\"죽는 삶입
니다.
예수님이 죄책과 형벌을 대신 져주기 위해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을 겪으셨습니
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신다면 \"저가 책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
나니\"(24절)라는 말씀이 진리로 응한 줄로 믿습니다.

친히 몸으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게 하신 그리스도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채찍\'(\'몰로피\')은 매질로 말미암은 자국이나 흔적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로마군병에 의해 채찍을 맞으시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그 당시 로마군병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
었던 로마군대의 병사로서 아주 건장하고 힘도 센 잘 훈련된 군병이었습니다.
이러한 로마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내리쳤으니 얼마나 고통
스러웠겠습니까. 채찍의 길이는 한번 때리면 몸을 한 바퀴 반이나 휘감을 정도
로 길어서 채찍을 맞으면 채찍의 강한 힘에 의해서 낚아챌 때 살점이 떨어져
나가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전신에 채찍을 맞고 보혈의 피를 흘리며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채찍에 맞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음
을 드러냅니다.(Lumby)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범을 바라보
면서 순종하고 인내해야 함을 강조합니다(Caffin, Leighton, Calvin).

고난 중에서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고난 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태
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시인은 이 부분에 대해 시로 표현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감옥 창살을 통해 밖을 보았다.
한 사람은 진흙을, 다른 한 사람은 별들을 보았다.\"
똑 같은 감옥이라는 고난 속에서 한 사람은 창살을 통해 진흙을 봄으로서 흙
에 묻혀 흙으로 돌아갈 허무한 인생을 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창살을 통해 하
늘의 별들을 쳐다보면서 희망과 용기와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양쪽 옆에서 똑같은 고통을 받
고 있는 양편 강도에게서 나타납니다.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 역사상 우수한 문화와 문명은 고난과 역
경의 소산이라고 했습니다. 역경과 고난 없이 피어난 문명의 꽃은 없다고 했습
니다.
그 예로 1년 내내 야자 열매와 바나나가 풍성한 하와이 섬에는 자랑할 만한 문
화적인 유산이 없고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고난의 험한 길을 걸어온 히브리
민족에게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우리들에게 있어서 많은 고통과 어
려움을 주는 괴로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잘 참아 내고 대처해
나가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깊으신 뜻에 의해 우리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결실을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고난에 대해 바라보는 방식이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자기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아무런 목적 없이 바라보는 경우와 당하
는 있는 고난을 뚜렷한 목적으로 바라보는 경우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나음 곧 평화를 주십니다.
주님 주시는 평화는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
의 평화입니다.
질병의 고통이 속에서라도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
니\"라는 말씀을 믿고 \"나았습니다\" 고백할 때 믿음을 보시고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에게 살라고 명하실 때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가죽
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 큰 군대를 이룹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간구하
여 인간의 생각을 깨뜨리고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어린 소년이 연못가에서 손으로 만든 작은 종이배를 띄우면서 놀고 있었
는데 그만 그 종이배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밀려 나가 버렸습니다. 그
어린 소년은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모양을 본 그 소년의 형이 배가
나가는 방향에다가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어린 소년은 더 소리를 내어
서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이 던지는 돌멩이가 종이배를 맞추고 그 배가 가라
앉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의 상황은 소년의 생각과는 전혀 다
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던진 돌멩이가 수면에 떨어졌을 때 생긴 잔물결
로 인해 배가 그 꼬마가 있는 연못가로 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어린 꼬마
는 그제야 울음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도 이런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린 소년과 같이 고난의 물결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우리 앞에 떨어
지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들 인생이 끝장이 날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의 물결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우리 앞에
떨어졌다고 인생이 끝장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과정을 통
해서도 사랑하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을 주심을 말씀합니다.
\"(민6: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6:23) 아론과 그 아들들에
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민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6:25) 여호와
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6:26) 여호와는 그 얼굴
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고 하셨습니다
채찍에 상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리스도께서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습니다.
의로운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우리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
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
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습니
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
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은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입
니다.
한사람(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하나
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아담이 거스린 것은
(창 3:1-6) 순간적이요 단순하게 보일지 모르나 이는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하
게 되고자 마음먹었던 교만한 행위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의 행위였습
니다.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습니다. 그 결
과 진노와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사망이 요구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
란 요구가 그리스도에게 옮겨진 것입니다.
죄인 된 것은 불순종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연관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
명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이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행하신 모든 행
동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모든 행동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
기 위해 행하신 사역들을 총칭합니다. 이 구원사역은 십자가 사건에서 최 절정
을 이룹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을 얻는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
의 십자가의 희생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순종\'이라는 용어에는 인간의 책임 문제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히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
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히 3: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
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합니다
(히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
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합
니다
(히 4:6)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
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 4:7) 오랜 후에 다윗
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
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라 합니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사 53:12;요
6:38, 39;10:17, 18;17:4, 5;빌 2:7, 8;히 5:8, 9),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순종\'에 대한 대조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Murray).
그리고 성도의 순종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히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9) 온전하
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라 합
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결
과를 아무 대가 없이 은혜로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과
거와 현재 및 장래를 포함하는 모든 시대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Murray, Sanday).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섭리의 은총으로 함께 합니다

미국의 어떤 청년이 신앙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잘하던 중 어느 날 길을 걷다
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졌습니
다.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교우들이 병 문안을
와서는 모두가 위로의 말을 해주는데 한결같이 하는 말이 \"(롬8:28) 우리가 알
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아주 불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성했던 내 다리가 끊어
져서 불구자가 되었는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차라리 저주
같이 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뿌리를 내린 신앙이 있었기에
그 말을 듣고 아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퇴원 후에 꾸준히 신앙
생활을 잘하다가 뜻이 있어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목사가 되
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오지에 식인종이 사는 곳에 전도를 떠
났습니다. 그곳은 가기만 하면 식인종들에게 잡혀 먹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선
교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이 사는 고장에 찾아갔더니 그 식인종들이 좋아
라 고하면서 그 선교사를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선교사는 그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의족
인 고무다리의 고무 한 조각을 손수 베어서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살을 베는 사람을 못 보았
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잘라서 선뜻 주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이 사람은 사
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생각을 하고 추장 이하 모든 식인종들이 이 선교사 앞
에 엎드려서 잘못을 빌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그 식인종들을 회개시키고 저들에게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후 그 선교사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의 다리가 교통사고를 잘리어진 그
고난은 지금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하실 때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마 8:17).
예수님께서는 영육의 질병의 근원이 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채
찍에 맞아 피 흘리셨으니 영육 간의 질병의 문제가 해결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함이나 병으로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의 치유의 권능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대속
하셨다는 것을 믿고 성령의 능력을 힙 입을 때 강건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길을 지나다 보면 약장수들이 웅담이라는 곰의 쓸개를 조금씩 잘라서 접
시에 놓고 먹을 갈아다가 먹물에 넣어 돌리면 먹물이 흡수가 되어 말갛게 되
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시한 일이지만 신기하여 들여다들 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하고 사람의 죄를 없이 하는 묘
약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맥베드가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는
데 아무리 손을 씻고 증거를 인멸해도 마음 속의 살인죄는 없어지지 않습니
다. 그래서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의사가 이 병은 자신이 고칠 병이 아니
니 스스로 마음에서 고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 아라비아 향수를
다 가지고도 이 손 하나 말끔히 할 수 없는가? 이것을 파내 버릴 망각제는 세
상에 없는 것일까?\' 하고 탄식을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맥베드의 입을 통해
서 \'죄를 씻을 것은 지구상에는 없다. 자기 마음으로도 안 되고 무엇으로도
안 된다.\'고 표현했다고 하며 이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
다 할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마음속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하였을 것입
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하십니다. 양심의 가책이 예수님의 피로
사함 받고 씻음을 받을 때 양심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틴 루터가 체험한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악마가 나타나서 루터의 죄목을 썼습니다. 두루마리에 써 가지고 왔습니
다. 그때 예수님의 피 묻은 손이 나타나서 그것을 지웠습니다. 루터는 잉크병
을 던지면서 \'예수의 피, 예수의 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
도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
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 주제별 예화 예수의 피)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나음을 허락하신 그리스도

\'죄\'(\'타이스 하마르티아이스\')는 복수로, \'의\'(디카이오쉬네\')는 단수로 표
현되어 죄인이 갖는 죄의 속성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법정적인 면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동참하여 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
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 자체가 이미 \'생명\'에 이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생명의 칭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섬기
는 자들에게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
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합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고 생명에 이른 우리는 성도라 불리웁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후사\'라는 것은 \'유업을 잇는 자\'(갈 3:29)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는 영광된 신분을 함께 합니다.
계22:5에서는 성도가 영원 무궁토록 \'왕 노릇할\'것이라고 합니다.
\'왕 노릇\'이란 말은 \'죄의 종\'되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위
치가 정반대로 바뀌게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
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
니라 고 합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신분을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피 흘리시므로 인간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
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을 믿을 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출15:26을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
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
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란 \'나 여호와는 너희의 치료자\'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절대자이신 동시에 우리의 모든 질병과 아픔을 치료해 주시
는 친근한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치료하는\'(\'라파\')은 \'의사\' 또는 \'의원\'을 가리킵니다. 곧 우리의 의원되
시는 여호와는 실로 모든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실 뿐만 아니라, 죽음
과 죄 등 인생의 모든 문제점까지도 깨끗이 해결해 주시는 진정한 우리의 치료
자이십니다(마 9:12).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
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 몸에 채찍을 맞으시고 피 흘리시므로 죄 사함을 주셔서 우리
의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모든 영적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연약함이
나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질병이 시련 속에서 회개하고 돌
이켜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기를 원 할 때 치료의 역사가 임할 줄 믿습니다.
말씀 따라 기도하면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성도
로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