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십니다 마12:9-15
우리는 지금 정보화 시대에서 대단히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한 조사 기관이 미국의 아버지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면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조사 해 보았더니,
①피곤하다 ②돈이 없다 ③조용히 해라 는 말들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모님들 말 중에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부나 해라 하는 말이라고 하죠.
피곤하다. 돈이 없다. 조용히 해라. 공부나 해라. 이러한 소리들 때문에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여러분들 무척이나 심적 부담과 함께 피곤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사회는 사회문제로 가정은 자녀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노후의 문제로 피곤하고 나아가서는 자기 향상과 성장을 위해서 달리다 보니 아예 피곤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와 자존심 또 체면을 위해 예수님을 송사할 생각만 하게 되는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선한 일을 하시는 주님을 송사하며 죽이려고 하는 피곤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가장 큰 이유가 질투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무서운 것이 질투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속에 고민이 있는 것도 바로 이 질투 때문인 것입니다. 질투심 이거 정말 무서운 거예요. 사람 잡습니다.
어느 책에서 보니 승부욕이 강한 사람에게는 운동하는 것이 하등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운동을 안 하는 것이 건강관리에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죠.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운동을 하면서도 남보다 더 잘 하려는 생각만 하게 되니 매사에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운동하러 왔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죽기 십상이니까요.
나보다 상대가 운동을 더 잘해도 질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적당히 건강에 도움만 되게 하면 되는 거지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떻습니까? 남한테 이기려고 바락바락 애쓰다가 그만 과로와 심장마비 혈압 등으로 죽고 맙니다.
앞으로 우리 김해삼일교회는 전교인 야유회나 체육대회를 가질 때 너무 승부욕에 사로잡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합시다.
성도 여러분! 피곤하십니까? 피곤한 우리 인생이 오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은 예배를 귀히 여기는 사람을 찾아 주십니다.
09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회당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예배드리는 날 주님이 찾아주신 그곳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예배드리는 날을 아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고대 교부 제롬에 의하면 이 사람은 본래 석수장이로서 오른 손을 사용하여 먹고살던 사람이었는데 그만 그 손이 오그라들어 불구자가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생계가 어렵게 되어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피곤한 인생이 되었는데 누가도 그 사람의 손은 역시 오른 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06:0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 새 거기 오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오른 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대단히 곤란한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오른 손을 사용하여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른 손을 쓸 수 없었기에 어쩌면 생활력을 상실하여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고 행동도 부자유하여 장래에 대한 희망도 별반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회당에 나간다고 해도 특별히 누가 사랑을 해 주거나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는 일이 없었을 것인데 그래도 꾸준히 나간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 때문 아닐까요?
바로 그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이 예배드리는 날을 아주 귀하게 여겨 회당에 예배드리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불쌍히 여김 받고 고침을 받아 삶에 살맛이 나고 신바람이 나는 기적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은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장소로서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아뢰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전에 나온 것은 우리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우리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개별 초청입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나의 모든 생애를 아시는 하나님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불러내신 겁니다(사 43:01,03).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귀를 막아 버린 채 멀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혹 여러분 교회를 다니면서도 수확의 열매를 못 맺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어려움이 자꾸만 생긴다면 혹시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을 멀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남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특별히 손 마른 사람 그러면서도 예배에 정성을 들이는 한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은 무력한 사람들을 돌아보라는 하나님 명령을 자주 소개하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손 마른 사람 즉 장애자를 돌아보시고 고쳐 주셨으니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병을 고친 이 날이 안식일이므로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일로 인해 시비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눅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 팔 년 동안 귀신들려 있는 여자를 고치실 때도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 고침을 분 내어 시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눅 13: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2. 왜 안식일에 병을 못 고치라고 합니까?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성경은 십계명에 관한 조항을 간단히 다룸)
출 20: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성경은 일하지 말라는 선에서 간단히 끝나고 있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이 지키는 율법에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가리키든 교재인 구전 율법 미쉬나에는 하지 말라는 명령어 365조와 하라는 명령어 248조 등 613조가 있었으며 그 중에 39가지의 안식일에 관한 금기 사항이 있습니다. 간략히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씨 뿌리지 말라, 밭 갈지 말라, 추수하지 말라, 단을 묵지 말라, 타작하지 말라, 곡식을 까불지 말라, 곡식을 씻지 말라, 곡식을 바수지 말라, 곡식을 가리지 말라, 반죽하지 말라, 떡을 굽지 말라, 양털을 깍지 말라, 빨래하지 말라, 타격하지 말라, 염색하지 말라, 실 잣지 말라
실을 뒤틀지 말라, 두 끈을 묵지 말라, 두 실을 맞추어 짜지 말라, 짜여진 실을 풀지 말라, 매듭짓지 말라, 매듭 풀지 말라,(옷고름을 풀지도 매지도 말라)두 조각의 베를 깁지 말라.(곧 바느질 말라)
깁기 위하여 베 조각을 찢지 말라, 노루를 잡지 말라, 죽이자 말라, 동물의 껍질을 벗기지 말라, 껍질을 소금에 담그지 말라, 가죽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 머리털을 밀어내지 말라, 머리털을 깍지 말라, 두 글자를 쓰지 말라, 두 글자를 쓰려고 다른 글자를 지우지 말라, 건축물 짓지 말라, 부수지 말라, 망치질하지 말라, 불을 끄지 말라, 불을 켜지 말라(불이 꺼져 있으면 켜지 말고 켜져 있으면 끄지 말라) 이사하지 말라.
이 규례대로 한다면 죄인 아닐 사람이 없을 것이며 결국 이러한 것들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저것 많은 조항을 덧붙여 놓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여러모로 의논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10절의 안식일 지키는 문제였습니다.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송사하려 하여. 이 말은 원문에서 엿보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올무에 걸려들기만을 관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송사하기 위하여 행동이나 말씀 하나 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죄를 범하도록 조건을 만들어 놓고는 편견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손 마른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옳다구나 저 사람을 보고는 예수가 가만히 있지 않을 터니 오늘 잘 걸렸다. 잘 걸렸어.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대충 보아 넘어가야지 걸고넘어지겠다는 듯이 예민하게 보면서 눈에 쌍심지를 돋우지 맙시다.
그렇게 볼 때 덕이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간혹 사람들은 예수님이 좀 더 지혜롭게 안식일 에 병 고치는 문제만은 피하셨다면 적어도 복음 전하는데 더 효과적이었지 않았겠는가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 문제로는 한발 자국도 양보를 하지 않고 바리새인들의 예상대로 예수님은 그 손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병 고치는 일을 안식일에 아예 하지 말라는 겁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고치지 않으면 죽게 될 사람조차 그만 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장 고치지 않아도 죽지 않을 사람 곧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손 마른 사람 같은 경우에 고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람을 오늘 꼭 안식일에 고쳐야만 합니까?
내일도 날이 있고 또 그 다음날도 시간이 있는데 혹 며칠 뒤에 고친들 어떠하며 한 달 뒤에 고친다 한들 죽을병이 아닌 이상 그동안에 죽기야 하겠느냐고?
하필이면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 말썽을 일으킬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참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구태여 충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 한 번 물어 봅시다. 왜 안식일에 병을 고쳐 그렇게 말썽을 일으키십니까?
가만히 계셨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꼭 그렇게 하셔야만 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치료하신 예는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막 01장에서 귀신들린 사람과 베드로의 장모를, 막 03장에서 손 마른 사람을, 요 05장에서는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이나 누워 있던 환자를,
요 09장에서는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눅 13장에서는 18년 동안 귀신들린 여자를, 눅 14장에서는 고창병 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일곱 가지의 경우 역시 모두 며칠 더 지나고 나서 고쳐 주어도 괜찮을 병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안식일에 고치십니까?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하는데 예수님은 인도적 차원과 환자의 차원에서 사람을 보셨습니다. 환자가 눈에 보이는데 치료를 연기하였다가 다음 날에 고쳐야 합니까? 안식일이라고 하여 내일로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보셨으면 안식일에, 월요일에 보셨으면 월요일에 그러니까 요일에 상관없이 고치신 것입니다. 선한 일도 오늘 마음먹었으면 그 즉시로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하고 돌아서면 못하게 되고 때로는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눅 13:16 그러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한시바삐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문제로 부딪친 것은 한시 바삐 풀어 주어야겠다는 일념 그것 한 가지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그 뜨거운 마음은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으며 안식일이어서 안 된다는 관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시비가 없도록 타협적인 마음을 용납하시지도 않으신 것입니다.
환자를 매임에서 풀어 주어야겠다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노리는 모함이나 함정 같은 것에 개의치 않으셨으며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곤경도 감수하셨습니다.
사랑은 쉬운 작업이 아니며 우리가 사랑을 실천으로 옮길 때는 항상 사랑의 수고와 함께 그에 따르는 곤경도 있음을 미리 아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피하여 그 손 마른 자에게 다음 날쯤 약속 시간을 정해 놓고 만나서 고쳐 주실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안식일에 일했다는 문제로 인해 시빗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에서 어려움을 만날 것을 알면서도 고쳐 주신 것은 손 마른 자를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겨는 마음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3. 손 마른 자를 향한 두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손 마른 자에게 치료의 방법으로서 두 가지의 일로 명령하심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①일어서라.
막 03:0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눅 06:08).
②손을 내밀라.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①첫 번째 명령은 쉽게 순종할 수 있는 일로서 손 마른 자는 회당 안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②그러나 두 번째 명령은 손 마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로서 원문에는 정확하게 손을 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두 가지 명령에 다 순종했는데 문제는 두 번째 명령입니다. 손을 내밀라는 명령은 의심에 가득 찬 질문으로 거부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그 명령에 화답하였습니다.순종은 축복의 문을 열어갑니다. 주님은 때로는 우리에게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일을 명령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논쟁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손익을 계산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 오른 손 마른 자의 순종이 탁월한 것은 그가 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명령들을 내리고 있는데 말씀이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면 되는 것이지 더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고전 04:06).
오늘 우리에게 희망이 없고 절망적이고 오그라져서 펼 힘이 없고 살맛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되시는 예수님께서 권고하실 때 그저 아멘으로 순종하고 실천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영적인 균형을 잃고 살아갑니까?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신령한 영의 지체가 말라 들어가고 오그라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출석은 잘 하는데 봉사를 안 하며 성경은 읽는데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낮예배는 참석하는데 오후 예배는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십일조는 하는데 감사헌금은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는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노는 일은 잘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에 일하는 것은 외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는 잘하는데 전도는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영적으로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잘 하는데 기분이 나쁘면 팽개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모두가 영적 불구자의 모습이에요. 빨리 순종하면 빨리 회복시켜 주심을 믿고 순종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 꼬 의논하거늘.
바리새인들의 관심과 초점은 하나님과 이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 때문에 유대교에서 자신들의 명예와 지위가 흔들린다고 생각한 종교적 이기심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고 바라는 모든 일들이 주님 안에서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 귀히 여기는 일들이 잘 되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더욱 새롭게 하시고 오그라진 것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살맛나고 힘이 생기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강건하고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믿음의 권속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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