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사함과 치유의 은혜 막2:1-12
오늘 본문은 가버나움의 한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지붕을 뚫고 예수님에게 나아가 병 고침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은 것이나 예수님에게 있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의 문제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에게는 병을 고치는 능력만이 아니라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에 이 말은 실로 대단한 충격의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무 당황했습니다. 특히 서기관들은 분노하는 마음으로 서로 의논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죄 사함을 선언하셨으며 또한 성전과 율법의 의식을 전혀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이 죄 용서를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죄인이 어떠한 죄의 용서를 받으려면 반드시 율법의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변상을 해야 하며 거기에 해당되는 제물을 성전에 가서 제사장에게 바치고 제사장은 그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제사장이 그 제물에 해당되는 죄에 대한 정결의 선언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당시 병자들을 보는 유대인들의 시각은 모든 병은 죄로 말미암아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직 병이 낫지도 않았고 죄를 씻기 위해 율법의 의식과 성전의 의식도 치르지 않은 중풍병자를 향하여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셨으니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신성 모독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며 성전과 율법을 파괴하는 행동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보가 아니십니다. 지금 이런 예수님의 선언이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그 말 때문에 어떠한 곤경에 처하고 어떤 도전과 공격을 받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어려움을 아시고도 의도적으로 죄 사함의 선언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으며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인생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예수님께 나아오는 많은 사람들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여러 가지 문제로 나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생이 불안해서 오기도 하며 육신의 질병과 여러 가지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나아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바라는 도움은 우리 편에서 보면 정말 급하고 큰 일에 틀림없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그야 말로 작은 도움에 불과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있습니다만 이들 역시 이런 작은 도움을 바라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대부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런 문제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은 이런 작은 도움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기대를 가지고 나온 무리들에게 병을 고쳐주시지 않고 2절의 기록처럼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도는 바로 1장 15절에서 소개되었던 때와 하나님의 나라와 회개의 복음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정말 주고 싶은 것은 이 땅에서 잘되고 이 땅에서 문제가 없어지고 이 땅에서 병을 고침 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게 보이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것보다 훨씬 큰 것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으로 주어집니까? 바로 회개와 죄 사함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극한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을 아시면서도 바로 이 죄 사함의 문제를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사건 속에 들어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병이 나아야 하고 성전에 제물을 가지고 올라가야 죄 용서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오직 십자가의 참 제물이 되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그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고 누구든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약의 의식이나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죄 용서를 받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복음의 선언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치유와 기적은 바로 이 본질적인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은 바로 9절의 말씀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더 쉽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중풍병을 치료하는 것과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예수님에게는 병을 치료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것입니다. 그분이 원하시기만 하면 이 세상의 누구든지 다 치료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분의 말씀 한마디면 해결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의 문제는 하나님과 예수님에게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십자가에 죄인의 대표로 달려서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저주를 담당하셔야 합니다. 그 자신이 죽었다가 삼일만에 살아나셔야 합니다. 그래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성취가 됩니다.
지금 예수님이 병 고침과 이 땅의 문제들을 해결 받기 위해 예수님에게 몰려든 수많은 무리들 앞에서 중풍병자를 향하여 의도적으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선언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이 너희들의 문제 정도만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합니까? 그것은 병 고침 정도의 은혜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 땅에서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할 해결사 정도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다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천사만 동원해도 얼마든지 해결가능한 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의 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는 하나님이 단지 6일만에 완벽하게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인간의 죄를 처리하는 문제는 몇 천년을 가지고도 쉽지 않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시간 속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셔야 하며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며 또 성령을 주셔서 완악하고 패역한 인간을 설복하시고 오래 기다리시어 마침내 인간들에게 자발적인 회개와 뉘우침을 이끌어 내셔서 이루어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모든 것을 당신이 담당하실 것을 근거로 해서 어느 것이 더 쉬우냐는 질문을 던지시고 이 놀라운 죄 사함의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왜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반대와 공격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죄 사함의 선언을 하신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너무나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보고 단순히 예수님께 나아오고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고 복 받고 모든 것이 잘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시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너무나도 무지하기 때문에 알아듣기 쉽게 시청각 교재를 사용하신 것 정도이지 그것이 본질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바로 우리들의 죄를 사하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육신의 치료가 아니라 죄를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에 매여 있는 사람을 치료해서 새로운 삶,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이 크고 문제가 크고 육신의 질병의 아픔이 아무리 크다해도 그 고통과 질병은 결코 내세까지 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의 고통과 환경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 고통은 이 세상에서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세상과 함께 끝납니다. 그 고통이 우리의 관속에까지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죄와 죄로 말미암는 고통은 우리가 죽어 땅 속에 묻힌 후에도, 우리가 내세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그 순간에도 끝나지 않고 우리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선포하신 것은 바로 우리들의 죄가 이 땅에서 머무는 동안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의 병과 다른 고통의 문제는 짧은 이 땅에서 살 동안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는 이 땅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하늘에서 영원히 그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들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죄가 처리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용서받지 못한 죄는 하늘에서 용서되지 못합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고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죄를 사함 받지 못하면 하늘에서도 결코 사함 받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하늘에서는 무서운 진노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오늘 우리는 무엇이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어떤 분은 결혼이 죄 용서보다 어렵다고 생각하실 것이고 어떤 분은 유학해서 공부하는 것이 죄 용서받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취직해서 사회 생활하는 것과 이 땅에서 사업하는 것이 죄 용서받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 안에 있는 병이 치료가 되어서 건강한 생활을 하는 것이 죄 용서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 용서받는 것은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되는 쉬운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 땅에서 정직하게 사업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직장생활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어려운 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죄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 이렇게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기대하며 이 시간 이렇게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우리 생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셔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하시는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죄 사함을 받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가장 높은 봉우리를 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것은 훨씬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병고침의 문제와 우리의 고통 문제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직 우리가 진리에 대해 무지하며 죄 사함 받기 이전 과거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 사함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육신의 병만 치료되는 것은 잠시동안만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체 이 땅에서 문제가 없고 편하게 사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이 끝나고 내세에 갔을 때는 육신의 병과 이 땅의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죄 사함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로 살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선언하신 죄 사함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우리 신앙의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대해 분명한 이해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죄를 사한다는 말은 단순히 내가 지은 어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의 항목을 없애주고 면제해준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죄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 자체를 죄라 합니다. 모든 도적적이고 윤리적인 죄는 사실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뜻은 단순히 우리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행위적인 죄의 항목들을 없이해주고 면제해 준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죄를 사한 다는 것은 훨씬 근본적인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되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그 근원적인 문제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킨다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과 단절되고 원수 되어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았던 자리에서 회복되는 것이 죄를 사함 받는 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이제 우리를 다시 하나님 편으로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며 그렇게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소원하는 자리로 옮겨가는 것을 죄 사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 죄 사함,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동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중풍병자를 향하여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선언과 더불어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으로 치유의 은혜를 주신 것은 이제 너는 그 은혜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죄를 이기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삶은 이제부터 죄를 사함 받은 사람으로서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새로운 삶으로 출발되고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 받는 은혜를 입은 것은 그 은혜로 그저 내 삶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근심 걱정 없이 사는 것에 만족할 인생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토록 어려운 죄 사함의 은총이 주어진 것은 이제 내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의 영광스러운 자녀로서 그를 기뻐하고 그를 즐거워하며 그의 성품에 참예하여 영원한 그의 나라를 이 땅에서 증거하도록 부름 받은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존재와 행동과 말과 생각에서 거룩과 진리와 의로움과 생명으로 연결되어 내가 있는 어떤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과 오래참으심과 온유하심과 은혜로우심과 복주심을 전달해 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삼성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현대나 대우, 엘지를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삼성에 다니고 현대에 다니고 사업을 하고 우리의 삶을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것은 우리 삶의 주인되시고 나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선포하고 그 속에서 나의 존재를 통하여 나를 사랑하시어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을 향하고 이웃을 향하는 삶,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공의로우심과 진실하심과 오래참으심과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내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고 선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큰 것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 소원은 소박해요...그저 하루 세끼 먹고 남에게 손가락질 안 당하고 자식들 편안하고 남편 하는 일 잘되고 가족들 건강하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언뜻 들으면 겸손하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너무 신앙이 없는 말입니다. 이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은 이 작은 행복과 그 정도의 평화가 깨어질까봐 안달하면서 이 땅에서의 고통 없고 문제없는 삶을 위해 입막음으로 교회나오고 헌금하고 예배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유치한 신앙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구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의 은혜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의 침상을 들고 가는 은혜를 주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신 것은 그런 인생으로 만족하는 사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그저 하루 세끼 밥만 먹으면 만족하는 수준의 소원이 되면 안되요.....이제 여러분의 소원은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으로 맺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게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나의 삶 자체가 나에게 너무나 큰 의미와 만족과 기쁨을 주는 것으로 여러분의 소원과 목표는 바뀌어야합니다. 그것이 죄 사함을 은혜로 받은 자의 마땅한 삶입니다. 그것이 아들을 십자가에 다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목표입니다.
아무리 열을 내고 침을 튀기며 말해도 멀뚱 멀뚱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제 간이 자꾸 굳어 가는 이유가 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말씀에 대한 멀뚱 멀뚱한 태도가 저의 간을 굳게 만드신 다는 것을 아십시오....제발 좀 바뀌십시오. 세상에서 좀 그렇게 멀뚱멀뚱하게 사십시오. 세상이 우리에게 유혹하고 공격하는 죄와 악에 대해서 좀 멀뚱하시고 제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세상을 사모하고 추구하는 것만큼 열성과 간절함을 가지고 다가오십시오. 오늘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내고라도 예수님께 나아왔던 것처럼 그런 간절함과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에 대해 갈급 해 하시고 사모함을 보이십시오.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이 여러분의 소원이 되도록 갈망해보십시오. 그런 심정으로 예배를 기다려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이 예배가 되도록 애써보십시오. 오늘 중풍병자가 받았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며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쏟아질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