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맥성ㅇ르 치료 하시는 거룩 하신분

자기 백성을 치료하시는 거룩하신 분/마8:1-17

자기 백성을 치료하시는 거룩하신 분
마8:1-17





지난 시간까지 해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살폈습니다. 오늘부터는 마태복음의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단락은 9장 35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께서 베푸신 10가지의 이적이 중심되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오늘은 문둥병자를
고치신 것과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것을 살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그를 좇았습니다. 그 때 한 문둥병자가 나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엎드려 절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이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
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이 말씀 한 마디에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
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 증거하라는 것입니까? 이
스라엘의 판단자 제사장에게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 이적이 어떤 성격이 어떤 것
임을 보여줍니까? 이 이적이 예수께서 자기를 증거하시고자 하시는 자기 계시적 성경의
이적임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판단자요, 중보자인 제사장에게 자기를 친히 증거하시
고자 하시는 이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적들은 모두 그의 긍휼의 사역이면서 동시
에 자기증거의 사건, 곧 자기 계시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으로 자기를 계시
하시는 것입니까? 새로운 언약의 주로 자기 백성을 복주시는 분으로 자기를 계시하십니
다. 자기 백성에게 참다운 안식을 가져다주시는 분으로 자기를 계시하십니다. 자신의 거
룩함으로 자기 백성을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장 부정한 자를 들라 하면 바로 여기 문둥병자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몸에 사망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자여서 하나님 앞에 가장 부정한 자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에 보면 그런 자들은 진밖에 머무르도록 조치되었고 진 밖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시시 때때로 진 밖으로 나가 확인하
고 혹 하나님의 치료하심으로 그 환처가 나았으면 새를 잡아 그 피를 일곱 번 뿌리면서
정함을 선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야 그는 진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고 하나님과
의 교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문둥병은 부정한 것이어서 제사장도 그 몸을 만지지 아니했고 멀리했습니다. 그
런데 본문을 보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 몸을 만지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므로 그를 깨
끗케 하셨습니다. 누구든 그 몸을 만지는 자는 자기도 부정함을 입는 것인데 도리어 그를
만지므로 그를 거룩케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율법에는 없는 일이며 구약의 질서에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부정한 사람이나 부정한 것을 만져서 부정을 입지 않고 오히려 다른
것을 거룩케 하는 것은 오직 성소의 하나님께 속한 것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성소 안의
것은 거룩하여서 그것을 만지는 자마다 거룩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만지시므로 그를 거룩케 하셨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시므로 그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거룩케
하시는 성소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율법의 규례대로 하면 예수께서
문둥병자를 만지는 것은 부정함을 입는 것이고 그도 부정한 자로 선언되어 진 밖으로 나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도리어 그를 만지시므로 그를 거룩케 하셨고 깨끗
케 하셨습니다. 또 문둥병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치료할 수 있는데, 주님께서 그를
치료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장은 무엇이라 선언해야 합니까? 그는 선언해야 하기를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을 만지시고 치료하시는 거룩한 분, 성소에 속한 거룩함으로 그 백성을 거룩케 하시
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오리라 한 메시야 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제사장에게 그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를
치료하심을 통해서 자기를 증거하시기를 자기 백성의 모든 부정하고 더러운 것을 정결케
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성소로 불러 드리시는 제사장 하나님으로 자기를 증거하신 것입
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새로운 언약의 주로 자기 백성을 복주시는 분이십니다. 고통하는
자기 백성에게 참다운 안식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거룩함으로 자기 백성을
거룩케 하시는 성소의 하나님이십니다. 성소에 그 영광을 두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정한 자 되어 영원히 휘장 밖 저주 가운데 있어야
했던 우리를 거룩케 하시고 친히 자기 몸에 참예케 하시고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영광스러
운 교제에 이처럼 참예케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은혜를 노래하며 감사의 찬송을 드림
이 합당합니다. 우리의 부정함을 씻어 거룩케 하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하늘 성소의 교제
에 참예케 하신 주님을 선포함이 합당합니다. 어떻게 선언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만지시고 치료하시는 거룩한 분, 성소에 속한 거룩함으로 그 백성을 거룩케 하시
는 하나님\\\'이라고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거룩케 하시고 안식하게 하시는 참
다운 구원자이시라\\\'고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사망의 고통으로 저주된 인류를 놓여나게
하실 유일한 구원자\\\'로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원치 아니한 일을 바
로 제자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문단을 보면 한 이반인된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에 들어가시자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
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셔 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
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제 밑에도
병사가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그러니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놀라셨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기
백성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런 믿음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말씀하십
니다. 10-12\\\"----------\\\"(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
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이방인에게서 믿음을 보셨습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도 갖지 못한 믿음을 본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주님을 권능의 주님으로, 만물을 원하시는 뜻을 따라 지배하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이
에 주님께서는 크게 칭찬하시고 백부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
다\\\" 그러자 그 시로 하인이 나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적은 곧 무엇을 보여 주는 것입니까? 어떻게 이방인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올 것
인가 장차 이방이 어떤 풍성함으로 이 나라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의
주제가 그것 아닙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천하만민이
참여하는 권세의 나라를 세우셨는가 하는 것이 마태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
권세의 나라를 장차 자기 죽음과 부활로 세우실 것인데 지금 여기 이방인이 선취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 구원받는다는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함께 하시는 권세있는 나라에 그들이 참여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 주께서 그 권세로 통치 하시는 나라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백부장과 하인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 나라에 참여한 자는 장차 오는 나라
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도리어 나라의 본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
날 것입니다. 그들이 오신 구원자를 믿지 아니하고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허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를 오신 구원자로 선
언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은혜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귀신
바알세불을 힘입어 하는 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방인된 백부장은 주님을 전
능의 주님으로 만물을 원하시는 뜻을 따라 지배하시는 분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은 이 더 큰 빛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주님을 시인치 아니하였는데 이 이방인이 주님을
주님으로 시인한 것입니다. 이제 구원은 이방에게로 향할 것이고 본 백성은 쫓겨날 것입
니다. 이방은 은혜를 입을 것이고 본 백성은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과 이방
인의 간격은 무너졌습니다. 구약 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방을 찾으신 적이 없었습니
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성소에 계셨고 자기 백성의 보호자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
에서 이 저주의 어둠의 간격을 무너뜨리셨고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셔서 친히 찾으셨습니
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부정한 자기 백성을 만지셔서 거룩케 하신 주님께서 이제 이
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의 자리가 어디였습니까? 캄캄한 어둠의 저주된 자리가 우리의 자리였습니
다. 이스라엘은 그나마 성소에서 그 영광을 뵈었지만 우리는 그나마도 못한 이스라엘 밖
의 자리가 우리의 자리였습니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하나님께서 이방에
그 빛을 비추시고 이처럼 이방인을 불러 자기 백성 삼으셨습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쫓
아내시고 대신 우리를 불러 그 자리를 채우셨습니다. 영광의 상에 앉게 하셨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들을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은혜를 입히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여기 백부장보다 더한 믿음을 발휘해야 할 것이고 그를 만유를 지
으신 하나님으로, 그 뜻을 따라 만물을 통치 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참 하나님으로 그 권세를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은 병자를 고치신 일에서 그 권세를 나타내셨을 뿐 아니라 친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심으로 그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가 되심을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사심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부활의 증거를 보고
부활의 시대를 사는 자로서 더 온전하고 탁월한 믿음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고 죽음의 권
세의 조롱 앞에서도 능히 믿음으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보지 못했던 백부장도 이
런 믿음을 보였을진데 부활을 사는 우리야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설사 고통하던 하인이 숨을 거둔다 할지라도 능히 주님을 시인하고 주님
께 의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
가 그를 의심할 수 있고 주의 나라의 권세가 무엇인가 의심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의심하는 시대에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능히 주님을 시인
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사는 우리의 위치입니다. 그러니 죽음이 우
리를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내 생명은 주께 있으니 누가 나를 해하리요, 주가 나를 사랑
하시니 누가 나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하는 믿음으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
리의 육체의 생명은 끝날 수 있으나 우리는 영원히 주님 안에 있는 것이며 부활의 주님
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 앞에 믿음으로 시인해야 할 문제
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분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
다. 그가 우리에게 생명을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고, 그렇지 않고 우리의 생
명을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고통하는
병이 나아야만 하나님의 그 권세와 사랑이 증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확증되었고, 아들의 부활에서 권세의
나라는 확증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무엇을 주어야만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는 것이
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는 지나갔
습니다. 이제 어떤 능력의 일이 있어야만 그 나라의 능력이 확증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
면 그 나라는 권세의 나라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역사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부
활의 새로운 질서를 살고 있는 것이고 참다운 능력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조롱하는 믿음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고 \\\'살든지 죽든지, 저는 주의 뜻을
행하겠나이다\\\'하는 신앙고백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시대를 사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무엇을 보지 못하면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지나간 시대로 족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는다면
그 믿음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능히 주님을 부활의 주로,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믿음으로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