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사에게 물어서 고치신 예수님

율법사에게 물어서 병 고친 예수님
눅14:1-6



안식일 즉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되도록 규정이 되어 있는 쉬어야 되는 날 이날에 아마 회당에서 모든 예(禮)를 마치고 이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여러 율법사들과 함께 예수님이 식사에 초대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의 두령이라 라고 하면 우리가 쉽게 이해하려고 하면 큰 교단의 힘있는 교단의 교단장이다 이렇게 아마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두령의 집에 식사 초대되어 들어가시게 되니까 많은 율법사들과 그 바리새인들의 중진들이 예수님의 들어오시는 것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화합이 되지 않던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막 식사를 하려고 하셨던 모양인데 예수님 앞에 나타난 불쌍한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창병 든 사람이 주님 앞에 있으면서 주님의 위로를 받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병든 사람이 이것저것 따질 것 있습니까. 주님 앞에 가면 나음을 얻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식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시간 아니면 주님 만나기 어렵겠다 싶어서 그랬는지, 분위기로 보아서는 지금 병자를 다룰 그런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창병환자가 주님 앞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고창병이라는 것은 제가 알기로는 소화기능이 좋지 않아서, 가스가 많이 차서 배가 부어 올라서 배부른 복어처럼 그렇게 되는 그런 병을 가리키는 것인데, 가스가 잘 배출되지 않는 이런 병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이 고창병 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기는 했지만 그에게 손을 대기 전에, 그의 병을 고치시기 전에 같이 초대되었던 율법사들에게 이 사람의 병을 고쳐야 될지 말아야 될지 물어보시는 그런 의외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물어 보셔야 했는고 하면 그날이 안식일입니다. 이 율법사들은 안식일에 일을 어떻게 하지 않아야 쉬는 것이다 라는 것을 규정하고, 또 판단하고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지금 안식일인데 이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한가 아니한가? 여러분의 의사를 내가 묻고싶다. 여러분이 아니다 하면 내가 고치지 아니할 것이요, 여러분이 무방하다 하면 고치겠노라.\\\" 하는 뜻으로 물어보게 됩니다.

그랬더니 이 율법사들이 속으로야 어쨌든 잠잠했다 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반대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지지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서 그냥 순식간에 고치시면 될텐데 나오라 나오라 해서 데리고 나가서 그리고 고친 다음에도 끌고 들어오지 않고 뒤에로 그냥 집으로 가도록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초대되었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라도 여러분의 아들이 우물에 빠졌다 라고 한다면 그것 건져내어야 안되겠습니까? 아이 건져내는 일이라고 해서 안 해야 된다고 해서 죽게 버려 둘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소나 나귀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고 해서 안식일 지낼 때까지 내일까지 기다려다 끄집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랬으니 이 아이를 오늘 안식이지만 고쳐 보낸 것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렇게 설득을 하는 이런 좀 의아한 장면이 나옵니다. 조금 전에 읽었지만 다시 한번 볼까요. 14장 1절부터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고창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저희가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눅14:1-4)

이제 말없으니까, 반대하지 아니하니까 잠잠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거기서 바로 고친 것이 아니라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그리고 들어오셔서 하신 말씀이 \\\"너희 중에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건져주지 않겠느냐\\\"(눅14:5) 이렇게 하면서 이제 무마를 시키려고 애를 쓰시는 이런 모습을 여기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이런 주님의 모습에서 조금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없으십니까? 주께서 무엇이 무서워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 보실까요? 또 아니면 주님의 율법 실력이 이 율법사들만큼 따르지 못해서 과연 이 안식일에 이 병자를 여기서 지금 고쳐서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주의 뜻은 어느 것인지를 몰라서 지금 물어봤을까요?

주님께서 이 바리새인들이나 율법사들만큼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이 사람들에게 합당 여부를 물어보고, 아무 말 없음으로 데리고 나가서 고쳐서 보내버리고 그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도록 하지 않습니다. 굉장한 배려를 했다 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이처럼 율법사들에게 신경을 쓰고, 이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살피고 계신가,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주님이 이만큼 약해졌을까?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주님께서는 항상 안식일에 무슨 일을 하실 때마다 율법사들에게 물어보고 허락 받은 다음에, 허락 받아야만 주님께서 사역을 하셨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주님께서는 강력하게 주님께 맞으면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충돌이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누가복음 14장에 나타난 바로 이 사건 바로 앞에 있는 충돌 때문에 주님께서 이렇게 태도가 달라지신 것을 보게 되는데, 어떤 충돌인지 바로 13장 10절 이하에서 보게 되는데 아마 이 식사초대하기 직전에 회당에서 있었던 사건 같습니다. 이 사건을 제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절 이하에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팔 년 동안을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눅13:10-12)

이때에 주님께서 하신 것을 보면 아까 조금 전에 생각한 14장의 방법하고 전혀 다릅니다. 보자 말자 더구나 회당 안인데도, 많은 무리가 있는 데에서도 그 앞에 병자를 보자마자 \\\"네가 병에서 놓였다.\\\" 이렇게 하면서 안수를 해서 거기서 바로 고치십니다. 13절에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이제 14절부터가 주님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 되겠습니다. 14절에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눅13:13-14)

이 한 절만 제가 설명을 드려본다면 이런 회당 안에서 안식일 날 18년 동안 꼬부라져 있던 사람을 바로 고쳐서 폈습니다. 낫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회당장이 예수님께 대해서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여기가 어딘데, 지금 뭐 하는 시간인데, 오늘이 어떤 날인데 이런 짓을 하고 있느냐 라는 기분을 갖고서 예수님에게 굉장히 분이 났지만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 입니까? 이 여인이 꼬부라졌던 것은 다른 어떤 허리 병이 아니라 귀신에 의해서 꼬부라져 있었으니 귀신을 쫓아내는 위인을 두고서 겁 안낼 사람이 없습니다.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바짝 얼었지요.

한 광인에게 귀신이 떠나가서 돼지가 2000여 마리가 몰살하게 되는데도 돼지 값 물어내라는 말못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이기에 대단히 놀라서 차라리 이 마을에서 떠나주소서 할 정도지요. 그러니 제 아무리 회당장이라도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져 있던 사람의 허리를 안수해서 펴시니 성은 나지만 그분에게 뭔가 말씀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공격을 했다가는 저주를 받으면 거기서 꼬부라질 것 같으니 겁이 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분은 예수로 말미암아,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병이 났는데, 분(忿)은 누구에게 풀었느냐? 예수에게 풀지 않고 참 연약한 백성들에게 분을 풀었다 그것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14절에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묘하게 예수님 때문에 화를 내어서 입을 열었으나 예수님에게는 공격하지 못하고, 그 병들고 약한 자, 도움 받아야 될 그 무리들을 향하여 엿새동안에 무슨 짓하고 있다가 하필이면 이 안식일에 와서 이따위 짓을 하느냐고 하면서 호통을 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예수님도 뭐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데 이 회당장 정도에게 떨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는데 15절 봅시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을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눅13:15-17) 이렇게 문제가 발생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지지하고 따르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할렐루야, 예수님의 우리의 구세주시다. 안식일에 우리의 건강을 주셨다. 생명을 주셨다.\\\" 하고 영광을 돌리게 되는데, 반대하던 사람들은 반대는 못하지만 굉장히 부끄러워서 난처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 난처하게 된 사람들이 아주 낮고 천한 백성들 같으면 아무리 난처해도 매양 우리는 항상 그렇게 살던 사람이 아니겠느뇨 하겠지만, 다 지도급에 있는 회당장이나 율법사들이 이 사람들이 많은 무리 때문에 물은 하지 못하고 아주 난처해지고, 부끄러워졌으니까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이렇게 된 상태에서 주님께서 큰 일을 그래도 하셨으니 회당장의 체면도 있고, 많은 무리들 보기에도 그래도 회당장 노릇을 한다고 식사하러 갑시다 해서 율법사들과 그리고 예수님 같이 갑시다 했는데, 예수님이 식사를 하러 들어갈 때 정말 소화가 안될 지경이었지요. 아까 율법사들이 전부 다 엿보고 있었어요.

\\\"저 사람만 없으면 우리가 정말 율법사 대우도 많고, 바리새인의 대우도 많고, 회당장 대우도 받겠는데 아니 우리 무리에게 저 사람 나타나자마자 우리는 이게 뭐냐?\\\" 이렇게 되었으니 참 분위기가 곤란한 그런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는 병자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회당에서 빠져 나와서 두령의 집에 가서 식사하는데, 또 고창병 든 사람이 나타났는데, 주님께서 아까 회당에서 멋지게 당당하게 하셨던 것처럼 여기서도 고창병자를 고쳤으면 지금 식사도 많이 나왔겠고, 지금 율법사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한참 하려고 하는데 고창병자야 나을지어다 했으면 굉장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물어봅니다. 전혀 아까 하셨던 일과는 다릅니다. 주님의 모습이 이렇게 후퇴하고, 이렇게 약해질 수 있겠는가 할만큼 약해지셔서 율법사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합니까, 안 합니까?\\\" 조금 전에는 그렇게 큰 소리 치시던 분이 그렇게 물으니까 또 이 율법사들도 \\\"어, 저 예수가 갑자기 왜 그렇게 되었어? 아까는 회당 안에서 그렇게 당당하던 사람이 일 저질러놓고 또 묻네, 우리한테….\\\" 하도 어이가 없으니까 이 사람들도 잠잠하거늘 아무 대답을 안 했습니다.

\\\"말씀 안 계신 것 보니까 고쳐도 되는 모양이지요? 아까 제가 회당 안에서도 고쳤는데 괜찮은 일인모양이지요? 그러면 고치지요.\\\" 하면서 거기서 \\\"병아 나을지어다. 땡땡이 부어오른 배야 푹 꺼질지어다.\\\" 했으면 폭발이 되었을 텐데, 주님께서 그 고창병자를 데리고 자리를 옮기고, 보내고 나서 주님이 다시 들어오시게 되지요. 얼마나 이 율법사들에 대한 배려가 세심한지, 그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데리고 나간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는데, 제가 기도하면서 무엇 때문에 현장에서 늘 고치시던 주님이 그래야 주님이 영광 돌려지고 살아계신 아들로 인정도 받을텐데, 무엇 때문에 데리고 나갔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아마 그 율법사들의 심경을 건드리지 않고 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한 뜻이었겠지만 또 한가지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이 사람 병이 무슨 병이라구요? 가스가 가득 차 있는 병이니까 지금 식사하려고 판을 갖다두었는데 그 앞에서 땡땡한 배 푹 꺼지게 만들면 터져 나온 가스가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마 그래서 데리고 나갔는지, 그것은 뒤에 나은 사람에게 천당 가서 물어보아야 알겠습니다만 어찌했거나 주께서 이렇게 참 큰 배려를 하셨는데, 그러면 조금 전에 회당장이 큰 소리를 쳤다고 해서 주님이 이렇게 약해지신 겁니까? 회당장이 무서워졌습니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주님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것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두고서 주님 때문에 분을 내어서 누구에게 피해를 주려합니까? 무리에게 피해를 주려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것이 보통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당시에 유대인의 회에 들어있어야지 만 이 회당에 들어와서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들처럼 좋은 시대라 성경 한국말로 이렇게 다 변역 되어서 누구든지 사서 볼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어디든지 설교를 들을 수 있느냐? 라디오를 통해서도 듣고,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고, 다만 랍비가 성경을 읽어주고 서기관들이 성경을 해석을 해주는 그 자리에 가지 아니하면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회당에 가야만 하나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지금 우리는 자유경제체제 시장경제 속에 있으니까 자기가 돈 많이 벌면 자기 것을 자기가 먹는 그런 형편이 되어 있습니다만, 지금 대부분 무너지고 이렇게 되었어도 사회주의 국가는 어떻습니까? 그 나라에서 족보가 빠져버리면, 그 회에서 탈락되어버리고 배급에서 제외되어버리면 곧 죽음과 연결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경우뿐만 아니라 여러 경우에서 유대인의 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의 회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하신 것을 많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18년 동안이나 귀신들려서 허리 꼬부라져 있던 이 병자를 고치시고서 발생한 사건을 보고서 이 무리가 회당장을 통하여, 이 교권자들을 통하여 어려움을 당하겠구나 하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주님이 아무리 맞고, 주님이 그날 병을 고치신 것이 옳은 일이지만 그리고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율법사가 무슨 겁이 나겠습니까, 회당장이 무슨 겁이 나겠습니까? 마음대로 주님은 하실 수 있지만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려고 오신 바 현장은 이 교권자에게 지배를 받고 있더라 그것입니다. 현장은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똑똑한 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기가 옳기 때문에 남의 말을 안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특히 똑똑하고 많이 가지신분들에게 남의 말을 잘 들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도 많은 경험을 했는데, 분명히 옳은 것을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분명히 옳은데 여기에 대해서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안 된다라고 불만하는 사람의 불만과 내가 주장하는 주장을 놓고서 따져봅니다. 아무리 따져보고, 아무리 계산하고,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따져보아도 제가 옳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게는 옳지만 그 사람은 나의 옳은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불만은 자기가 판단한 상태에서 불만하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 생각에는 안될 것 같은 일입니다.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머리가 좋아서 차이가 났든지, 나보다 머리가 나빠서 차이가 났든지 간에 내가 옳아도 그 사람도 똑같이 옳으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종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의 역사 할 현장은 내 자신에게 합니까? 아닙니다. 바로 여러 얘기를 해주는 그 사람이 나의 일할 현장입니다. 불평하고 불만하는 그 사람의 그 수준이 내가 들어가야 할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아무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이 일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지금 누구의 생각에 가서 주님은 이처럼 물어보고 계십니까? 율법사들의 생각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회당장의 생각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 회당장들과 또 이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이렇게 잘 다독거려주지 아니하면 누가 피해를 보느냐? 주님은 역사하고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무리가 굉장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었으니 주께서 이 율법사들에게 물어보시고 병을 고치신 것은, 그리고 이 병자를 데리고 나가서 고쳐서 보내버리고 그리고 이 율법사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안식일에라도 아이가 물에 빠지면 건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뭐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별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합시다.\\\" 이런 식으로 주님께서 하셨던 것은 주님을 위해서 그리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위로해야될 연약한 무리를 위해서 주께서 이렇게 후퇴하셨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주님을 소개받으신 여러분, 오늘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려는 주님은 당신의 자존심을 버려가면서, 당신이 율법사보다 더 낮으신 것처럼, 더 모르시는 것처럼 물어가면서 누구를 위하여 이처럼 하셨느냐? 우리를 위하여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질병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래서 체면도 없이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까? 지금 식사할 시간인데, 떡을 차려두었는데 그 앞에 고창병을 가지고 나아갔습니까? 회당에서 절기에 따른 여러 절기 순서를 진행하고 있고,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데 꼬부라진 사람이 거기에 들어가서 말씀을 중단시킬 만큼 어려움을 가지고 계십니까?

주님은 위대하다는 사람들의 편에서 기뻐 역사 하신 것이 아니라 낮고 천한 자를 더 먼저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께서 자존심 상하시고, 주님께서 낮아지시면서 까지도 우리를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복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이웃간에도 우리를 보호해주시려는 주님의 참 사랑을 여러분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님으로 우리를 위로하려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두령의 집에서 이 같은 일이 있고 난 후에 웃지 못할 일이 또 발생되는데, 조금 더 읽어볼까요. 14장 7절부터 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7-11)

이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참 단순한 사람들 같기는 합니다. 예수님께서 큰 역사 할 때에는 예수님에게 화가 나도 예수님에게 대어들지 못하고 무리에게 공격을 하던 이 회당장이나, 이 율법사들이 두령의 집에 초청되어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고창병 든 사람이 생겨서 주님이 고치실 때를 가만히 이제 보니까 \\\'아까 회당에서는 대단하게 세게 나가시더니 팍 꺾였네, 우리한테 팍 꺾였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이 병자를 고치는 것이 합당합니까, 안 합니까? 이렇게 묻지요. 그리고 또 자기들이 아무 대답을 않고 그저 \\\"고쳐줘야지\\\" 이런식으로 은근히 인정 하니까 고치는데, 아까 회당 안에서는 자기들 앞에서 고치고, 손뼉치고, 박수치고 영광 돌리는 무리가 나타나니까 반대하던 사람이 부끄러워서 어디로 도망간지 모르게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면서 또 막 공격을 하더니 고창병 든 자를 데리고 나가서 고쳐주고 보내버리고 와서 더 신경 안 쓰게 하려고 \\\"안식일에라도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건져내야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는 주님을 보고서 이 바보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느냐? \\\'야, 내가 저 사람보다 높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주님이 자기에게 물어오니까, 주님이 자기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하니까 \\\'아, 나는 주님보다 똑똑하고 내가 이제 하라는 말 안 하면, 우리 율법사들이 하라고 하지 아니하면, 우리 바리새인 회에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저 사람 아무 것도 모르니까 우리 회가 저 사람보다 더 높구나 크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병자 고치고 들어오니까 모두 예수님보다 윗자리로 올라가서 위에 가서 앉으려고 야단입니다. 처음에 예수님 들어올 때에는 두령이 예수님 중심으로 모셨기 때문에 제일 윗자리로 주님이 가실 뻔했는데, 이제는 자기들에게 무엇 좀 물어보고, 자기들에게 신경을 쓰면서 허락을 받는 듯 이렇게 낮아져주니까 언제부터 자기가 높아진 줄 알고서 이제는 자기 전부 바꿔져서 예수님이 들어오니까 자기가 없어졌던 모양입니다.

그쯤 되셨으면 예수님이 \\\'이 바보 같은 사람들아, 내가 조금 그랬다고 기어올라가느냐? 내려와!\\\' 이렇게 하실만한데, 주님께서 직접 끌어내리지 아니하고 그 올라가려는 사람들에게 책망도 하지 아니하고, 또 면박을 가하지도 아니하고 주께서 어떻게 하셨느냐? 비유를 갖다댑니다.

\\\"여러분, 앞으로 혹시 혼인집에 초청되거든 처음부터 위로 올라가려 하지 마시오. 차라리 말석에 가 있으면 주인이 와서, 청한 자가 와서 이것 보시오 당신이 거기에 앉아 있으면 됩니까? 우리하고 상당히 관계가 높은데 이 윗자리로 올라오시오 할 때 말석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그때 혼인집에 갔다가 자기 자리가 한 50이나 되는 데 가 있어야 되는데, 90이나 되는 데 가서 이것 내 자리임세 하고 앉았다가 나중에 초청되어 나타나는 사람이 더 높은 사람이라서 너를 초청한 주인이 그 나중에 들어온 사람과 함께 와서, 보시오 미안하지만 거기는 당신이 앉을 자리가 못되오, 당신은 저 아래로 좀 내려가 주시오. 이 손님이 앉아야 됩니다.\\\"라고 했을 때 거기에서 네가 일어나서 내려갈 때 얼굴에 불을 담아 붓지 않겠는가 그 얘기입니다.

이런 경우 아마 여러분이 대략 짐작 가시리라 생각되는데, 제가 비행기를 자주 타기 때문에 아는데, 이 비행기 좌석이 똑같아 보여도 어디가 제일 상석이냐 하면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는 입구로부터 앞에서부터 두 번째 좌석 통로석이 제일 VIP석입니다. 나가기도 좋고 공기도 좋고, 그리고 또 타기도 좋고 편리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가 항상 비여 있어요

그래서 뒤에 앉았던 사람들이 짐하고 다 갖고 와서 위에다 짐 넣고 그 자리에 가서 앉습니다. 넓고 좋고, 바깥도 보이고 다 좋거든요. 그래서 그 항상 두 번째 통로석 거기가 제일 좋은 자리로 되어 있는데, 제가 비행기를 하도 타다 보니까, 가만 보니까 그 자리에 들어오는 사람은 언제나 문을 닫기 직전에 들어옵니다. 미리부터 들어와서 하지도 않습니다. 높은 사람들은 VIP실에 있다가 문닫기 직전에 안내를 받아 들어와서 척 앉습니다. 그 사람들은 짐도 많이 갖고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주로 앉느냐? 우리 나라로 볼 것 같으면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하는 분들이 타게되면 그 자리를 주도록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국가 큰 기밀을 가지고 바쁘게 움직여야 될 사람이 있으면 직전에도 그 자리를 주도록 되어 있는 모양인데, 그 자리에 함부로 가서 앉았다가는 큰 창피를 당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령이 있어서 문을 닫을 때까지 VIP가 없으면 그 자리는 비워져갑니다. 그래서 문 닫는 것을 보고 제가 살그머니 가서 저는 앉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가 비어있으니까 손님 안 들어오는가 싶어서 앉습니다. 그러면 그 사무장이나 이 사람들이 앞에 서서 높은 사람을 모시고 와서 \\\"표 봅시다. 선생님 좌석표 봅시다.\\\" 번호가 틀리거든요. 나가주십시오 해서 쫓겨나갈 때에는 이미 그때는 사람 가득 차서 이렇게 앉으신 것처럼 전부 앞만 쳐다보고 있는데, 쫓겨나가면서 가방 들고 다시 통로로 갈 때 정말이지 아마 5M 가는 것이 500M 가는 것쯤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님보다 높은 줄 알고 상좌(上座)를 택하는 이 사람들을 보고 바로 직설적으로도 하지 않고, 그러나 주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는데, 비유로 말씀합니다. 혼인(婚姻)잔치, 왜 하필이면 혼인잔치라고 했을까요? 회갑이라 해도 좋고, 생일잔치라 해도 좋고, 입학축하연이라고 해도 좋고 다 좋은데 하필이면 혼인잔치라고 했을까요?

주님께서 이 혼인잔치를 말할 때에는 인자의 날 마지막에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묻고 네게 허락을 받아가면서 병을 고치니까 너는 나보다 높은 사람인줄 알고 상좌에 올라갔는데, 이 땅에서야 네가 나보다 높아도 좋다. 나의 사랑하는 무리, 저 병든 자들, 낮고 천한 자들에게 도움만 된다면 나는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좋다. 수모를 받아도 좋다. 그러나 네가 혼인자리에 갔을 때, 혼인 잔칫집에 갔을 때, 마지막날 우리 아버지의 나라에 갔을 때 조심해라. 땅에서 지금 네가 나를 함부로 했다고 해서 거기서도 함부로 하게 될 줄 아느냐? 끌려 내려올 것이다.\\\" 이런식으로 이제 비유로서 말씀하니까 이 사람들이 크게 기분은 상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이 내용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무슨 뜻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지요.

주님께서 이처럼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면박을 주지 아니하고, 비유를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씀할 만큼 이처럼 낮아지고, 이처럼 자신을 후퇴시킨 이유가 어디 있었습니까? 자기 백성을 위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배우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능력을 기르고 있습니다만 주님께서는 이웃을 위해서, 위로 받아야 할 자를 위해서 주님께서 이처럼 스스로 조심하셨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 맨 마지막 11절의 말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말씀을 많은 분들이 잘 외우시고 또 이 말씀에 저촉이 안되게 하기 위해서 높아지지 아니하려고 애를 씁니다. 스스로 낮추려고 겸손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렇게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낮아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어떻게 되기 위해서 낮아지려고 애를 씁니까? 높아지기 위해서, 또 이 땅에 살면서 이 구절을 관심 있게 보신 분들은 높아지지 아니하려고 애를 씁니다. 여기서 높아지면 천국에서 낮아 질까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천국에서 높아지려고 여기서 낮아지시렵니까? 또 여기서 높아지고 천국에서는 낮아지시렵니까? 저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높아지려고 낮아지는 사람들,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그 목적이 (B면)(순수한 것이라면)

좋겠으나 훗날 높아지기 위해서 낮아지는 것이라면 그의 낮아지는 것도 높아지기 위해서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어떤 분들은 높아지지 아니하려고 애를 씁니다. \\\"아, 내가 이렇게 칭찬 받으면 안되지, 내가 이렇게 높은 사람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지,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했지만 나는 대우 안 받으련다.\\\"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노력도 무엇 때문에 노력합니까? 높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이 말씀하신 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참 뜻은 무엇입니까? 제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겁니다. 네가 50점 짜리 이면 50점 자리에 가서 앉고, 70점 짜리 이면 70점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겁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병자를 고치고 들어와 보니 서로 올라가겠다는 겁니다. 올라가는 사람들, 서로 상좌를 택하려고 내 자리다 하고 올라가는데, 자기가 갈 위치도 아닌데 올라갑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차라리 말석으로 가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더러 낮은 자리로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네가 불려 올라가기 위해서 앉은자리로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네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겠으면 내가 50에 가서 앉아야 될 것인가? 네가 50밖에 안 되는데 50에 앉는 것이 맞는가, 60에 앉아야 될 것인가, 40에 앉아야 되는가를 네가 잘 모를 경우에는 차라리 위를 택하지 말고 아래를 택하라.\\\" 그러면 올려주는데 100으로 올려줍니까, 50이라는 제자리에 올려줍니까? 제자리에 올려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높아지려고 낮아지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또 안 높아지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참뜻은 무엇입니까? 제자리에 있으라 그겁니다. 집사이면 집사의 자리에 있고, 장로이면 장로의 자리에 있고, 목사이면 목사의 제 위치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부모이면 부모의 자리의 위치를 지키고, 자식은 자식의 자리의 위치를 지키고, 형제는 형제의 자리의 위치를 지켜야 사회도 조용하고, 집안도 조용하고, 교회도 조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모두다 자기 자리를 모르는 데서부터 문제가 옵니다.

혼인 잔치에 초청된 사람이 모두 자기 자리를 모르고 모두 말석에 가서 우루루 몰려 있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주인이 들어와서 잔치도 시작 못할 것입니다. \\\"아이구, 형제여 당신은 여기요.\\\" 끌어올리다가 일을 못 볼 겁니다. 내려갔다고 저 높은데 올려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려가도 올라가도 결국은 제자리에 갖다 앉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높고 낮은 것은 여러분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여러분의 수준이 정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는가 그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말합니다. 장군이 되면 장군은 장군노릇을 해야되고, 사병은 사병노릇을 해야 된다 합니다. 별을 4개 단 장군이 사병들이나 해야될 보초를 서주고, 그리고 또 사병들이나 해야될 화장실 청소나 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별 4개를 달고 화장실 청소하는구나 아주 훌륭한 장군이시다!\\\' 이렇게 할지 모르지만 그 훌륭한 장군이 훌륭한 장군의 일을 하고, 지시를 내리고 명령을 내리고 전 부대를 이끌어야 될텐데, 화장실에 가서 오줌이나 닦고 앉아 있어서야 되겠느냐 그것입니다. 할 사람이 따로 다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겁니다.

그래서 제자리 제 위치에 있어야 될텐데, 자기의 분수도 알지 못하고 상좌를 택하려고 한다면 주님께서 자기들보다 낮은 듯 보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들의 의사를 물어오시니 이것은 자기보다 낮은 줄로 압니다만 나에게 물어본다고 낮은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구를 지배한다고 높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자기 자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자리가 어딘지 모를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 이르렀을 때 내 자리가 어딘지 과연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형편에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차라리 위쪽을 택하지 말고 아래로 가라. 그러면 아래에 있으면 당신이 당신의 자리에 인도 받아 갈 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광이 되겠지만, 당신의 수준 이상에 가 있다가 조금 내려오시오 해서 내려가게 될 때에는 부끄럽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신 주님의 그 모습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웃들을 대하여, 또 성도들을 대하여 우리보다 늦게 예수 믿기 시작한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누구를 본 받아야 되겠느냐? 주님의 자세를 본 받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회당 안에서 마저, 많은 무리 앞에서 마저 18년 동안 귀신들려 허리 꾸부린 자를 고칠 때 당당하시고, 여기에 대하여 불만이 있어도 주님에게는 감히 말못하고 백성에게 공격을 하던 이런 회당장에게 대하여 큰소리치시던 주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아무 일 없겠으나 내가 떠나고 난 후에 이 백성이 어려움을 당하겠구나, 저 교권자들에게 이 무리가 어려움을 당하겠구나\\\' 생각한 나머지, 이렇게 주님이 주님답지 않게 일일이 물어서 \\\"할까요? 말까요?\\\" 그렇게 물어보고 낮아져주었더니 자기들이 높은 줄 알고 자리 바꾼다고 야단법석을 하고 있으니, 주께서 하신 말씀도 바로 책망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얼마나 참으셨던지. \\\"여러분 혹시 혼인집에 가거든 자리 잘 잡으소.\\\" 이런 정도로 말씀하고 맙니다.

여러분, 아무리 여러분이 옳아도, 여러분이 아무리 맞아도, 빨리 나가고 싶어도, 그리고 밀고 나가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도, 대중이 그것이 아니면 나의 현장은 내 걸음 빠르다고 혼자 가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무리가 갈 때 따라가는 것이지요.

저는 목회를 지금까지 해 오면서 이런 말씀 앞에서 저가 주님을 좀더 알고, 주님의 방법을 좀더 채택 많이 했더라면 많은 분들이 어려움 당하지 않고, 불만 없이 함께 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나의 지식과 나의 생각이 나의 현장인줄 알았는데, 내게 있는 수준과 내게 있는 지식과 내게 있는 판단은 이것은 내게 있을 뿐이지, 내가 함께 가야될 성도들의 현장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현장이 어딘지도 모르고 쫓아 혼자 달려갔던 그런 때를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오늘 이 주님의 모습을 여러분에게 소개했으니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명예를 버리고 자존심을 꺾어 가면서도 우리를 살려주시고 살려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이웃들에게도 보호받게 해 주셨던 주님의 마음을 저와 여러분도 앞으로 더 많이 가져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