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치유자입니다 잠18:13.고전12:21-27 1. 사랑으로 조화되는 존재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거대한 틀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관계는 모두 중요하기에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간혹, 하나님과의 관계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신앙적으로 위험한 생각이며, 병든 신앙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기적이지 않고 사랑과 배려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는 율법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계명입니까?\' 라고 말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22:37-4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셨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 뜻이 달려 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둘은 항상 같이 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고 섬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의 마음으로 도와 상대방과 조화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리허설을 하다가 주연을 맡은 독창자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자존심이 너무나 컸던 그녀는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는 이 공연의 스타입니다!\' 라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토스카니니는 현명하면서도 단호하게 이렇게 응답합니다. \'선생님, 이 공연에 스타는 없습니다.\' 명 지휘자는 정곡을 찌른 것입니다. 독창자와 합창단원들과 오케스트라 모두는 서로를 도우면서 조화를 이루어 함께 일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운 음악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우리 신체의 각 부분을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교회 안에 있는 개개인에 비유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으로 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한 개성과 자기의 할 일이 있지만 다같이 모였을 때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화로운 몸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고전12:21-2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데가 없다\'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데가 없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몸 가운데서 더 약하다고 여기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몸 가운데서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부족한 지체에게 더 큰 존귀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도움으로 조화 있는 교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월터 C. 카이퍼의 \"영적 회복이 필요할 때\"라는 책에 보면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세워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돕는 손길을 넓힐 수 있었다. 일그러진 사회의 상처 입은 자들과 궁핍한 자들은 기쁨의 근원을 찾고,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한 사람들에 의해 만나질 수 있다. 어네스트 베이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건강한 영적인 삶에서 개인과 사회의 영적인 필요와 일시적인 필요는 함께 나아간다. 죠지 뮬러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고아들을 똑같이 위대하게 돌보았다. 스펄젼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양로원과 고아원을 세웠다. 부스(General Booth)는 타락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큰 규모로 구호사업을 했다. 진정한 기독교는 내세뿐만 아니라 현세의 사람들을 위해 관심을 가진다. 영혼의 상태에 대해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세의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혼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은 그것이 내주하고 있는 육체에 대한 존중을 계속 증가시켜왔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나보다 연약한 자를 돕는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로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여 가시적이며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치유자로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그것을 두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 첫째는,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의 느낌을 철저히 외면한 덕분에 34년이란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아온 부부가 있었습니다. 34년을 사는 동안 두 사람은 하루도 갈등을 겪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만나면 하도 부딪치고 다투다 보니 대화는커녕 서로 상처 입은 마음의 벽만 두텁게 쌓여갔습니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결혼해서 모두 분가한 다음,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곰곰이 되돌아보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시절 굴곡진 생활만 머릿속에서 뒤엉킬 뿐, 아름다운 추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오랜만에 생각이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자식도 다 키워서 결혼시켰으니 이제 무엇이 두려운가. 이 지긋지긋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홀가분하게 살아보리라.\' 드디어 부부는 이혼에 합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부인 쪽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34년 동안 나는 줄곧 남편의 생각을 바꿔보려고 기를 써왔구나. 생각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건데, 나는 그걸 바꾸겠다고 그렇게 끊임없이 바가지를 긁었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부인은 그제서야 남편의 그릇이 본디 자신과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리자 비로소 자신 때문에 힘들어했을 남편의 고통이 한꺼번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순간, 부인은 34년 동안 한번도 입에 올려보지 않았던 다정한 말을 건넬 수 있었습니다. \"여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남편의 얼굴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행복한 웃음이 가득 피어났습니다. 남편 또한 아내의 따스한 말속에 담긴 느낌을 고스란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결혼한지 34년만에 진정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두 사람은 참으로 오랜 세월의 모퉁이를 지나 비로소 상대의 느낌에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서로의 느낌에 공감하는 순간, 비로소 해묵은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초로의 부부는 이제 지난 34년간 나눈 대화보다 백배는 더 풍성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노년의 새벽을 환하게 밝힐 것입니다. 나 아닌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의 그릇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 다른 지체임을 깨닫게 되었고 조화의 미를 맛보는 치유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둘째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간에 갈등과 상처를 유발하는 원인들 중에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만 강요하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기까지 합니다. 잠언18:13절의 말씀입니다: \"다 들어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것은, 수모를 받기에 알맞은 어리석은 짓이다.\" 듣지 않는 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는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이야기를 듣지 않고 막게 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상태를 악화시켜서 그것이 결국 치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카엘 엔데의 동화 \"모모\"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모모를 찾아갑니다. 모모는 소녀이며 고아였습니다. 그리고 모모가 있는 곳은 페허가 되어버린 원형극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모모에게 털어놓지만 모모는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사람들은 모모를 만나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방황하는 사람은 정착을, 실의와 좌절에 있는 사람은 용기를, 불행한 사람들은 행복을, 억눌린 사람들은 자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야고보서1:1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신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이처럼 듣는 것은 치유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신대의 상담학 교수인 정태기 교수님이 있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입힌 상처 때문에 오랫동안 상실감으로 고통 당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아픔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분을 통해 가장 큰 회복과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정태기 교수님은 섬마을 출신으로 엄격하면서도 그 이면에 어떠한 사랑도 느낄 수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 모처럼 밥상 위에 생선 반찬이 올라왔는데,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거기에 젓가락을 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귀한 음식은 아버지가 먼저 드셔야 비로소 다른 가족들이 맛 볼 수 있었던 시절, 아버지는 가족의 마음을 외면하였고 어린 아들은 점점 조바심이 났습니다. 결국 참을 수 없었던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생선에 젓가락이 가고 말았습니다. 한 점을 떠서 무사히 입으로 가져오는 순간,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는 듯하더니 와장창 밥상 엎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소년은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후다닥 도망쳤습니다. 뒤에서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들려옵니다. \"이런 상놈의 짓거리를 봤나! 어디 감히 애비가 손도 안 댔는데.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소년은 그 길로 칼바람 부는 갯바위까지 도망갔고 오랜 시간동안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소년은 대인공포증을 얻고 말았습니다. 대중 앞에서 말을 못했고 여자들 앞에서는 더더욱 말을 건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명석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상담학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논문을 마무리할 무렵, 미국인 지도 교수가 정태기 학생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자네를 몇 년 동안 지켜봤지만 역시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네. 이제라도 다른 분야를 공부해 보게. 자네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상담학 교수로는 적절치 않아!\" \"이유가 뭔지 아나? 자네는 한번도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는 사람이야. 겉과 속이 다른 채 살아온 사람이지.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겠는가?\" 지도교수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은 학생은 울화를 참지 못하고 교수실 문을 꽝 닫고 나와버렸습니다. 그리고 교문을 향해 정신없이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지도교수가 교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먼저 와 있었던 것입니다. 지도교수는 학생에게 말합니다. \"자네도 화낼 줄 아는 사람이었나? 솔직하게 자네의 느낌을 표현하는 모습을 나는 오늘 처음 봤네. 그 동안 한번도 속내를 표현한 적이 없었지. 틀림없이 속에서 불끈불끈 감정이 솟구치는게 보이는데도 끝까지 내색을 안 하더군. 자네가 그만큼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온 증거지. 하지만 오늘은 달랐네. 부서져라 문을 닫고 나가는 자네 모습은 아주 솔직했네. 그래 아직은 가능성이 있구만.\" 그날, 지도 교수는 정태기 학생을 이끌고 다시 교수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소년 시절의 예기를 차분히 들어주었습니다. 갯바위에서 몸들 바를 모르고 떨던 소년의 아픈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곁에 있어주었습니다. 그때 나이 마흔이 넘은 학생은 어느새 겨울 바람에 떨며 우는 소년 정태기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땅 한반도의 한 섬마을에 미국인 지도 교수가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가 울고 있는 소년 정태기를 불러내고 있었습니다. \"태기야! 춥지? 태기야, 아프지? 태기야, 배고프지?\" 교수가 한 말은 단 세마디 였습니다. 하지만 그 세마디 말과 교수의 뜨거운 눈물은 울고 있는 소년의 아픈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담요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태기 학생은 그 자리에서 어린 시절의 응어리진 상처를 깨끗이 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아픔을 들어주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했을 때, 거기에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체휼하고 공감하며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서로 간에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여 건강한 가정, 건장한 교회를 세울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치유자들입니다. 상대가 나와 다르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의 일이 나의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거나 나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서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상대방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상대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회복함으로 모든 일에 신앙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