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부터의 치유

과거로부터의 치유
벧전1:13-19





베드로 교실이라는 분노교실을 하였습니다. 가장 화가 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 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1위가 누구인줄 압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직접적으로는 물론 화를 내지 않죠?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누가 먹으라고 하더냐? 라고 하였을 때 \"아 당신께서 주신 여자 때문입니다\" 라고 돌립니다. 왜 화를 낼까요? 간단합니다. 나 보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 같습니다.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계속 납니다. 만족할 수 없습니다. 처음 개척 시작할 때 1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지요, 어느 때 보다요? 그런데 큰 교회와는 상대가 안됩니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더 아프고 돈도 별루 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니 예수 안믿는 것들이 더 잘되요! 무지무지 화가 납니다. 그러니 화가나지요? 안 그러세요? 나만 그런가요? 이런 갈등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어찌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모든 곳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교통사고 났는데요? 진급에서 누락되었는데요? 죽을 병에 걸렸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그래요!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것입니다.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문제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인데 내가 좋은 것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말씀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는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3절). 먼저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입니다. 허리끈이 풀어지면 동이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다시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우리의 불행과 고난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온전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무슨 말인가요? 베드로는 본문을 통해서 그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18-19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구속 받았다는 것입니까? 그래요! 조상들이 물려준 망령된 행위에서 구속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을 수련회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우울했습니다. 자기는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로? 간암으로 죽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진단이 나왔습니까?\" 그러니 \"아니요 ! 저의 집안 내력입니다.\" 그러면 왜 기도하러 오셨어요? 그렇게 능력 없는 예수면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모습을 보일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과거를 털지 못하고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과거를 벗어나기 위해 피까지 흘리셨는데 우리는 \"no\"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한 것은 애굽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애굽을 끊어야지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4-15절). `너희 스스로 욕심에 매여 살던 그때를 본받지 말고 부르신 거룩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실을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에게 과거를 벗어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챤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과거는 조상부터 내려온 잘못된 행실입니다.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니며 정치를 위한 도덕일 뿐이다. 유교의 전통을 받은 이 나라는 정치에 생명을 건다. 남성 위주, 어른 위주,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 무덤을 위한 도덕,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사람 비석 세우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고 역설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중국은 유교가 중국을 망쳤다 해서 유교를 벌써 버렸습니다. 일본도 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무슨 이유인지 공자가 남겨준 못된 것을 가지고 이 나라를 온통 얽어 매가지고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하는 행동을 보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다 조상들이 심어놓은 열매입니다.

비가 올 때면 빈대떡이 생각납니다. 비가 오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비가 오면 농사짓지 않으니 배 깔고 빈대떡이나 먹은 것입니다. 비 올 때 빈대떡을 좋아하는 것은 구원을 받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 하면 무서워하는 분도 계시고 우습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고 , 변덕스럽게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투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믿음을 가지려고 해도 아버지에 대한 상이 나쁘게 되고 치유 받지 못하면 믿음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보험 가입을 할 때 작성하는 것 가운데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 가족 가운데 심장병을 앓은 사람이 있습니까, 당뇨를 앓은 사람이 있습니까?, 암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까,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 질문을 왜 하느냐? 그것은 곧 만약에 우리의 가족 가운데 지금까지 이런 질병이나 문제들이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 자신에게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포도주를 마시고 술이 취해 하체를 벗고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 방에 들어갔다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얼른 옷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를 덮어 주었습니다. 노아가 술이 깬 후에 그 허물을 떠들고 돌아다닌 함을 향해서 저주를 내립니다. 그 저주가 아들에 대한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합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 잘못은 그 아들이 했지만 저주의 벌은 후대에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에 보면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십시오 믿음도 대를 물려가지만 죄도 대를 물려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최대실수는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하는 거짓말입니다. 아브라함이 75살이고 사라가 65살에 본토를 떠났으니까 부인이 65살이면 아내가 그렇게 예쁘지도 않을텐데 바로 왕에게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한번 뿐이 아닙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자란 이삭입니다. 어떨까요? 이삭과 리브가가 블레셋 지방에 갔는데 블레셋 왕이 리브가를 보고 누구냐고 물으니까 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똑같아요? 그런데 부모가 화를 냅니까? 자기도 자신에 못 마땅한데 자식도 그러니 더욱 심합니다. 심방가면 발가락으로 테레비젼 끄는 아빠! 똑같다. 긍정적이나 부정적인 것들이 항상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흉을 보지만 어느 사이에 자신이 그러고 있습니다. 애들보고 공부하라고 하고 낄낄거리며 부모는 텔레비젼을 봅니다. 말씀 한 장 읽지 않고 읽으라고 난리입니다. 포기하세요.예수를 믿는데도 유전되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믿은 사람을 만나면 새로 나온 사람도 잘 믿는데 믿음없는 사람이 인도해 온 사람은 그 사람과 꼭 닮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 믿음이 좋아서 꼭 앞자 리에 앉는 사람이 전도한 사람은 평생 앞자리에 앉습니다. 조는 사람이 데리고 오면 그 사람도 졸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믿음은 무엇인가? 끊는 것입니다. 우상 섬기는 것도 끊어야 되고, 속에 있는 모든 잘못된 습성이나 혈기나 인간적인 것을 다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개인의 과거의 기억의 상처들을 치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온 인생, 살아온 과거가 있습니다. 그 과거가 바로 오늘의 나를 형성해 온 바탕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어린시절부터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괴로워합니다. 따라서 과거를 부인하지도 말고, 도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자기 과거를 인정해야 됩니다. `그냥 잊어버려야지\' 한다고 잊혀지는 것 아닙니다.나를 괴롭혔던 문제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려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의지적으로는 용서했지만 감정의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겠습니까? 하나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억지로 과거를 잊지말고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고 역기능가정에서 자란 사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 잘한것이고 잘못한 것이고 간에 내 아픔은 인정 받아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형들이 그를 죽이려고 우물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은 20냥에 애굽 장사꾼들에게 팔았습니다. 노예로 끌려가서 그가 얼마나 한맺혀 울었겠습니까 얼마나 형들을 원망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고 극복했습니다.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삭쓸이 할 차례입니다. 물론 그는 용서 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몇번 오게 합니다. 속상했던 것을 푼 것이다. 잘 참는 것이 훌룡한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아픔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무척 아팠던 것이죠. 일단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나서 주님의 도움심을 받아야 합니다.
요셉은 이 울분을 주님을 통해서 해결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 `당신들은 악해서 나를 팔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용서해야지\' 라고 해서 용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상처를 인정하고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막연하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용서해야 됩니다. 과거의 아픔들은 나를 훈련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은혜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를 만나고 나니까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내적치유는 우리를 과거 속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로부터 건강하여 현재를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내적치유세미나를 한적이 있습니다. 상담해도 안되는 자매가 와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야기인즉 이 자매의 아버지가 부인과 딸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도망쳤습니다. 아버지를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매님!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은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매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수하셔서 아버지를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뜻입니다. \" \"그런데 용서가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십자가에 죽어야 하지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죽어서 용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야기 합니다. 어린양 같은 보배로운 피로 우리 속에 흐르는 저주를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 집은 이혼을 많이 하는 집안입니다. 우리는 알콜 중독자가 가득합니다. 우리 집안은 당뇨병이, 암이 가득합니다. 이 저주가 내앞에서 끊어지게 하소서\"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우리의 모든 질고를 다 담당하셨으며 채찍에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제 과거를 내려놓으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를 버러지와 우상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능력있는 말씀을 체험하실 수 있게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