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치유를 받으라

완전한 치유를 받으라/막5:25-34

완전한 치유를 받으라
막5:25-34





지난주에 우리는 야이로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혈루증 앓던 여인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마가복음 5장에서는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야기!
그리고 야이로의 딸이 죽은 이야기. 게다가 12년 동안 혈루증 걸린 여인이야기들이 나옵니
다. 맨 병들어 있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왜 이렇게 기록되었을까요? 간단합니다.
모두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 이야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금주에 우리는 정몽헌 회장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산 현대를 이끌던 사장이었습니다. 게다가 연세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사람입
니다. 그런데 자살을 택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큽니다.
정말 힘이 들었겠죠! 고통스러웠겠죠. 그래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겠죠.
그런데 숨막히는 고통 속에 죽음을 택하려고 했을 때가 바로 주님을 만날 때인데 라는 아쉬
움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인생을 이렇게 쉽게 생각할까요?
내가 치유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치유 받
아야 하는 것을 잊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 정몽헌 사장의 죽음은 바로 내 이야기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세 가지 사건은 바로 내 이야기입니다.
바로 내가 무덤에서 나를 자해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내가 딸이 죽었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내가 죄 속에 빠져 죽음의 혈루증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을 바라보고 오늘 완전한 치유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먼저 치유 받아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입니다.
그녀가 고통 당하는 근본원인은 무엇입니까? 신체적인 병입니다.
이병은 피를 쏟는 것입니다. 하혈입니다.
이것이 그녀를 힘들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인제거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육신이 병들었으니 병원을 가야 합니다. 의원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의사를 만났습니까? 예! 26절을 보세요. \\\"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
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였던 차에\\\"
병을 고쳤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고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이해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혈루증이 구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병인지 그것을 알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구약에는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레위기15:25 이하에 \\\"여인이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을 간다든지 그 유
출이 불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한 유출하는 날 동안에 그의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
한 때의 침상과 같고 무릇 그의 앉은자리도 부정함이 불결의 부정과 같으니 이런 것을 만지
는 자는 무릇 부정한 즉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인은 이렇습니다. 그는 피를 흘리기 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여자가 만나는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 됩니다.
만지는 물건마다 부정한 물건이 됩니다. 아이! 남편 모두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밖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십시오, 무엇이 힘들겠습니까? 그녀의 커다란 고통은 무엇입니까?
그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버림을 당한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큰 상처였습니다.
혈루증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의 병이 더 큰 것입니다. 이것이 치유의 포인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라비야라고 하는 가난한 노파가 집 앞 길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무얼 찾고 있는 겁니까?\\\" 노파가 대답했습니다.
\\\"바늘을 잃어 버렸어.\\\" 그래서 사람들이 바늘 찾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 길은 넓고 날은 저물어 갑니다. 곧 밤이 될 거예요. 그러니 어디서 잃어버렸는
지, 정확한 장소를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안 그러면 바늘 찾는 일이 어려울 것 같아
요.\\\"물었습니다. 그러자 라비야가 대답했습니다. \\\"집안에서 잃어버렸어.\\\"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할머니 미쳤어요? 집안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왜 집밖에서 찾고 있는 거예요?\\\" 노파가 말합니다. \\\"왜냐하면 집안은 어둡고, 여기는 환하
기 때문이지.\\\" 더 기가 막혔습니다. \\\"비록 여기가 환하다 하더라도, 길에서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길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집안에 등불을 가져다가, 거기서 바늘을
찾아야지요.\\\"
라비야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작은 일에 있어서는 어쩌면 그리도 똑똑한가. 그 똑똑함을
당신들의 마음을 위해서는 언제 사용할 건가? 당신들은 언제나 밖에서 찾고 있더구먼. 당
신들이 찾고 있는 것은, 당신들 안에서 잃어버린 것이야. 왜 바깥 세상에서 행복을 찾고 있
어?\\\"

그렇습니다. 라비야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병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병이 문제입니다.
혈루증 여인도 마음의 병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원인은 자신 안에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다가 어두운 곳에서 물건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첫째는 누가 이런 물건을 갖다 놓았냐 하면서 짜증내는 것입
니다. 자기가 부딪히고서 남의 탓을 하는 겁니다.
둘째는 \\\"어두워서 그랬구나! 먼저 불을 켰으면 되는데\\\" 하면서 자기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치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찾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혈루증 여인도 놀랍게도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행동을 합니까?

둘째, 치유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 혈루증 앓던 여인이 어떻게 치유를 받았습니까? 치유의 계기가 무엇입니까?
그는 의사가 해줄 수 없는 것을 알고 예수님에게 나오게됩니다.
내 안에서 요구하는 것이 예수님인지 알게됩니다.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그리고 예수님에게 가서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먼저 듣고 손을 댄 것입니다.

1. 그러므로 먼저 듣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무엇을 들었습니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마을에 오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소문에 귀를 기울였
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베드로가 수탉이 우는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 소리를 회개의 소리로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변 친지의 죽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루터도 벼락에 맞아 죽는 친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니콜라스 헬만은 겨울에 잎이 되어 떨어져 나무를 보고 회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예수의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교회나 가정은 모이면 예수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왜 믿음 생활이 힘들어 집니까? 예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발 예수의 소문을 들으십시오. 예수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것은 예수가 구원이
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째 의무는 듣는 것이다\\\"하였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예수님은 몸 전체가 귀였다\\\"하였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잘 듣고 예수님에게 치유의 소망을 얻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2. 그리고 나서 믿음으로 만지는 것입니다.
소문을 들은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에게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도 필요 없습니다.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거절을 당했던 아픔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12년 동안 상처를 받은 여인입니다. 돈도 없습니다. 고쳐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질문하겠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이 이 연인 한 명뿐이겠습니까?
아닐거에요.

요사이 가수들이나 탤런트들이 지나가다가 팬들에게 걸리면 머리카락부터 옷자락 단추는 물
론이고 온몸에 상처를 입는 다고 하더군요. 당시는 더 심각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병 고치는 은사가 있지 않았습니까? 엄청나게 모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손을 대었을 때 다른 사람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그게 무엇입니까? 믿음 아닙니까?

듀크 대학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쥐를 모아놓고 미로 찾기를 하였습니다.
한쪽 쥐에는 영리한 쥐, 또 다른 쪽은 미련한 쥐라고 이름표를 붙여 주었습니다.
결과는 영리한 쥐라고 써 붙인 쥐가 훨씬 빨리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이름표를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영리한 쥐라고 쓴 쥐들이었습니다.
여러 번 이름표를 바꾸어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 팀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쥐들의 문제가 아니라 쥐들을 관찰하는 사람들
의 마음의 영향력이라는 것입니다. 영리하다고 하는 믿음이 정말 영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엄청난 영향력을 보이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옷자락을 많이 잡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혈루병 여인의 믿음은 달랐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수님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터치가 예수님과 관계성을 가지기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사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과 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상관을 갖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내가 치유 받을 수 있어요. 내가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은혜 받을 수 있어요.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게 믿음입니다.

제가 볼 때 세상에서 제일 거짓말은 예식장의 서약입니다.
\\\"신랑은 죽을 때까지 신부를 사랑하고 지아비로 평생을 섬길 것을 서약합니까?\\\"
\\\"네!\\\" 큰소리하잖아요. 거짓말입니다. 얼마 못 갑니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서약을 가지고 부부가 되었다는 믿음을 갖기로 다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 이것이 예수님을 만나게 합니다. 바로 예수님과 연결이 됩니다.
우리는 놀라운 사건을 보게 됩니다.
29절을 봅시다. \\\"이에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 몸에 깨달으니라\\\" 순간적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순간적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몸에서 혈루병이 떠나갔습니다.
왜, 어떻게 해서? 다음 구절을 보세요. 30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고 스스로 아시고\\\" 예수님의 능력이 나간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능력, 귀신을 내어쫓았던 그 능력, 바람과 파도를 다스렸던 그 능력이
예수님으로부터 이 여인에게 나간 것입니다.
믿음으로 만졌더니 예수님의 능력이 여인에게 오게 된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부부가 서로 신뢰하고 믿는 순간 남편 것이 아내 것이 됩니다. 아내 것이 남편
것이 됩니다. 친구와 친구가 믿고 신뢰하는 순간 친구의 것들은 서로의 것들이 됩니다.
교인들이 신뢰하는 순간 진정한 교회 공동체가 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순간 예수님의 것이 누구의 것이 됩니까? 예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 축복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하십니까?
3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
에서 놓여 건강할 찌어다\\\"
당연한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러자 구원이 선포됩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요, 다시 세상으로요.
사실 원문은 평안을 향하여 가라는 뜻입니다. 너는 평안의 땅으로 가라.
네 인생은 새로워졌느니라. 이제 평안을 향하여 가라,
약속의 땅으로 새로운 삶으로 가라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평안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평안의 마음이 없을까요?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저희교회 교인들이 예수님을 만나 치유까지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평안의 땅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었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나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이 누구냐?
말을 해보아라!\\\" 그렇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어디에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치유입니다. 혼자 치유 받은 것은 완전한 치유가 아닙니다.
은혜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평안을 선포하십시오.
그래서 완전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