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먹고 억눌린자를 고치심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심/막7:31-37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심
막7:31-37





예수께서 이 땅에서 일으키신 24번째 기적은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를 지나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습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님에게로 와서 안수하여 주시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었습니다. 침을 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 하셨습니다. 이는 \\\"열리라\\\"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귀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소문이 주변에 퍼져나갔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일으키신 24번재 기적입니다.

이 기적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두로, 시돈, 데가볼리 그리고 갈릴리 호수 주변을 다니셨습니다. 읽으려면 5초밖에 안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6주는 되리라 여겨집니다.

벌은 항상 꿀을 찾아 다닙니다. 땅꾼은 항상 뱀을 찾아 다닙니다. 다이아몬드를 찾는 사람은 1g의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하여 18트럭의 광석을 케내어 다이아몬드를 찾아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영혼을 찾아 이렇게 다니시는 분이셨습니다. 날파리처럼 왔다 갔다 하시는 주님이 아니셨습니다. 영혼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찾아 다니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본문은 우리들에게 인간의 상태가 바로 귀먹고 어눌한 상태임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범죄하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과 늘 교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어디서나 언제나 들을 수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후의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둔하여 졌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못 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눌한 자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반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영적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가 벙어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귀먹고 어눌한 자는 바로 에덴동한 이후에 우리 인간의 상태입니다. 이런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예수님께로 어떤 사람이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 우리의 손길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할 귀먹고 어눌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의 가슴, 불타는 구령(求靈)의 뜨거운 심장을 전달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중매장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중매장이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치료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치유 하십니다. 본문에 나타난 치유방법은 독특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말씀이나 단순한 안수를 통하여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실 때에는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안수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안수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치유방법을 예수님에게 지정하였습니다. 내가 선을 그어놓고 그 안으로 주님이 들어 오시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능력많으신 우리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능력많으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사람들은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와서 \\\"고쳐 주십시요\\\"라고 요청하여야 하는데 안수하여 고쳐 주시옵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수하시지 않고 다른 독특한 방법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좀 우스운 방법, 좀 더러운 방법으로 고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33~34) 이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어떤 주님이신지 주님의 성격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씁니다.



1. 문제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병을 고치시기에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실 때에는 손을 사용하시고 침을 사용하셨습니다. 손가락을 귀에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아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에게 문제는 귀와 혀였습니다. 듣지 못하였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문제위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오던지 그의 문제를 정확하게 아시고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여야 처방이 정확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너희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이루어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라고 하는 말씀속에는 정치, 경제, 문화, 건강, 물질, 정신 그리고 영적 문제까지 무엇이든지 주님은 처리할 수 있으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2. 저주를 씻으러 오신 분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실 때 침으로 고치신 적이 몇번 있습니다. 벳새다에 예수님이 가셨더니 소경 한 명을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막 8:23)

또 실로암 못에서 소경을 고치실 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요 9:1~12 이 때는 좀더 진한 방법이었습니다. 진흙을 침으로 반죽하여 소경의 눈에 발랐습니다. 이같이 주님은 소경을 고치실 때 침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저주를 의미하는 단어가 세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침입니다. 침을 뱉았다는 것은 저주를 의미합니다. 침을 뱉으면서 축복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또 소경을 저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소경을 보고는 \\\"누구의 죄로 소경이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주를 의미하는 다른 언어는 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저주하실 때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저주를 의미하는 소경에 저주를 의미하는 침을 사용한 것은 남이 보기에는 이같이 저주같지만 주님은 모든 저주를 말끔히 씻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시청각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저주를 씻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3. 남의 어려움을 탄식하시는 분

예수님은 소경을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절정의 십자가입니다. 남의 죄 때문에 죽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셨습니다. 구약에서 짐승이 인간이 죄를 짊어지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고 죽으심은 스스로 하신 것이기에 값진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같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4~18)

에덴동산 이후에 인간이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가 주는 저주속에 있는 것을 아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것입니다.

4세기경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 안토니우스는 엄청난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러움없이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왔다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는 재산이 많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 청년의 이야기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지옥의 고통속에 있을 것입니다. 안토니우스는 이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많은 재산을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가죽 옷 한 벌만 세례요한처럼 입고 살았습니다. 집도 없이 굴속에서 살았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수도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가 어쩌다가 시내로 나오면 사람들은 짐승이 걸아가는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속에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번 입을 일기만 하면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남의 문제를 가지고 탄식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이것의 절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보시고 계시고 탄식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4. 말씀에 능력이 있으신 분

예수님께서 \\\"에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가 열렸습니다. 혀도 움직였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4가지 성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① 문제를 정확하게 아시는 분

② 저주를 씻으러 오신 분

③ 남의 어려움을 탄식하시는 분

④ 말씀에 능력이 있으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