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병자 치유 마9:1-8
Ⅰ. 들어가는 말
시편 31편은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노래한 시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그랬습니다.
사람이 마음 속에 죄를 품고는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양심이 있어서 자기 죄에 대하여 양심이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제일 먼저 자기의 양심이 자기를 고소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자기 양심이 제일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쉽게 털어놓지 못할 때에 그 양심의 고소로 인하여 마음에 심한 번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한 괴로움이 심해질수록 사람은 그 정신과 기력이 쇠약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노래하기를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죄에 대해서 깨끗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삽니다. 어떤 죄는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양심에 심한 괴로움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작은 죄, 큰 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들이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 하나님께 지은 죄, 죄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는 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고 선언하시는 분을 만납니다. 인생의 속 깊은 문제들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함께 본문을 관찰하시는 가운데 죄의 심각성과 주님의 은혜에 대해서 다시금 기억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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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본문 관찰
1.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본문은 얼핏보면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의 애틋함과 주님의 치유 사역이 눈에 뜨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인간의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죄가 얼마나 사람을 심각하게 망가트릴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숨겨진 죄의 문제를 보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런 문제들을 보실 뿐만 아니라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참된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막2:1-12절과 눅5:17-26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본문을 함께 살피면서 본문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가다라 지방 사람들이 떠나 주실 것을 요구하시자 더 이상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다시 건너편 본 동네, 즉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마2:2절)
그런데 이때 예수의 치유를 바라는 한 중풍병자가 주님께 인도되었습니다. 주님 주변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중풍병자를 실은 침상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풍병자를 돕던 동료들은 궁리 끝에 중풍병자의 침상에 줄을 달아서 지붕에서 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마가는 지붕을 뜯고 병자를 달아 내렸다고 합니다. 누가는 기와를 벗기고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다시 말해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병자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을 보시고 라는 말을 세 복음서 기자는 한결같이 강조해서 기록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은로운 행위로 주님앞에 나갈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님은 아직까지 병자들에게 병을 고쳐주시기는 했어도 죄 사함을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중풍병자는 표면적으로는 지금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중풍 병을 치유 받기 위해서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말씀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당황스러움을 경험합니다. 왜 그동안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다가 갑자기 이 사람에게만 병을 치유해 주는 것도 아니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중풍 병은 죄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는 것입니까? 주님은 일반적으로 어떤 질병이나 재난을 특별한 죄로 말미암은 형벌로 간주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1-5절에는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말합니다. 빌라도가 어떤 갈리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재물에 섞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같이 망하리라\"
요한복음9:1-3절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묻기를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그랬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두 경우 다 주님은 죄의 결과로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중풍 병자를 보면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이 중풍병자의 진정한 문제가 죄의 문제에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 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풍 병자의 경우는 죄가 그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이런 추론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과거 어떤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범죄를 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이 죄로 인한 죄책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신음하다가 육체적인 질병까지 얻게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자신 속에 있는 죄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범한 어떤 죄의 문제로부터 그는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번민과 고통의 날들을 보내다가 육신까지 질병을 얻어서 이제는 혼자 움직일 수조차 없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진정한 문제는 중풍 병의 치유가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동료들의 힘을 얻어서 주님 앞에 나왔을 때 그는 죄의 문제와 더불어 육신의 질병까지 해결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생의 속 깊은 죄악의 문제를 바라보실 수 있는 주님을 만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땅에 진정한 제물이 되시고 제주가 되셔서 죄를 사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참된 메시아로서 죄로 물든 상한 이 땅을 치유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 중풍병자 이야기는 인간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떤 죄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현대가 죄에 대해서 무디어진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가 죄인지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수치스러운 것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과도한 노출 경쟁을 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음담패설로 얼룩진 방송들이며, 온갖 매체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자끄 라캉의 통찰처럼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 욕망의 화두에 있는 성적인 욕망을 너무나 표면위로 부상시켜 버렸습니다. 그 결과 죄가 죄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스러울 만큼 이 시대는 죄에 대해서 무디어져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적하는 일은 점차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저 자신도 죄의 문제로부터 접근해야할 구원의 문제를 자꾸 일반적인 것으로 접근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을 제 자신 안에서 목도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다시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 인간이 범하고 있는 죄에 대한 지적이 없이 복음과 십자가는 필요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대신 죄의 값을 담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이것을 전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이 전해야 하는 복음의 가장 최전방에 죄에 대한 지적이 있습니다. 함께 기억하십시다.
2. 서기관들의 문제
그런데 이 주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이 그만 마음에 걸림이 생겼습니다. 마가복음 2:7절에는 좀더 서기관들의 마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여러분!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는 이들의 생각은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몰랐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세상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고 세 기자가 동일하게 쓰고 있습니다. 주님은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의 마음에 의논을 악하다고 하신 것은 그들의 마음이 다른 것으로 비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적과 기사들을 폄하하면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흔히 우리의 마음이 뭔가 목사에게 섭섭한 것이 있거나 걸리는 것이 있으면 말씀이 잘 들어옵니까?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들으면서 이상한 것 잘못된 것만 듣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은혜가 되지 않아서 결국 자신의 심령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이런 경우는 옳지 않은 일로 그럴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누구인가요? 바로 자신입니다. 객관적으로 전해지는 진리의 말씀에 아멘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그 성도가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이 서기관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인생을 지옥 구덩이에 던져 넣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쉽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것이 쉽습니까? 둘 다 어렵습니다. 둘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죄 사함의 권세는 인간에게 주어진 일이 없는 것입니다. 병을 고치는 기적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통해서 자주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사도들이 일으킨 신유의 기적들은 자연인인 그들이 이룩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둘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치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어려운 일이 죄 사함을 선언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바로 너희처럼 불신하는 자들에게 내가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동 번역은 이 본문을 이렇게 좀 더 생생하게 번역했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한 생각으로 주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그들 앞에 주님은 다시 생생한 그림으로 보여주십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러자 중풍병자는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실로 마음 속의 질병이었던 죄의 문제와 육신의 질병이었던 중풍을 한꺼번에 치유 받고 속 사람과 겉 사람이 다 건강해져서 돌아가는 축복된 인생이 된 것입니다. --------------------------------------------------------------------------
Ⅲ. 결론과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죄가 얼마나 사람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가를 보게됩니다. 마음 속에 죄를 품고 살아가는 것은 마치 마음 속에 칼을 품고 살아가는 것과 같아서 그 속 사람이 온갖 상처로 얼룩지게 됩니다. 그리고 상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랜 세월동안 죄책으로 인해 시달려 왔던 중풍병자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는 이런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공존 불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각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에게 나오기만 하면, 믿음으로 나오기만 하면 치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발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적인 질병과 내적인 죄의 문제를 일시에 도말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주님이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시는 것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를 주님께 가져오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중풍병자는 그의 오랜 시간동안 고뇌의 원천이었던 죄의 문제를 믿음으로 주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속 깊은 문제들을 직시하고, 인생들의 생각까지도 감찰하시는 주님 앞에 겸손하게 모든 것을 의지하야 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처럼 마음을 악한 생각들로 채우지 않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죄악 가운데 신음하는 인생들에게 여기 중풍병자를 자유케 하신 주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언하시는 주님을 증거하시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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