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명의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심


열 명의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심
눅17:11-19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일으키신 22번 째 기적은 열명의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신 기적입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한 촌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때 열명의 문둥병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기 위하여 가다가 깨끗하게 문둥병이나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 문둥병자만이 하나님께 큰 소리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 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 자가 없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속성 열가지를 발견할 수 가 있습니다.



1. 고난성

식물은 옥토에서 잘 자라듯이 믿음은 고난속에서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열명의 문둥이들은 최고로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리게 되면 미리 장례식을 치루고 동네 밖으로 나와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이는 불치병이고 전염병인 문둥병에서 건강한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문둥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 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 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레 13:45~46)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자와 유출병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진밖으로 내어 보내되\"(민 5:2) 이것이 문둥병에 대한 모세 율법이었습니다. 열명의 문둥이들은 쫓겨나서 고난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해져서 예수님에게 부르짖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결핍과 기근은 믿음을 낳게 하고 풍부는 믿음을 죽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고난당하면 마귀도 천사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탕자는 풍부할 때는 방탕하였습니다. 그러나 돼지우리에서 사는 고난이 닥치자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모세는 평안한 궁중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고난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햇빛만 비치면 사막이 됩니다. 그렇다고 비만 오면 수렁이 됩니다. 적당한 비와 적당한 햇빛은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고난속의 믿음은 오뉴월에 오이 자라듯이 자라게 됩니다.



2. 혼합성

열명의 문둥이 속에는 아홉명의 유대인과 한명의 사마리아인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이 되있다고 하여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에게 우물가에서 물을 달라고 하였을 때 그 여인은 \"당신은 어찌하여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그들은 혼합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믿음이 있는 한명과 믿음이 없는 아홉명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 안에는 일곱쌍의 정결한 짐승과 두쌍의 부정한 짐승이 섞여 있었습니다. 롯의 가정도 믿음이 없는 두 사위와 믿음이 적은 아내와 믿음이 있는 롯과 두 딸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편에도 믿음있는 강도와 믿음없는 강도가 섞여 있었습니다. 어느 밭에 알곡을 심었더니 가라지도 덧뿌려 섞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명의 제자중에는 가룟 유다같은 제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단체나 섞여 살고 있기에 좀 부정적인 사람이 있어도 속상해 하거나 그 사람때문에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 있다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믿음없는 남편때문에 속상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썩이는 자녀때문에 속썩지 말아야 합니다. 다 그럴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좋아지기를 기대하여야 합니다.



3. 적극성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멀리 서서 소리높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50야드 이상을 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멀리 부른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리게 되면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혼신을 다 한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 것입니다. 우는 자에게 젖주는 법입니다. 성경에서 기도응답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적극적인 사람들입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 들어가도 좋다는 각오로 기도하였습니다. 다 결과는 엄청난 축복으로 끝났습니다.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적극적입니다.



4. 순종성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이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자 순종하고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믿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순종하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은 괴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행복한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비워 둔 공백이 있기에 그 공백에 하나님이 좌정하시기까지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극단적인 명령에도 순종하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서 7번 목욕하라는 말에 순종하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는 말씀을 순종하여 물을 내었습니다. 노아는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라는 이상한 명령을 순종하여 생명을 얻었습니다. 믿음의 다른 별명은 순종입니다.



5. 기적성

믿음에는 반드시 기적이 따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막 16:17)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열명의 문둥이들은 믿음으로 가다가 불치병인 문둥병이 낫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그물이 찢어지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믿고 가는 길은 기적의 길입니다. 믿음은 기적의 어머니입니다.



6. 의외성

믿음에는 의외성이 있습니다. 그럴 것같은 사람이 안 그렇고 안 그럴 것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헌금 안할 것같은 사람이 헌금을 하고 헌금하기를 기대한 사람이 헌금을 전혀 하지 않는 체험을 얼마든지 하게 됩니다.

믿음에는 의외성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로 돌아와서 무릎을 꿇고 사례하였습니다. 그럴 것같은 나머지 아홉명의 문둥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예수님앞에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5병 2어를 헌금한 이는 5000명의 사람들 가운데 어린아이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인테리들이 아니라 하급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의외입니다. 상식 밖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끝까지 울며 붙어 있는 이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아니라 나약한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새벽에 제일 먼저 찾은 이도 연약한 여자인 그였습니다. 예수님을 판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제자였습니다. 의외의 사람이 의외의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무시하여서는 안 됩니다. 이 다음에 누가 무슨 일을 할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어린 아이들에게 까지 모자를 벗고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정중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위신이 서지 않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 중에서 이 다음에 누가 무엇이 될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에는 외의성이 있습니다.



7. 영광성

사마리아 문둥이는 병이 낫자 말자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제사장이 병을 고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치신 것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오직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사 43:7) 우리의 먹고, 자고, 입고,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기에 우리는 어디서나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8. 겸손성

사마리아 문둥이는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사례하였습니다. 겸손의 극치입니다. 얼굴을 감히 쳐다 보지도 못하고 예수님깨 감사하는 사마리아 문둥이의 자세에서 우리는 믿음이 있는 자는 겸손의 요소가 들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인 듯 교만해 집니다. 김일성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그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겸손하여 집니다.



9. 변질성

아홉명의 문둥이는 병을 고침받기까지는 주님에게 부르짖었습니다. 끈기있기 메달렸습니다. 그러나 고침받았을 때 예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각각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오직 사마리아 문둥이만이 믿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사마리아 문둥이가 예수님에게 돌아 올 때 그는 \"우리 같이 예수님께 감사드리자. 그 분의 은혜를 잊지 말자\"라고 권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는 인간에게 전적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자유까지 주었습니다. 배반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형벌은 자유가 아닙니다.

버나드는 \"받으려고 할 때는 귀찮게 조르고 받기까지는 안절부절하게 메달리다가도 받고 나면 배은망덕하는 것이 인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언제든지 변질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믿음을 강하게 지켜 나가는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세는 믿음이 변질되어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이상한 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엘리야도 로뎀나무 밑에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나님을 아프게 하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믿음에는 언제든지 변질성이 있습니다.



10. 구원성

예수님에게는 사마리아 문둥이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홉명의 문둥이들은 육의 구원은 받았지만 영의 구원을 받지 못 하였습니다. 아홉명의 문둥이들은 현세적 구원은 받았지만 내세적 구원은 받지 못 하였습니다. 내세적 구원이 참된 구원입니다. 영적 구원이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같이 믿음에는 열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⑴ 고난성

⑵ 혼합성

⑶ 적극성

⑷ 순종성

⑸ 기적성

⑹ 의외성

⑺ 영광성

⑻ 겸손성

⑼ 변질성

⑽ 구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