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치유 눅10:30-36
[Newsweek]지를 보면, 현대인들이 비정상적인 사람이 절반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너무 상처도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비정상적인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완전정상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다 정신적으로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정신병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정신병원에서 예배를 두 번 드렸는데 예배를 인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를 할 때 킬킬 웃습니다. 예배 참석을 비교적 증상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 했는데도 한번 웃기 시작하면 옆에 있는 사람을 쿡쿡 찌릅니다. 그리고는 “얘는 미쳤다”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말한 사람도 미쳤는데 그렇게 말합니다. 저도 강대상에서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저를 보면서 “저 사람도 미쳤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때 제가 복음에 미친 것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서 건강하지 않습니다.
금세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노르만 빈센트 필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직장을 소개 시켜 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흔쾌히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그 곳을 소개시켜 드리지요.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래서 두 명은 차를 타고 뉴욕을 지나서 공동묘지 앞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문제가 없는 곳입니다.”
사람은 살아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고,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 소원 중 하나가 건강입니다. 이 땅에서 많은 소유를 가지고, 영화를 누린다 핻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행복하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아픔이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떤 사람도 성한 사람은 없습니다. 거의 다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병에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병이 있고 영혼의 병이 있습니다.
병의 시작은 최초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하는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영혼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병이 걸립니다. 감정이 상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8)”
그러면 결국 육체도 성하지 못합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
예수님의 눈에는 이세상 사람이 다 죄인이고 병든 사람입니다.
죄인은 구원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고침 받는 것이 소중합니다. 병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9:12)”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
첫째, 천국 복음(preching)을 전파하셨습니다. 둘째,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teaching) 마지막으로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healing)
마지막 주님의 총 집합체는 고치신 것입니다. 고치셨다는 것은 영혼을 고치시고 정신을 고치시고 육체를 고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을 고치러 오신 것입니다.
현대의학에서 치료는 전인 치료를 말합니다. 내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주일날 동수원 병원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영도, 마음도, 육체도 동시에 치유되어야 완전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강도는 옷을 벗기고, 때리고 거반 죽게 하고 버려 두고 갔습니다. 이 때 마침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합니다. 또한 레위인도 보고 피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사마리아인이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맵니다. 그리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가서 돌봐줍니다. 다음 날 주막집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이 사람을 잘 돌봐달라며 부비, 즉 비용이 더 들면 다시 돌아올 때 갖다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상처난 인간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땅의 사람은 강도 만나 상처받고 신음하고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누가 이런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까? 2000년 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오늘 교회사 2000년 동안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말씀을 가지고 치료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강도 만난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A man)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모두 강도 만난 사람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마귀라는 강도가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양심을 잃어버리게 하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30)”
우리는 거반 죽게 되어 극도의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인입니다. “신앙생활 한다는 사람이 왜 저렇나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분개할 수는 있지만 고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치료재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름은 당시 치료약으로 쓰였고, 포도주는 소독약으로 쓰였습니다. 그는 치료해 주고 싸매 주고 주막집에 보호의 부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상처난 인간, 죽게된 인간을 십자가에 죽으시고 보혈의 피를 흘리심으로 치유하시고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심령의 상처를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구약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여기서 “나음을 입었다”는 말은 우리 상처가 치유 받았다는 뜻입니다. 상처에는 외적인 상처도 있지만 내적인 상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또는 형제들이나, 친구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는가 하면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이런 상처로 인해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오래 믿었어도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상처 때문에 생긴 인간의 잘못된 개성입니다. 이것을 고쳐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당 가지만 성격을 고치지 않고 사니까 자기도 괴롭고 남도 괴롭습니다. 부부간에도 마음을 활짝 열고 웃어보지 못한 채 서로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이 비극이 슬픈 일입니다. 우리 모두 다 은혜를 받아서 우리 속에 감춘 상처를 모두 고침 받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가? 자기는 말 안하고 있지만 다 상처들이 조금씩 있습니다.
자식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평생 눈물로 보내는 부모도 있습니다. 어느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일생을 활짝 펴보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어렸을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평생을 기 한번 펴보지 못한 채 그늘진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말씀은 상처 입은 우리 인간들의 신비한 복음의 비밀입니다.
1.먹어야 한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34)”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봐주고 음식을 먹여 주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러면 주막과, 주막집 주인,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교회는 주막집과 같습니다. 주막집 주인은 그 교회 목사와 같습니다. 교인들은 상처받은 환자들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환자를 잘 돌보는 것은 우선 잘 먹도록 하는 일입니다. 건강하려면 잘 먹어야 합니다. “최고의 보약은 밥이다” 동의보감에는 이런 말이 나와 있습니다. “밥으로 고치지 못하는 것은 약으로도 안된다”
아픈 환자는 영양섭취를 잘해야 빨리 회복됩니다. 병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들어 울지 말고 평상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건강에는 세 가지 측면에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첫째 몸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몸에 나쁜 것을 먹으면 안됩니다. 둘째 정신건강을 위해서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가족사랑을 나누고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먹는 아이는 눈동자가 밝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얼굴이 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영이 건강해야 정신과 육체가 건강합니다. 이로 인해서 전인 치료가 이뤄집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루 세끼를 잘 먹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잘 먹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줘도 입맛이 없어서 못먹습니다. 영적 환자는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입맛이 안납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저 하나님 말씀이 좋아서 새벽, 낮, 밤에도 매일 먹습니다. 주막집은 교회이고 먹을 것이 있는 곳입니다. 영의 양식이 있는 곳입니다. 먹을 것을 열심히 먹어야 건강합니다. 영적인 양식은 신비한 음식입니다. 예배시간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읽을 때 얻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십자가 군병은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무기로 첫 번째는 칼입니다. 이 당시는 칼이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검입니다. 검은 자신을 방어하고 적을 찌릅니다. 즉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를 지녀야 이깁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가 달려들 때 찔러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마4: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7)”
말씀의 칼에 찔릴 때 “어찌할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좌우에 날선 검입니까? 칼은 양면이 있습니다. 칼은 첫째 수술시켜서 치유시킵니다. 심령이 수술돼서 고쳐집니다 또 한면은 고후2:1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2:16)”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한쪽의 칼날로는 수술로 치료해 줍니다. 그리고 또 한쪽 칼날로는 죄악을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탐욕, 교만, 우상숭배,쾌락을 다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썩는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이시간 하나님의 말씀의 칼로 수술해서 고침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건강합니다. 자꾸 먹고, 자주 먹고,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2.편해야 합니다.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35)”
주막집은 나그네가 쉬어 가는 곳입니다. 배고프면 요기하고, 피곤하면 잠을 자다 가고, 비바람이 불면 비를 피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인생길에 쉼을 얻는 곳이 주막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교회는 인생길 나그네길에 상처난 사람들이 쉬는 곳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환자를 돌보는 주막집주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영락교회의 주막주인입니다. 우리 사람들 마음의 뚜껑을 열어보면 신음소리를 안내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리의 크기, 소리의 종류와 소리의 자세가 다를 뿐이지 전부 다 신음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믿으면 완전한 의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나라 가는 의를 얻은 것이고, 죄없다 간주해주는 것이지 완전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죄의 상처로 신음하며 그때 그때마다 주님의 긍휼을 받아야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의인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환자라고 생각하면 서로 위로해 주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서로 붙들어 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므로 서로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두 주치의 되신 예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은 환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환자들이 모인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목사님이나 성도들, 전부 다 완전한 의인들이 아닙니다. 찬송을 잘하고, 기도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찬송 중에도 아파하고, 기도중에도 신음하며 설교중에도 신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 영을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을 얻고, 이 나그네 인생길에 끊임없이 주님의 돌보심 속에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집에 같이 사는 부부가 싸움을 하는 것은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한 사람 속에 상처가 있으므로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프니까 남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남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인생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시38:3)”
우리가 은혜 안에서 평안이 임하면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딴 근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성도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시집가서 너무 살림도 어렵고 사랑도 받지 못해 눈물로 지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친정 가기 전날 밤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친정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밤새도록 시댁 흉을 볼 수 있고 시집살이의 고통을 얘기하면 어머니가 말없이 다 들어줍니다. 친정 어머니가 듣다가 주루룩 눈물을 흘리고 괴로운 얘기를 다 들어줍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 줍니다. 그래서 친정 가는 날만 기다려집니다. “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우리 인생살이가 시집살이와 동일합니다. 우리는 시집살이로 인해 피곤하고, 지치고 상처입고 병듭니다. 우리는 친정 어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친정 어머니십니다. 그리고 친정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집니다. 교회는 친정 집입니다. 우리는 이곳, 즉 교회에 와서 한 맺힌 기도를 합니다.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을 기도합니다. 그 때 성령님이 감동을 주십니다. “내가 있다 조금만 참아라. 좋은날이 올 것이다. 내가 꼭 도와줄테니...”
친정 집과 같은 교회에 들어와서 기도할 때 수많은 상처들이 다 빠져나갑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큰 복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찌어다(시122:7)”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지칩니다. 진학문제로, 가정살림, 직장문제로 지쳐있습니다. 우리에게 갖가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러나 주안에 있을 때 근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찬455장 2절)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찬양하리
3.은혜 받아야 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엡1:2)”
평안을 얻으려면 반드시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면 은혜 다음에 평강이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빌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골1: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살전1:1)”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살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벧전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벧후1:2)”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1:5)”
강도 만난 사람은 그 후에 의식이 회복됩니다. 그는 눈을 떳을 때 상당히 분노하고, 억울해 했을 것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강도가 빼앗아 가고, 몸은 상처로 평생을 장애자로 살아야할지도 모릅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재물을 다 빼앗고 자기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사업을 망치게 한 사람이 강도입니다. 그런데 주막집 주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강도 만난 곳은 절대 혼자 가면 안 되는 곳입니다. 그 곳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강도가 우글대는 곳입니다. 그런데 걱정 마시오 당신을 살게 데리고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인인데 그 분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고 당신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회복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거저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당신의 앞날을 책임질 것입니다. 당신의 상처의 부비를 다 책임질 사람입니다. 당신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 살 수 있다! 다시 회복된다! 그 분을 만나야지 올 때를 기다려야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강도를 만나 잃어버립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탄식하는 억울한 일이 수없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어 갑니다. 이 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못 박히셔서 상처 입으시고 채찍에 맞으셔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낫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치유시켜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주님이 오실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 속에서 우리 영혼과, 육체가 치유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병은 약으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 은혜로 고쳐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병이 나갑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 병을 치유하시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건강하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길이 어렵고 힘겹습니까? 마음이 지치고 어렵습니까? 우리는 이 때 예수님의 품에 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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