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시고 싸매시는 그리스도

고치시고 싸매시는 그리스도(2)/마8:1-7

고치시고 싸매시는 그리스도(2)
마8:1-7





지난주에 총회 여름 성경 학교 주제(고치시고 싸매시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전체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만, 마태복음 8장을 중심으로 좀더 세부적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온 우주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하늘은 땅을 위해서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서 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바에 어긋나갑니다. 갈수록 좋았던 그 땅들이 하나 하나 파괴되어져 가고 있고, 좋았던 사람들이 악하게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파괴된 모든 것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중심이 되는 사람들을 불러서 구원하시 고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높은 곳에서 너무나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사건, 동정녀를 통해 이 땅에 오신 사건 자체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가르쳐 주는 내용이 마태복음 5, 6, 7장입니다. 이 장들은 성경전체의 중심입니다. 마태복음 5장-7장의 말씀 속에서 우리를 비추어 보면 우리의 신앙의 방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7장을 우리는 산상수훈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산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더 엄격하게 말하면 이것은 천국의 헌장입니다. 천국은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며, 천국은 이러한 곳이다 라는 것을 우 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국헌장을 말씀하신 이후에 산에서 내려오시자마자 하신 일이 바로 병자를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전체에서는 12가지 치유 사건이 나오지만 8장에 서 4가지 사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1~4절까지 문둥병자를 만나고 고치는 사건, 두 번째 5~13절에는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는 사건이 나옵니다. 세 번째는, 14~17절에 열병을 고치는 사건이 나오고 마지막, 28~34절 내용 속에서는 귀신 들린 자를 고치는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9장에 가서도 중풍병자를 고치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의사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의사로 오셔서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열병을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는 일들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역들을 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하나 하나의 사건 속에는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 당시인 2000년전의 사건이지만 오늘이 시대에도 시대적 의미를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치유의 사건이 예수님 당시로 끝나고, 오 늘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이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건 하나 하나가 왜 그렇게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간단하게 한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고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치유의 사건에는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사건들 중에 1~4절에 나타나는 중풍병 환자의 내용들을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 이 중풍병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 병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되어 집니까?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병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병은 죄와 관계가 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나 윤리적인 죄,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세상이 가르치는 도덕적인 죄나 윤리적인 죄를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근본적인 문제를 항상 가르쳐주고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원합니다.

근본적인 죄라는 것은 하나님 곁을 떠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노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죄인이라는 얘기입니다. 모두가 죄 인이라면 모두가 병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열이 납니다. 열이 나도 열 자체가 병은 아닙니다. 열이 나도록 하는 어떤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은 병이 아니라 일종의 병의 증상이라 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쉽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 중에 \'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화 한번도 안내보신 분 있으십니까? 화자체가 병은 아닙니다. 화는 내면의 질병이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합니다. 주로 어떤 사람이 화를 많이 냅니까?



주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화를 많이 냅니다.

어떤 정신학자의 책을 보면 교만한 사람들이 화를 많이 낸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많이 안다\'라고 생각하고, 내가 남보다 \'낫다\'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내가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남이 그 부분을 건드리면 내가 화가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를 안 낼 수 있는 방법은 겸손해지는 방법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지극히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이 정말 나의 주님일 때 화를 안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성령이 내게 역사하실 때 우리는 온유한 마음으로 바뀌어 지고, 내가 부족한 줄 깨닫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평생동안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서 기도하며 주님의 손에 치유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도 교만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교만한 사람들에게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것도 나쁩니다. 화내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내가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교만한 부분들을 건 드리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병을 고치는 표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한번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 오시자마자 왜 문둥병환자를 고치셨을까? 많은 병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문둥병자를 고치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문둥병자란 외적인 것 현상 하나만을 다룬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문둥병은 하나의 외적인 증상입니다. 실제로는 내면의 죄 때문입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회방하면 사함을 받을 길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고침받을 길이 없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돈이나 어떤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 아닙니다. 오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그 길밖에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문둥병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 중에서도 거역의 죄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2장을 읽어보면 내용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했었습니다.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되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주신 것입니다. 불러주셔서 아무런 값도 없이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의해 부름받아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가는데 계속 모세에게 거역하고, 하나님께 거역하며 반항하는 모습을 봅니다.

민수기 12장에보면 아론과 미리암이 지도자 모세에게 거역을 합니다. 이 결과로 미리암에게 내린 저주가 문둥병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내려진 축복의 공동체로서 문둥병환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레위기 13장 45-46절 말씀에 \"문둥병이 걸리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떠나야 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미리암이라고 할지라도 거역으로 인해서 문둥병이 걸렸다면 그 곳을 떠나야 됩니다. 마침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미리암이 고침을 받습니다. 고침을 받고 다시 그 이스라엘 공동체로 들어 오게 되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거룩한 날을 정하시고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들에게 하늘의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려고 이곳에 제단을 세우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문둥병에 걸려있으면 못들어 오게됩니다.

문둥병은 거역의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의 증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언제나 와서 예배드리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한자는 이 공동체에 들어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병든 자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부르짖고 찾으면 하나님은 해결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거역의 반대는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고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문둥병이 걸린 이방의 지도자가 나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아만 장군입니다. 그가 어떻게 고침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습니다. 그것은 요단 강물이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나아만은 거역을 했지만, 하인이 한번 들어가 보라고 부탁을 했기에 들어감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모든 타락한 사람의 특징은 곧 반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타락한 사람의 증 거가 곧 반역, 불순종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 거역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심하면 부모를 죽이기 까지 합니다. 아이들을 함부로 다루지 마십시오. 요즘은 선생님이 아이들이 잘못해도 잘 못혼냅니다. 사회를 떠들석하게 하는 신창원을 보십시오. 처음부터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가 거역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면서 살아갑니까? 우리가 신창원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역함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거역함으로 인해서 영적문둥병이 걸리는 것입니다. 요즘은 의학이 많이 발전해서 나병이 나을 수 있는 병이 되었지만, 그것보다 더 심한 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역은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역을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한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굉장한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문둥병자는 유대인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잃어 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러 왔다\" 이방인은 다음 차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은 이방인에게\"라고 말씀하십니다. 백부장의 문제 즉, 하인을 고친 사건은 바로 이방인을 고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 즉, 이스라엘 나라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한국 땅에는 오 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오셨습니까? 말씀으로, 영으로 오셨습니다. 반역했던 문둥병환자와 같은 유대인에게는 친히 오셔서 손을 얹고 치유해 주십니다. 친히 만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 가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항상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한 종류는 반역하는 자입니다. 한 부류는 반역을 당하는 자입니다. 비평하는 자들, 비평을 받는 자들, 불순종하는 자들, 순종하는 자들, 다시말하면 남을 항상 해롭게 하 고 찌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항상 찔리면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반역을 당하셨습니다. 늘 비평을 받으셨습니다. 못과 창에 찔렸습니다. 세상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이 두 부류가 있습니다. 어느 부류가 좋습니까? 반역하고 비평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판단하고 불순종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내가 비평과 반역을 당하고 늘 찔림을 받는 것이 좋습니까? 예수님이 찔림을 당하고 비평을 받으셨기 때문에 뒷부분이 훨씬 더 좋지요? 중요한 것은 나는 어느 부류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부류에 있습니까? 후자가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괜찮은 것 같아도 다 병들어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내게 역사하시고, 주님의 손길이 내게 미치고, 주님의 만져줌이 있고, 주님의 통치 속에서 치유되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남을 반역하고, 비평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계속 지옥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루하루 일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히려 비평을 당하고 순종하면서 찔리는 사람들은 천국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이 땅에 심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진정 복음을 가르치고 복음의 사역들을 해가려면 비평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과 함께 사역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진정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어서, 내 병든 부분이 치유되어짐으로 반역하지 않고 비평하지 않으며, 불순종과 찌르지 않는 상태에 있다면 외적으로 볼 때는 굉장한 괴로움이 있는 것 같아도 내면의 건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천국을 이루어갑니다. 그러나 타락한 자아가 내 중심이 될 때는 항상 지옥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반역자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 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두가 문둥 병자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보십시오. 여기 영적 문둥병 환자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주님을 구주로 믿고 순종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제물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치료하러 오신 의사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 그분은 병자를 치 유하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2절에 보면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데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데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진지라\'고 말씀합니다.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를 바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입니다. 반역자이지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럴 때 깨끗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이 반역자입니까? 우리 자녀들이 반역자입니까? 자녀들을 우리의 손으로 치유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주님이 만지셔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질병들을 통해서 질병 자체를 고치시는 것보다도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밖에 드러난 사건들보다도 내면의 사건을 다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한 젊은 1급 정비사가 있는데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폐차를 자신의 기술로 고쳐서 아주 잘 타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하루는 장거리로 여행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도로에서 차가 멈추어 섰습니다. 자신의 기술을 믿고 차를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시간을 고쳐도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마침 어느 차기 지나가다가 멈추었습니다. 한 할아버지께서 차에서 내리시더니 물어보십니다.\'내가 좀 도와줄 까?\' \'나는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일급 정비사입니다. 완전히 폐 차였던 차를 고쳐서 타고 다니는데 당신의 손길이 필요없습니다.\'하고 계속 고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쳐도 차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지쳤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다시 오셔서 \'내가 좀 봐줄까?\' 내가 일급 정비사인데도 못고치는데 어찌 할아버지가 고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하실 수 있으면 한번 해 보 세요.\'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아주 작은 도구로 엔진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 보시더니 한 부분을 살짝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에게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젊은이가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시동을 걸었더니 놀랍게도 시동이 걸렸습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그 할아버지는 \'내가 이 차를 만든 포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차가 고쳐졌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교만한 청년의 마음이 고쳐졌습니다. 우리에게 크고 적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병이 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병들과 싸워갑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누가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앞을 보기 때문에 내면의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면 구석구석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우리를 따라 다니십니다.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세상 것에 너무 의지하지 마십시오. 더 큰 힘을 가지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기도를 먼저 하고 병원에 가는 분이 얼마나 있습니까? 병원을 못 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을 가야 하지만 먼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누가 문둥병을 고쳐 주었습니까? 아무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외적 질병을 통해 서 내면 속에 품고 있는 거역의 병까지도 고쳐주십니다. 치료자로 오신 예수님을 완전한 나의 구주로 삼고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