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치유의통로

믿음, 치유의 통로/눅8:40-56

믿음, 치유의 통로
눅8:40-56





어느 날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 중에 한 여자에게 일어난 일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자는 무리를 헤치고 나아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어 혈루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여자는 멈추지 않고 피가 흐르는 혈루병으로 인해 열두 해 동안이나 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柳析?주님의 옷 가에 손을 댄 순간 여자는 몸을 관통하여 흐르는 치유의 물결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주님께 손을 대기도 전에 이미 더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내적 대화가 고통스러운 분노로부터 신실한 기대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 여자의 치유를 주의 깊게 관찰할 때, 우리는 우리를 의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우리의 진정한 필요들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주는 강력한 믿음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혈루증 앓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마 9.20-22, 막 5.25- 34, 그리고 눅 8.41-4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여자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으면서 치유를 받기 위해 많은 의사들을 만나 치료하는 중에 가산을 모두 탕진한 사실을 듣게 됩니다. 43절은 12년의 투병생활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했던 불행한 여자라고 말합니다. 그런 종류의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레위 법전의 규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본문의 행간을 읽을 때, 우리는 그녀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은 회당에도 성전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됨을 느끼게 해주는 모든 예배와 활동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받아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이 있었다면 당시 관례로 보아 그녀는 이혼 당할 충분한 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녀와의 접촉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녀의 옷이나 그녀가 오염시킨 물건을 만지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그렇게 길고 고통스러운 세월 동안 자신과 나누었을 내적 고민과 대화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자는 우선 자부심을 잃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자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까지도 잃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여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접촉해서는 안될 사람으로 간주되어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온 사회로부터 부정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을 상상해보셨습니까?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이것은 분명 우리의 기도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란 말처럼 그 여자는 12년이란 긴 투병 생활로 인해서 더 이상 기도할 수 없는 절망의 시점에 도달 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회의주의와 절망감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대화가 절망에 처해 있을 때, 그녀를 해방시켜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자는 예수님과 그분의 전능하신 치유사역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어떻게 나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이 교차합니다. 그녀는 낮은 신분의 여자, 그 당시 버림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의심스러운 생각들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 그녀가 사는 가버나움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대담하고도 충동적인 생각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분을 만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랑과 관심과 애정으로 가득 차신! (그분을 만날 수만 있다면! ) 그분이 정말 사람들이 말한 그분일까?\\\" 그분에 대한 소식은 널리 퍼졌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전에 가버나움을 방문하셨을 때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을 정결케 하신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어머니의 열병도 주님의 말씀으로 치유 받았습니다. 그분이 \\\'무서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만지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시고 한 문둥병자의 손을 잡으셨을 때, 그 문둥병자도 치유 받았습니다. 그분을 통해 역사하는 치유의 능력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 심지어 안식일조차도 그분의 치유행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치유의 기쁜 소식은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손 마른 사람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여자는 자기가 들은 소식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마음 속에서 희망이 밀려옴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각, 감정인 동시에 거룩한 욕망이었습니다. 여자는 주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들은 모든 소식이 마음속에 믿음의 씨를 심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과 치유를 받아야 할 필요에 관해서 곰곰히 생각했을 때 거리낌과 수줍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녀는 나사렛 예수를 만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숨을 죽인 채 희망을 품고 무리 끝으로 다가갔습니다. 주님께서 배 밖으로 나오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확신과 용기의 파도가 물결쳤습니다. 그리고 그 파도는 점점 더 거세어 졌습니다. 그녀가 멀리서 그분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 내부의 모든 것이 그분께로 이끌렸습니다. 그분의 모습 전체가 다정한 애정이 섞인 포근한 사랑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얼굴을 봐! 그 눈은 기쁨과 생기로 춤추고 있고, 그 웃음은 확신을 전달하고 있으며, 단단한 턱은 단호한 목적을 보여주고 있어.\\\" 그녀의 마음이 주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예수님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본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에 대해 전부터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직접 그분을 봄으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감히 누가 그분을 방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떻게 그분이 내게 시간을 내주실 수 있단 말인가? 만일 그분이 내게 손을 대신다면 그분은 부정해 지실 거야! 그렇다면 내가 주님께 손을 대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해보는 거야!\\\" 여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그분을 바라보았을 때, 그분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마주하고 서 계셨습니다. 그분의 위엄 있는 모습은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그분의 흰옷은 밝은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그녀는 그분의 옷의 가장자리에 있는 네 솔기를 보았습니다. 그 중 둘은 그분의 옷 앞쪽 구석에, 나머지 둘은 뒤쪽 구석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그녀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습니다.

심한 질병을 앓는 여인이 그 솔기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이 솔기들의 의미에 대해 민 15.37-41절은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3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8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절,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절,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41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39절에 술을 다는 목적은 \\\"백성들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인이 술을 본 것은 치유를 상징합니다. 그때 야이로라는 이름의 회당장이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열두 살 난 그의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께 자기 집에 와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 여자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답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단호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 야이로의 집을 향해 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야이로의 열정적인 요청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요청에 쾌히 응답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주님의 응답 속에서 여호와의 치유의 능력이 주님 안에 임재하심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여자는 무리를 따라갔습니다. 이제 그녀 안에서 무엇인가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무리의 끝에 서서 따라가면서 혼자 말을 시작합니다.그녀의 생각들은 절망으로부터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하신 일로, 야이로를 기꺼이 도와주신 일로, 그리고 단호한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의 옷에 손을 댈 수만 있다면 내 병이 낳을텐데!\\\" 여인은 이 말을 옹알거리면서 신비로운 믿음의 선물에 충동을 받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되자, 무리를 헤치고 앞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녀의 눈은 예수님의 옷의 술들에 고정되었습니다. 무리들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피가 자기들의 몸에 닿을까 두려워서 물러났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물러남으로써 길이 훤히 뚫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녀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자는 그분이 걸어가실 때 나부끼는 옷자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과 보폭을 맞춰 걸어가면서 \\\'그분께 손을 댈 수만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 때 여자는 불쑥 앞으로 나섰습니다. \\\'한 번만 옷 술을 대면 될 거야, 한 번만 손을 대는 거야!\\\' 그리고 나서 그녀는 옷 술을 잡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혈루증을 멈추게 하는 능력, 골수를 관통하고 조직을 치유하는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나와서 그녀를 통과했습니다. 피가 멈춘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치유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의 그녀 자신과의 대화는 갑자기 그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계셨습니다. \\\'도망가야 해!\\\' 그녀는 생각합니다. 여자는 무리를 통과해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돌아보시면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그 상황을 변명합니다.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눅 8.45). 무슨 말입니까? 인산인해를 이루기 때문에 밀려 넘어지는 사람, 넘어져 밟히는 사람, 어깨끼리 부디치는 사람들이 많은 아침시간의 출근전쟁 같아서 누군가 주님의 옷깃에 다았을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군가 내게 의도적으로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앎이로다\\\"(8.46) 주님은 자신의 능력을 받아 부인할 수 없는 결과를 낳게 한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찾으시면서 무리를 둘러보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의 눈이 그 여자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여인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손을 댄 사람이 자기였음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자는 주님에게서 숨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벌벌 떨면서 무리를 통과해 다시 돌아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마가는 그녀가 예수님께 \\\'손댄 연고\\\'를 말씀드렸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막 5.28) 여자는 예수님께 자신과 자신의 병 그리고 고통과 소외와 외로움으로 점철된 지난 시절에 대해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눈을 들어 그분의 눈을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옷솔에 손을 댄 것이 자기를 치유한 사실을 깨닫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회복되는 계기를 제공한 회당장 야이로를 포함한 온 무리 앞에서 그녀가 치유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치유를 확인하고 그녀가 회복된 인격체로서 누리게 될 밝은 미래를 예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눅 8.48) 본문은 예수님께서 여자를 \\\'딸\\\'이라고 부르신 유일한 곳입니다. 그것은 사랑과 애정이 담긴 표현입니다. 주님은 왜 그녀를 자매라고 부르시는 대신 딸이라고 부르셨을까요? 아마도 여자는 주님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자의 권세를 가지고 그녀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치료자로서 주님은 그녀를 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시셨습니다. \\\'딸아!\\\"라고 부르신 주님의 음성은 그녀를 이 땅에 보내신 창조주께서 부르시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녀를 사망의 고통과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구원자로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2년 동안 혈루증 때문에 평안을 한 순간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불쌍한 여인에게 주님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참 평안을 선포하십니다. \\\"딸아! 평안히 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녀의 믿음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와 그의 외동딸의 이야기의 핵심도 어떤 것입니까? 야이로의 믿음입니다. 본문 48,50절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해주고 있습니다. 4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믿음을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50절에서도 주님은 야이로에게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에 노출됨으로서 우리 안에 심겨지고 자라는 씨앗입니다.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하신 주님과 만날 때 믿음은 우리 안에서 저절로 생겨납니다. 믿음은 강요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억지로 믿겠다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신비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그분의 능력을 증거 하는 복음서들을 읽고, 그분의 대속의 보혈을 통해 주어지는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이기 위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과 지금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그분이 지금도 계속 나사렛 예수로서 행하신, 바로 그 일을 우리 시대에도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주어집니다. 믿음은 여러분의 눈과 귀와 입과 생각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합니다.

12년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 이웃들과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눌 수 없었던 이 여인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기나긴 세월을 이 여인은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아마 말하는 법과 기술을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여인이 삶 속에 찾아 오셨을 때, 그녀의 주변을 지나치실 때, 주님을 만나고자하는 그녀의 갈망, 거룩한 추구는 믿음의 행위를 가져왔습니다. 무리를 헤치고 나아가 그분께 손을 대는 용기는 그녀에게 주님의 치유의 능력과 구원을 체험하는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완전해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여자에게 한 가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사랑이 넘치는 치유자시라는 사실입니다.

여자는 우리보다 가진 것이 훨씬 적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계시해 주는 성경의 기록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오순절과 부활절의 이편에 살고 있지만, 여자는 오순절과 부활절 저편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사 치유하신 이천여 년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는 겨우 길어야 3년, 아니 혈루증을 앓고 있는 그녀로서는 생의 단 한 번뿐인 기회였을지 모릅니다. 여자는 소문만 들었지 주님께 가까이 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인은 주님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 여인은 주님과의 만남을 오래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생애의 단 한번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주님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수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정보들은 이 여인에게 믿음의 뿌리와 치유의 확신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지식은 그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기자의 진술처럼, 여인은 \\\'자기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그녀의 확신에 찬 믿음은 자신의 초라한 현재의 모습을 넘어서는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편견과 따가운 시선과 사회적 멸시에 희생당하지 않고, 수많은 무리들 중에 섞여있는 주님을 찾아 나서는 용기를 가지게 했습니다. 이것이 혈루증 여인이 추구했던 거룩한 믿음입니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확신을 갖고 \\\'그분께 손을 댈 수만 있다면\\\'이라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며, 우리가 치유보다 주님 자신을 더 원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주님을 갈망하는 거룩한 추구자들을 치유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영접할 때, 그분의 치유하시는 영이 우리의 마음과 감정, 몸과 태도에 역사 하시도록 우리의 필요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은사가 차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강조합니다. 한 여인의 주님을 향한 거룩한 믿음의 추구는 12년의 혈루증을 치유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더더욱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교제를 나누려는 사람을 영원히 도우실 수 있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치유는 믿음의 부산물, 구원에 따른 보너스였습니다. 그녀의 진정한 기쁨은 혈루증의 치유가 아닌 주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혈루증의 치유라는 육신의 평안만이 아닌 삶 전체의 평안이라는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주 예수님께서 서로 밀치는 무리 속에서 자신에게 손을 댄 한 사람의 믿음의 손길을 느낄 수 있으셨다면, 그분은 기도 중에 자신의 도움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더 잘 알고 계실까요? 이런 믿음과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진정한 축복의 사람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주님은 당신의 기도를 알고 계십니다!\\\"

영광을 받으시고 통치하시는 주님, 우리와 여전히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도움을 구하기 위해 무리를 헤치고 나아가 손길을 뻗을 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온전케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손을 댈 때, 그분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가 아니라 \\\'너를 기다려 왔다. 네가 마침내 내게 올 줄 알고 있었다. 이제 나를 믿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의 무릎을 꿇고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주여, 제가 믿나이다.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그때부터 우리의 모습은 \\\'그분께 손을 댈 수만 있다면!\\\'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손을 대셨다!\\\"는 찬양과 감격의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 중에서 한 사람, 12년 동안이나 처절한 투병생활로 인해 깨어진 삶을 살던 한 여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녀의 질병과 깨진 삶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녀의 믿음을 통하여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참 기쁨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더욱이 \\\'평안히 가라\\\'는 위로의 말씀을 통하여 그녀의 미래의 삶 전체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후 그녀의 삶은 평안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장애인주일입니다. 저는 몸과 마음의 장애를 가지신 분들의 삶 속에서 혈루증 여인의 믿음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사실, 어떤 분들은 12년 보다 더 길고 깊은 질병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신 장애는 여러분의 몸뿐 아니라 마음과 가정과 대인관계까지도 힘들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랜 장애의 삶은 그나마 지녔던 한 조각 믿음조차도 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현재의 불편한 삶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사회에 대한 불신을 마음속에서 생기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전체는 마음의 상처와 깨어진 관계와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심한 고통과 절망과 회의 가운데 잠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혈루증 여인 또한 오늘의 여러분과 같은 처지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내가 주님의 옷에만 손은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거룩한 믿음의 추구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좌절하고 절망하기보다는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므로 주어지는 축복의 세계에 자신의 삶의 초점을 두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믿음의 용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믿음의 용기를 보시고 몸과 영혼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몸과 마음의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온전한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도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초청에 믿음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무리 중에 섞인 한 사람인,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구원과 평안의 선물을 주시고자 지금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똑! 똑!\\\"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믿음의 용기를 기다리십니다. 이 시간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구원과 평안의 능력을 체험할 믿음의 용기를 가지신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