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치유 사역 눅8:26-39
오늘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본문의 \\\'귀신들린 사람\\\'에 감히 비교할 수 있겠다. 귀신들린 자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는 도시사람이었다. 그는 옷을 입지 않았다. 집에 거하지도 아니했다. 그는 무덤에 거했다. 오늘 현대인의 삶은 어떠한가? 바쁜 도시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서 가정을 돌보며 사랑을 키워갈 여유조차 없다. 옷을 입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늘 죽음의 위험을 각오하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된 행복을 추구하며, 기쁨중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한가? 다람쥐 쳇바퀴를 돌 듯, 하니 않으면 안되니까? 주어진 일이니까? 가정을 위해서 할 수 없이.... 늘 순환되는 삶 가운데 여러분의 삶은 더욱 황폐해져 가고 있지는 않은가? 본문의 말씀은 이런 우리의 삶에 소망을 준다.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시는 주님을 만남으로 여러분의 삶이 더욱 행복하고 풍성해지길 바란다. **먼저 귀신들린 사람이 어떻게 해서 치유될 수 있었을까?
1.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났기에 (27절)
본문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이다. 주님은 그곳에서 귀신들린 자를 만나셨다. 이때 주님이 그를 보고 어떻게 하셨을까? 본문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으나 주님은 그가 귀신들렸음을 이미 아시고 그의 어떠한 요구도 없는데 귀신을 명하사 나오도록 하셨다.(29절)
주님은 사람들을 치유하실 때, 때로는 병든 자의 요구, 혹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의 부모의 믿음과 요구에 의해 치료하셨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공은 주님께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요구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상태를 정확히 아시고 귀신에게 그에게서 나올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가운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긍휼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피곤하여 지칠 때까지 복음을 전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신 주님의 모습을 복음서에서 발견하게 된다.
과연 어느 누가 주님께 당당히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그처럼 주님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고 죄 많은 존재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군대귀신 들린 사람이 치유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인류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셨다. 이런 사랑의 주님앞에 나올 때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다.
여러분의 삶의 문제가 무엇인가? 가진 것이 없어도, 너무나 부족하고 죄가 많아도..... 조건을 보시지 않고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오라. 주님앞에 나온 성도들이여!!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자. 주님이 영혼을 사랑하사 행하신 사역을 보면서 우리의 삶의 태도를 정하자. 주님처럼 고통당하고 병들고 괴로운 인생들, 외롭고 소외받는 영혼들을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도가 되자. 마25:35-40절의 말씀과 같이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가 되자.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문에서 어떻게 말해주는가? 아마 귀신들린 이 사람은 일가친척,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포기한 상태였을 것이다. 버림받은 영혼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만 그를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여 지킬 뿐이었다. 그를 주님은 어떻게 대하셨는가? 물론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 그러나 주님은 수많은 돼지 떼에 가길 원하는 귀신을 허락하시면서 재산(물질)보다 한 영혼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렇다. 주님은 우리가 포기한 영혼까지 사랑하신다. 우리는 너무나 영혼에 대하여 쉽게 포기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은 그 영혼을 사랑하시기에 어떤 물질의 손해를 계산하시지 않고 그를 온전케 하셨다. 귀신을 쫓아내셨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그렇다면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신 주님은 누구이신가?
2. 온전한 치유자되신 주님
군대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신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본문 28절을 보면 귀신들린 자가 외치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말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주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을 배척하고 불신했다. 그러나 귀신은 주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죄를 사하시며, 자연을 다스리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며, 귀신까지도 명령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주님을 신앙으로 고백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세상의 문제들도 주님 앞에서 해결되지 못할 것이 없음을 믿는가? 여러분의 육신의 질병도, 영적인 괴로움과 죄악도 모든 것이 주님께 나아올 때 온전히 치료될 수 있음을 믿기를 바란다. 세상의 의학과 심리치료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의 삶을 조금 유익하게 하거나 고통을 잠시 연기시켜 놓는 수준의 것이다. 그러나 참 치료자이시며, 창조주되신 주님은 우리의 육적, 영적인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며 온전케 하신다. 이런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심에도 불신하고 여전히 고민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는가?
본문 29절을 보면 이 귀신들린 사람을 위해 사람들이 취한 방법이 무엇인가?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여 놓고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올바르게 감당할 수 없었다. 이것이 인간의 수단의 한계인 것이다. 여러분의 삶의 고민이 있는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가? 일찍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하라. 주님께 나아올 때 치료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치료자되시는 주님의 치료하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3. 사람들의 반응
35절에 보니, 사람들이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고 말해준다. 37절에도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했다고 말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보았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권능과 역사가운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님이 떠나가시기를 구하고 있다. 이것이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의 모습과 자세였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음에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주님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육신의 질병이나 가정의 파탄에 이르는 문제들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한 사람들중에 이렇게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이 떠나시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주님 앞에 배은망덕한 행위인가? 혹시 우리의 모습이 주님의 주신 은혜에 대해 배은망덕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많은 백성들은 진정으로 귀신들린 사람을 아끼지 않고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귀신들린 그 사람을 사랑했다면 그가 온전해짐을 보고 기뻐하며 잔치를 벌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도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는데, 귀신들려 사람구실도 하지 못하는 잃은 영혼이 구원받았음에도 잔치는커녕 주님을 배척하는 그들에겐 영혼사랑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이 사람을 사랑해 주고, 축하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너무나 사랑이 매말라 버린 사람들이 허다하다. 진정 아파하는 사람과 같이 아파할 수 없고, 죽어가던 사람이 구원되었을 때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님의 마음을 품자.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돌아옴을 볼 때에 기뻐 뛰는 심령이 되기를 기도하자. 같이 기뻐하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는 사랑나눔교회 성도가 다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치유 받은 사람이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
4. 치유받은 자의 사명
그는 귀신에게서 해방되어 온전케 되었을 때 주님을 따르기를 원했다.(38절) 그는 오랜기간 사람들 곁에서 떠난 생활(무덤에서 지냄/사람으로서의 행동을 하지 못함)을 했기에 이제 온전케 되었지만 오랜시간 가졌던 외로움이 몰려왔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과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다른 삶을 요구하셨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큰일을 증거하는 것\\\"(39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들을 온 성내에 전파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의 사명은 구원받은 자로서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전하는 것이었다. 주님을 원하지 않는 그 땅에 주님을 증거할 사명의 사람이 된 것이다. ** 예수믿고 구원받은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주님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복음을 들고 예수를 증거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
①어떤 인간적인 조건을 보시지 않고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오자. 또한 주님이 영혼을 사랑하사 행하신 사역을 통해 우리도 주님처럼 고통당하고 병들고 외롭고 소외받는 영혼들을 주의 사랑으로 대하자. ②우리는 너무나 영혼에 대하여 쉽게 포기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주님은 영혼을 사랑하시기에 어떤 물질의 손해를 계산하시지 않고 그들을 온전케 하셨다. 영혼을 가장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갖자. ③어떤 세상의 문제들(육신의 질병, 영적인 괴로움과 죄악)도 모든 것이 주님께 나아올 때 온전히 치료될 수 있다.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돌아옴을 볼 때에 기뻐 뛰는 심령이 되기를 기도하자. 영혼 구원을 위해서 복음들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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