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12:9-13
만약 제가 지금 목회를 그만두게 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마땅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기는 하겠지만 가진 기술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고, 세상사람이 말하는 백도 없는터에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굳이 일을 찾는다면 지금까지 가르치는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아마 그런 종류의 어떤일을 해보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마침 저는 대학다닐 때 교직을 이수한 까닭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그 자격증을 가지고 이리저리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거나 아니면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할 것 같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하시고 있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어떤 일을 다시 하시게 될 것 같습니까? 사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업을 시작하려면 자본이 있어야할 것이고, 직장을 다시 구하려면 요즘같은 세상에 자격증 한두개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없으면 하다못해 몸이라도 건강해야 새로운 어떤 일을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자니 자본이 없고, 특별히 미래를 생각해서 따놓은 자격증도 제대로 없을 뿐 아니라,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그 흔한 운전면허증 하나 없고, 심지어 건강마저 좋지 못한 상태에서 직장을 잃어 버리게 될 경우 거의 절망에 가까운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 석공이 한 분 있습니다. 돌을 깨트려서 작품을 만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분의 손에 마비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석공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오른손에 마비 증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분은 지금까지 돌을 깨트리는 일만 하신 분입니다. 한 평생동안 다른 일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석공으로만 일평생 일을 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마비 증세 때문에 오른 손을 쓸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석공은 왼손에 정을 들고, 오른손엔 헤머를 들고서 힘껏 정을 내리치면서 작업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오른 손에 마비증세가 일어나 헤머를 잡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더 이상 석공의 일을 할수 없게 되어 하는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분은 실직자가 되었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돌을 깨는 것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본 일도 없고, 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석공의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월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장인(匠人)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통장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직장을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당장 내일 끼니를 염려해야 할 지경에 놓인 것입니다.
그분은 다른일을 할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자본이 있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돌 깨는 기술외에 다른 기술이나 자격증을 소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직장을 구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오른손의 마비증세는 그분의 활동마저 제한시켰습니다. 그러니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부터 사실은 먹는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일까요? 여러분도 잘 아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본문 9-10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사이를 지나다가 밀을 잘라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님에게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일을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그 밀밭을 떠나서 회당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날도 역시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어떤학자는 밀밭사건이 있은 직후, 예수님께서 회당에 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밀밭에서 있었던 그 안식일과 회당에 간 안식일은 동일한 날이 됩니다. 또 어떤 분은 밀밭사건이 있었던 그 날이 아니라 그 다음 어느 안식일이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에서는 \\\'또 다른 안식일에\\\'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제 안식일에 대한 논쟁장소가 밀밭에서 회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회당은 율법을 가르치고, 교육을 실시하는 장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대신하여 기도와 예배를 드렸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일을 결정짓는 회의소나 집회소로 활용되었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회당은 매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안식일과 절기가 되면 그들은 이곳에 모여서 율법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중요한 사안을 결정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가셨을때가 안식일인 것으로 보아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곳에서 안식일에 대한 논쟁을 벌입니다. 왜 그들은 사람들이 많은 이 회당에서 논쟁을 벌이려 하는 것일까요? 이런경우를 추론해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똥개도 자기 집앞에서는 50점 따고 들어간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웃골목에서는 쪽도 못쓰는 똥개도 자기집앞에만 오면 마치 자기가 \\\'세퍼트\\\'나 된 것처럼 으르렁거립니다. 어렸을 때, 남의 동네에 놀러갔다가 그 동네아이들에게 한 대 맞은 기억이 있으십니까? 그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 우리동네 오면 죽어!\\\"
회당은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자기 집과 같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회당이라는 장소에서 항상 중심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저희 회당\\\'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적어도 50점은 미리 따놓고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밀밭\\\'이라는 어웨이(away)경기에서 패한 바리새인들이 이번엔 \\\'회당\\\'이라는 홈(home)경기에서 멋지게 한번 이겨보려고 회당이라는 홈그라운드를 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는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에 왜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리새인들이 데려다 놓은 것일까요? 물론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이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이 이곳에 온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유독 이사람을 지목하여 논쟁을 벌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홈그라운드의 이점(利點)을 십분발휘해서 이곳에 어떤 사람이 오며, 그중에 어떤사람을 지목해서 질문해야할 것인지도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하는 질문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했을때에는 적어도 그들 나름대로는 예수님께서 빠져 나올수 없는 몇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그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송사하려는 사람이 아무런 대책없이 송사하겠습니까? 적어도 그들나름대로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텔레비젼을 통해 청문회나 혹은 국정감사때 의원들이 질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개는 증인들이 \\\'모릅니다\\\',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됩니다.\\\'라고 말하면 더 이상 질문하는 의원들이 말을 못합니다. 대개 그런경우는 의원들이 충실하게 사전에 준비를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러나 가뭄에 콩나듯 가끔씩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지고, 또 자기의 의도대로 논지를 끌고감으로서 의외의 답변을 증인들로부터 이끌어 내는 경우를 봅니다. 이런 경우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밀밭에서 한번 패한 바리새인들이 회당이라는 장소를 택해서 자신들의 패배를 만회해보려고 했다면 적어도 철저한 준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손 마른 사람을 두고서 예수님을 향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질문했을때에는 보통질문이 아닙니다. 원문에 따라 충실하게 번역을 한다면 이 질문은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지금까지 지켜오던 안식일 규례에 합당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기들의 안식일 규례에 맞지 않는 이상한 답변을 한다면 이것을 근거로 예수를 고소할 참입니다. 그들의 규례에 의하면 이 당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행위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질문에 대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다\\\'라고 하면 안식일 규례를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손 마른 사람은 생명이 위급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여기에 나오는 \\\'손 마른 사람\\\'은 돌을 다루는 석공이었고, 중풍으로 인해 피가 통하지 않아 마비증세를 보인사람이라고 합니다. 특히 의사였던 누가는 그의 마른 손이 오른손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석공으로 일하던 사람이 질병으로 인해 오른손에 마비증세를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를 많이 흘려서 생명이 위독한 것도 아니고, 다리가 부러져서 움직일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바리새인이 보기에는 지금 당장 고쳐주지 않아도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사람을 고쳐준다면 안식일 규례를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지금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예수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말씀을 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 결정될판국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규례에 어긋나는 말을 한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벌떼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 한 개인의 대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켜온 안식일 규례가 잘못되었고, 자기들도 그 잘못된 규례를 지금까지 지켜왔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몰매 맞기 딱 좋은 장소입니다.
대구에서 프로야구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이승엽선수의 홈런 신기록을 지켜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야구장에 몰렸습니다. 사실 그 경기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삼성을 응원하는 대구의 팬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이 이기느냐? 지느냐?보다는 이승엽선수가 홈런을 쳐서 아시아 신기록을 경신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승엽선수에게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텔레비젼 카메라도 수비하고 있는 이승엽선수를 연신 비춰 주었습니다. 마지막 타석이 될 수도 있는 4번째 타석에서 상대방투수가 던진공에 맞았습니다. 몸에 맞는 공으로 1루에 진루할 수는 있었지만 관중들은 홈런 칠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무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물병을 집어던지고, 기타 오물을 마구 경기장으로 집어 던져서 한동안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지금 회당에 모인 사람은 이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은 사람들로 둘러쌓여서 도망도 갈수 없습니다. 말한마디 잘못하면 큰일납니다. 이곳이 바리새인들의 홈그라운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져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공을 주면 어떻게 됩니까? 홈런을 맞게 됩니다. 그 투수는 55호 홈런을 맞은 비운의 선수로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서 바리새인들의 논지와 회당에 모여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거짓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온 그 모든 사역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맙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분은 진정한 메시야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에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중차대한 기로에 예수님이 서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을 하십니까? 11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하시면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의 예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동물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그 동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두가지 규정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동물이 웅덩이에 빠졌을 경우 그 상황이 동물의 생명에 아주 위급하다고 판단되어지면 그 동물을 건져주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위급하지 않을 경우라면 식물을 갖다주어 그 다음날까지 지내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이런 규례를 정해놓은 것일까요? 정말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이런 규정을 정해놓은 것일까요?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동물을 건지는 행위도 노동에 속하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고, 동물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것도 노동에 속하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런 규례를 정해놓은 것일까요?
사실은 하나님앞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생각보다는 비록 안식일이라할지라도 재산상의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동물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허락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의 논지는 너무도 명석합니다. \\\"구덩이에게 빠진 동물에게도 하다못해 먹이를 던져주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이 위태할 때는 건져주기도 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것은 더 옳고, 더 합당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이 말씀앞에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 말씀이 \\\'틀렸다\\\'고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만약 반론을 제기하거나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자기는 짐승만도 못한 꼴이 되고 맙니다. \\\"나는 하찮은 동물보다도 더 하찮고 형편없는 사람입니다.\\\"하고 스스로 광고하는 것이 되고맙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 석공은 아주 절박한 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단지 중풍으로 인한 신체의 마비증세만 보고 \\\"죽을 병이 아니다\\\" 하여 안식일에 이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 주님은 어떤분이십니까? 주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석공이 가진 유일한 기술은 돌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더 이상 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요즘처럼 연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직장에서 퇴직했다고 퇴직금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 직장을 그만두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텐데 이 사람의 신체는 일할만한 상태가 아닙니다. 오른손이 마비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나옵니다. 그는 나면서 앉은뱅이된자라고 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성전입구에서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는 어떠했겠습니까? 오른손이 마비되어 더 이상 일을 할수 없게 된 이 사람은 당장 먹는 문제를 걱정해야만 하는 아주 딱한 사정에 놓인 사람입니다. 그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돈이 많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는 가진 돈이 없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석공이 전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한가지 밖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마비된 손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게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만이 이 사람이 살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단지 손 하나를 못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닙니다. 며칠 굶는다고 사람이 쉽게 죽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마른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생사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알 턱이 없습니다. 배고파보지 않았는데 남이 얼마나 배고픈지 알수 없습니다. 이해하는 척 할 수는 있지만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손 마른 것만 가지고 안식일 범하는 문제를 논했습니다. 정말 그가 손 마른 것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가운데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사람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그가 손마른 이후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해왔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어져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감히 동물을 건지는 것에 견줄수 있겠습니까? 동물도 웅덩이에 빠졌을 때 안식일이지만 건져주기도 하고, 먹이도 던져주는데 그보다 더 귀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이제 아무도 예수님이 하실 행동에 대해 저지하거나 반론을 펼만한 사람도 없고 명분도 없습니다. 오히려 몇마디 거들다가는 자신들이 더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될 지경입니다. 안방에서 기세등등하게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가려 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어떠할 것같습니까? 얼마전 일본과의 축구경기때 원정경기에서도 지고난 뒤, 와신상담(臥薪嘗膽)했지만 홈경기마저 진 우리선수들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지금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13절에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라 하시고는 그의 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치유해주셨지만 그것은 손만의 치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금 당면해 있는 가장 절박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규례에 얽매여서 절박한 상태에 놓여있는 손마른자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아셨습니다. 아셨을 뿐 아니라 그를 치유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처지에 있는지도 아시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아십니다. 아실뿐 아니라 해결하실 능력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바리새인처럼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는 질문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앞에 순종할 차례입니다. 손마른자는 \\\'손을 내밀라\\\'는 말에 두말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고쳐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치료하기 위애 어떤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기에 그냥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왼손과 같이 마비되었던 오른손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그저 순종하는 자세로 손을 내 미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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