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능력을 회복 하는 교회

치유의 능력을 회복하는 교회/마9:35-10:1

치유의 능력을 회복하는 교회
마9:35-10:1





연초에 기도 제목을 적어내는 것을 보면 가장 많은 기도제목 중의 하나는 건강에 관한 것입니다. [올해에도 하나님의 은혜 중에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기도제목은 빠지지 않고 적습니다. 그만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나 다 건강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먼저 2003년 한 해 동안 우리 가은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심령이 풍성해 지고, 성도들의 가정이 성령충만으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한해를 보내시는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마다, 가정마다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가르치고 치유하고 전파하는 교회]라는 2003년 교회의 표어에 맞추어 그 두번 째로 [치유하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9 : 12절에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건강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 건강하지 못한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병들어 살기를 원치 않으시며,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불러서 심령의 치유와 질병의 치유를 받고 건강하게 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육체적인 질병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형제 자매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받고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병들어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신적으로 아픔과 시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정신적으로 갈등하면서 고통스럽게 시련의 세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이들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질병 가운데 있고, 약한 것 가운데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심령들을 교회로 부르셔서 고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한사람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실은 나 혼자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게 찾아오는 질병과 정신적인 고통은 가족들에게 위기를 가져올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공동체를 파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치유사역에 대해서 아주 무지한 반면에 사탄은 질병에 밝아서, 오늘도 심령의 질병과 육체의 질병을 이용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질병을 무기 삼아서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월남전에서 베트콩들이 소위 [쇠꼬챙이 작전]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정글의 길목에다가 아주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숨겨 놓습니다. 그러면 아군들이 정글의 길목을 지나다가 날카로운 쇠꼬챙이에 찔려 중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적어도 정글에서는 한 사람이 다치면 두 사람이 상처난 사람을 부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두 명은 정글을 헤쳐나가면서 적군이 오는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 사람의 부상병이 생기면 한꺼번에 다섯 명이 묶이는 것입니다. 한명이 다쳤는데 다섯 명이 무력하게 된 것입니다. 정글의 지리에 아주 밝았던 베트콩은 [쇠꼬챙이 작전]을 실행함으로서 아군을 일시에 묶어버리는 작전을 썼던 것입니다.

모든 질병은 사탄으로 부터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처럼 질병을 통해서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무력화시킵니다. 한 사람을 공격하면 몇 사람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의 병이든 육체의 질병이든 사탄은 질병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지 못하도록 집요한 공격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건강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사탄의 음모를 대적할 수 있는 신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서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이 우리를 향해서 끊임없이 쏘아대는 불화살을 막을 수 있는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우리가 세상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질병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능력만 갖추고 있으면, 우리는 어떠한 질병의 불화살이 날아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능력있는 교회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죽은자들을 살려내는 능력을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을 따라 다나던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 있는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니 그 사람에게서 병이 떠나고 악한 영이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다이나마이트처럼 아주 강했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셨던 치유의 능력이 어김없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는 치유의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치유사역은 분명히 성서적이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사역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아주 중요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주신 치유의 능력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치유의 사역은 오늘날 교회가 가장 소홀하게 여기고 제일 자신없어 하는 사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치유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치유사역은 겨우 어떤 특정한 부흥사들이나 별난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도 이러한 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치유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으로 부터도 비난을 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치유사역을 마치 폭발물과 같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해서 치유사역을 교회의 사역 가운데에서 아주 배제함으로, 정상적인 목회자들과 평신도들도 이것을 아주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띄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치유사역은 아주 위험한 것,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 폭발물과 같은 것, 오늘날에는 사라진 능력의 은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들어와서 이 치유의 사역은 주로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는 뜨거운 기도와 방언과 치유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치유사역의 능력이 회복되시 시작했습니다. 이때 전통주의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침례교에서는 [저것은 이단에 가까운 행위이다. 우리 하고는 너무나 다르다] 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팔장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치유사역의 능력은 복음주의 교단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장로교와 감리교와 루터교와 침례교에서는 오순절 교회와 교류하거나 합류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치유의 능력들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제 3의 성령운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주권적이고 강권적인 역사였습니다. 아주 뜨겁게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두손을 들어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간구하는 이 뜨거운 성령운동 안에서, 세계 도처에서는 강한 치유의 역사와 표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 세계 기독교계의 움직임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3의 성령의 물결이 교회 공동체 위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치유의 사역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동안의 한국교회의 치유사역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자기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치부되어 졌습니다. 또는 치유사역을 행하는 방법 상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치유를 하고 나서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까지 있었습니다. 치유사역은 아주 성서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런 면에서 건전하지를 못했고, 치유사역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치유사역 자체는 분명히 성서적이고, 회복해야 하는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역 중에서 치유하는 사역과 능력을 모두 외면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목욕을 시키고 나서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치유의 능력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분명히 치유의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출 15 : 26절에는 성부 하나님을 가르쳐서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치유하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요, 치유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자 예수님 또한 가르치시기도 하셨고, 말씀을 전파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한 사역과 더불어 예수님은 병든자들을 치유하시고 약한 것들을 고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질병을 고치시고 약한 것들을 치유하시는 능력의 주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렴 하나님 또한 치유의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오늘도 교회의 치유의 현장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 1서 5장 7절에는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성령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하시는 분이심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심령에 병이든 자를 치유하십니다. 위기에 처한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상처난 마음을 싸매 주십니다. 치유의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삶과 역사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치유하십니다. 오늘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현대의 각박한 현실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분노하고 살아가는 모든 자들을 치유하십니다.

심령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밭과 같습니다. 심령이 말씀으로 강하지 못하면 우리의 심령은 병들고 맙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질병의 75%는 모두가 심령의 문제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심령 밭은 언제나 쟁기로 갈아 엎어서 늘 새로운 은혜로 가득채워야 병들지 않습니다. 말씀의 은혜와 기도의 능력과 찬송과 감사의 충만함이 우리의 심령밭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심렴밭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늘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는 심령 뿐만 아니라 육체의 질병도 치유하십니다.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역사는 아니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자신들의 믿음의 분량만큼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치유의 역사는 심령의 치유에서부터 육체의 질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나타납니다.

제가 이번 학기에 외중 신학교에서 중국교회사를 가르쳤는데 중국의 교회사에서 등장하는 중국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치유의 역사와 관련된 두 목사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은 여일장이라고 하는 목사님이십니다. 이 여일장 목사님은 중국교회의 연합운동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셨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여일장 목사님이 청년 때, 성요한 대학을 다녔는데, 스포츠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교내에서 축구 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축구를 하는 도중에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당했습니다. 약 4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때 여일장은 하나님께 눈물로서 간구합니다. [주님! 제가 주의 일을 하려면 튼튼한 두 다리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대로 내버려 두시려고 합니까? 주의 권능으로 이 다리에 힘을 주소서!]하고 간절히 매달린 것입니다. 여일장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절망적으로 다리를 절단할 것을 기다리고 있던 의사들도 놀랐습니다. 절단해야 한다던 다리가 완쾌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중국교회사 책에 나오는 첫번째 이야기 입니다.

중국교회사에서 등장하는 두번째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워치만 리]라고 알려진 예탁성 목사님이십니다. 예탁성 목사님은 중국교회의 소그룹 운동을 이끄셨던 지도자 중의 한 분이셨습니다. 예탁성 목사님은 거의 한평생을 협심증과 결핵으로 투병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용사였고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체험을 아주 많이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어느날 부터인가 폐결핵을 앓게 되었습니다. 폐결핵을 앓아서 피를 쏱아낼 때에는 정말로 하루 하루가 참으로 괴로운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좋다는 약은 모두 다 써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전혀 차도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기력 밖에는 남아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을 깨닫고 그 동안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를 죽기 전에 집필할 계획을 갖았지만 결핵은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계속되는 통증을 느끼면서 하나님 앞을 찾아가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저를 빨리 데려가시려 합니까? ] 이 한마디의 기도를 드리고 그는 계속해서 아직까지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 같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으로 부터 그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으로 행하리라] [믿음으로 서리라]하는 말씀만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예탁성 목사님은 침상생활을 하던 176일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함께 예탁성 목사님을 위해서 밤낮없이 기도하던 7-8명의 자매들이 이를 보고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께 찬송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탁성 목사님의 결핵을 치유해 주셨지만 그에게는 협심증이라는 가시를 남겨 두었습니다. 예탁성 목사님은 협심증 때문에 육신은 늘 약해서 고통을 많이 당했지만 그는 결국 이 병으로 인해서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됨으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심령에 치유를 받고 질병으로 부터 고침받는 역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도 이미 17세 때에 치유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메마른 심령과 병든 육체를 치유하시는 역사를 일으키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의 50% 이상은 모두가 예수님께서 치유하셨다는 기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각종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료하시고 치유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마음의 불구가 된 사람들도 모두 불러주셔서 그 마음에 새살이 돋도록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족을 잃고 비탄에 젖어서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용기로 치유해 주셨습니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백부장의 종도 고쳐주셨습니다. 나인성에 살고 있던 과부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을때에도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은 풍부하지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던 삭개오의 심령에 새힘을 주셔서 마음의 병을 가지고 살아가던 삭개오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영혼의 갈증이 심해서 위기를 겪고 있던 수가 성의 여인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셔서 새로운 삶을 찾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몸과 마음에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을 치유하는데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는 치유의 능력을 회복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치유의 능력을 회복받는 교회가 되자} (2×)
상한 심령의 치유이든 육체의 질병에 대한 치유이든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치유해 나가는 능력이든 치유의 능력을 회복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현대 사회는 오늘 우리를 불안한 심리 상태로 몰아갑니다. 불안은 분노로 바뀌어갑니다. 분노는 알코올과 마약의 힘을 빌어서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모든 사회적 구조는 우리에게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혼이 나가서 안정감을 상실하고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심령의 병이 들도록 만들고, 육체의 질병을 가져 옵니다.

오늘의 교회는 현대인의 위기의식 속에 서 있습니다. 심령에 고통을 당하고 육체의 질병으로 신음하고, 혼을 잃어버리고 안정감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현대인의 삶의 자리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교회는 치유의 능력을 회복받아서 이들을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들의 상한 심령을 치유하고, 질병을 치유하고, 심적인 고통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여러분의 심령과 교회 위에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