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의 치유

문둥병자 치유/마8:1-4

문둥병자 치유
마8:1-4





Ⅰ. 들어가는 말

주님은 산상 설교를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이 설교를 하시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주님에게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시자 허다한 무리가 주님을 쫓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5:1절의 허다한 무리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8:5절에 의하면 주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셔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주님에게 찾아온 한 문둥병자의 치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문둥병은 모든 질병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 병은 처음에는 그 모양이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바늘로 찔린 구멍이나 옴, 혹은 습진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상처들은 보통 처음에 코나 눈, 얼굴에 나타납니다. 이 작은 반점들은 처음에는 그 수가 적지만 점점 퍼져서 온 몸을 덮습니다. 이병이 피부에 나타나기 시작할 때는 이미 뼈 속 깊숙이 골수와 관절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관절 손, 발들이 힘을 잃고 몸이 오그라들며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문둥병의 가장 잔인한 것은 그렇게 신체가 변해 가는 동안 생명은 계속 유지되고 있어서 그 정신적 고통을 모두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손가락 발가락이 감각을 잃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몸이 죽어 가는 것을 아무런 대책 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문둥병입니다. 이것이 한 두 해가 아니라 20년 30년 동안 서서히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런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일단 문둥병에 걸리면 그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ophus)는 문둥병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취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레위기13:45-4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그랬습니다. 진 밖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었다는 말입니다.

중세기에는 사람이 문둥병에 걸리면, 사제는 문둥병자를 교회로 데리고 와서 그에게 장례식문을 낭독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를 죽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문둥병자가 예루살렘과 모든 성벽이 있는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문둥병자와 접촉하는 것은 죽은 시체와 접촉하는 것 다음으로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가령 문둥병자가 집안에 머리를 들여 밀기만 해도, 그 집은 지붕의 대들보까지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넓은 광장에서도 문둥병자와는 인사조차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무도 문둥병자에게 2미터 이상 접근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만약 문둥병자가 있는 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면, 적어도 약45미터 이상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문헌에 따르면, 어떤 랍비는 문둥병자가 지나간 거리에서 사온 계란을 먹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랍비는 문둥병자가 멀리 떨어지도록 돌을 던져 쫓았습니다. 또 다른 랍비는 먼 거리에서 문둥병자가 나타나면 아예 숨어버리거나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산상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신 예수님에게 이런 문둥 병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시고 완쾌를 선언하셨습니다. 함께 본문을 자세히 관찰하시면서 문둥 병자의 믿음과 치유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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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본문 관찰

1. 문둥병자의 결단(2절)

문둥병자는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주님 곁에는 허다한 무리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그들 앞에 나선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이것을 어기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경우 심한 제재 조치나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문둥병자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는 수 없는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님이 자신을 외면하거나 또는 자신의 병을 치유해 주지 못하는 분이라면 자신은 군중들의 노여움을 사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받을 질시의 시선과 죽을 지도 모르는 결과들 보다 주님께서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는 확신이 더 강했기에 그는 허다한 무리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호칭과 문둥병자의 말에서 잘 나타납니다.
문둥병자는 랍비여! 라고 주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현자(賢者)나 율법학자를 높여 부를 때 주로 랍비(rabbi)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보편적인 호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둥병자는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이 퀴리에 라는 말은 종이 주인에게 또는 독립된 집단 내에서 하급자가 상급자를 부를 때 사용한 존칭이었습니다. 이것은 문둥병자가 많은 고민을 했으며 주님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이어지는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말은 주님에게 문둥병을 치유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다만 주님이 고쳐 주시기를 원하시는지 원치 않으시는지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둥병자는 원하시기만 하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그 치료가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왕하5:7, 14절에는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치료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달라는 편지를 보냈을 때 이스라엘 왕은 자신의 옷을 찢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이것은 그만큼 문둥병을 고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10:8절과 11:5절에 의하면 문둥병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자만이 고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둥병자가 주님께 나아왔고 주님이 능히 고치실 수 있는 분으로 여겼다는 것은 문둥병자가 주님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인식을 바탕으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렇게 대단한 믿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허다한 무리 앞에 문둥병에 걸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까? 그만큼 문둥병자는 절실했습니다. 그리고 그 절실함만큼 믿음도 컸습니다.

2. 주님의 치유 사역(3절)

주님은 문둥병자를 보자마자 그 속에 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가 얼마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하고 있는가를 보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뇌 가운데 주님께 나왔는지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능히 말씀 만으로 저를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둥병자의 주여 원하시면과 주님의 내가 원하노니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하모니입니까?
구약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자와 접촉한 자는 문둥병자가 상징하는 죄성(罪性)에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어 의식법상 똑같이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습니다(레11:40; 13:46). 율법대로라면 예수는 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심으로써 부정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율법의 완성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문둥병자의 치유 여부를 판별할 때 그에게 접촉해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레13:2-8). 하물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더욱 말 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문둥병뿐만 아니라 타락의 왜곡으로부터 사람들과 이 땅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3.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제사장에게 보이라(4절)

우리는 이미 주님곁에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둥병자가 치유된 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문둥병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말고 먼저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주님이 이렇게 함구령을 내리신 것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유대인들, 특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견제와 시기를 때문에 복음 전파에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치유 받은 자가 율법의 예를 따라 제사장에게 나아가기 전에 미리 이적(miracle)의 소문이 전파됨으로써 나타날 제사장의 편견어린 판결을 의식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니면서 마음껏 자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주님은 드러나게 행동하지 않으셨다고 막1:45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정신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 여러 번 지적하셨습니다. 특히 외식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율법을 고의로 무시하거나 파괴하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사장에게 먼저 보이고 모세의 정한 예물을 드릴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원래 율법이 정한 문둥병자의 정결 절차는 먼저 제사장의 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레13:16,17) 그리고 나서 제사장의 정결 선언이 주어지면 산 새 두 마리와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드려야 했습니다(레14:4). 그리고 8일 후 흠 없는 어린 수양 둘과 암양 하나를 바쳐야 했습니다(레14:8). 물론 이런 규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구약의 의식 규례를 집약적(集約的)으로 상징하고 있는 지성소의 휘장(揮帳)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으로 폐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그런 정결레를 행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문둥병자가 완전하게 사람들에게로 복귀될 수 있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희에게 증거하라는 말은 완치된 사실을 보이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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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결론과 적용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문둥병자가 많은 고뇌가운데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한나가 브닌나나 엘가나에게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과 같은 원리라 하겠습니다. 문둥병자가 주님께 나오기까지 더구나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고 있는 현장에 나타나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하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치유에 대한 갈망과 주님에 대한 확신이 더 컷기 때문에 행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문둥병자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다는 것을 주님은 \\\"내가 원하노니\\\"라고 말씀하심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여기서 인생들의 피난처 되신 주님을 발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치유하시고 회복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질고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사람들. 문둥병자처럼 소외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청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나아오기만 하면 모두가 쉼을 얻게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