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고치시는 주님 막9:20-24
폴란드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음악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지도하던 담당교사는 늘 이런 비관적인 말을 했습니다. \\\'얘, 너는 손가락이 너무 짧고 굵어서 안되겠어. 유연성도 없잖아. 다른 악기를 선택해야 되겠어.\\\' 그 소년은 몹시 절망했습니다. 다른 악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악기에 몰입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만찬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에 한 중년신사가 그에게 다가와서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피아노에 탁월한 소질을 갖고 있구나. 조금만 다음으면 너의 천부적인 재능이 큰 빛을 보게 될 거야.\\\' 그는 이 신사의 말에 크게 자극받았습니다. 그 신사는 다름아닌 피아노의 거장 안톤 루빈스타인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그 소년은 하루에 일곱 시간씩 피아노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피아노의 천재로 컸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소녀의 기도\\\'를 작곡한 잔 파데레우스키입니다. 나중에 그는 폴란드 독립운동에도 가담해 대통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악교사는 소년 파데레우스키를 죽이는 절망의 언어를 여러 번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의 거장 루빈스타인은 그를 살리는 소망의 언어를 단 한번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죽어가던 그의 꿈과 열정은 단번에 되살아 났고 마침내 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됐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말이 중요합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 중에는 칼로 찌르는 말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병을 고치는 말도 있습니다. \\\'칼로 찌르듯이 말하는 것도 있으나 현명한 자의 혀는 병을 고치느니라\\\'(잠12: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루빈스타인의 그 말 한 마디는 파데레우스키의 그 절망적인 마음의 질병을 고쳐 주었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주님 자신이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러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1:1-3). 주님은 창조의 말씀이십니다. 주님은 영생의 말씀이십니다(요6:68). 말씀이신 주님은 그 말씀으로 적들을 격파하십니다. 주님은 어떤 종류의 칼보다도 예리한 그 입술의 말씀으로 사탄과 그 졸개들을 물리치십니다(계19:15). 주님의 말씀은 사탄과 그 졸개들을 무찌르는 성령의 칼인 것입니다(엡6: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말씀이십니다. 또한 말씀으로 싸우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말을 중요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말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찾아보십니다. 지금 디베랴 호수 건너편 광야에 5천명의 장년 남자들이 몰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어느 덧 날이 저물어 갑니다. 모두 다 허기져 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제자 빌립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빌립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해 이렇게 물어보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그러나 빌립은 불신앙의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6:5-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대체 빌립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차피 믿음이란 역설적인 게 아닙니까.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 믿음이지 않습니까(롬4:18).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 그대로 믿는 것이 어찌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지 않습니까(히11:1). 빌립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주님이 뭐 못하실 게 있습니까. 지금 주님은 무엇이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무엇을 하실지 친히 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빌립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현실에 얽매여 버렸습니다.
\\\'여기는 광야고 지금은 밤인데 우리에게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 그는 이 현실에 얽매이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불쑥 불신앙의 언어를 내뱉고 만 것입니다. 그는 시험에 탈락한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하필이면 빌립에게 이런 질문하신 것입니까. 다른 제자들을 제쳐놓고 그에게 질문하신 것입니까. 아마 그는 평소에 이리저리 잘 따지고 계산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말 속에 이러한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말입니까. 그러나 이 말 속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은 계산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계산해서 될 일이 있나요. 믿음은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계산하면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안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은 이리저리 따지지 말고 베드로처럼 시원시원하게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친히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테스트하시기 위해 이렇게 물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즉시로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실수도 많지만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믿음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가 마음에 듭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칭찬하십니다.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4-17). 주님은 또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많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겠다고 주님을 따랐으나 주님이 요구하시는 제자도는 너무 엄격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주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남아 있던 열 두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베드로는 즉시로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6:66-69). 베드로는 실수도 많지만 시원시원하게 믿음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 버린 상황에서 우리 주님은 이 베드로의 시원시원한 말에 얼마나 큰 기쁨을 얻으셨겠습니까.
믿음의 언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언어는 하나님을 진노케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여호수와 갈렙은 믿음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3:30, 14:6-9). 이 얼마나 확신에 찬 믿음의 말입니다. 이들의 믿음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기분이 너무 좋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14:24).
그러나 10명의 다른 정탐군들은 불신앙의 언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13:31-33). 이 얼마나 불신앙에 가득찬 말입니까. 이들의 불신앙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기분이 너무 상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진노하십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14:27-30). 하나님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약속입니까. 말조심해야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은 우리를 얽어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말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합니다. 말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전에 우리의 언어를 고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그러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에 앞서 기드온의 부정적인 언어습관은 치료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4-15).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하나님은 기드온의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미리 아시고 그 언어습관부터 교정시켜 주시려고 이렇게 선수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내가...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그러나 열방의 선지가가 되기에 앞서 예레미야의 부정적인 언어습관은 치료받아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1:6).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미리 아시고 그 언어습관부터 교정시켜 주시려고 이렇게 선수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어의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먼저 우리의 말부터 치료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은 우리의 부정한 입술부터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있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압도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가 이렇게 회개의 고백을 하자 하나님을 모셔 섰던 스랍 하나가 불수저로 제단 숯불을 가져와 그의 부정한 입술을 지져 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제 그의 입술은 정결해 졌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는 응답합니다. 정결한 입술로 응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슨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에 앞서 우리의 부정한 언어부터 치료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고쳐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등장인물은 간질병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이 아버지는 벙어리 귀신이 들린 아들을 고치기 위해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여기에 안계십니다. 주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변화산에 가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나머지 여덟 제자들에게 찾아와 귀신들려 발작하는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의 심정은 너무 막막합니다. 그래도 한 가닥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메시야로 소문난 예수님이 오시기만 하면 아들의 간질병을 고쳐주시리라는 한 가닥 소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이 때 우리 주님이 그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얼른 달려와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주의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이 말을 들으신 우리 주님은 그 아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귀신이 주님을 알아보고 그 아들에게 간질발작을 일으킵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그 아버지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주여,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러자 우리 주님은 되받아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아버지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아들을 고쳐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한 가닥 소망을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주여,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님은 그 아버지의 비신앙적인 언어를 믿음의 언어로 바꾸고자 하셨습니다. 간질병 아들을 고쳐 주시기 전에 그 아버지의 언어부터 고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간구와 소원을 들어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 주님은 우리의 언어부터 점검해 보십니다. 우리 언어에 믿음이 실려 있는지 살펴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정적인 언어를 믿음의 언어로 바꾸신 이후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 주님은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다그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정신차리고 믿음의 언어를 회복합니다. 소리질러 외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드디어 겨자씨만한 믿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을 쫓아 주십니다. 귀신이 소리지르며 나가고 간질병 아이는 고침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언어를 살펴 보십니다. 지금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가로 행차하십니다. 이 곳에는 다섯 채의 행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드러누워 있습니다. 그 중에는 38년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 병자에게 주님은 찾아 가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우리 주님은 그에게 소망의 언어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38년동안 한 곳에 드러누워 있으면 아무 소망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소망의 언어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자 그는 자기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쏟아놓습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다 밀어 넣어줄 사람이 없나이다. 그래서 내가 가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내 앞에 내려가나이다.\\\' 그는 자기 자신도 다른 병자들처럼 낫고 싶다고 애절하게 말합니다. 그는 주님께 소망의 언어로 말합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하십니다. 그러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 자체에 엄청난 파워도 주셨습니다. 먼저 우리의 말에는 사람을 죽이는 파워가 있습니다. \\\'...혀도 작은 지체지만 큰 일들을 자랑하느니라. 보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것을 태우는가. 혀는 불이요...일생을 불태워 버리나니...\\\'(약3:5-6). 우리가 불쑥 내뱉은 파괴적인 말 한 마디는 마치 불씨처럼 우리 인생의 숲 전체를 순식간에 태워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파괴적인 파워입니까. 에서는 장자권을 아주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망발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25:32). 에서는 그 말대로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장자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입술이 망령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파워도 있습니다. \\\'도가니가 은을, 용광로가 금을 연단하듯이 사람은 칭찬으로 연단되느니라\\\'(잠27:21). 우리가 던진 칭찬 한 마디는 결국 그 칭찬대로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창조적인 파워입니까. 시몬 베드로는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를 처음 만나자마자 \\\'장차 반석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그렇게 되었지 않습니까.
40대 중년 남자들이 대학동창 모임에 나갔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네 친구들은 각기 자기들의 인생살이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요즘 속이 상해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아마 간에 탈이 났을거야.\\\' 그러자 기업을 운영하는 친구가 그 말을 맞받았습니다. \\\'회사 문을 닫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야.\\\' 이번에는 고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하소연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을 가르칠 맛이 안나. 모두 때려 치워야지.\\\' 의사인 네 번째 친구도 뒤질새라 말했습니다. \\\'아내에게 실망했어. 아무래도 결혼을 잘못 한 것 같아.\\\' 몇 년 후에 네 친구들이 다시 만났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신 친구는 간암선고를 받았고 기업인 친구는 파산했습니다. 교사는 파면당했고 아내를 헐뜯던 의사는 이혼했습니다. 우리의 말 속에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인 여성기업가 오스틴은 여자 속옷으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녀는 뚱뚱한 여자들의 속옷만 판매합니다. 그녀는 대형 속옷의 이름을 뚱보형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퀸즈 사이즈라고 부릅니다. 그녀의 성공비결은 남이 듣기 좋은 말에 있습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성공을 불러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언어 속에는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창1:27).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처럼 엄청난 언어의 파워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은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1:19). 그가 말하는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지어졌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도 엄청난 창조의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동서남북 사방을 향하여 명령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라\\\'(사43:6). 하나님은 산을 향하여 명령하시는 분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4:7). 하나님은 땅을 향하여 명령하시는 분입니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렘22:29). 하나님은 천하를 호령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제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수6:2-5).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을 향하여 크게 소리질러 외쳤고 여리고성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리고성도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손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명령하면 아무리 난공불락의 성이라 해도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도 미디안의 적진 앞에서 크게 외쳤지 않습니까. \\\'기드온이...그들에게 이르되...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그래서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은 미디안의 적진 앞에서 크게 외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삿7:20). 그러자 미디안 적군은 혼비백산하여 서로 아군끼리 살륙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더러 믿음의 언어를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바벨론과 갈대아 인의 땅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라...그 사면에서 소리질러 칠지어다. 그가 항복하였고 그 보장은 무너졌고 그 성벽은 훼파되었으니 이는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이라...\\\'(렘50:1,15). 우리는 우리의 대적을 치되 소리질러 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언어로 소리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유다 사람이 돌이켜 보고 자기 앞뒤의 적병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은 나팔을 부니라. 유다 사람이 소리지르매 유다 사람의 소리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대하13:14-15).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언어로 소리칠 때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진 존재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4-5).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보다는 못한 존재이지만 천사보다는 더 나은 존재입니다. 타락한 천사든, 타락하지 않은 천사든 모두 우리의 손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천사를 부릴 수 있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천사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존재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천사들을 부릴 수 있습니다. 사탄과 그 졸개 귀신들도 타락한 천사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그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 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10: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탄과 그 졸개 귀신들을 제압하신 것이 아닙니까(요일3:8).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러한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님처럼 동서남북 사방을 향하여 명령할 수 있습니다. 산을 향하여 명령할 수 있습니다. 천사를 향하여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귀신을 향하여 명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머어마한 존재인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귀신에게 명령하셨고 질병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귀신에게 명령하고 질병에게 명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우리 주님은 풍랑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눅8:24).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도 믿음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눅11:23). 우리가 산을 향하여 말하고 그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말씀입니까.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믿음의 언어를 들으십니다. 한 문둥병자가 주님을 찾아와 절합니다. 그는 주님에게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허락하시기만 하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그러자 주님은 그의 말 속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8:2-3).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자기 앞으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크게 소리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옆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더욱 심하게 소리질러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십니다. 그를 데려오게 하십니다. 그는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로 달려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우리 주님은 그의 말이 어떤지 한 번 확인해 보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는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는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보는 것 외에는 소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의 말 속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라,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10:46-52).
한 백부장이 주님을 찾아와 간청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아마 이 백부장에 대해 우리 주님은 아주 좋은 감정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지도층이였던 로마군대 백부장이 뜨내기 청년 예수님을 찾아온 것 자체가 큰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백부장을 보십시요. 그는 다름아닌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부모형제나 처자식을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마음대로 부리는 종을 위해 오다니요. 그는 참으로 긍휼이 풍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우리 주님은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십니다. 이 백부장이 어떤 사람인지 금새 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런데 여러분, 이 백부장의 수준은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우리 주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엄청난 믿음의 언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도 된 것처럼 말합니다. \\\'주여,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하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긍휼한 마음, 그의 놀라운 믿음의 언어, 그리고 그의 겸손한 태도. 이 모든 것 때문에 우리 주님은 기이하게 생각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바로 그 때 그 백부장의 하인은 나았습니다(마8:5-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의 칭찬을 받은 이방인이 또 한 사람 더 있습니다. 바로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그녀도 믿음의 언어 때문에 주님의 칭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달려와 엎드려 간청합니다. 자기의 어린 딸에게 들린 더러운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녀의 언어를 시험해 보십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이스라엘 자녀에게 생명의 떡을 주려 오신 것이지 이방인 개들에게 생명의 떡을 주려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매정하게 쏘아 부치십니다. 그래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믿음의 말로 응수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러자 주님은 당장에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4-29). 우리 주님은 그녀의 말에 큰 감동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말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불신앙의 말을 할 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할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의 말을 하십니까. 불신앙의 말을 하십니까. 우리는 말하는 대로 얽매이게 돼 있습니다(잠6:2). 우리는 믿음의 언어로 풀 수도 있고 맬 수도 있습니다(마18:18).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응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민14:28). 아니,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언어로 구할 때 구하는 것에 넘치도록 응답하시는 분입니다(엡3: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언어로 우리의 질병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언어로 귀신을 쫓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언어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언어로 응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불신자처럼 주님 앞에서 우물쭈물거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주님을 뭘로 알고 하는 망발입니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어떤 형편에서든지 우리는 믿음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이렇게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른 손을 드십시요. 주먹을 쥐십시요. 저를 따라 외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의 말로 외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한 번 해보자. 끝까지 해보자. 될 때까지 해보자.\\\' \\\'하나님은 못하시는 게 없다. 큰 믿음, 염려 없다. 큰 믿음, 힘이 난다. 큰 믿음, 문제 없다.\\\' \\\'나를 가로막는 산아, 네가 무엇이냐. 평지가 될지어다. 나를 덮치는 파도야, 네가 무엇이냐. 잠잠할지어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야, 네가 무엇이냐. 풀어질지어다. 나를 죽이는 질병아, 네가 무엇이냐. 떠나갈지어다. 나를 속이는 귀신아, 네가 무엇이냐. 떠나갈지어다. 염려야, 떠나가라. 두려움아, 떠나가라.\\\' \\\'승리는 내 것이다. 기적은 내 것이다. 성공은 내 것이다. 건강은 내 것이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자유하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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