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한 감정을 치유하라(I):분노 잠16:32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명상하는 절기입니다. 이번 사순절은 단순히 주님의 고난을 명상하는 것으로서 그칠 일이 아니라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는 절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중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처절한 고난을 대신 져주셨을 때 우리의 모든 상처가 치료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사 53: 4-5은 말씀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성처들을 깨끗이 치료받아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저는 사순절 기간 동안 「상한 감정을 치유하라」는 제목으로 ‘분노,’‘우울증,’‘열등감,’‘죄책감,’‘고독’에 대하여 차례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Heal Your Wounded Heart (I): \'Anger\' 한국 신학대학에서 목회상담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 중에 정태기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이 분의 간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목사님이 나이 37세에 자기 마음의 상처를 고치기 전까지 세상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두 개 있었습니다. 첫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고 또 하나는 \'재봉틀\'이었습니다. 자신감이 없어서 사람들을 무서워했고, 또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다리가 사정없이 떨렸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들이었습니다. 정목사님은 미국에 유학와서 공부하시다가 37세 되던 해, 치유 그룹에 들어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원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상처를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보다 세 살 더 많은 친어머니가 계셨지만 제법 돈이 있었던 아버지는 열 여섯 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를 작은 부인으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본 부인에게서 4남매를 낳고, 작은 부인에게서 5남매를 낳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다정할 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폭군으로서 군림했습니다. 그래서 정목사님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캄캄할 때까지 함께 놀 친구도 없는데 집밖에서 마을을 빙빙 돌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까 일에만 파묻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어두운 가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나다 보니까 자연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성격이 삐뚤어지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니까 이유 없는 분노와 불안, 짜증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마음 깊은 곳에 분노가 쌓이게 되자 화풀이의 대상으로 만만한 사람을 골라서 골탕을 먹이게 됩니다. 정목사님 댁에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의 아들을 이유 없이 못살게 군것입니다. 부모님께 분풀이를 하려다 보니까 도저히 무서워서 못하고, 그 대신 애꿎고 죄없는, 그리고 아무 힘도 없는 아이를 무조건 괴롭혔던 것입니다. 정목사님의 간증에 따르면, 자기 속이 아주 분노로 들끓어 오를 때면 그 파출부 아주머니의 아들을 빈 항아리에 들어가게 하고 뚜껑을 닫아서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풀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정목사님이 가진 병적인 분노의 희생자는 집에서 키우던 얼룩소였습니다. 형이 맡은 소는 살이 잘 찌는데 정목사님이 기른 소는 바짝 바짝 말라가고 고삐만 잡으면 안절부절을 못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얼룩소를 때리고 못살게 구니까 소 역시 히스테리 신경증에 걸릴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목사님이 이와 같은 분노를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치유하지 못했을 때 대인관계는 물론이고 부부관계가 원만할 리가 없습니다. 이 분은 37세 때까지 인생을 늘 우울하게 비관적으로 살아오다가 6개월 동안의 치유 그룹 공동체에 들어가서 마침내 이 상처를 고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두고두고 괴롭히는 분노의 감정을 먼저 치유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분노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조그만 화를 내는 것에서부터 격노하는데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분노의 감정을 느끼며 삽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서 유달리 분노가 많은 편입니다. 아마 오 천년 역사 동안 너무 많은 시련을 겪다 보니까 어떤 한(恨, unresolved anger)이 우리 속에 맺혀 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 분노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사실 우리가 분노를 잘 조절하기만 하면 분노는 우리의 발전을 위하여 굉장히 큰 자극과 창조적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분노를 잘못 다스려 폭발해 버릴 경우 상대방은 물론이고 공동체와 자기 자신까지 겉잡을 수 없이 파괴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분노는 마치 \'성냥개비\' 하나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냥개비를 잘 관리해서 적절한 불을 만들어 쓸 때,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음식도 만들 수 있고 기계를 돌릴 수도 있게 해줍니다.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냥개비 하나가 부적절하게 쓰여져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때 집안 살림은 물론이고 온 동네, 온 세상을 다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만큼 무섭습니다. 또한 정목사님의 얘기에서와 같이 자기를 정말 화나게 한 사람에게 분풀이하기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 속담에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분풀이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애꿎은 사람들이 우리의 분노의 희생물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분노할 수 있다. 이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를 화나게 만든 바로 그 사람에게, 자기를 화나게 만든 것과 똑같은 정도로, 적시에,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분을 내는 일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쉬운 일도 아니다.\"(Anybody can become angry. That is easy. But to be angry with the right person and to the right degree and at the right time and for the right purpose and in the right way--that is not within everybody\'s power and is not easy.) 오늘 여러분 모두는 분노의 감정을 잘 통제하고 치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분노의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제일 먼저 분노의 원인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노의 원인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분노에 대한 정의부터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영어 사전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가 내려져 있습니다. \"분노란 진짜로 잘못된 것 혹은 오해로 잘못된 것에 의해서 생겨나는 아주 불쾌한 감정을 말한다.\"(Anger is a strong feeling of displeasure aroused by a real or a supposed wrong.) 이와 같이 분노는 적어도 자기 자신이 볼 때에 잘못된 일에 의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아 생기는 불쾌하고 불만족스러운 감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분노를 느끼게 됩니까? 무엇이 우리를 화나게 만듭니까? 오래 전 미국의 어떤 연구원이 한 그룹의 대학생들에게 일주일 동안 그들을 화나게 만든 것을 적어 오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른 사람에게 야단을 맞았다든지, 일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든지, 돈을 잃어버렸다든지, 다른 사람의 차가 자기 차를 들이받았다든지, 아니면 원치 않는 시간에 누가 잠을 깨웠다든지 할 때, 분노를 느꼈다고 대답했습니다. 약 80% 이상의 응답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분노는 대인관계에서 자기를 정당하게 표현할 수 없고, 특히 누군가가 자신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게 될 때 주로 생겨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에 분노를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 불의한 일을 당할 때 분노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고 대노(大怒)해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린 적이 있습니다(출 32: 19). 모세가 왜 이렇게 까지 화가 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의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유하기만 하셨던 예수님께서 왜 예루살렘 성전을 쑥밭으로 만드셨습니까? 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내시면서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까? 그들이 불의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성전 장사꾼들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마 21: 13). 그 다음에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했거나 기대했던 일들이 좌절될 때 분노합니다. 자기가 꼭 가고 싶었던 대학에 못 들어가게 될 때, 승진 심사에서 누락 될 때 사람들은 분노를 느낍니다. 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의 빅토리아라는 곳에 사는 게리 프리들(Gary Priddle)은 다른 사람의 개를 골프채로 마구 때려 중상을 입힌 죄로 재판에 기소된 적이 있습니다. 프리들은 자기가 차를 몰고 가는데 바로 앞에 가던 픽업 트럭이 오리 떼들이 지나가도록 멈추어 서서 기다리자 화가 났던 것입니다. 이 픽업 트럭이 자기를 빨리 못 나아가도록 막았다고 화가 난 나머지 이 차 뒤에 태워 둔 개를 골프채로 마구 때려 상처를 입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가 의도했던 일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분을 품게 됩니다. 또한 인간은 거절당하거나, 제지를 받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를 받을 때, 혹은 부당하게 비난받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게 될 때 분노를 느낍니다. 창 4장에 보면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이 왜 아벨을 쳐죽였습니까? 자기가 드린 제사는 하나님께 받아드려지지 않았는데 동생인 아벨의 제사는 열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인 자기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셨고, 자기 동생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고 할 때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자신의 제사가 거절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가인은 안색이 변하여 크게 분노했던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분노를 잘못 처리하여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는 불명예를 떠 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노를 느낄 때 \"도대체 나는 왜 이런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그 원인을 잘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마음의 병은 원인만 제대로 알면 대부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분노의 원인, 분노의 이유를 바로 알 때 우리는 분노를 바르게 통제하고 바르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제 분노의 원인을 알았으면 분노를 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 분노에는 사실상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분노가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와 죄에 찬 분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분노와 세상적인 분노가 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분노를 죄에 찬 분노로부터 구별시켜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거룩한 분노, 즉 하나님의 분노는 언제나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기 위한 분노입니다. 불의한 세상, 죄에 가득찬 세상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맞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분노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분노가 죄에 찬 분노가 되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와 이웃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분노가 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분노가 거룩한 분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의 분노가 거룩한 분노가 되려면 죄에 항거하는 분노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은 순전히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죄와 싸울 때 그 분노는 거룩한 분노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거룩한 분노는 언제나 하나님에 의하여 통제됩니다. 인간의 육정이나 기분, 혹은 마귀에 의해서 조종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신 주권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거룩한 분노는 우리의 이기적 만족을 구하지 않고 이웃과 공동체의 건덕을 세우게 합니다. 내가 분노를 발해서 일시적으로 내 기분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만일 공동체와 이웃에 상처를 준다면 결코 거룩한 분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의 날마다 생길 수 있는 분노의 감정을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대개 분노의 감정이 생길 때 네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내 마음속에 생긴 분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억누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분노가 생길 때 더욱 일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TV나 소설책 등에 탐닉함으로서 문제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분노가 내부에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숨기면서 분노를 참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분노를 안으로 삭이다 보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게 됩니다. 그 결과 가벼운 두통에서부터 위궤양, 불면증,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셋째로, 파괴적인 방법이든, 그렇지 않은 방법이든지 간에 분노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대부분 분노와 상관없는, 죄없는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직장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받았을 때 괜히 그 분노를 직장에서 폭발시키면 해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저녁 때 집에 돌아와 아내나 자식들에게 분풀이를 하게 됩니다. 아니면 돌부리를 걷어 찰 수도 있습니다. 넷째로, 분노의 느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결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네 번째 방법으로 분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 성령은 우리에게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화나는 상황에 대한 반응을 더디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뭐라고 했습니까?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또 잠 14: 29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약 1: 19-20에서 말씀합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성내기를 더디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져서 절제의 고삐로 분노의 감정을 꽉 묶을 때 더디 성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겸손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고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분노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으로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분노했을 때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잠 15: 1에서 말씀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대부분 분노가 걷잡을 없을 정도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과격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가 났을 때 더욱 냉정해져야 하고 우리의 혀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특히 화가 났을 때 만일 내가 이 화를 폭발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화가 났을 때 욕설을 퍼붓거나 기물을 파괴하는 방법 등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의 진노를 결코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혹 일시적으로 위로를 줄지 모르나 더 엄청나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심을 믿고 좀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만나도 잘 인내하고 용서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롬 12: 19에서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분노의 감정이 들끓을 때마다 우리는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맺는 말: 여러분, 분노는 결코 죄된 것만은 아닙니다. 불의와 죄에 대하여 분노할지 모른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룩한 분노보다 죄에 찬 분노의 감정을 가지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 동안 먼저 우리에게 분노를 가져다 준 원인이 무엇인가 깊이 명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모든 상처를 내놓을 때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거의 다 최악의 경우만을 찾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적대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화가 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되어야만 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분노의 감정을 치유 받아야만 합니다. 여러분, 모든 분노의 상한 감정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치유 받으십시오! 아멘.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