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믿음과 그 아들의 치유 마17:14-20
우리는 또다시 실록의 계절 5월,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싱그러운 오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또다시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자식들과 어버이들, 그리고 우리의 스승들을 특별히 생각하게 하는 뜻깊은 계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 뜻깊은 계절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는 5월 5일은 국가적으로는 어린이 날이며, 그 다음날인 5월 6일은 우리 교회가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우리가 먼저 우리의 자녀들, 특히 우리의 장래이며 우리의 희망이 되는 이 당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우리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해는 어린이 주일을 지키면서 \\\'위대한 어머니와 그 자식\\\'이란 제목으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금년도 어린이 주일의 설교본문을 마태복음 17장 14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해서 \\\'아버지의 믿음과 그 아들의 치유\\\'란 제목으로 말씀을 명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설교본문이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4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아멘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오늘 우리의 본문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첫째 부분은 예수께서 간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를 고치신 이야기이며(14-18절), 둘째 부분은 믿음에 대한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입니다.(19-20절) 그러나 이 두 부분은 한 가지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란 주제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본문 중에 주목할 낱말이 있는데, 그것 역시 \\\'믿음\\\'이란 말입니다. 17절과 20절에서 \\\'믿음\\\'이란 단어가 세 차례나 반복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본문은 한마디로 말하면 믿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믿음이 간질병 환자를 고치는 능력이며, 그 반대로 믿음이 없음으로 간질병 환자를 고칠 수 없었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믿음\\\'이 주제가 되어있는 본문의 등장 인물은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간질병에 걸린 아들과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배경은 변화산 아래이며, 때는 예수님과 그의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온 바로 그 때입니다.(마 17:1-13)
바로 그 때에 한 아버지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업드리어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본문은 그 아이의 질병이 \\\'간질\\\'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질은 일반적인 질병이 아니라 귀신에게 사로잡힌 질병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간질병이 간헐적인 발작을 일으키기 때문에 고대 사람들은 귀신에 의하여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발작 시에는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질\\\"정도로 대단히 위험하고 심각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아버지는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자식을 키워 본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특별히 중병에 걸린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그 간질병 환자의 아버지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고통스럽겠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토록 아들의 질병으로 인하여 가슴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한 아버지가 예수께 찾아온 것입니다.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께 간청합니다. 그 아버지는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내 아들을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제자들도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을 고칠 수 잇는 권능을 예수님께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제자들이 그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하였을까?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로부터 치유의 능력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본문 2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믿음이 적은 연고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귀신을 내쫓을 수 잇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즉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과 함께 역사하는 성령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역사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그 능력에 자신을 맡기는 인격적인 믿음이 있어야 했는데 제자들에게는 그것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다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라\\\"고 하십니다. \\\"산을 옮긴다\\\"는 표현은 불가능한 것을 행하는 것에 대한 격언적 표현입니다. 겨자씨는 작은 것의 비유로서 쓰여지는 것인데, 여기에서 예수님은 과장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과장법을 사용하시는데, 이 과장법은 청중들에게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오래 기억되게 하는데 효과적인 수사학의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마 21:21 참조).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에 의하면 적은 정도가 겨자씨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17절)와 구분하여 제자들을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적은 믿음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훗날 적은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순교까지 하는 큰 믿음으로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저는 오늘 \\\'믿음\\\'을 주제로 하는 이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모할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 보다는 오히려 예수님과 간질병을 가진 아들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아마 그것은 이 본문이 어린이 주일의 본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한 아버지의 애타하는 마음, 병든 자식으로 인하여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연민의 정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버지에 대한 이 같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토록 애쓴 아버지에 초점을 맞추어 본문의 치유사건을 조명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을 것은, 아들의 병을 치유하는 일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아들의 병이 낫기까지 아버지의 역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버지의 역할이 아들의 병을 치유하는데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본문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쏟아놓는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는 강한 믿음입니다.
병든 아들을 가진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나아가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한 것은 바로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불쌍히 여기고 잇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질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이 불쌍해서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발작할 때는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꼴\\\"을 가슴이 아파 도무지 볼 수 없으니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쌍히 여기는 일은 긍휼히 여기는 일이며, 이것이 곧 사랑입니다. 이 같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 긍휼의 마음이 아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불치병에 걸린 아이는 자기의 힘으로는, 자기 혼자로는 도무지 예수님께로 갈 힘도 의지도 없습니다. 그 누군가가 예수께로 인도해야만 예수님께로 가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일은 아버지가 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치유의 경험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병을 치유하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아버지의 믿음입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편에서의 일입니다. 병든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께 나아가 꿇어 엎드렸습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한 것을 의미합니다.(마 27:29, 2:11) 본래 \\\'절하다\\\' 또는 \\\'경배하다\\\'는 뜻은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그 아버지가 예수께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바로 예수께 절한 모습이며, 이것은 예수님을 신적인 존재로 인정한고 받들어 섬겻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아버지의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표시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아버지의 믿음을 나타낸 것이 그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이 기도에서 \\\'주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신적 존재로 여긴 기독론적인 고백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마태복음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점은 아버지의 신앙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며, 이 같은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의 병을 치유하는데 한 몫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같은 아버지의 믿음이 어떤 읻음입니까? 그의 믿음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신적능력과 권능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그 아버지는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속수무책인 막다른 골목에서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온 것입니다. 제자들도 병든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도 병든 아들의 병을 치유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버지는 빈 손으로 예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여 두손 들고 예수께로 나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같은 믿음이 아들의 병을 고치게 하였습니다. 빈손으로, 오로지 빈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드는 그 믿음이 아들의 병을 낫게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여기에서 저는 오로지 빈손으로, 하나님의 절대능력의 손을 붙들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붙들고 평생토록 목회한 한 목회자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는 19세기에 독일의 한 농촌에서 목회한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 Christoph Blumhardt, 1805-1880)목사입니다. 블룸하르트 목사님은 독일 남부지방 쉬발츠 발트(黑林)의 한 작은 시골 마을 메트링엔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의 교인 중에 디트스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기이한 일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신장병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녀는 이상한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이상한 것이 귀에 들리기도 하는 경험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악령에 사로잡혀 고통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블룸하르트 목사님은 악령에 시달려 고통을 당하는 고트리빈 드투스(Gottliebin Dittus)를 치유하기 위한 영적 투쟁을 2년 9개월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2년 9개월 동안 참으로 힘겨운 투쟁을 하였습니다. 참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합심하여 금식기도하며, 때로는 가정방문을 하여 환자와 함께 예배도 드렸습니다. 온 교회가 목사님과 함께 정성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회투쟁을 벌린 것입니다. 그같은 목회투쟁을 하는 중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기는커녕, 날로 더욱 악화되는 현상을 보면서 블룸하르트 목사님은 일종의 분노가 생겼습니다. 그 때 환자를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우리들은 오랫동안 악마의 행동을 보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겠습니다.\\\"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같은 기도를 한 이후부터 블룸하르트 목사님은 굉장한 능력에 이끌리어 영적 싸움을 하게 되었고, 결국 환자의 건강을 회복하는 영적 투쟁에서 승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블룸하르트 목사님의 기도에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들은 오랫동안 악마의 행동을 보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자 합니다.\\\"라는 이 기도는 목회자의 무기력(Ohnmacht)에서 예수님의 절대능력(Vollmacht)을 붙들고 하는 기도라 하겠습니다. 또한 이 기도는 블룸하르트 목사님께서 하고 있는 이 목회투쟁은 목사님 자신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예수께서 이끌어 가시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블룸하르트 목사 자신은 다만 예수님의 종으로써 예수님께서 하시는 영적 투쟁에 있어서 도구일 뿐이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목회투쟁에서 결국 고트리빈 디투스가 악령에서 벗어나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때 블룸하르트는 목회투쟁에서 자기 자신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의 힘을 누르고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놀라운 목회투쟁에서 승리한 이후부터 블룸하르트 목사님은 평생토록 \\\"예수 이겼네\\\"(Jesus ist Sieger!)라는 것이 그의 목회 좌우명이 되어 목회를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토록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목회자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오로지 주님의 절대능력을 붙들고 목회 투쟁을 한 위대한 목회자 블룸하르트 목사님의 모습은 어쩌면 간질병에 결려 고통당하고 있는 아들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와 전적으로 주님의 절대능력을 붙들고 간청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이 날을 맞이하고 또한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 특히 자식들로 인하여 가슴 아파하며 고통가운데 있는 아버지들이 이 땅에는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불치병으로 고통가운데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유괴당한 아이들,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들, 화제로 인해 집단적으로 꽃다운 나이에 불에 타 죽은 수많은 아이들,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들, 먹을 것이 없이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이 아직도 이 땅에는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이 가정의 달에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것은, 수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어린이 유기는 부모들의 이혼으로 인해서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보호와 양육의 책임을 포기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 가운데 75%가 살아있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고아 아닌 고아\\\'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들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학교나 거리에서 학생이나 불량배들에게 의해서 폭행당하는 어린이들, 심지어는 부모들로부터 매를 맞는 신체학대를 당하는 어린이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더욱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들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같은 경악스러운 범죄에 직면한 이 사회는 바로 위기라 하겠습니다. 이 위기는 바로 \\\'심판\\\'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앞에 서 있습니다. 이 땅의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은 이 땅의 아버지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아버지들은, 이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앞에서 \\\'어찌 할꼬\\\'라는 위기 의식을 가지고 회개하며,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간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 깊은 사랑과 믿음으로 애쓴 그 아버지처럼, 이 땅에 아버지가 되는 우리들은 우리 자식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잘 양육할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 아직도 질병과 투쟁하고 있는 아이들, 먹을 것이 없이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받고, 버림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내 자식들처럼 생각하여 그들을 진실로 사랑하고 그들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