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병들어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병들어 있습니까?/막2:13-17

당신은 지금 병들어 있습니까?
막2:13-17





1. 서론

종합병원에 가면 많은 환자들이 몇 시간씩 진찰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몇 시간 기다려서 불과 몇 분 진찰하고는 돌아갑니다. 이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옛날처럼 의사들이 직접 환자를 찾아다니면 어떨까? 요즘은 다시 왕진의사가 늘어
나고 있어서 아무 때나 환자를 방문해주니까 매우 환영받는다고 합니다. 환자가 의사를 찾
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찾아다니는 의사 ---오늘 본문에서 만나게 됩니다.

2. 본문
13-14절을 보시면 두 그룹의 사람들이 대조가 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13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예수께서 무리를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여기서는 13절과는 대조적으로 레위 라는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가르치는 일도 귀하게 생각하셨지만 그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신 것은 차세대를 이어
갈 제자를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무리를 가르치시면서도 부지런히 그 해변가를
지나다니시면서 하나님의 일에 합당한 사람을 찾아내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레위\\\'라는 세금 징수원을 보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제자로서의 자질을 발견한 뒤, 그를 주님
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자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부르시는 모든 제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실성\\\'입
니다.

14절을 다시 보십시오. \\\'레위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레위 라고 불리우는 이 사람이
하는 일은 당시 사회에서 제일 인기 없고 멸시받는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레위가 살던 가
버나움이라는 도시는 항구도시로 무역을 통해 수입된 물건을 항구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운
반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수입되는 물건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고 그 세금의
일부를 자신이 가져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아름다운 일도 아니고,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인기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욕먹는 일이었습니다. 어쩌
면 악심먹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있
습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실 때, 보면 그는 언제나 세관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열심히 일하
고 있습니다. 비록 환영받는 일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예수께서 발견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일의 태도였습니다. 방향만 잘 잡아주면 크게 성공할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이것이 보인 것입니다. 성실한 것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최고의 재산이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이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
일합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통해서 일합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축구선수였던 차범근 선수는 성실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열
심히 부지런히 연습을 하는지 그의 모습을 보면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감독이
되어서도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메이져 리그의 타격 코치로 일하게 된 이만수 선수는 교회와
집과 야구밖에 모르는 연습벌레라는 것은 잘 알려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그의 성실성을
인정해서 코치직을 제안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튼 성실한 사람 앞에는 어떤 것도 이길
수 없습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마귀도 못해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가 가장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들, 변덕장이들입니다. 이들은 마귀의
밥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을 주면 금방 마음을 바꿔 도망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레위 에
게서 발견한 것은 바로 성실성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하시든지 성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14절 하반절에 예수님이 부르실 때 레위의 반응을 보십시오.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그에게는 순종하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
도 없이 그를 부르셨지만 그는 지체치 않고 따라 나섰습니다.

나를 따라오면 너의 장래를 책임지겠다는 말도 없었고
큰 재산을 주겠다는 약속도 없었습니다.
지위에 대한 약속도 직업에 대한 약속도 없었습니다.
자녀나 가문이 복받는 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그냥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레
위는 이 무모한 부르심을 무모하다 생각지 않고 따라갑니다. 이 장면을 눅 5;28에서는 이
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다.

그가 이것을 버렸을 때 그는 알았습니다. 한번 버리고 떠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그럼에도 그는 이 길을 택했습니다. 비록 인기 없는 직업이었으나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고 어부보다도 더 부유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르심에 이 모든
것을 툴툴 털어 버리고 따라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할 정도로 단순한 사람입니다.

14절을 잘 읽어보시면, 예수께서 부르실 때, 논쟁을 했다던지, 연기해 달라고 했다든지, 조금
만 더 기다려 달라는 얘기도 없었습니다. 즉시 순종하여 다 버리고 나갔습니다. 이런 순종
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선물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이
름은 \\\'레위\\\'에서 \\\'마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집니다. 마태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렸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것을 움켜쥐고 있느라 하나님의 것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데 이 사람은 자기것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자
기 것을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의 것을 받은 것입니다.

2)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 악명 높던 세금 징수원이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나오는 마태복음을 기
록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꼼꼼함과 정확함을 들어 성경의 한 책인 마태복음을 쓰
게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에는 숫자와 계산이 정확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3)그는 모으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는 모으는
재미, 빼앗 재미로 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베푸는 기쁨,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
다. 15절을 보시면 남의 것을 빼앗기만 하던 이 사람이 많은 친구와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돈으로 잔치를 베풀고, 그들을 대접하는 것을 봅니다. 이 잔치에서 그의 집이 드려졌고, 재
물이 드려졌고, 시간과 수고가 드려졌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
다.

오늘도 주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아무런 보장이나 조건을 주시지 않고 부르십니다. 유일한
보장이 있다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는 것 하나입니다.

제자가 되면 사업이 번창한다든지, 머리가 좋아진다든지,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다든지, 즐
거운 일만 생긴다든지 하는 말씀은 하지도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 없이도 얼마든지
인생은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요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은 가난해도 행복해 질 수 있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신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이런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
생의 행복은 \\\'누구를 따라 가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는 순간부터 행복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담대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따르면 행복해 진다는 것을.......
돈을 따르지 마십시오.
인기를 따르지 마십시오.
명예를 따르지도 마십시오. 친구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그
러면 만족합니다.

여러분께서 당시 사회에서 \\\'세리장이\\\'라는 직업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아신다면 어떻
게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을 부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리장이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정부의 하수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세금을 빼았아 로마 정부에 상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장이가 되면 회당에도 갈 수 없고, 가족은 멸시를 받게 됩니다. 공동체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창녀와 함께 대표적인 죄인 그룹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로 간주되었고,
자기 배만 채우는 이기주의자로 인식되었습니다.
특히 국가 종교인 유대교를 반대하는 로마인들을 돕는 사람들로 종교적으로 경멸의 대상이
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격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산에 가면 사자가 있고 거리
에 나가면 세리가 있다\\\" 이들은 한 마디로 억압과 착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갖게 돕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제자로 부를 수
있는가? 사람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16절에 보시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비슷한 질
문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저자인 마가는 이 본문을 통해서 이것에 대해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
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는, 인간의 의로움을 따라 부르시지 않고 그분의 은혜
를 따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레위\\\'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
상의 천하고, 부끄러운 사람을 들어서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많은 실
력 있는 사람이 있으나, 그들을 일군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누가 봐도 자격 없는 사람을 부
르시는 것입니다. 죄인이요 멸시받던 레위를 하나님의 일군으로 바꾼 것은 전적인 하나님
의 은혜입니다.

마9:9-13에서 마태는 자기가 부름 받았던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바로 세상에서 몹쓸 사람이었던 바로 그 마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이 되었습니다. 내가 바로 그 하나님
의 은혜의 산 증인입니다. 마태는 자기의 과거의 부끄러움을 지우려하기 보다는 그 부끄러
움을 그대로 남겨두어서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의 아름다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딤전 1:15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도대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얼마나 크기에 죄인중의 상 죄인 같은 사람들을 불러서 하
나님의 일군을 만드는 것입니까? 여러분과 저는 이 일의 또 하나의 증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경험치 못하는 사람도 있
습니다. 스스로 의로움에 빠진 자들입니다. 16-17절의 바리새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우
리는 이런 사람을 발견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가까이하
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더러운 자들을 가까이 하면 같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깨끗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죄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깨끗한 사
람은 남의 죄를 아파하지만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 비난으로 자신들이 더러워진다는 것
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달랐습니다. 나는 깨끗하니까 남을 비난해도 된다고 생
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났지만 의인이
라고 생각하며 죄인을 비난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비난하는 자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은혜가 거할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자신이 의사라고 소개하고 계십니다. 병원에 앉아 기다리는 의사가 아니라 찾아
가는 의사입니다. 찾아가서 치료하시고 건강케 만드시는 의사입니다. 그러나 치료만 하시지
감염되지는 않으십니다. 의사의 일은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수
고의 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상태을 진단하시고, 십자가에서 값을 치룸
으로서 모든 죄인을 치료하시는 의사가 되셨습니다. 고로 의사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와 질병으로부터 치유를 받습니다. 단 자신이 환자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환자인 것
을 인정치 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쳐서 처음처럼 회복시키려고 오셨습니다.
고통하는 자에게는 자유를 주시고
죄로 인해 죽어 가는 자는 생명을 주시고
더러운 자는 깨끗케 씻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넘어져있는 자에게는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엇인가로 고통 하
거나 아파하고 있다면 잘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당신을 위해 여기 오셨습니다.
이 의사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모든 질병은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은 단지 우리의 외적 증상만 일시적으로 치료할 뿐입니다.
죄된 마음의 본질적인 치유는 예수님을 만날 때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못 고치는 병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지고 계시는 치유의 은혜는 자신이 못났고 무가치하고 하
나님 앞에 쓰임 받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를 갈구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오늘도 왕진 가방을 들고 찾아가 치료하시고 만나주십니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나는 죄로 병들었고, 나 스스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의사이신 주님 나를 고쳐주십시오\\\"

죄의 병이든, 돈에 병들었든, 이기주의 와 욕심의 병들었든, 쾌락의 병이 들었든, 예수님께
나오면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