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 (4)

예수 그리스도 (4) 그분의 치유-병과 죄/마9:1-13

예수 그리스도 (4) 그분의 치유-병과 죄
마9:1-13





2002년은 국가적인 대사가 많았습니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선거. 이제는 다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승리자로 끝났습니다.

월드컵이 끝날 때 “이제 무슨 재미로 살지”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니 “이제 무슨 재미로 살지”하는 소리를 또 듣습니다.

이제 우리는 연초에 성경 통독하는 재미로 살려고 합니다. 많이 신청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어느 사이트에서 본 글입니다. 앤드류 보니라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에게는 3가지 신앙규칙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에게 말씀드리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둘째,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떤 책도 읽지 않는다.

하루를 시작할 때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손이 먼저 갑니까 아니면 신문에 손이 먼저 갑니까? 한해를 시작하며 생명의 말씀, 축복의 말씀인 성경을 먼저 읽고 시작합시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고 성탄절은 예수님의 나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질병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육체적인 질병, 곧 병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과 영혼의 질병, 곧 절망과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근본적인 질병의 문제를 치료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과 희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두 가지 이야기이지만 연결된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북쪽 가버나움이라는 동네, 어느 집에서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친구 일행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와 그 후 세리 마태의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병과 죄를 치료하시는 영혼의 의사로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둘려 쌓여 있습니다. 들것에 실려온 중풍병자, 그를 데려온 적어도 4명의 친구, 서기관, 수많은 군중들 그리고 세리 마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변두리인물들, 바리새인들...

예수님은 그들에게 3가지 행동을 보이시고 우리에게 3가지 중요한 진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의미 있는 행동과 그 행동에 따른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싣고 자기에게로 데려오는 저희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을 때 나다나엘은 자신을 알아보는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여기 오기 전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

예수님은 지금 당장 눈앞에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이미 보고 아셨습니다. 나다나엘을 보시고 그 안에 거짓이 없는 충직함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그물 깁는 요한과 야고보를 보시고 그들 안에서 복음의 일군 됨을 보셨습니다. 사람 많은 가운데 뽕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 있던 삭개오도 보시고 따돌림받으며 외롭게 살아왔지만 회개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밤 다른 사람들은 무서워 다 도망쳤지만, 숨어서 멀찍이 따르던 베드로도 보시고 두려움 속에서도 그래도 마지막까지 좇으려고 하는 그의 우직함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백성들을 보시며 상처 난 채 유리하고 방황하는 가엾은 양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호렙산 기슭에서 모세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신다는 것은 그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침상을 들고 오는 그들을 보시고 그들 안에 있는 멋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침상을 무슨 나무로 만들었나? 저 사람들 출신이 어딘가?’ 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내면의 의미와 뜻과 마음과 본질을 보시는 분으로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행동을 보시고 믿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내가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 사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총으로 죄 사함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사람들의 행동 속에서 믿음을 보셨을 뿐만 아니라 한 서기관의 속생각을 아셨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숨죽이고 있던 서기관이 이 일들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감히 사람으로서 사람의 죄를 사해 준다고 말하다니. 자기가 하나님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발언이야. 이제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어. 더 이상 빠져나가기 힘들겠지“

겉으로 말하면 눈총을 받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몰매 맞을지 모를까봐 그는 속으로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속생각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어찌해서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주님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알고 계십니다.

시편 139편을 붙잡고 기도하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 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나의 고민하는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악한 생각을 하고 있는 서기관의 마음을 읽으시고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려 하노라” (6)

주님은 죄를 사 해주시는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하시고 판단하시는 권세도 갖고 계시고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 낮은 곳으로 임하셔서 위로하고 섬기시는 권세도 갖고 계십니다. 주님이 가지고 계시는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이고 최고의 권세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 앞에서 권세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상처와 실패로 연약해진 힘없는 사람 앞에서 권세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권세 있는 자 같이 행동하는 서기관의 잘못되고 악한 생각을 드러내시며 ‘내가 권세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권세의 주님 앞에 감추일 것이 없습니다. 아기 예수 오심은 세상의 불의와 어둠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속마음, 속생각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을 향한 좋은 생각을 많이 품으시기 바랍니다. 이웃과 세상을 향한 좋은 생각을 많이 품으십시오. 주님이 알고 계시고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





3. 예수님은 보시고 아셨을 뿐만 아니라 들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빈정거림을 들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너희 선생이라는 사람은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하고만 밥 먹느냐?”고 빈정거렸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누구하고 어울리는지를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고 빈정거렸습니다. 예루살렘으로 3차 귀환 때 느헤미야 총독을 중심으로 성벽을 건축할 때, 방해꾼들이 와서 “그것도 성벽이라고 짓느냐?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겠다”고 빈정거렸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빈정거렸습니다. “젖비린내 난다. 내가 심심해서 온 줄 아느냐?”

욥의 친구들은 고통받고 있는 욥을 찾아와 위로하기는커녕 빈정거렸습니다. “죄가 없으면 어찌 그런 고난이 오겠느냐? 잘 생각해 봐라”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은 빈정거렸습니다. “저것 봐라 대낮에 술에 취했구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왼쪽 강도가 빈정거렸습니다. “남을 구원하지 말고 자기나 구원해라”

때로는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 빈정거리는 것을 듣게 됩니다. 남다르게 헌신하려고 할 때 빈정거리는 것을 듣게 됩니다.

빈정거리는 것은 비웃는 것이고 못되게 비난하는 것입니다.

빈정거리는 사람은 신앙과 인격이 소극적인 사람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순수한 열심을 내다가 비난이 오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마십시오. 빈정거리는 사람은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은혜를 누리지 못하며 주님의 일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빈정거리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의 빈정거림을 들으시고 직격탄을 날리셨습니다. “너희들과 같이 의인이라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번 성탄절에는 죄인을 향하여 오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사랑과 베풂의 은총이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